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철칙: 그 ‘남을 해치는 자들’의 결말

글/ 루런(路人)

[명혜망] 중국 수천 년의 기나긴 역사와 근현대 정치의 풍파 속에서, 한 가지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각종 운동이 휩쓸고 지나갈 때, 항상 바람을 타고 맹종하며, 심지어 기꺼이 ‘급선봉(急先鋒)’을 자처해 시비곡직을 가리지 않고 남을 해치고 괴롭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시대의 조류에 순응하고 어떤 세력에 충성하며, 이를 통해 입신양명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이처럼 ‘남을 해치는 자들’의 최후는 종종 남도 해치고 자신도 망치는 비극으로 끝났다.

한때 큰 인기를 누리다 감옥에 갇히기까지

수십 년 전 그 떠들썩했던 문화대혁명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전 국민이 참여했던 그 운동 초기, 수많은 젊은이가 열정에 넘쳐 반란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단연 칭화대 조반파(造反派) 우두머리 콰이다푸(蒯大富)일 것이다.

1966년의 콰이다푸는 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무한한 영광을 누렸고, 심지어 고위 관료들을 끌어내 투쟁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맹목적인 광기 속에서 그는 칭화대 무투(武鬪)를 조직했고, 결국 18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시대의 ‘공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과 4년 후인 1970년, 그는 격리 심사를 받으며 인신의 자유를 잃었다. 1983년에 이르러, 이 한때 이름 높았던 ‘혁명 소장(革命小將)’은 반혁명죄 등의 죄명으로 17년형을 선고받았다.

만인의 추앙을 받던 ‘공신’에서 죄수로 전락한 이러한 극적인 반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법치와 이성이 결여된 광적인 운동 속에서 앞잡이로 이용된, 남을 해친 자들은 종종 가장 먼저 역사의 무자비한 톱니바퀴에 완전히 짓눌려 버린다.

현대 직장과 관가의 맹종자들

역사의 비극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20여 년 동안, 비슷한 이야기가 여전히 다른 무대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1999년 특정 신앙 집단을 겨냥한 탄압 정책이 나온 이후, 일부 지방 관리들과 법 집행 직원들은 눈앞의 이익이나 맹목적인 복종을 위해 권세에 아부하며 죄 없는 수련자를 박해하는 급선봉이 됐다. 예를 들어,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전 시위원회 부서기 선즈청(沈志成)은 재직 기간에 대대적으로 감시망을 구축하고, 무고하고 선량한 수많은 시민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고 박해했으며, 연루된 사람의 수가 아주 많았다.

그가 원했던 승진과 영화를 얻었는가?

그렇지 않다. 2003년, 선즈청은 흑사회(폭력조직)의 ‘보호우산’ 역할을 한 혐의로 5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 뒤를 이어, 해당 시의 전 공안국장이 투신자살했고, 현(縣) 공안국장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파출소 소장이 차 안에서 불타 죽었다. 그들은 타인을 해치라는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지만, 결국 밝은 앞날을 얻기는커녕 자신의 목숨과 미래의 복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이것이 역사의 우연이든, 아니면 전통문화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의 이치든,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에게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즉, 곤경에 빠진 남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는 종종 스스로에게 화를 불러오는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왜 ‘남을 해치면 곧 자신을 해친다’고 하는가?

왜 남을 해치는 자들은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까?

인간성의 관점에서 볼 때, 양심에 어긋나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모든 행위는 사회의 공공질서와 미풍양속, 그리고 법치의 마지노선을 파괴하는 것이다. 모함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에 익숙해질 때, 당신 역시 누구나 스스로 위태로움을 느끼고 안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호 가해의 사회를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스템 안에서는 누구도 절대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

신앙과 전통의 관점에서 볼 때, 불교에서는 인과를 말하고 유교에서는 인애를 말한다. 역사상 ‘후주 세종 시영(柴榮)의 불교 훼손’이라는 고사처럼 말이다. 사료에 따르면, 시영은 도끼로 구리 관음상의 가슴 부위를 찍어 훼손했는데, 결국 4년 뒤 그 자신도 가슴에 종기가 생기고 헐어 한창나이에 요절했다. 선량한 신앙을 파괴하고 바른 믿음을 품은 수련자를 잔혹하게 해치는 것은, 전통적인 천리로 볼 때 끝없는 죄업을 짓는 위험한 길이다.

그토록 많은 압력을 견뎌내며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수련자들은, 바로 너무나도 많은 ‘남을 해친 자들’의 비참한 결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입이 닳도록 간곡히 타이르는 것은 보복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원(恩怨)을 뛰어넘는 자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시비곡직을 명확히 분별하고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며, 더 이상 무지 속에서 박해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아 천리와 법률의 엄중한 처벌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맺음말

남을 해친 자들의 결말은 가련하고도 사람들을 일깨워 준다. 거짓말 한마디가 무지한 자를 유혹해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지만, 진실한 말 한마디와 선한 일념은 사람이 미혹 속에서도 벼랑 끝에서 발길을 돌리게 해 고해의 재난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이 복잡한 시대에 끝없이 얽힌 지시와 이익의 유혹 앞에서도, 부디 내면의 선량함과 맑은 정신을 유지하길 바란다. 당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진상에 대해 한 번 더 숙고해 보라. 뜬소문을 믿고 맹종하는 것은 재앙이며, 시비곡직을 명확히 분별하는 것은 복이다. 바라건대 모든 사람의 미래가 양심을 등대로 삼아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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