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리장싱(李長興)
[명혜망] “그가 자신을 죽인 것이지, 남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다”는 ‘염철론(鹽鐵論)·비앙편(非鞅篇)’에서 상앙(商鞅)을 평한 한 구절이다. 이는 자기 자신을 죽인 것이지, 타인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앙은 엄격한 형벌과 가혹한 법을 시행했다. 당시의 진(秦)나라는 연좌제와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는 일찍이 하루 만에 700여 명을 처형해 “위수(渭水)가 온통 붉게 물들고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게” 했다. 당시 진나라는 마치 거대한 감옥과 같아서 거리의 행인 중 많은 이가 상처투성이였으며, 어떤 이는 경형(黥刑, 얼굴에 글자를 새김)을 당했고 어떤 이는 의형(劓刑, 코를 벰)을 당했다. 상앙은 스스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으며, 진나라가 강대해진 것이 자신의 공로이고 자신의 명성이 널리 퍼져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는 크게 착각했다.
기원전 338년 진효공(秦孝公)이 죽었다. 누군가 상앙이 반란을 꾀한다고 고발하자 혜문왕(惠文王)은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는 즉시 도망쳤다. 도피 중에 그의 연좌법이 두려워 그를 머물게 해주는 여관이 없었다. 결국 붙잡힌 후 혜왕은 그를 거열형에 처했으나 진나라 사람들 중 가엾게 여기는 이가 없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상앙이 죽은 후 진나라 민중은 다투어 그의 살점을 씹었으며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니 마치 무거운 짐을 벗은 듯했다. 6국은 이 소식을 듣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고 온 세상이 축제 분위기였다.
세월이 흘러 2000여 년이 지났고, 상앙이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죽게 된 작법자폐(作法自斃)의 비극은 널리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박해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박해에 가담하지만, 그 결과는 상앙처럼 종종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자오위쒀(趙玉鎖)는 전 허베이성 바오딩(保定)시 법제처 노동교양과 과장이었다. 그의 손을 거쳐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은 파룬궁수련자가 500여 명에 달하며, 이로 인해 노동수용소에서 고문으로 죽거나 다치고 장애인이 된 사례가 도처에 널려 있다. 2010년 8월 11일, 자오위쒀 등 3명은 수련자 납치를 공모하기 위해 푸핑(阜平)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 고속도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자오위쒀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일부 경찰은 장례를 치르며 “남의 집안을 풍비박산 내더니 이것이야말로 응보구나!”라고 한탄하며 말했다.
자오위쒀는 비극적이면서도 가증스럽고, 가련하면서도 수치스럽다. 500여 명의 수련자가 불법적인 강제노동을 당한 후 매일 쇠창살 감옥과 고문에 직면해야 했고, 가정은 산산조각 났으며 노인들은 눈물로 지새우고 아이들은 외톨이가 됐다. 이러한 생이별의 비극에 자오위쒀는 모두 가담했다. 그는 이 시대 바오딩의 상앙이었으며, 공포의 음산함과 흉악한 비극의 제조자였기에 하늘의 그물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차가 부서지고 사람이 죽은 것은 오직 악행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죽인 것이지, 남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자오위쒀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보복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대중이 실제 사례를 보고 경계로 삼아, 박해에 가담하는 것이 남을 해치고 결국 자신을 해치는 일임을 알게 해 고대 상앙이나 현재 공산당 추종자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앙의 연좌법과 거열형은 백성을 억압하려 했으나 결국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죽었다. 자오위쒀의 광기 어린 납치와 고문은 수련자를 탄압하려 했으나 결국 뜻밖의 재앙을 만났다.
역사가 말해주고 사실이 훈계하고 있다. 자신을 아끼고 타인을 존중하며 불법(佛法)을 경외해야만 재앙과 위험에서 멀어질 수 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3/50717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3/3/50717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