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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함과 소멸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시간이 지날수록 대법 수련 대열 중에는 정법 노정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한 눈 팔거나 게을리 하는 사람, 뒤떨어지거나 도망친 사람이 있다. 이 역시 정상으로서 시간이 바로 검증이다. 시간은 사람을 완성시킬 수도, 도태시킬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은 큰 압력과 폭력 하에서 확고히 대법을 수련하면서 지나왔지만 환경이 느슨해지자 주춤해지고 심지어 정반대로 나갔다. 그들은 대법수련과 갈수록 멀어졌고 천국의 집, 자신의 서약, 사부님의 가르침, 신의 위치와 갈수록 멀어졌다. 신이 보기에 그들이 계속 이대로 나간다면 집으로 돌아갈 희망이 거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안일한 마음이 수련자를 망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이 역시 모든 대법 수련자가 반드시 중시해야 할 문제다.

세간의 표현을 보자면 어떤 수련생은 예전에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갔을 때 창문 밖에 신과 부처가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지만 지금은 아들, 손자 전담 보모가 됐다. 채소를 사고 밥을 하며 아이를 보는 것이 하루 세 가지 일이 됐고 신체가 좋지 않다. 예전에는 항시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법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도보, 꽃 가꾸기, 여행에 열중한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했지만 지금은 법공부나 연공할 때 졸리고,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며 백발이 성하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매일 여러 사람들을 조직해 연공했지만 이후에 자신은 배우지도 않고 연공하지도 않아 눈이 거의 실명됐다.

우주정법의 관건적 시기, 중생들이 생사존망의 비상시기에 놓였을 때 대법제자가 정진하지 않아 육신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잃었다. 어떤 사람은 수련하지 않아 그의 천국은 영원히 정법 중에서 갱신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그럴듯하게 구실을 둘러대는데 무슨 속인 상태에 부합해야 하고 부처는 부유하기에 너무 바빠서는 안 된다는 등이다.

사실 정진하지 않는 것은 신을 망치고 중생을 망치며 세계를 망치는 것이다.

1. 왜 느슨해지는가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원동력이 작다. “만약 당신들이 지금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없으며 인간 세상의 안일(安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사오(邪悟)할 것이다.”[1] 대법제자 한 명이 잘 수련하지 못하면 하나의 세계, 한 지역 중생들이 소멸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한 명이 잘못되면 전부 잘못되고 한 명이 잘하면 전부 잘된다는 책임을 알아야 한다.

반신반의하는 중에서 갈수록 멀어진다. 수련이 언제 끝나는지, 부처로 수련될 수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은 미지수다. 수련 성적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기에 어떤 사람은 믿는 둥 마는 둥, 반신반의하거나 믿지 않고 수련하지도 않는다. 사실 법을 배우지 않을수록 더 이해하지 못하며 정법 노정을 따라가지 못하기에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많은 수련생들은 마음을 다잡고 믿고 수련한다. 20년 동안 견지하면서 의심하지 않고 되돌아보지 않으며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불법(佛法)의 크나큰 은혜를 느꼈기에 아무리 쫓아도 떠나지 않을 것이고 진심으로 믿는다. 수련은 믿음을 기점으로, 믿음을 가지고 검증하며 믿음으로 마무리한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관념을 부정하고 배척하고 청리해야 하는데 의심, 불신, 수련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모두 안일한 마음이 작용한 것이다. 반신반의를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바꿔야만 수련해나갈 수 있다.

태도가 엄숙하지 않고 요구가 엄격하지 않다. 사람은 먹을수록 식탐이 더 커지고, 잘수록 더 졸리며, 편안할수록 더 편안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트일수록 압력이 줄어들고, 압력이 줄어들면 쉽게 안일한 마음이 생겨 좀 편안해지고 싶고, 좀 느슨해지고 싶으며, 느긋해지고 싶어 한다. 실제로 대법제자의 생활은 이미 수련과 한 고리 한 고리 엮여 긴밀하게 용합된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한 느슨함은, 실제로 바로 수련에 대한 느슨함이다.”[2] 수련자는 태도, 행동거지, 언행에 있어 모두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느슨히 하면 속인과 마찬가지로 되고 오래 지나면 수련자도 아니다. “반드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아니다.”[3]

2. 안일함과 소멸

색욕은 죽음의 고비고 안일함은 사람을 망친다. 당나라 승려 변기(辯機)는 특출하고 기개가 범상치 않았다. 15살 때 출가했고 현장법사의 경을 번역하는 조수 가운데서 그는 학식이 뛰어나고 번역을 잘했다. 함께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저작해 한 때 명성이 자자했다. 기재에 의하면 후에 그가 고양(高陽) 공주가 증정한 황실 베개를 몰래 갖고 있는 일이 발각돼 당태종은 고양 공주와 변기가 바람을 폈다고 의심하면서 진노해 변기를 사형에 처했다. 변기는 요참(腰斬)형을 당했다.

현장이 큰 기대를 걸었던 의발 계승자가 색정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친 이 교훈은 색 위에 칼 한 자루가 있다는 것을 만고에 알려준다. 변기는 황실 베개를 남몰래 갖고 있어 요참형을 당했지만 지금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남녀관계에서 끊임없이 죄를 범한다. 얼마나 큰 죄인가? 무엇을 선택할 지 스스로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수도인으로서 학식, 능력, 공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계율을 어기는 것은 자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련자도 사람의 일면이 있고 욕망이 있기에 만약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욕망에 조종당한다면 짐승보다 못한 천리를 위배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수련자는 마땅히 속인에게 도덕적 모범이 돼야 한다. 만약 자신이 바르지 못하다면 어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색계를 범하면 고대에는 극형에 처했다. 욕망의 바다에서 깨끗한 연꽃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매 수련자에 대한 마지막 고험이다. “색욕은 수련인에 대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死關)이라고 나는 벌써 말했는데, 속인의 이 정에 너무 지나치게, 너무 심하게 이끌린 것이다. 요만한 일마저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데, 보아하니 구세력이 애당초 이런 이들을 대륙의 감옥으로 배치했어야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것인가, 그런가? 그런 엄혹(嚴酷)한 환경에서 당신은 또 어떠할까. 너무 안일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구실을 찾는 그런 이들은 모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슨 특별한 배치를 한 적이 없다.”[4]

거만하고 게으르며 중도에서 포기한다. 우리는 모두 ‘토끼와 거북이’ 동화를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는 동시에 출발했고 토끼는 거북이가 너무 느리게 긴다고 비웃으면서 한잠 자고 일어나 달려도 따라잡을 수 있고,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깨어났을 때 시합은 이미 끝났고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사람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거나 칭찬 받았을 때, 혹은 환경이 느슨하면 거만, 방종, 해이한 마성(魔性)이 배로 늘어난다. 만약 억제하지 않고 계속해 부풀어 오른다면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어떤 수련생은 연설난법(演講亂法)을 들은 후 자신이 이미 부처로 수련됐고 수련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이때부터 법공부, 발정념과 진상 알리기를 하지 않는다. 이런 수련생은 ‘토끼와 거북이’에서 말한 토끼와 비슷하지 않는가?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5] 거만, 요행, 나태함, 방종 등은 모두 바르지 않는 것으로 모두 자심생마, 궤도를 벗어나게 만들어 사람을 완전히 망쳐버린다. 도를 닦는데서 가장 큰 적은 종래로 바깥 귀신이 아니라 영원히 마음 속 마(魔)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느슨하고 게을러져 갈수록 멀어진다. 어떤 수련생은 톈안먼 앞에서 당당하게 현수막을 펼쳤고 진상자료를 만들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바로 이 수련생이 이후에는 전담 보모가 돼 수련을 느슨히 했다. 그 후 건강식품, 양약, 한약을 달고 살았고 지금은 약탕기에 빠져 입만 열면 모두 약이다. 농사짓고, 병을 보러 다니고, 아이를 보고, 휴대폰을 하며 놀고, TV를 보는 이런 일상적인 일들은 사람의 체력, 정력을 분산시키고 신념과 의지를 소모시킨다. 주의하지 않은 사이에 쉽게 신을 사람으로 떨어뜨린다.

예전에 그녀는 사람 마음이 적고 정념이 강하며 상태가 좋았지만 지금은 정념이 약하고 시름시름 앓는다. 예전에 시험에 합격한 꿈을 꾸었는데 이름이 앞자리에 있었다. 그것이 아마 그녀 과위(果位)일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이런 해이한 상태는 이미 십년 지속됐다. 일생에 십년이라는 시간이 몇 번 있는가? 우리 주위에 이런 수련생이 아주 드문 것이 아니라 무척 많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이끌어줄 책임이 있고 그들과 함께 법공부, 교류하면서 함께 정진해야 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천명이 다 됐지만 여전히 다그쳐 수련하지 않고 게임에 빠져버려 몇 년 후 간복수로 세상을 떴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장사로 바삐 보내다 암에 걸려 사망했으며, 또 어떤 수련생은 거친 성격을 고치지 않고 욕을 입에 달고 있다가 불치병에 걸려 사망했다.

3. 소중히 여기고 정진하자

우선 얻기 힘든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여러 번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전생에 소원을 수없이 빌고, 수많은 세를 공경하며, 수없이 많은 시험을 거쳐서야 비로소 오늘날 대법을 얻을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우리와 함께 내려온 것은 호법신뿐만이 아니라 사악한 마귀들도 있다. 사악한 마귀들은 시시각각 호시탐탐하면서 허점을 노려 진입하고 한순간에 우리를 망치려 한다. 그러므로 시시각각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시간과 수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다음은 불성과 마성이다. 어떤 수련생은 하루 종일 책을 들고 보지만 여전히 불성과 마성을 확실히 분간하지 못하고, 정념과 사람 마음을 분간하지 못한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 흐리멍덩하게 수련하는데 근본원인은 여전히 법공부에 있다. “사람의 불성은 선(善)으로서, 자비로 표현되며 일을 함에 우선 남을 고려하고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람의 마성은 곧 악(惡)으로서, 살생하고, 훔치고 빼앗고, 이기적이고, 사념(邪念)적이며, 시비를 걸고, 선동하며 요언을 날조하고, 질투하고, 악독하며, 발광하고, 게으르고, 인륜을 어지럽히는 등등으로 표현된다.”[6] 법에 아주 똑똑히, 명명백백히 씌어있다. 수련생들이 ‘불성과 마성’ 이 경문을 외워 법으로 비추어 마성을 제거하기 바란다.

또한 단호하게 마성을 억제해야 한다.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을 확실히 분간한 후 그 다음에는 마성을 제거해야 한다. 확고히 제거하겠다는 과감함과 모조리 제거하겠다는 냉정함이 있어야 하고 절대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느슨히 하고 안일하고 싶다는 관념이 나오면 단호히 제거하고 배척하며 부정해야 한다. 바르지 않는 관념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다보면 안일한 마음도 차츰 사라질 것이다. “무엇을 구하는가는 당신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속인은 모두 마성(魔性)과 불성(佛性)이 있으므로 사상이 옳지 않으면 마성이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7] 만약 우리가 그것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마성을 승인하고 마성이 조종하게끔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럼 수련에서 느슨해지고 따라서 몸이 나빠지고 모순도 많으며 자신감을 잃는 등 정확하지 않은 상태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각적이고 스스로 단속해야 한다. 마음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주의해 지켜보고 늘 자신에게 작은 목표, 작은 계획을 세워줘야 한다. 예를 들면 하루 세 시간 조용히 법공부하고, 한 시간 연공하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보충하는 등이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싶을 때 자신에게 오늘 법공부를 했는지, 연공을 했는지 물어보고 만약 법공부와 연공을 못했다면 휴식하지 못하고 한가히 있으면 안 된다고 일깨워줘야 한다. 또한 원망심이 나왔을 때 관련된 법리를 많이 배우고 교류문장을 찾아보면서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매일 견지해 원망심을 제거해야 한다. 잘못했을 때 제때에 잘못을 바로잡아야지 제멋대로 놔두거나 타협해서는 안 된다. 만약 매 한 관을 모두 엄숙히 대하고, 매 하루를 모두 엄격히 요구하여 정진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느슨해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 주의식(主意識)이 법공부를 해야 한다. 수련생들은 모두 나는 매일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울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연공하여 공이 자라지 않은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히 망치는 원인은 무엇인지, 주의식이 공을 얻는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물어보기 바란다.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우리가 배웠다고 해서 제대로 알아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장악한 것은 아니다. 법공부를 한 후 법리를 똑똑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주의식이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주의식이 아주 똑똑하다면 사부님의 법리를 기억하고 알아듣고 이해할 것이다. 그럼 저절로 생각과 행위를 바로잡을 것이다. 법공부를 한 후 책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역시 주의식이 똑똑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늘 색계를 범하거나 다단계 판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이는 주의식이 여태껏 법을 얻지 못했을 수 있다. 그들은 결국 사람으로서 언젠가는 떨어지게 될 것이다.

맺음말

부처가 되는 길에서 견지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진다. 병업을 넘지 못해 세상을 뜨거나 정에 빠져 부처 수련을 포기한 사람, 돈 벌이에 빠져 수련을 소홀히 한 사람, 안일함에 빠져 나태해지고 고생하기 싫어 수련하지 않는 사람, 압력 앞에서 포기한 사람, 오만함 때문에 자심생마한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큰 파도가 모래를 밀어낼 때 씻겨나갔지만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다.

수련을 성공하기 전에 사람은 수시로 중도에 그만두거나 자심생마해 철저히 떨어질 수 있다. 혹은 불법을 비방하고 법을 파괴하는 마의 자손이 되거나 도덕을 파괴하는 인간쓰레기로 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세 곳에서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고 네 곳에서 ‘절대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우리에 대한 기대가 바로 초심(初心)을 잊지 말고 한결처럼 정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이 수련하기는 어려우나 떨어져 내려가기는 너무나 쉽다.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거나 내려놓지 못하면 반면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으로, 역사적인 교훈이 매우 많다. 떨어져 내려왔을 때에야 비로소 알고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8]고 말씀하셨다.

정각 알람이 울렸을 때, 모두들 단체 연공하고 있을 때, 중생들이 미혹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뭘 하고 있는가? 일사일념부터 일언일행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자신을 요구해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고 비뚤거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된다.

지금 아직 수련할 시간이 있고, 보충할 시간이 있으며 회개하고 정진할 시간이 있다. 우리 함께 이 만고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안일한 마음, 나태한 마음을 철저히 제거하자. 시시각각 대법수련을 첫자리에 놓으면서 청성해지고 정진하자. “반드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아니다.”[3]를 명심하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 – 정법시기 대법제자’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 –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출가제자의 원칙’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 –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불성과 마성(佛性與魔性)’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법정(法定)’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대법(大法)은 훔칠 수 없다’

 

원문발표: 2017년 5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0/3474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