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한번은 고기 가게에서 한 중년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의 아름답고 큰 두 눈으로 저를 유심히 살펴본 뒤 입을 열어 반갑게 제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큰형님 아니신가요? 10여 년 동안 못 뵈었는데 정말 하나도 안 늙으셨네요. 아직도 아주 젊어 보이세요.”
또 한번은 치과에서 치아를 치료받을 때, 유행에 맞게 차려입은 한 여자가 제게 다가와 친근하게 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습니다. “몸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네. 예전에는 기관지가 안 좋았는데 지금은 정말 좋아졌어.” “저 정말 좋아졌어요. 거의 30년 동안 약 한 알도 안 먹었답니다.”
옛날의 약골이었던 제가 어떻게 운 좋게 건강을 되찾고 새 삶을 얻었으며, 또 우주 대법 ‘진선인(眞·善·忍)’의 수련자가 됐을까요? 아래에 고생 끝에 낙이 온 저의 생생한 경험을 적어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1. 고난의 전반생
기침과 천식은 완치하기 어렵고 사람을 몹시 괴롭히는 병 중 하나인데,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은 바로 이 기침과 천식에 얽매인 병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6살 때 저는 ‘백일해’라는 소아병을 앓았는데, 농촌이라 의사와 약이 부족하고 의료 조건이 열악해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탓에 불행히도 기침과 천식의 병근이 남았습니다. 감기만 걸리면 병이 도져 열이 나고 기침하며 가래를 뱉었고, 쓰러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해마다 추위와 더위가 교차하는 동안 제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13살 때는 기관지 확장으로 인해 1년 동안 피를 토했고,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쉬어야 했습니다.
24살에 남편과 결혼하던 날, 저는 약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가 남편을 기겁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 병에는 국산 약이 효과가 없어 이미 오랫동안 일본 수입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수입 약은 가격이 비싸서 나중에는 살 수가 없게 돼 국산 약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27살 여름, 제 병이 갑자기 격렬하게 발작해 병마에 쓰러졌고 가슴이 뜨거워져 숨을 쉴 수가 없었는데, 이른바 ‘샤오탕(燒堂)’이라는 증상이었습니다. 남편이 저를 마을 진료소로 데려가 치료하게 했지만 의사는 상태가 좋지 않음을 보고 서둘러 상급 병원에 입원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돈이 없는데 어떻게 입원하겠습니까? 언니와 남편이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고, 당시 치료비로 현금을 낼 수 없어 외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을 의사는 제 병정을 가엾게 여겼지만 또 시기를 놓칠까 봐 두려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그곳에서 약을 사 오라고 제안하며 이런 방법으로만 저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가장 좋은 약인 앰피실린을 사 왔습니다. 한 차례의 링거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고 여전히 가슴이 타는 듯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이스바를 먹어 열을 내리며 완화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척들은 모두 제가 버티지 못할 줄 알았고, 저 자신도 생명이 끝에 다다랐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다하지 않았는지 한 달을 앓고 나서 결국 뜻밖에 생명 속의 작은 고비를 넘겼습니다.
39살 연말, 생명 속의 또 다른 큰 고비는 돌이키고 싶지 않을 정도였는데, 저는 무정한 기침과 천식에 또다시 쓰러졌습니다. 남편이 마을 의사를 모셔 와 우리집에서 치료하게 했는데, 매일 아침저녁으로 작은 주사를 한 대씩 맞고 낮에는 큰 주사(링거)를 한 대 맞으며 그 외에도 약을 세 번 복용해야 했습니다. 사실 이런 치료 방법은 입원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첫 번째 치료 과정이 지났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두 번째 치료 과정에서 의사가 약을 바꿨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으며, 세 번째 치료 과정에서 의사가 또 약을 바꿨으나 여전히 효과가 없었습니다. 서양 의학 약이 소용없자 의사는 한약으로 바꿔 치료해 주었고, 또 두 차례의 링거 치료를 했습니다. 제 병은 낫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져서 매일 24시간 빈번하게 기침을 해 집 안은 밤새도록 불을 켜 두었고 전구가 타서 터지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주사제를 포기하고 약 복용으로만 연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명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는 그저 하루 빠르고 늦고의 시간문제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온종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고, 대낮에도 방 안에 사람들의 머리가 우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이 바다처럼 많아 눈앞의 전체 공간을 가득 채웠으며 그 사람들의 눈은 일제히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저는 다른 공간 속의 그렇게 많은 생명을 볼 수 있었는데, 분명 불길한 징조였고 저 자신이 아마 오래 살지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1997년 설날이 다가오자 마을에는 매일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집집마다 새해를 축하하고 있었지만, 우리집에는 설을 쇠는 기쁜 분위기가 조금도 없었고 소리 없이 고요했습니다. 남편은 저 몰래 한두 번이 아니고 묵묵히 울었습니다(이 일은 제가 나중에 알았습니다). 남편은 고기도 사지 않았고 채소도 사지 않았으니 그에게 어찌 설을 쇨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연로하신 시어머니는 저 때문에 애가 타서 오래된 병이 재발해 쓰러지셨고, 역시 의사를 모셔 와 링거를 맞으셨습니다. 가여운 두 남매는 저를 곁에서 지키며 매일 비 오듯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집은 수심이 가득하고 눈물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비통함 속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사신의 마수에 빠진 저는 수차례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곁에 있는 어린 두 남매가 제 마음을 꽉 붙잡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이에게 어머니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어도 아이를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는 얼마나 가여운가요. 그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죽음의 문턱에서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기쁘게 대법을 얻어 새 삶을 얻다
3개월이 지났지만 죽음에 임박한 저는 여전히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 저를 보러 오셨는데, 저를 동정하시며 제가 겨우 40살이라 이렇게 젊은데 세상을 떠나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없다며 기공 하나를 추천하셨는데, 이름이 파룬궁이었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숙모가 파룬궁을 연공하고 나서 기침병이 나았단다. 내가 네 숙모를 불러 널 가르쳐 주라고 하마.” 저는 스스로 병이 이미 깊어졌으니 어떤 공법으로도 제 병을 고칠 수 없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1997년 봄기운이 따뜻하고 꽃이 피는 4월의 어느 날, 작은아버지와 숙모가 오셨는데 숙모는 녹음기까지 들고 오셔서 제게 파룬궁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저는 병이 나을 거란 희망을 품지는 않았고 그저 두 어르신의 호의에 응했을 뿐입니다. 저는 숙모를 따라 사부님의 ‘지난 설법’ 녹음을 들었고, 설법을 다 듣고 나자 숙모는 제게 연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 몸은 매우 허약해서 몇 분만 서 있어도 숨을 헐떡였고 머리에는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숙모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연공할 수 있는 만큼만 하거라. 조급해하지 마, 천천히 좋아질 거다.”
이튿날 막 연공을 시작했을 때 제가 말했습니다. “숙모, 저 약 먹는 걸 잊었어요.” 숙모가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연공인은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으니 넌 먹지 말거라.” 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약을 안 먹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제 위장은 일찍이 약에 절여 망가져서 자주 아팠고, 배가 차가워 일 년 내내 복대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3일째 연공을 할 때 허리 부위가 뜨거워서 견딜 수 없어 저는 복대를 풀어버렸습니다. 그날 밤 제 몸에 이상 상태가 나타나 구역질하고 토했는데 반응이 극히 강렬했으며, 초록색 액체를 크게 한 모금씩 토해내 반 대야나 토했습니다. 그 맛은 쓰고 떫었는데, 다 토하고 나자 작은 솥처럼 부풀었던 배가 단숨에 평평해졌고 호흡도 그에 따라 원활해졌습니다. 4일째부터 저는 계속해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는데, 1시간에 한 번, 30분에 한 번, 심지어 10여 분에 한 번씩 보았고 4일 후에는 제 전신의 부종 상태가 철저히 사라졌습니다. 7일 후 제 온몸에는 기운이 생겨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고 간단한 집안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일 후 저는 가족들과 함께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병은 신기하게 나았고 마침내 구름을 걷어내고 맑은 하늘을 보게 됐습니다. 온 가족의 마음속에는 그야말로 웃음꽃이 피었고, 파룬궁에 무한히 감사하고 파룬궁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무한한 기쁨 속에 잠겼습니다. 남편은 몹시 기뻐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신공(神功)입니다. 죽기만을 기다리던 제 아내를 살려냈습니다.”
친척과 친구, 마을 사람들은 저를 통해 파룬궁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이한 효과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고, 다들 앞다투어 우리집에 와서 파룬궁을 배웠으며 딸도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99년까지 우리집에 와서 연공에 참가하는 인원수가 수십 명에 달했습니다.
지금 언니, 딸, 조카는 중공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 속에서도 겁먹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며 의연하고 확고하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속에서 수련하고 있습니다. 외손자와 한 지인은 중공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위세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근 파룬따파를 수련해 새 수련생이 됐습니다.
3. 대법이 나와 가족에게 복을 주다
옛날의 저는 병마에 시달리며 죽는 것만 못한 고통 속에서 세월을 견뎠고, 저 혼자 고생할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연루시켜 온 집안 식구들을 번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으며, 일 년 내내 약을 쓰면서 의료비를 썼음에도 병은 여전히 낫지 않았고 악순환 속에서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제가 기쁘게 파룬따파를 얻은 후 운명에 큰 전환점이 생겨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병이 없어졌고 집안에 꽤 많은 의료비를 절약하게 했으며, 남편의 말에 따르면 “당신이 파룬궁을 연공하고 몸이 좋아져서 집안에 최소 20만 위안은 아껴주었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돈을 들여 치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편과 함께 일하며 같이 밭을 갈고 돼지를 기르며 집안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졌습니다. 일찍이 20년 전에 집안은 옛 모습을 벗고 새 단장을 해 새집을 짓고 새 보금자리를 꾸렸습니다. 일찍이 10년 전에는 제가 밭을 갈고 남편이 일을 다니며 집안 경제가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한 지 29년, 남편이 저를 지지해 준 지 29년이 됐는데, 그의 몸은 매우 정정하며 이미 70세가 넘었음에도 밭을 갈 뿐만 아니라 양 떼도 기르고 있어 마을 동년배 중에서도 아주 건강합니다. 딸은 대법을 수련해 가정이 화목하고 직장 일도 순조롭습니다. 아들은 진상을 알고 대법을 지지하며 대법에 동화돼 생활이 순풍에 돛 단 듯 아주 순탄합니다.
저는 곧 70세에 접어드는데 남편을 도와 밭을 갈고 남편에게 입에 맞는 밥과 반찬을 해줍니다. 집에서 쓰는 일용품은 대개 제가 스쿠터를 타고 장에 가서 사 온 것인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 같은 할머니가 전동 스쿠터를 탈 줄 안다고 부러워합니다. 제가 즐겁고 행복한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파룬따파와 대법 사부님의 덕분입니다!
한번은 고기 가게에서 한 중년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의 아름답고 큰 두 눈으로 저를 유심히 살펴본 뒤 입을 열어 반갑게 제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큰형님 아니신가요? 10여 년 동안 못 뵈었는데 정말 하나도 안 늙으셨네요. 아직도 아주 젊어 보이세요.” 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제가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미안해서 실례지만 어디 사시는 분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저 이웃 마을 사람이에요. 최근 몇 년간 저는 집에 없었고 줄곧 선양에서 아들의 아이를 돌봐주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어요. 그해에 큰형님께서 저희집에 오셔서 저희에게 호신부(護身符)를 주셨는데, 기억 안 나세요?” 저는 마침내 생각났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제 남편의 먼 친척 올케였습니다. 그해에 저는 그들의 온 가족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고, 그들이 모두 삼퇴(중공의 당·단·대 탈퇴)에 동의한 후 제가 그들에게 대법 호신부를 남겨주었습니다. 올케가 제게 물었습니다. “형님 연세가 예순 몇이시죠?” “한 살 모자란 일흔이라네.” “정말 안 늙으셨네요, 곧 70세가 될 사람 같지 않아요. 겉보기에는 갓 60을 넘긴 모습이세요.”
또 한번은 치과에서 치아를 치료받을 때, 유행에 맞게 차려입은 한 여자가 제게 다가와 친근하게 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습니다. “몸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네. 예전에는 기관지가 안 좋았는데 지금은 정말 좋아졌어.” “저 정말 좋아졌어요. 거의 30년 동안 약 한 알도 안 먹었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저는 한동안 그녀가 누군지 명확히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마스크를 벗자 보니, 알고 보니 제 옛 동창이었습니다. 우리는 2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고 둘 다 동갑이라 70이 다 돼가는데, 그녀는 비록 야위었으나 정신 상태가 아주 좋았고 몸도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중, 그녀는 거듭 제 몸이 좋다고, 예전보다 더 좋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파룬궁을 연공하는 거 알지? 그래서 내 몸이 예전보다 좋아진 거야. 파룬따파가 내 목숨을 구해줬어. 그렇지 않았다면 난 진작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야.” 그녀는 즉시 말했습니다. “네가 파룬궁 연공하는 거 알아, 파룬궁 참 좋지. 우리 마을에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한테 파룬궁 이야기를 해줘서 난 아주 잘 믿어.” 저는 말했습니다. “어쩐지 네가 이렇게 정정하더라니, 알고 보니 파룬궁 진상을 알았구나. 신께서 널 보호해 주시는 거야. 네 몸은 좀 괜찮니?” “아주 좋아, 아무 병도 없어.” 그녀는 또 제게 말했습니다. “난 아직도 농사를 지어. 영감이 떠난 지 여러 해 됐는데, 나 혼자서 계속 농사를 짓고 있어. 자식들은 다 못 짓게 하지만 난 아직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농사지을 수 있으면 계속 지을 거야.” “건강하고 일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복이야.” 저는 그녀를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넌 틀림없어, 네가 대법을 믿으니 대법이 또 널 보호해 주실 거야.”
4. 박해 속에서 사람들에게 파룬따파가 좋다고 알리다
저는 수련생들과 매일 함께 모여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우주 대법 ‘진선인’의 불광 속에 행복하게 감싸여 있었는데,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江澤民) 정치 깡패 범죄 집단이 국가의 모든 기구를 가동해 대대적으로 파룬궁 관련 사건을 조작하고 모함하며, 전국 1억 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미친 듯이 탄압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우리는 상서롭고 평화로운 연공 환경을 잃었습니다. 파출소 경찰은 끊임없이 집으로 찾아와 교란하며 우리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제 목숨을 구해주셨고 대법 사부님께서 제게 새 삶을 주셨는데, 저더러 파룬궁과 결별하라고요?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습니까. 저는 경찰에게 파룬따파가 절 살려냈고 대법 사부님은 제 은인이시니, 대법 수련을 포기할 수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경찰이 한 번 올 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제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생생한 경험을 한 번씩 이야기해 그들의 동정을 얻어냈습니다. 이후 제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악인에게 고발돼 무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집을 떠나 떠돌아다닐 때, 저는 자주 파출소 경찰에게 편지를 보내 그들에게 불법(佛法)을 파괴하지 말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은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을 선하게 대하면 반드시 선한 보답이 있습니다. 소장은 진상을 알고 암암리에 줄곧 저를 보호해 주었고 제 안전을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 정책이 끊임없이 고조되는 이런 사악한 환경 속에서, 3년 후 저는 경찰에게 납치돼 2년의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노동수용소에 있는 기간, 저는 자주 감옥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기회가 있었던 건 제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분께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97년에 전 이미 죽었을 겁니다.” 저는 대법이 어떻게 저를 살려냈는지에 대한 진실한 상황을 그녀들에게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두 명의 여자 감옥경찰은 양심의 가책을 느낌과 동시에 몰래 제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나간 이후에는 꼭 안전에 주의하세요,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시고요.”
저는 제 곁에 있던 한 여경에게 특별히 진상 편지를 한 통 썼는데, 편지 속에 제가 대법 수련 중에서 혜택을 입은 생생한 경험을 담아 그녀에게 파룬따파는 부처를 닦고 도를 닦는 법(法)이며 사람을 제도하는 법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녀에게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선한 일이며 그 공덕이 무량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 주는 것이라고 권했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후 편지는 그녀에게 깊은 깨달음을 줬고 명백한 일면에서 정념(正念)이 생겨났으며, 그녀는 저를 만날 때마다 항상 봄바람처럼 화사한 얼굴이었고 아주 빨리 저와 친구가 됐습니다. 다른 감옥경찰이 저에게 악행을 가하려는 긴요한 순간에 몇 번이나 그녀가 늘 절 도와주었고, 제게 주의하고 지혜로워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녀는 저 한 사람을 선하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파룬궁수련생도 선하게 대했고, 갇혀 있던 전(全) 대대의 백여 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을 모두 선하게 대했습니다.
제가 불법 강제노동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이 20년의 시간 동안, 저는 시종일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한 번 또 한 번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고, 동시에 연쇄적인 좋은 작용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안 후 복을 얻었습니다.
한 작은 슈퍼마켓의 여사장은 진상을 안 후 장사가 번창해 그녀의 집은 누추한 단층집에서 2층 건물로 확장됐고, 현지에서 꽤 규모를 갖춘 대형 슈퍼마켓이 됐습니다.
한 83세 친척분은 뇌졸중 후유증 환자인데, 이 노인은 대법 사부님을 굳게 믿어 신기하게도 휠체어에서 일어났으며 현재 90세 고령임에도 줄곧 스스로 생활을 돌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선량한 마을 간부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윗선의 거대한 압력을 이겨내며 20여 년 동안 계속해서 본 마을의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해 주어 직위가 연속으로 승진했습니다.
맺음말
파룬따파는 저를 전반생의 깊은 병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구사일생 속에서 새 삶을 얻게 했으며 후반생에 행복하고 건강한 피안에 오르게 해주었습니다.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며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을 구하는 가장 바른 정법(正法)입니다. 27년 동안,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줄곧 멈추지 않았으나 결국 끝에 가서는 헛수고가 됐습니다. 지금 파룬궁은 무너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계로 나아갔고, ‘진선인’의 빛나는 영광은 100여 개 국가와 지역을 밝혔습니다. 중국 국민은 붉은 테러의 위세에 겁먹지 않았으며, 현재 4억 6천만 명이 넘는 중국 대륙 용사들이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해 자신의 생명에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아직 중공의 무신론에 세뇌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빨리 깨달아 사악한 중공을 멀리하고, 자신과 가족에게 광명의 길을 선택해 하늘의 보호를 받기를 바랍니다!
(명혜망 2026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 선정작)
원문발표: 2026년 6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7/51032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7/51032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