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의 세 가지 놀라운 꿈, 30년 세월을 엿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법을 얻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대법제자로, 이제 이미 칠순의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 제 수련 과정에서 겪고 깨달은 점들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함께 제고해, 마지막으로 사부님을 도와 정법(正法)하고 중생을 구하는 길을 바르고 훌륭하게 걸어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려 합니다.

1. 다른 공간의 법회 장면

2024년 8월 30일, ‘명혜주간(明慧周刊)’에서 그해 중국법회 원고모집 공지를 보았습니다. 본 후에는 참여할 뜻이 없었고 마음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놀랍고도 신기하게 한 것은 31일 밤, 하룻밤 사이에 세 가지 선명한 꿈을 꾼 것입니다. 한 꿈에서 깬 후 곧바로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었는데, 이는 일찍이 없었던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상과 수련 중에 겪은 매 걸음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켰고, 사부님께서 언제나 자비롭게 보호해 주심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로 억누를 수 없는 눈물과 함께 이 교류 원고를 썼습니다.

그중 한 꿈의 정경은 이번 법회에 참가하는 장면을 가리키는 것 같았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한 홀에 있는 것 같았는데, 홀이 너무 넓어 끝이 보이지 않았고 천장도 보이지 않아, 마치 광활하고 신성한 공간장 속에 있는 듯했습니다. 바닥은 모래사장처럼 하얗고 깨끗했으며 평평하고 또 금빛으로 반짝였습니다. 널찍하고 가지런히 놓인 책상과 의자 사이에는 기이하고 맑고 투명하며, 오색찬란하고 아름다우며 생기 넘치는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딸이 제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는 고아하고 단아하여 마치 옥련(玉蓮) 같았고 주변의 아름다운 환경과 하나로 융합돼 있었습니다. 이때 자태가 초범한 한 여성이 와서 딸의 맞은편에 앉았는데, 그녀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것은 이번 성대한 행사를 위해 준비된 것이며 새롭게 장식됐습니다. 저기와 여기 같은 등급인 곳을 보세요. 그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곳의 건축물을 보았는데, 입구의 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워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나 큰 격려를 받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들이 서둘러 법회에 참가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러한 기회와 인연은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2. 법을 위해 오다

저는 중국의 가장 밑바닥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언제 사고로 죽을지 모르는 탄광 노동자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세상과 다투지 않고 성실하고 우직하셨으며,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셨으며, 어떤 나쁜 기호도 없이 평생을 늙은 소처럼 묵묵히 일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번 생에 너무 만족하오. 시골 고향에서 빈손으로 나와 내 가정을 꾸렸고, 여섯 아이를 키웠으며, ‘3사(師)’를 길러냈소. 큰딸은 교사고, 둘째 딸은 요리사고, 아들은 엔지니어니, 정말이지 만족스럽소.” 아버지의 족함을 아는 마음은 은연중에 명예와 이익에 담담해지도록 저를 훈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 첫 번째 계몽 선생님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여덟 식구의 생계를 부지런히 꾸리시며 먹고 입는 것을 아끼셨고, 일 년 내내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습니다. 집에 권력도 세력도 없었기에 사회의 불공정함은 어머니를 원망스럽고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종종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제 기억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은 바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입니다. 어머니가 흘린 눈물을 한데 모으면, 그것은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신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선물인 ‘눈물의 강’일 것입니다. 그 눈물의 강은 저를 더 일찍 성숙하게 했고, 그 눈물의 강은 저를 강직하고 굴하지 않게 단련해 주었습니다.

50년 전, 저는 교문을 나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의 소위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정책에 맞닥뜨렸습니다. 저는 양손에 짐 등을 들고 마당에 서서, 창문 너머로 통곡하며 우시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내 큰딸이 7년이나 농촌에 내려가 내 애를 그렇게 태웠는데, 왜 내 아들마저 가야 한단 말이냐? 하느님,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나더러 어찌 살란 말입니까? 오, 하늘이시여!”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저는 빗속에 오랫동안 서서 저를 고생스럽게 키워주신 가엾은 어머니를 떠나기가 너무나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그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은 마치 ‘악비의 어머니가 등에 글자를 새겨준 것(岳母刺字)’처럼 제가 정직하고 향상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지만 하늘은 유난히 저를 아껴주셨고, 우연인 듯 보이지만 저는 거듭 전통문화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략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10년 대재앙인 ‘문화대혁명’ 운동을 겪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저는 운 좋게도 어릴 적 친구 집에 소장된 많은 연환화(그림책)를 보았는데, 그중에는 ‘악비전’, ‘서유기’, ‘삼국지연의’, ‘수호전’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보물을 얻은 듯 그것들을 넘겨보았습니다. 나중에 친척 집에서 처음으로 장편 무협 소설 ‘삼협오의’도 읽었습니다. 동창생 집에서는 매화 표지의 ‘송사 100수’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저는 고시와 사(詞)에 큰 애호와 흥미를 느끼게 됐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식욕이 매우 강했던 청소년 시절, 제 인생의 백지 위에 각인된 전통문화 이야기들은 제 인생에 영향을 주었고 평생 혜택을 주었습니다. 똑같은 목소리로 공산당에 대한 찬가를 부르던 그 시대에 저는 동료나 친한 친구들에게 자주 제 느낌을 말하곤 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밝지만, 나는 마치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는 것 같아 눈앞에 보이는 것이 늘 어둡게 느껴져.” 왜냐하면 이 하늘에 반대하고 땅에 반대하며 전통에 반대하는 ‘당의 천하’는 제 전통적인 내면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년의 농촌 생활을 겪은 후 도시로 돌아와 일했고, 4년 후 시험을 거쳐 전문대 졸업장을 얻고 기업의 기술 간부가 됐습니다. 직장에서 핵심 기술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귀신에 홀린 듯이 저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가서 일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제 주택난을 해결해주지 못해 저는 스스로 떠나 다른 곳을 찾을 준비를 했습니다. 당시는 1993년 봄과 여름이 교차할 무렵이었는데, 집에서 할 일이 없던 차에 우연히 신문 한 장을 발견했고, 그 전면에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소개가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실려 있었습니다. 저는 강가 공터로 가서 그림과 설명에 따라 스스로 배우고 연공했습니다. 저는 어떤 기공에도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었고, 몸에 외상이 있는 것 외에는 어떤 질병도 앓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동기 없이 연공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연공할 때, 손바닥이 얼굴을 지날 때 뜨거운 기운을 느꼈습니다. 당시 혼자 몇 달을 연공하다가 나중에 다른 직장으로 전근을 가게 돼 연공을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제가 있던 도시에는 아직 법을 얻은 사람이 없었고, 2년 후에야 외지에서 법을 얻은 수련생이 제가 연공했던 그 강가에 연공장을 세웠다고 합니다.

1996년 직장과의 근로 계약이 만료된 것을 기회로 저는 또 직장을 떠났습니다. 여가 시간이 생기자 저희 세 식구는 공원으로 산책하러 갔는데,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날은 5월 12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공원에 도착한 후 한눈에 파룬궁 연공장을 보게 됐고, 1993년의 기초가 있었기에 저는 연공장 사람들 뒤에 서서 우아한 연공 음악 소리에 맞춰 동작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저희 세 식구는 정식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그날 밤 바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러 갔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어려서부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난을 겪으면서도 부모님의 훌륭한 품성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린 마음속에는 또 훌륭한 고대 전통문화가 뿌리내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인생의 큰 뜻을 펼치려 할 때 직장에서 두 번의 좌절을 겪었으며, 두 번 대법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 인생 궤적 속에서 저는 제자에 대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살핌을 보았고, 제자를 이끄시어 천만년을 기다려온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수련 길에 오르게 하셨음을 보았습니다. 비로소 저라는 생명이 법을 위해 왔음을 분명히 깨달았고, 그 속에는 사부님의 노고와 제자에게 주신 가장 좋은 안배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3. 사부님의 은혜

처음에 가부좌를 틀고 연공할 때 저는 적지 않은 고생을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연공했습니다. 다리를 올리지 못하다가 올릴 수 있게 되기까지 일분일초를 견지했는데,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온몸이 떨리도록 아팠으며 앉아 있는 침대와 몸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다리를 내렸을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완화될 수 있었습니다. 완화될 때는 침대에 누워 터우첸빠오룬(頭前抱輪)과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연공했습니다. 아내도 저와 비슷하게 가부좌로 적지 않은 고생을 했습니다. 오직 딸만이 특별한 사례였는데, 가부좌를 가볍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과정이 아름다운 입정 속에 있었고 상서롭고 평온했으며, 출정 후 몇 분 이내에야 비로소 통증을 느꼈고 때로는 아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사부님 법에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는 기준에 도달하게 하려고, 딸은 제게 노란 천에 붉은색으로 ‘참을 인(忍)’ 자를 써서 자기 다리 앞에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휴식하고 오락하는 시간에 저희 세 식구는 집에서 함께 ‘전법륜’을 읽고,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박해 전 우리집은 단체 법공부 팀이었는데, 방을 새롭게 단장해 바닥에는 장판을 새로 깔았고 벽에는 1미터 남짓 높이로 쿠션을 둘렀으며, 큰 벽에는 사부님의 법상, 파룬도형, ‘논어’가 담긴 4개의 알루미늄 합금 액자를 걸어두었습니다. 맞은편 벽에는 붓펜으로 필사한 ‘홍음’을 붙여놓아, 전체적인 환경이 사람들에게 신성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때는 저희 수련 가정의 가장 아늑하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파룬따파에 대한 20여 년의 피비린내 나고 참혹한 박해를 겪으면서 저희는 이 나라에 우리 명의의 집도, 호적도, 주민등록증도, 마땅히 받아야 할 퇴직 연금도 없지만, 평온하게 ‘세 가지 일’을 하며 교란받지 않는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딸 혼자서 수월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도 생활과 그 밖의 다른 용도의 자금을 벌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언제나 자비롭게 보살펴 주시는 데서 오는 비할 데 없는 행복이 있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원만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서약을 실현하려는 변치 않는 초심이 있으니, 저희 세 식구 수련 가정의 이 모든 아름다움은 다 사부님의 은혜입니다!

4. 방할 같은 꿈에 깨어나 안으로 원인을 찾다

2024년 8월 31일 밤의 꿈 중 하나는 어두침침한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지붕이 보이지 않았고 마치 참호 속에 있는 것 같았으며 주변 정경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검고 건장한 한 사내가 나타났는데,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에 표범처럼 툭 튀어나온 두 눈을 하고서 냉소를 지으며, 큰 입을 벌리고는 마치 저를 한입에 삼켜버릴 듯 흉포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고 두려움도 없었는데, 이때 그가 두 손으로 큰 철삽을 들고 갑자기 제 앞으로 내밀었고, 제가 본 것은 가로세로 약 20cm 정도의, 색과 향과 맛을 다 갖추어 푹 삶은 삼겹살 한 덩어리였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모든 것을 보고도 저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그 고기를 제게 던지고 몸을 돌려 가버렸습니다. 즉시 제 주변의 어둠 속에서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덮치듯 검은 그림자 몇 개가 뛰쳐나오더니 제 앞에 떨어진 그 삼겹살을 향해 덤벼들었습니다. 저는 즉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속의 정경은 마치 방할(棒喝) 같아서, 저도 모르게 제 자신을 깊이 파헤치고 안으로 찾게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착실히 수련해 승화하는 과정입니다. 인류 사회라는 큰 염색용 통 속에서 수시로 정에 잠겨 있기에, 꿈속의 호표같이 흉포한 저 색욕의 마 또한 수련인이 반드시 넘어야 할 난이자 생사관이 틀림없습니다.

대법을 착실히 수련한 지 거의 30년,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는 가장 사악한 시련을 지나 오늘에 이르렀기에, 어떤 난도 대법제자의 근본을 흔들 수는 없으며, 대법제자는 다시는 속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전 누나가 저를 보러 왔을 때 저는 누나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늘이 제게 베풀어주신 두터운 사랑에 감사합니다. 제게 이렇게 훌륭한 아내와 딸을 주셨으니까요.” 우리는 수양을 쌓은 금슬 좋은 부부로서,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가정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고 서로 험한 말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사람 중에서는 부부이고 수련 중에서는 공동의 사명을 가진 수련생입니다. 우리는 지옥 같은 잔혹한 박해를 겪었고 여러 차례 생이별을 겪었습니다. 박해가 광적이던 초기에 우리는 동시에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됐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구치소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어 저와 악수를 하며 말했습니다. “잘 지내요, 저는 불법 강제노동을 받게 돼 이제 떠나요. 부디 몸조심해요.” 이렇게 짧은 작별 인사를 한 뒤, 아내는 경찰에게 이끌려 대기하던 승합차에 타고 저를 떠났습니다. 저는 멍하니 손을 들어 인사했는데, 모든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모든 것은 배웅하는 눈빛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녀가 당신 아내입니까?” 제가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정말 멋지군요!” 저는 감방으로 돌아와 긴 시를 한 수 지어 당시의 정경을 기록하고, 그녀의 초범한 기골과 선녀 같은 자태를 찬미했습니다. 사람 중에서는 겁 많고 가냘팠던 그녀가 이 거센 박해의 파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부님의 결백하심을 굳게 믿고 대법의 순정함을 굳게 믿었으며, 사부님과 대법이야말로 중생이 세상에 와서 찾아야 할 것임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진귀한 대법을 얻고 생명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비로소 이처럼 확고하고 강인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노동수용소의 잔혹한 전향 박해를 겪었고, 또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내져 정체불명의 약물과 전기침을 꽂는 악독한 유린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지옥 같은 마귀의 악행도 파룬따파를 굳게 수련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뼈만 앙상하게 남아 곧 숨을 거둘 듯 박해받고서야, 노동수용소 측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한밤중에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야윈 그녀를 품에 안고 밤하늘의 처연한 달빛을 바라보았습니다.

안으로 찾으면서, 저는 제게 아직 깨끗이 제거되지 않은 부부의 ‘정’, 부녀의 ‘정’을 보았습니다. 또한 대법의 위대함과 초범성을 실증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지 못한 사심(私心)도 보았습니다. 법 속에 서서 자신을 대조해보며, 저는 제 격차를 보았고 향후의 매 걸음을 잘 걸어갈 정념을 강화했습니다.

5. 중국몽에서 깨어나니 밝은 빛이 드러나려 하다

2024년 8월 31일 밤의 또 다른 꿈속에서, 저는 어둡고 텅 빈 곳에 있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한 건장한 사내가 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에 두 눈에서는 경멸과 오만을 뿜어냈고, 갑옷처럼 두꺼운 흙빛 베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사방에 시커먼 군중이 모여든 것을 발견했는데, 사람들은 모여서 두려운 눈빛으로 이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구석에는 매달려 있는 사람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고, 마치 산적 소굴에 있는 것 같았으며, 두목이 대왕처럼 뭇 산적들을 모아놓고 장물을 나누는 대청에 모여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꿈속의 저는 한 가닥의 두려움도 없이 오히려 또렷하게 한 가지 일념이 생겼습니다. ‘여기는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나는 떠나야겠다.’ 이 일념이 나오자마자 저는 곧장 몸을 돌려 날아갔고, 동시에 꿈에서 깼습니다.

꿈속 정경은, 공비(共匪) 두목이 이미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고, 공포에 기대어 유지되는 산적 소굴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내부에 위기가 사방에 깔려 있고 항의하고 반항하는 자가 빈번하게 출현하고 있음을 예시합니다. 그는 아무런 도덕도 없고 인륜의 마지노선도 없으며, 극도로 오만하고 타락한 무리에 둘러싸여 있어 언제라도 큰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현실 상황 역시 그러합니다. 오늘날 중국에는 기이한 현상과 천재지변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항의와 권리수호 사건이 치솟고 있으며, 경제, 금융, 취업 등의 문제는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자유 사회와 독재 사회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어떠한 조치도 헛된 저항일 뿐입니다. 이에 따라 부실 공사만 늘어날 뿐 멸망을 가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악한 중공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을 박해한 것은, 이 지구상에 일찍이 없었던 죄악을 저지른 것으로 감히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 적출해 밀매했습니다. 천인공노할 이 죄악 역시 그것이 파멸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나 파룬따파 수련자는 이 가장 사악한 박해 속에서 걸어왔고, 대선(大善), 대인(大忍)과 타인을 배려하는 자비로운 흉금을 닦아냈습니다. 유일한 진정한 소원은 중국 동포들을 일깨워, 이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붙잡아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 세 식구 수련 가정은 난을 겪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인연 있는 모든 분에게 진상을 알려, 사람들이 자기 생명에 책임을 지고 위험한 담장에서 멀리 떨어져 스스로 평안과 아름다움을 선택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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