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안(知安)
[명혜망] 2026년 7월 4일, 미국은 곧 건국 250주년을 맞이한다. 많은 사람은 미국이 250년이나 자유 제도를 지탱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헌법과 법률 외에도 신에 대한 경외, 도덕에 대한 고수, 그리고 신앙 자유에 대한 존중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미국 역사를 진지하게 이해할 때 하나의 의미심장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 법치, 과학 기술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이 번영한 국가의 건국 이념에는 오히려 신에 대한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초기 북미 식민지에 온 많은 유럽 이민자는 종교 박해나 종교 갈등을 겪었다. 예를 들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에 도착한 개신교 분리주의자들은 자신의 신앙 방식에 따라 생활하기를 희망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미국 건국 후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특별히 중시했고, 정부는 국민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규정할 권리가 없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가지는 것을 금지할 권리도 없다.
1776년 ‘독립선언서’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의 조물주는 그들에게 빼앗을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부여했다”라고 쓰여 있다. 이 말은 미국 건국 정신의 중요한 기초로 여겨진다. 그것이 표현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가 정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정부보다 높은 존재인 조물주에서 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국 선현들은 대부분 신을 믿었고 신에 대한 경외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공개 연설은 ‘하늘의 뜻’, ‘전능한 신’ 등의 단어로 가득 차 있다. 1796년 ‘고별 연설’에서 그는 “국가 번영을 촉진하는 모든 품덕과 습관 중에서 종교와 도덕은 없어서는 안 될 기둥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일찍이 “우리의 헌법은 도덕적이고 종교적 신앙을 가진 국민에게만 적용된다”라고 썼다.
또 다른 미국 선현이자 ‘독립선언서’의 주요 집필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선언서에서 ‘자연의 신’, ‘조물주’, ‘세계의 최고 심판자’, ‘신성한 하늘의 뜻’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그가 인류 정부보다 높은 창조자와 도덕적 권위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사람의 기본 권리가 정부의 은사(恩賜)가 아니라 이런 더 높은 법칙에서 비롯됐다고 여겼음을 설명한다.
21세기 미국에서도 신앙은 여전히 주류 사회에서 자유 사회와 도덕 질서의 중요한 기초로 여겨진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취임 후 백악관 신앙 사무실을 설립하고 종교 자유 보호를 강조했으며 미국의 건국 정신이 신에 대한 신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미국 정부는 종교 자유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관련 기관을 설립해 각 종교 단체와의 소통 메커니즘을 강화했다. 많은 미국인에게 종교 신앙은 개인의 선택일 뿐만 아니라 사회 도덕의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다.
이는 많은 중국인이 어릴 때부터 받은 무신론 교육으로 형성된 관념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오랫동안 중국인들은 ‘종교 신앙’을 ‘미신’과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져 신을 믿는 것은 낙후되고 우매한 표현이며 과학과 현대화는 신앙을 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만약 신앙이 단지 미신일 뿐이라면 왜 미국 건국 초기의 건국 선현들부터 오늘날의 미국 사회에 이르기까지 종교 신앙이 여전히 공공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만약 신앙이 단지 우매함과 낙후됨만을 의미한다면 왜 미국과 세계의 많은 선진국은 종교 자유를 가장 중요한 기본 권리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일까?
사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사람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천명을 알며’, ‘선악에는 응보가 있고’, ‘머리 삼척 위에 신명이 있다’고 믿었다. 유가의 ‘천명을 두려워함’이든 도가의 ‘도법자연(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본받음)’이든 불가의 인과응보든 모두 우주에 사람보다 높은 법칙과 힘이 존재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특히 중국공산당(중공)이 장기간 무신론 교육을 추진한 이후 ‘신을 믿는 것’은 점차 ‘미신’으로 묘사됐고 ‘무신론’은 선진적이고 과학적인 상징으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은 신, 신앙, 수련을 말하기만 하면 바로 미신이고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만이 진실하다는 관념을 형성했다.
이런 관념은 사실 세계 주류 사회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전 세계를 바라보면 미국, 유럽이든 많은 아시아 국가든 종교 신앙은 줄곧 사회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었다. 세계의 많은 유명 대학이 초기에 종교 단체에 의해 설립됐고 현대 과학 발전을 추진한 많은 선구자도 모두 신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신앙과 과학은 대다수 경우 적대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다. 과학은 세계가 움직일 때 나타나는 부분적인 현상을 연구하고, 신앙은 생명이 왜 존재하는지 선악을 어떻게 가늠할지 탐구한다.
즉 사실상 진정한 신앙과 미신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미신’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미신’은 가수나 영화배우의 팬처럼 맹목적으로 믿는 것 외에도 왕왕 생각하지 않고 어떤 설을 맹종하며 심지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한 힘이 자신을 대신해 현실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반면 진정한 신앙이 강조하는 것은 도덕적 제약, 자아 향상, 더 높은 진리에 대한 추구다. 기독교가 제창하는 사랑과 용서든, 유가의 인의예지신이든 그 핵심은 모두 사람에게 선(善)을 향하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사람들이 회고하는 것은 단지 한 국가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유 사회가 도대체 무엇에 의지해 유지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법률은 행위를 규범화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은 편리함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생명의 의미에 대답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더 높은 가치에 대한 경외심을 잃었을 때 아무리 완벽한 제도라도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장기간의 무신론 교육을 겪은 많은 중국인에게 모든 신앙을 미신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선입관적인 관념이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미국 250년의 역사는 적어도 신앙이 현대 문명의 발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해준다. 반대로 신에 대한 경외, 도덕에 대한 고수, 정신적 가치에 대한 추구는 바로 많은 문명이 명맥을 이어가는 중요한 기반을 구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면 신앙은 미신이 아니라 인류가 생명, 도덕과 우주의 진리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의 일부분이다.
250년 전 미국의 건국자들이 수호한 것이 사람들이 신을 믿을 수 있는 자유였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각종 정신적 신앙과 수련 실천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는 결코 미국 역사상의 한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모두 인권과 자유를 토론할 때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한 집단이 자신의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많은 중국인에게 이 문제는 왕왕 일부 사람이 장기간 회피해 온 화제인 파룬궁(法輪功)으로 이어진다.
장기간 중공의 거짓된 비방 선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중국인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공 매체의 부정적인 묘사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시선을 중국 밖으로 돌리면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광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여 년 동안 파룬궁은 이미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전파됐고 그 핵심 원칙인 ‘진선인(眞·善·忍)’은 많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은 파룬궁수련자가 커뮤니티 행사, 문화 축제, 전통 퍼레이드에 참가해 사회에 중국 전통문화 및 수련이 가져다준 심신의 혜택을 보여주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파룬따파 수련자는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세상의 권력 경쟁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진선인’ 원칙에 따라 도덕 수양을 향상하는 것을 강조해 수련자에게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도덕 향상과 정신적 추구를 중시하는 특징은 많은 전통 종교 및 수련 문화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중공의 근 30년에 달하는 지속적인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많은 파룬궁수련자는 공안의 납치, 감금 심지어 생명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시종일관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사실 진상을 알리고 있다. 그들이 보여준 견지, 관용과 용기는 바로 ‘진선인’의 정신적 함의를 체현했다. 이는 자신의 신앙 자유를 수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앙에 기초해 세워진 도덕적 힘을 체현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신앙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지는 어떤 정부, 어떤 지도자의 평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을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봐야 한다.
미국 건국 250년의 과정은 사람들에게 자유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은 단지 법률과 제도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에 대한 존중, 양심에 대한 고수, 현실적 이익을 뛰어넘는 정신적 신앙에 더욱 의지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신앙과 미신의 차이를 다시 생각할 때, 파룬따파가 제창하는 ‘진선인’ 역시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관찰하는 하나의 시각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신앙이 맹종이 아니라 진리, 도덕, 생명 의미에 대한 추구이며 미신은 이성적인 판단을 잃은 숭배와 의존임을 일깨워준다. 양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250년 전, 미국의 건국자들은 사람이 조물주가 부여한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250년이 지난 오늘날,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진리, 양심, 신앙이 도전을 받을 때 우리는 이 자유를 수호하길 원하는가?
이 문제는 250년 전 한 국가의 탄생을 결정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든 사람의 선택을 시험하고 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2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26/5116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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