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서부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여러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청년 대법제자이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수련했습니다. 제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에게 션윈을 소개했던 몇 가지 경험을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일들은 그저 제가 친구들을 공연에 초대하고, 오해와 비방에 직면했던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그 속에서 저의 아주 깊은 집착심이 많이 드러났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동시에 법의 지도와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자신을 승화시켰습니다.
1. 조롱받을 때 심성을 지키지 못하다
8학년 때,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션윈, 혹은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궁 박해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저는 일부 중국 유학생들의 조롱과 배척을 받았는데 그들은 중공 악당의 거짓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위험하고 광신적이며 심지어 ‘정신이 비정상적’인 것을 선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나이가 어렸기에 어떻게 지혜롭고 평화롭게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마음이 동요돼 그들과 큰 소리로 논쟁하며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서둘러 증명하려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대법을 수호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흥분할수록 그들은 더욱 우습게 여겼고, 한술 더 떠서 더욱 더럽고 악독한 말로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했습니다.
당시 저는 몹시 억울하고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모두 상대방의 문제라고 여겼는데, 나중에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다 보니 비록 상대방의 행동이 잘못되긴 했지만 저의 흥분, 쟁투심, 승복하지 않는 마음 역시 그에게 ‘불난 데 부채질’을 하는 격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평화로움, 이성, 자비로 그의 선념을 일깨우지 못하고, 오히려 그가 저를 감정적이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간의 이런 이익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원망 앞에서도 웃음으로 이 일체를 대하며, 모순 중에서도 우리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이것은 속인으로서는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관(關)을 넘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다.”(미국중부법회 설법)
이 단락의 법은 저에게 진정한 수련이란 아무도 저를 자극하지 않을 때 자신이 참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욕받고 오해받고 공격받을 때도 심성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임을 보게 해줬습니다.
저는 또한 자신이 중공의 거짓말에 세뇌된 그 중국 학생들에 대해 원망심이 생겼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적대적인 사람으로 여기며 어리석고 악의적이며 말도 안 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수련인은 적이 없으며 누구도 대법의 적이 될 자격이 없다.”[정진요지3-세간을 향해 바퀴(輪)를 돌리노라]
만약 제 마음속으로 한 사람을 적으로 여긴다면, 제가 하는 말은 자연히 방어적이고 원망하며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그의 선념을 일깨울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를 논박하고 억누르며 제가 옳다는 것을 그가 인정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상을 알려서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2. 인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잃다
또 한 가지 경험은 제가 속인의 인정과 사교적 지위를 추구하는 집착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8학년 때, 저는 9학년 학생 무리를 알게 됐습니다. 그때 윗 학년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은 제게 꽤 ‘멋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가끔 방과 후에 저희에게 밀크티나 맥도날드 음식을 사다 줬는데, 저는 속으로 제 ‘지위’도 덩달아 높아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 몹시 신경 썼고, 성숙하고 재미있으며 무리에 받아들여지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베이징에서 온, 정치와 토론에 능한 9학년 남학생 한 명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아주 똑똑하고 성적도 좋았으며 언어 능력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그가 파룬궁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고, 심지어 약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그가 말하는 이른바 ‘중립’이 사실은 조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중공이 파룬궁을 공격하기 위해 고의로 거짓말을 날조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토론에 능한 입담으로 대법과 사부님을 악독하게 공격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중학생이었기에 그의 능숙한 정치적 언어와 토론 방식에 직면해 자주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논쟁해도 소용없었고, 설명해도 그는 듣지 않았으며, 다른 친구들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고 일부는 오히려 덩달아 야유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집중 공격을 받고 ‘괴짜’로 낙인찍혔다고 느꼈습니다.
감정에 휘둘릴 때 저는 때로 매우 격렬하고 통제되지 않은 말을 내뱉곤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제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보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파룬궁에 대한 그들의 오해가 ‘증명’됐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때는 다른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농담을 하고 속인의 화제를 이야기하며, 그들이 제게 붙인 꼬리표를 잊어버리길 바랐습니다. 이때 저는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은 채 그저 남들이 저를 보는 시선에 영합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한번은 그가 종교에 관심이 있다며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몹시 흥분했고 드디어 그에게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성을 다해 그에게 책을 선물했고 심지어 특별히 포장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파룬궁을 비판하는 아주 긴 글을 썼습니다. 글은 구조가 잘 짜여 있었고 정식 분석 글과 매우 흡사했지만, 그는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말씀하신 일부 초범적인 내용과 뱀 부체(附體)를 청리하신 내용 등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해 대법을 조롱하고 사부님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그에게 책을 준 것을 깊이 후회했고, 그에게 대법을 공격할 자료를 더 많이 제공했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그에게 책을 준 것은 잘못이 아니며, 잘못된 것은 제 안에 결과를 추구하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섞여 있었다는 점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가 책을 읽은 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길 바랐고, 그의 변화가 제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길 바랐습니다. 그가 제가 원하던 방향으로 가지 않자 저는 제가 실패했다고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당신의 마음이 만일 속인의 마음에 이끌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각지 설법 10-맨해튼 설법) 이 말씀은 제 문제를 아주 직접적으로 지적해주셨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 선 것이 아니라, 승부를 겨루고 체면을 다투며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는 것이 토론이 아님을 점차 깨달았습니다. 상대방을 이기고 자신이 아는 것이 많아 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상대방에게 내가 옳다고 인정하게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한 생명에게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의 미래를 배치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제 마음속에 원망, 두려움, 쟁투심, 그리고 자신의 명성을 수호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설령 말 자체는 옳을지라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비와 순수함이 부족한 것입니다.
3. 고등학교 음악부에서의 새로운 시작
지난 몇 년간 비틀거리며 수련하고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았으며,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마침내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습니다. 과거에 저를 조롱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제 곁에 몰려들지 않았고, 제 마음속 압박감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션윈 광고를 매우 열성적으로 전달하고 학교에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은 진실했지만 거기에는 환희심과 서둘러 성과를 얻으려는 조급한 마음도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모두가 즉시 진상을 깨닫고 즉시 흥미를 보이며 즉시 표를 사기를 바랐습니다. 때로는 제가 충분히 많이, 충분히 열정적으로, 충분히 힘주어 설명하기만 하면 남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순수하고 바른 정념이 아니라 조급함이었습니다.
4. 한 합창단 친구의 반응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저는 음악부와 합창단에 가입했고, 이곳에서 많은 새 친구를 알게 됐는데 그중 한 명은 합창단의 선배였습니다. 그녀는 아주 재능 있는 가수이자 음악가였습니다. 우리는 노래와 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션윈 광고 하나를 전달했습니다. 저는 길게 설명할 준비도 하지 않았고 큰 기대도 품지 않았으며, 그저 친구에게 정보를 공유하듯 그녀에게 보냈을 뿐입니다.
뜻밖에도 그녀는 곧바로 들떠서 제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 벌써 나랑 우리 엄마 표 예매했어!”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션윈을 소개할 때면 흔히 설명을 많이 해야 했고, 그래도 간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의 설득할 필요도 없이 어머니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무척 기뻤고 심지어 ‘내가 한 사람을 설득해 션윈을 보게 하는 데 성공했구나’라는 한 가지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즉시 저는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저 메시지 하나를 전달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제가 말을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명백한 일면이 일찍부터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고, 단지 누군가가 문을 살짝 밀어 열어주기만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전법륜)
이 일은 제가 이 법 구절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체득하게 해주었습니다. 제자로서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입을 열어 진상을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중생이 감동받을 수 있을지, 인연이 어떻게 성숙할지는 사람의 능력으로 배치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션윈을 관람한 후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제게 말했고, 소셜 미디어에도 감상을 공유했습니다. 그녀는 공연에 비극도 있고 희극도 있으며, 선량함도 있고 자비로움도 있다면서 그저 기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아주 깊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음악가이자 시각 예술 방면에 소양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무대 예술을 매우 높이 평가했고, 현장의 색채가 광고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눈부시고 장엄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를 더욱 감동하게 한 것은, 그녀가 그저 표면적인 아름다움만 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녀는 무신론과 진화론이 사람들이 하늘을 믿고 신성을 믿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가사 내용의 함의에 공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신앙이 낙후되거나 우스운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위안과 도덕적 힘, 그리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특히 마지막 막을 언급하며 재난, 질병, 정치적 혼란, 폭력이 세계를 휩쓸 때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보게 해주는 것은 바로 신에 대한 신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메시지는 보편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 혹은 서로 다른 종교를 믿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선량함, 희망, 자비, 신성에 대한 동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들은 저를 무척 감동하게 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션윈을 널리 알릴 때 늘 제가 말을 잘하지 못하고 설명을 완전하게 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션윈에 대한 그녀의 이해는 제게 션윈의 힘이 제가 얼마나 완벽하게 묘사하는지에 달려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의 책임은 그저 인연 있는 사람이 션윈 극장에 들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일부 친구들이 그녀가 션윈을 보러 간 것을 비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틀림없이 화를 내며 반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제게 그 사람들이 공연을 보지도 않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데, 그런 시각은 편협할 뿐만 아니라 무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보고 직접 느낀 것을 믿었습니다.
한 속인이 비방에 직면했을 때 그토록 평온하고 맑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또한 자신에게 묻게 했습니다. ‘수련인으로서 내가 똑같은 공격을 받았을 때 속인보다 더 흔들림 없이 안정될 수 있을까?’
그 후 그녀는 제게 꿈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녀는 마치 션윈의 첫 장면에 나오는 천국 세계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전통 복장을 입고 장엄하고 신성한 경지 속에 서서 창세주 앞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겠다는 서약을 하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 우리가 모두 아는 합창단의 한 남학생이 붉은색 전통 복장을 입고 옆에 서 있는 것도 꿈에서 보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이 층층이 아래로 내려가 마지막에는 고대 중국 궁정 같은 곳에 도착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수련인이 아니었기에 묘사할 때도 그저 자신의 언어로 기억을 짜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꿈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정할 수 없으며, 신기한 현상에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은 사람과 대법의 인연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꿈 자체에 흥분하기보다는, 오히려 저 자신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 마음은 순수했는가? 내가 잘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녀를 위해 그렇게 했는가?’
5. 두 절친이 션윈을 관람하다
저에게는 두 명의 좋은 친구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은 6학년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8학년 때 알게 된 친구로 우리 세 사람은 형제자매처럼 지냈습니다.
우리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도서관에 가서 저학년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종종 길에서 웃고 떠들기도 했습니다. 이 우정 속에서도 저는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고 인정을 바라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소박하고 명랑하며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 마음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유행을 추구하거나 나서는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나’였습니다.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며, 저를 필요로 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이 두 친구를 션윈 관람에 초대했습니다. 제 오랜 친구는 션윈이 왜 저에게 그토록 중요한지 아주 궁금해했는데, 제가 그의 귓가에 대고 몇 년 동안이나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친구는 옷을 좀 정식으로 입고 예쁘고 성대한 공연을 보러 가기를 무척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 그저 10학년 학생이었기에 표값이 그들에게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비용 일부를 해결해주기 위해 저는 매일 남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부모님께서 제게 약간의 보수를 주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에는 친구가 션윈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일면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으로 찾다 보니 그 속에 ‘일을 성사시키려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섞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속으로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고 나면 분명히 션윈이 너무 좋았다고 말할 테고, 그러면 내 안목과 고집, 내 노력이 모두 옳았다는 것도 증명될 거야.’
저는 문제는 제가 기꺼이 시간과 돈을 지불하려 하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친구들이 표를 사도록 돕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잘못된 것은 제가 그들이 갈 수 있는지, 션윈을 좋아하는지를 저 자신을 검증하는 결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나중에 또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그 여학생의 부모님은 훈육이 매우 엄격하셨기에 그녀가 밤에 남학생 두 명과 함께 나가는 것을 안심하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또 조급해져서 즉시 각종 방법을 생각했지만 그 방법들은 모두 통하지 않았고, 제 마음은 갈수록 더 다급해져 심지어 직접 그녀의 부모님을 설득하러 갈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때 저는 진정으로 그녀 부모님의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그들을 하나의 ‘장애물’로만 여겼습니다. 저는 심지어 농담 삼아 그녀에게 사실이 아닌 말로 부모님의 걱정을 불식시키게 할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는 이미 진(眞)에서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제가 이 일을 너무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는 제가 두 친구를 극장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제 고집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자비가 아니라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은 신성한 일이며, 신성한 일은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해선 안 됩니다. 겉보기에 좋은 목적이 제가 진선인(眞·善·忍) 기준을 지키지 않는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시드니법회 설법)
저는 자신이 속인의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계획하고, 추진하고, 설득하고,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해야 하며, ‘순리에 따른다’는 말로 나태함과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춰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후에는 반드시 강요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며, 일이 꼭 제 생각대로 발전해야 한다고 요구해선 안 됩니다.
예전에 저는 쇼핑몰 매표소에서 션윈을 널리 알릴 때도 자주 비슷한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소개해 줘도 줄곧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마땅히 알려야 할 것을 똑똑히 알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것 외에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 발라야 한다는 점임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정념을 발하는 것은 남이 제 생각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란을 제거하고 중생의 명백한 일면이 거짓말에 가로막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기어코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은 후, 일은 오히려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 여학생의 부모님은 그녀가 션윈을 보러 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그 속의 구체적인 원인을 알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결과를 제 공로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마음을 바르게 다잡고 더 이상 ‘내가 꼭 성사시켜야 해’라는 데 집착하지 않았을 때 일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두 친구 모두 션윈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야 저는 그들이 보러 간 그 시기에 주변에 션윈과 파룬궁에 관한 부정적인 언론이 아주 심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션윈은 사교(邪敎)다.’ 같은 꼬리표는 또래들 사이에서 거의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반복하는 말이 돼 있었습니다.
저를 감동하게 한 것은 그 여학생이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 때문에 물러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션윈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몹시 공감한다며, 그 무용수들이 신앙, 전통, 선량함을 표현하고 있고 박해받는 사람들의 마음속 소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더욱 크게 감동시킨 것은 바로 제 그 오랜 친구였습니다. 과거 중학교 시절, 다른 사람들이 파룬궁과 션윈을 공격할 때 그는 염려하는 마음 때문에 감히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일 때문에 좀 실망하기도 했고, 그가 제 가장 좋은 친구이니 당연히 저를 지지해줘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실 제가 우정과 중생이 스스로 진상을 깨닫는 것을 한데 뒤섞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저는 션윈을 비방하는 게시글 아래에 그가 자발적으로 댓글을 단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제가 볼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그저 자신이 직접 션윈을 봤는데 공연의 메시지가 평화롭고 긍정적이라고 느꼈으며, 그런 ‘비방은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썼을 뿐입니다.
그 순간 저는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친구가 제 편에 서 주기를 바랐고 마치 그러면 제게 지지와 위안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제가 그의 친구이기 때문에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직접 보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공정한 말을 한마디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중생의 진정한 선택은 우정, 압박, 체면이나 논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며 기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내심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저의 집착으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慈悲(츠뻬이)의 힘은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해체시킬 수 있다.”(각지 설법 10-맨해튼 설법)
이 일을 통해 저는 자비란 중생을 마음속에 품는 것이지, 그들을 자신이 잘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물로 여기는 것이 아님을 더욱 깊이 체득했습니다.
맺음말
저는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의 감정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지혜로우며 자비로워야 함을 체득했습니다. 오해하는 사람을 대할 때 원망심을 가져선 안 되고, 망설이는 사람을 대할 때 조급해해선 안 되며, 받아들이고 칭찬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환희심과 자기만족이 일어나선 안 됩니다.
제 친구들이 션윈을 관람할 기회를 갖도록 자비롭게 배치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제가 깊이 숨겨두었던 명예를 추구하고 인정을 추구하며 결과를 추구하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을 보게 해준 이 경험들에도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는 조급함과 자아를 조금 줄이고 이성, 지혜, 자비를 조금 더 갖추어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구하는 가운데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앨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는 것이 없던 대법 어린이 제자에서 점차 비교적 성숙한 청년 대법제자로 성장하기까지, 줄곧 자비롭게 보살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제 현재 층차에서의 작은 체득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6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9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2/51384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9/2/51384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