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6년 6월부터 ‘전법륜(轉法輪)’을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30년간 수련해왔다. 나는 군인 출신으로, 내 전우들은 전역 후 각지 각 분야에서 일하며 여러 직급의 지도자 자리에 있고, 일부는 여전히 현역 군인이다. 파룬궁 진상을 마주했을 때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작년 ‘5·13’ 세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날을 경축하며 명혜망에 ‘전우들의 ‘담 넘기’ 이야기’라는 글을 발표했다. 올해도 5월 13일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맞아, 옛 전우들이 ‘담을 넘고(翻牆, 인터넷 차단 우회)’, 탈당하고, 진상을 알게 된 이야기 몇 가지를 나누고 싶다.
1. 전우가 담을 넘어 실명으로 탈당하다
A 수련생과 나는 같은 부대 출신이다. 전역할 때 A는 자력으로 생계를 꾸리기로 결정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머지않아 집을 장만했는데, 내가 가서 봤더니 매우 크고 넓었다. A는 자주 우리집에 왔고 나는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려줬다. 올 때마다 대법서적을 읽으려 했는데 반드시 원서를 봐야 한다고 해서 대법서적을 내어주면 우리집 북쪽 방에서 한 권씩 읽었다. 우리집이 조용해서 한번 앉으면 오후 내내 읽었다. 나는 자유문(自由門)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로 명혜망에 접속해 파룬따파가 세계에 전해지는 진상과 파룬궁이 중공에게 박해받는 진상을 보여줬다. A는 파룬궁 수련이 바로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진짜 사악한 집단은 중공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중공이 베이징에서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 사건을 만들어냈고, 이른바 ‘약을 못 먹게 해서 1400명이 죽었다’, ‘배를 갈라 파룬을 찾았다’ 따위는 모두 거짓말로, 세상 사람들을 속여 파룬궁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긴 것임을 알게 됐다. A는 실명으로 중공 당·단·대 조직을 탈퇴했다.
이후 A는 구 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에 부임했다. 지도부가 크게 중시해 A를 예비 간부로 선발해 중점 육성 대상으로 삼았으니 그야말로 앞날이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A는 중공 관료 사회의 허위와 부패를 꿰뚫어 봤고, 중공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고 싶지 않아 발개위 직위를 사임하고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나는 USB에 대법서적과 자유문, 무계(無界)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를 복사해 주었다. A는 “꼭 잘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A는 담을 넘어 탈당한 첫 번째 전우였다.
2. 비행사가 100여 명의 친지를 위해 삼퇴를 도와주다
2006년 무렵, 수련생의 소개로 나와 수련생 누님은 우리집에 법공부 팀을 만들었다. 매주 월요일 오후 우리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을 공부했다. 수련생 누님은 군의대학교 교수였다.
2006년 3월,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살아있는 채로 적출해 폭리를 취한 내막이 국제사회에 폭로됐다. 중공 전 최고권력자 장쩌민(江澤民)의 명령으로 시작돼 중공 정부·군대·공안이 일사불란하게 운용하며, 구치소·감옥·법원·병원이 일관 체계를 이룬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비밀 대학살은 전 인류에 대한 범죄이자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죄악으로, 모든 사람의 양심을 뒤흔들고 모든 이의 도덕적 마지노선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이 크나큰 선악이 맞서는 앞에서 모든 사람은 나서서 인류의 존엄을 수호하고 중공이 인류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죄를 규탄해야 했다.
군의관이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살아있는 채로 적출하는 데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속에 치미는 비통한 분노는 이루 다 글로 쓸 수 없었다. 그때 바로 누님과 함께 결심했다. 장기이식에 종사하는 각지 의사들에게 진상을 알리되 특히 군의관에게 진상을 알리자고.
누님은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에서 중국 내 장기이식에 참여하는 병원·부서·의사·주소·우편번호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에게 진상을 알리는 권선(勸善,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써서 인쇄했다. 장기이식에 가담한 의사 명단만 수천 명에 달했다. 누님은 이를 각 법공부 팀에 나눠주어 우편으로 보내도록 했다. 그 기간에 우리는 매일 나가서 진상 편지를 부쳤는데, 다양한 글씨체와 서로 다른 색깔의 펜으로 바꿔가며 썼다. 당시 국안·국보 경찰들이 이미 우편 시스템을 장악해 진상 편지를 가로채 폐기하고 있었다.
어느 날, 누님이 말했다. “라오L(老L)이 이번에 고향에 다녀오면서 100명이 넘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 명단을 가져왔어요.” 라오L은 부대 시절 비행사였고, 전역 후에는 한 회사의 간부가 됐다. 에포크타임스에서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발표한 이후, 특히 중공의 파룬궁수련생 생체 장기적출 내막이 국제사회에 폭로된 후, 라오L은 많은 전우와 친지들의 삼퇴(중공 당·단·대 탈퇴)를 도와줬다.
3. 홍이대 참모장이 탈당하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올림픽 광장 앞에서 10여 년 만에 참모장을 만났다. 참모장은 이후 포병 지휘부 주임으로 전보됐던 분이다. 몇 마디 안부를 나눈 뒤 나는 말을 꺼냈다. “참모장님, 꼭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자연재해가 얼마나 많습니까? 대지진에 홍수에 역병과 재난이 연이어 닥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니 탈당해서 목숨을 보전하십시오.” 참모장은 “내가 몇 번 신청했는데(탈당을 가리킴), 허가가 안 나더군”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군중연(軍中緣)’이라는 필명으로 탈퇴시켜 드릴까요?”라고 했다. 참모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좋소, 탈퇴합시다!”
참모장은 홍이대(紅二代, 중공 혁명 1세대 간부·군인들의 자녀 세대) 출신으로 중공 고위층의 부패와 중공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추세를 잘 알고 있었다. 참모장의 선택이 진심으로 기뻤다. 나는 전부터 참모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별하면서 평안을 빌고, 위기의 순간에는 반드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했다. 참모장은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이후 나는 참모장 아내의 언니를 만났다. 그녀 아버지도 군급 간부였고, 우리는 한 사무실에 있었는데 그녀는 조직원을 맡고 있었으며 군대 전역 간부이기도 했다. 나는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를 하나 건네주고, 담을 넘어 진상을 보라고 하면서 반드시 참모장에게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중공의 박해 이전에는 파룬궁 서적 ‘전법륜(轉法輪)’을 드렸던 적이 있는데, “쓰인 내용이 다 맞아요!”라고 했다. 박해 이후에는 같은 기관 조직부 사람들이 우리 회사로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러 왔는데 그녀는 몹시 반감을 표했다. 내가 불법적으로 직위 해제된 후 회사에 진상을 알리러 갔을 때, 그녀와 부서 동료들이 식당으로 불러 밥을 사줬다. 정말 선량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4. 여단 정치부 주임 “글을 정말 잘 썼더군, 수준이 높아!”
어느 날 길에서 여단 정치부 주임을 만났다. 진상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내 본성이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진상을 알려야 한다!’ 정치부 주임은 간부를 관리하는 자리였다. 나는 부대에 있을 때 우수 정치교관으로 선발됐고, 총참모부 훈련개혁에 참가해 지휘훈련과 실탄사격 성적이 우수해 공훈을 세운 적도 있었다. 그래서 주임에게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됐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임은 말했다. “우리집 우편함에 누가 자주 자료를 넣어두던데, 내가 읽어봤어요. 글을 정말 잘 썼더군, 수준이 높아!”
주임은 군 조직처장을 역임하며 ‘최고의 글쟁이’라는 명성을 얻은 분이었다. 중공의 거짓말에 미혹되지 않으니 진심으로 기뻤다. 헤어지며 나는 중공 천안문 ‘분신’ 사건이 가짜임을 폭로하는 CD 한 장을 건네주고 집에서 보시라고 했다. 주임은 기꺼이 받아갔다.
자료를 배포한 수련생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바로 그분들의 진상 자료가 주임의 마음의 문을 열어줬고, 진상을 알아 구원받게 해줬다.
5. 권익 옹호 노병이 탈당하다
G는 군대 전역 간부로, 영급(營級) 소령 군관을 역임하고 전역 후 우리 기관 행정관리부로 배치됐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G는 나에게 말했다. “동서남북 가운데서 파룬이 천지를 도는군요. 중공이 파룬궁에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랐군요.” G는 산둥 사람으로 전형적인 산둥 사내대장부였다. 마음이 곧고 성격이 쾌활하며 기꺼이 남을 도왔다.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기관에서 직위 해제됐다. 여러 차례 기관과 주관 국에 찾아가 복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G는 내 처지를 매우 안타까워하며 분개해서 말했다. “주민센터에 가서 복직을 요구하세요. 해고는 불법입니다. 시민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파룬궁 수련은 잘못된 게 없어요, 잘못한 건 정부입니다.”
G의 말이 맞다 싶어 주민센터에 가서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렸다. 또 구 군대 전역 간부 사무소에 가서 주임을 찾아 진상을 알렸다. 주임도 전역 간부였는데,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고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했다. 주임은 꽤 머리가 명석하고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주민센터 조직부에 가서 모 과장을 찾아보세요, 그분이 동의해서 상부에 보고하면 될 겁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모 과장을 찾아갔더니 “주민센터 주임에게 가서 얘기해 보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주민센터 주임을 찾아 진상을 알렸다. 결국 주민센터 주임은 “집에서 연락 기다리세요, 이미 상부에 보고했습니다”라고 했다. 머지않아 일자리가 마련됐다. G와 그 좋은 사람들의 도움에 정말 감사했다.
이후 G의 기관이 파산해 G도 실직했다. G는 권익 옹호 활동으로 새 직장을 구했다. 어느 날 버스에서 G를 만났는데, “중풍에 걸려서 너무 힘듭니다”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겁내지 마세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세요. 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되찾는 데 놀라운 효험이 있습니다.” 나는 G의 당·단·대 탈퇴를 도와주고,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 두 개를 줬다. 자주 담을 넘어 명혜망을 보고 파룬궁 정보를 알아보고, 에포크타임스와 NTD TV를 통해 중국 노병들의 권익 옹호 정보도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했다.
작년에 옛 이웃을 만났다. 구 항구위원회 홍보처장 Y였는데, 아내도 군대 전역 간부로 시 당교에서 근무했다. Y는 자주 담을 넘었고, G와는 같은 부대 전우였다. Y는 말했다. “G는 우리 부대 전역 간부 모임 주선자인데, 캠핑카를 사서 아내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 다닌다더군요.” 듣고 나서 진심으로 G를 위해 기뻤다.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고 파룬따파가 좋다고 진심으로 믿으니 하늘이 내리는 행복과 평안이 정말 있구나 싶었다!
6. 파출소 부소장이 탈당하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산에서 10여 년 만에 전우 D를 만났다. 우리는 고향이 같았고, D는 파출소 부소장이었다. 그 파출소는 현지에서 매우 악명이 높아 파룬궁수련생을 여러 차례 납치하고 박해한 곳으로, D의 이름도 명혜망에 자주 공개됐다. 나는 D와 그 파출소에서 박해에 가담한 경찰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편지 내용에는 「각성하는 경찰들」, 「법망이 좁혀들다」, 「중공과 함께한 비극」 등이 담겼고, 중공 악당과 어울려 선량한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고, 결국 자신의 앞길을 망치게 된다고 권고했다. 명혜망에 공개된 후 전 세계 파룬궁수련생들의 전화와 편지가 파출소로 쏟아졌다.
D는 파출소에서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명혜망에 접속해 진상을 알 수 있었다. 나는 D에게 말했다. “스스로 퇴로를 남겨두세요. 지금부터 파룬궁 박해에 더 이상 가담하지 말고, 어서 중공 당·단·대를 탈퇴해 자신을 위해서도,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세요. 자연재해와 인재가 얼마나 많은지 보세요. 지진, 홍수, 산사태 재난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잖아요.” D는 “그렇지요, 재난이 끊이지 않아요”라고 했다. D의 동의를 얻어 나는 가명으로 D의 당·단·대 중공 악당 조직 탈퇴를 도와줬다.
7. 무장부 전우가 탈당하다
바로 맞은편에 사는 형님은 구 무장부에서 근무하는 현역 군인이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두 부부 모두 알고 있었다. 수련 이후 내 몸과 마음의 변화, 내 처신 모두를 그들은 잘 알았다. 에포크타임스에서 9평 공산당을 발표한 뒤 나는 줄곧 형님에게 탈당해서 목숨을 보전하라고 권했지만 끝내 탈당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맞은편 형수가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살려줘요! 불났어요!” 형님 집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형수가 부엌 바닥에 기진맥진한 채 주저앉아 있었으며 검은 연기가 자욱해 매우 위험했다. 부엌 환기팬이 타고 있었는데 전선 합선으로 난 화재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위에 있는 행거 수납장까지 불이 붙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전원 스위치를 내리고 물로 불을 껐다.
이 일이 그 집 식구들에게 크게 와닿았다. 당시 형수의 처절한 살려달라는 외침에 아무도 도우러 나오지 않았었다. 그들은 매우 감사해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탈당을 도와주는 것도 사람을 구하는 일이지요.” 얼마 후 어느 날, 주민센터 입구에서 맞은편 형님이 주차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형님, 당·단·대 탈퇴하세요. 자연재해와 인재가 얼마나 많은지 보세요. 탈당해서 목숨과 평안을 지키세요!” 형님은 기꺼이 승낙했다.
8. 비행사가 담을 넘어 탈당하다
어느 날, 권익 옹호 전우 모임이 있었다. 그날 30여 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전역 군관들이었고, 나는 그런 형식의 모임에 처음 참가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2년간의 불법 강제노동을 마치고 귀가한 지 한 달 남짓 됐을 때였다. 나는 내 개인 사정을 소개하고 나서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진선인’을 지켰다는 이유로 기관에서 불법 해고됐습니다. 시민에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헌법이 보호합니다. 중공이 헌법을 어기고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모임에 참가했던 전우 한 명이 이후 나에게 전화해 말했다. “내 병사 아무개가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내가 중대장이었을 때 그는 우리 중대에서 최고 좋은 병사였습니다. 시 구치소에서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고 있었고 내 처지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날 모임에서 한 전우가 유달리 눈에 띄었다. 경찰복을 입었고, 한쪽 팔꿈치 아랫부분이 붕대로 목에 걸려 있었으며 팔뚝에는 새하얀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골절된 것 같았다. 소개를 들으니 전역 전에는 공군 비행사였고, 전역 후 부임한 기관이 망한 뒤 60살 가까운 나이에 구 공안분국에 보조경찰로 들어가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몸이 빨리 회복되고 어떤 후유증도 남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중공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도와줬다.
이후 버스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파룬따파가 좋고 진선인이 좋다고 믿는다며,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 두 개를 달라고 했다.
9. 사령관의 아들이 진상을 받아들이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기사에게 물었다. “이 지역 분이세요?” “아니요, 선양 사람인데 어릴 때 군을 따라 왔습니다”라고 했다. “아버지가 군관이셨군요, 어느 부대십니까?” “아버지는 모 기지 사령관이셨는데, 당시 나와 삼촌이 모두 아버지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라고 했다. “그 기지 나도 가본 적 있는데, 편제가 다 해체됐고 지금 군영은 폐허가 됐더군요”라고 했더니, “손실이 막대합니다!”라고 했다.
내릴 때 진상 USB를 하나 건네줬다. “꼭 아버지에게도 보여드리세요. 안에 TV 다큐멘터리 「진실한 장쩌민」 17부가 담겨 있어요. 군사위 주석이었던 장쩌민이 어떻게 군을 망가뜨렸는지 등의 진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감사합니다, 꼭 그러겠습니다!”라고 했다.
10. ‘6·4’ 진압에 참가했던 군인이 담을 넘다
어느 날 시 식물원 앞에서 전우 W를 만났다. W는 한 회사에서 경영자로 있었고, 나는 전에 그의 기관을 찾아가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린 적이 있었다. 부대에 있을 때 우리 둘은 같은 중대 출신이었는데, W는 39군(軍) 소속으로 1989년 ‘6·4’ 대학생 진압(천안문 사태)에 참가한 뒤 우리 부대로 전입해 왔다. 당시 나는 정직(正職)이었고 W는 부직(副職)이었다. 부대에 있을 때 W는 한번은 나에게 말했다. “‘6·4’ 천안문 대학생 ‘반혁명폭동’ 진압 당시 뉴스 연합 방송에서 시동이 꺼진 장갑 지휘차 한 대가 나왔는데 봤어요?” “봤지”라고 했더니 W는 말했다. “그때 제가 바로 그 지휘차 위에 있었습니다.” 지금 알고 보니, 그 장갑 지휘차는 바로 당시 선양군구 39군이 평화적으로 청원하던 대학생들을 피비린내 나게 학살한 지휘차였다. W는 중공 군대가 대학생을 총살하는 전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나는 W에게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를 하나 줬다. 거기엔 9평의 영상이 담겨 있었다. 담을 넘어 인터넷에 접속하면 ‘6·4’ 관련 사이트가 있고 중공 군대가 대학생을 학살하는 사진과 글이 있으니 보라고 했다. 오늘날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6·4’ 대학생 진압보다 더 피비린내 나고 잔혹하다고도 했다. W는 소프트웨어를 받아 들고는 눈을 크게 뜨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11. 해군 사단급 군관 부부가 담을 넘어 진상을 보다
아내가 손목 골절로 입원했다. 당시는 마침 코로나19(역병) 기간이었는데, 같은 병실의 R이라는 여성은 교사였고 역시 손목 골절로 아내보다 하루 먼저 입원했으며 남편이 간병하고 있었다. R의 남편은 모 기지 정사단급 현역 군관이었다. 아내는 그들에게 말했다. “내 남편도 전에 군인이었는데 지금은 전역했어요.” 당시 아내의 휴대폰이 고장 나 밥을 사려면 위챗페이(微信支付)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R의 남편이 아내를 위해 대신 결제해줬다. 두 부부가 줄곧 아내를 각별히 보살펴줬다. 아내는 입원 기간 내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고 일주일 만에 퇴원했는데, 손목이 이미 부기가 빠진 상태였다. 아내는 퇴원 후 R과 위챗으로 연락을 유지했다. 나는 아내에게 R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회복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아내의 회복된 손목 사진을 R에게 보내도록 했다. R은 매우 믿어 자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도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R의 남편이 퇴직한 후 그들은 베이징으로 이사했고, 딸은 대학 졸업 후 베이징에 남아 살림을 꾸렸다. R의 딸은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는데, 나는 아내에게 그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자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하늘이 행복과 평안을 내려줍니다.” 얼마 후 R의 딸이 임신해 예쁜 딸을 낳았다. 그들은 집도 장만했다. 떠나기 전에 차를 몰고 우리집에 찾아와 과일 한 상자와 헤이즐넛 5~6kg을 가져왔다. 아내도 그들에게 선물을 줬다. 나는 두 부부에게 진상 USB를 하나씩 드리고 평생 평안하기를 빌었다!
12. 전우 모임에서 다 함께 담을 넘다
어느 날, 같은 중대 전우들이 모였다. 모두 예전 내 전우와 부하들이었는데 이후 영급이나 단급 군관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 현직 부군급 전우도 자리를 빛내줬는데, 예전에 우리는 같은 단(團)이었다. 전우들이 모이니 모두 매우 기뻤고, 20여 년 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진상을 알렸다. 주로 중공 고위 관리들의 낙마 물결과 그 인과관계를 이야기했다. 낙마한 모든 고위 관리들은 파룬궁 박해를 밀어붙인 것에 대한 업보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군 내부에서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구쥔산(谷俊山)이 대표적인 인물로, 이들은 장쩌민의 파룬궁에 대한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고갈시키고, 육체적으로 소멸시킨다’는 소멸 정책을 집행하며 군 내외에서 파룬궁수련생 생체 장기적출을 진두지휘해 폭리를 취하다가 결국 낙마해 업보를 받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미 수십 명의 부군급 이상 고위 관리가 낙마했다.
헤어지기 전, 나는 모든 전우에게 인터넷 우회 소프트웨어를 한 개씩 나눠주고 진실한 정보를 보라고 하면서, 더욱 진상을 이해하는 길을 열어줬다.
(명혜망 2026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 선정작)
원문발표: 2026년 6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7/51042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7/51042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