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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즐기기’

글/ 중국 수련생

[밍후이왕] ‘죽도록 즐기기’는 전 세계에서 30년간 베스트셀러였던 책이다. 작가 닐 포스트먼은 이 책에서 사람들에게 경종을 일으키는 문제를 논했다. 즉 우리는 현대 매체가 제작한 희열 속에 빠져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우리에게 엄숙하게 사고할 능력을 상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류 문화의 멸망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책의 개요는 이러하다. 전통적인 독서는 사람들에게 엄숙하고 이성적인 사유방식을 형성하도록 도와주고 독서를 통해 인류의 시야가 넓게 열리고 지식이 증가하고 지혜를 풍부히 하며 논리 분석능력, 지혜 판단능력 모두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TV, 촬영의 출현으로 단편 형식의 정보가 이성적인 사회를 파괴했다. 사람들이 접촉하는 정보는 그들에게 논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실질 행동에 대해 영향을 줄 때 이런 유의 정보가 남긴 유일한 용도는 바로 희열과 즐기는 기능이다. TV의 천직은 바로 희열감을 만드는 것이고 사람은 머리를 쓰지 않고 희열감을 곧 얻을 수 있다.

만약 한 시대에서 엄숙한 공공 생활을 버리고 주기적으로 통속 드라마, 종합예능프로, 연예인 가십 속에서 소모한다면 그들의 문화는 이미 위기에 다다른 것이고 겁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죽도록 즐기기 시대에 인류를 훼멸하는 것은 원한 맺힌 적이 아니라 오락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 책의 간략한 소개를 듣고 무척 감개무량했다. 적당한 오락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마음을 느슨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련인이 오락에 빠지면 수련을 포기하게 된다. 반본귀진(返本歸真)을 포기하고 자신의 서약을 포기하며 막다른 곳에 닿게 된다.

현실 속에서 어떤 사람은 한편으로 대법을 배우는 한편, 드라마를 챙겨 보고 게임, 마작, 미용 화장을 하고, 음식을 연구하고 닭·오리를 키우고 화초를 재배하는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 그들은 속인 생활을 마음껏 즐기는데 역시 귀중한 수련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오락의 시간이 많을수록 놀고 싶은 마음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도심(道心)은 갈수록 옅어진다.

자신의 상태를 말할 때 어떤 사람은 또 이유가 충분하고 그럴듯하다. 일부 수련생은 마작관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나는 방금 책을 다 보고 진상 자료를 붙였다고 말한다. 뜻은, ‘나는 임무를 완성했고 나도 마땅히 휴식해야 한다’이다. 수련생은 할 말이 없었다. 수련은 자기 일이고 자신이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매일 한 시간가량 책을 보고 나가서 진상 자료를 붙이면 바로 수련이라고 여긴다. 남은 시간은 마땅히 마음을 편안히 하고 생활을 즐겨야 한다고 여긴다. 사실 이는 잠자리가 물에 스치는 정도인즉 정진하고 실질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수련생은 모두 식사하고 잠자는 시간 속에서 시간을 짜내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감옥 안의 수련생들은 사인(死人)침대에 묶여서도 여전히 법을 외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매일 한가하고 여유 있는데 우리의 얼굴을 어디에 놓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한 수련생은 장기간 소설을 보았고 이불 속에서도 가만히 볼 지경이었는데 후에는 체포되어 중형 판결을 받았다. 또 한 대학교의 선생은 70여 세에 게임에 빠져서 수련을 느슨히 했고 암에 걸렸으며 1년 뒤에 사망했다. 한 수련생은 박해당한 후 나와서 농촌에 숨어서 닭과 오리를 한껏 키우며 답답함을 달랬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과 정법은 엄숙한 것이다. 이 한 기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사실 바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 한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지만 도리어 부동한 층차의 위대한 각자(覺者), 불(佛)·도(道)·신(神)과 부동한 층차의 주(主)의 위덕을 단련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을 느슨히 하는 한 수련자로 하여금 이미 굉장히 높은 층차에서 하루아침에 망가지게 할 수 있다.”[1]

한 수련생은 베이징에 갈 때 차창 밖으로 신과 부처님들께서 동반해주시는 것을 보았다. 톈안먼 광장에서 정정당당하게 현수막을 펼쳤다. 그녀는 전에 꿈속에서 금방(金榜)에 이름이 올라갔고 자신의 이름이 맨 앞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 그녀 미래의 과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건강을 챙기고 TV를 보며 건강보조식품을 먹었다. 먹고 노는데 탐하고 법공부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도 구하지 않았다. 오락이 확대되면 사람 마음의 집착·욕망·마성 역시 수련에 소질이 있는 자를 속인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전에 풍채가 좋았던 그녀는 지금은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수련생들이 각도를 바꾸어서 한번 사고하기 바란다. 현재는 우주 정법의 관건 시각이고 중생이 위기에 처한 비상시기이며 뭇 신의 주목 하에 우리가 조사정법(助師正法)을 하지 않고 종일 닭 모이를 만들고 닭똥을 치우고 계란을 줍고 닭을 키우면서 놀거나 종일 마작하고 소설을 보며 온라인 검색을 하고 드라마를 본다면 이는 비참하고 가소로운 것이 아닌가? 이는 신의 길로 걸어가는 것인가? 이는 엄숙한 부처 수련인가? 이는 조사정법인가? 이런 생명은 대법에 구도될 자격이 있는가? 미래 우주의 왕이 될 수 있는가? 수련은 거슬러서 올라가는 것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뒤로 후퇴하는 것이다. 용맹정진하는 상사가 아니면 바로 존망을 알 수 없는 중사(中士)이다.

오락에는 스트레스가 없고 홀가분하며 자유롭고 편안하고 소탈하다. 고생할 필요 없고 뼈를 깍듯이 자신을 찾을 필요 없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릴 필요가 없다. 하여 일부 수련생들은 시작할 때 단지 느슨히 하고 싶었을 뿐인데 결과 놀수록 더 놀고 싶고 인이 박여 취향이 되었으며 더욱이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중에는 완전히 오락에 통제되고 납치되었다. 마치 마약을 하는 것과 같다. 사실 과분한 오락 자체가 바로 구세력의 배치이고 마성이 충분한 것인데 그것의 목적은 바로 수련인을 훼멸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현대 사람은 행위가 표현될 때에 자신의 사상인지 아니면 부면적인 요소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는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한다. 표면상에서 보건대 당신의 행위 일체는 모두 아주 자연스럽고, 당신은 심지어 당신 사상의 내원 역시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기지만, 당신은 어느 것이 진정으로 당신 자신이 생각한 것이고, 어느 것이 외래요소가 당신을 통제하여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든지 상관없이, 당신의 욕망을 이끌고, 당신의 각종 중독적인 기호를 흡인하는지를 똑똑히 분별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 하에서 수련하는데, 얼마나 어려운가.”[2]

사람은 먹을수록 더욱 식탐하고 잠을 잘수록 더욱더 게을러지고 편안할수록 더욱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우리가 놀음에 탐할 때 바로 안일함을 구하는 것이고 방종을 추구하는 것이며 마성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속인은 모두 마성(魔性)과 불성(佛性)이 있으므로 사상이 옳지 않으면 마성이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3] 수련인을 놓고 말하면 죽도록 즐기기는 절대로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 시각 모두 매 사람 앞에 놓인 고험이다. 사부님께서 반복하여 강조하셨다. “느슨히 하지 말고”[4] 오로지 시시각각 정진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느슨히 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일부 수련생은, 나는 알고 있는데, 정진하지 않는다. 일부는 심지어 아주 정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부는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을 어찌하겠는가? 당신은 어찌하여 정념이 없는가? 사부는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가, 이 법이 당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 직책을 몸에 겸하고 있는데, 자신마저도 잘하지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자신이 신(神)에 대한 서약을 실현하지 못하면, 후과는 자신이 서약 중에서 정한 대로 된다.”[5]

그렇기에 우리는 정진해야 한다. 우리는 수련하러 온 것이지 즐기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며 향락을 누리려고 온 것이 아니다. 수련 속에서 매 시각 모두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어려움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어려움을 알고 뒤로 물러나면 안 된다.

밍후이왕의 ‘안일함과 소멸’ ‘당대 3대 마를 경계하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등 문장은 모두 매우 좋다. 여러분이 안일함을 경계하는 일부 문장들을 자주 읽어보기 바라는데 정진하여 느슨히 하지 않아야 비로소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해야 한다’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3년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7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31/4097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