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궐, 역사의 전환점에서 ‘숨은 수호자’를 자처하다

글/ 리밍다오(李明道)

[명혜망] 중국에서 집집마다 다 아는 전통 희곡 중 ‘조씨고아(趙氏孤兒)’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정영(程嬰), 공손저구(公孫杵臼) 등이 목숨을 버리고 의(義)를 취한 충의 정신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조마조마하고 가슴 떨리는 역사적 비극에서 절대다수의 사람은 지극히 중요한 ‘숨은 수호자’를 간과했다. 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희생은 없었으나 암암리에 보호망을 쳐서 충신의 혈통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2백 년 후 자신의 온 가문 운명을 조용히 바꿔놓았다.

그가 바로 진(晉)나라 장군 한궐(韓厥)이다.

운명의 선택: 공범이 되지 않고 암암리에 돕다

그당시 진나라 간신 도안가(屠岸賈)는 대권을 독점하기 위해 조삭(趙朔)의 온 가족을 죽이려 했다. 피비린내 나는 그 시각, 절대다수 관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수방관하거나 나쁜 무리와 한패가 됐다.

한궐은 오히려 나섰다. 그는 도안가를 극구 만류했을 뿐만 아니라 큰 재난이 닥치기 전에 조삭에게 소식을 전했다. 조삭이 눈물을 머금고 곧 태어날 아기를 부탁하며 조씨 가문의 대가 끊기지 않길 희망하자 한궐은 묵묵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도안가가 조씨 가문을 피로 물들일 때 한궐은 병을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저항을 나타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영과 공손저구가 어떻게 몰래 아기를 바꾸고 어떻게 조씨 집안 고아를 숨겼는지 한궐은 전 과정을 속으로 훤히 꿰뚫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병권을 쥔 장군으로서 그는 귀머거리와 벙어리 행세를 했다. 이것이 바로 그런 상황에서 정의에 대한 가장 큰 암묵적인 비호였다.

15년 후의 전환

어느덧 15년이 지나 그해의 아기(조씨 집안 고아)는 이미 소년으로 성장했다.

진 경공(景公)이 병에 걸렸는데 어느 날 꿈에서 한 귀신이 “네가 내 자손을 죽인 것은 의롭지 못하다. 내가 천제께 청을 올려 허락을 받았다!”라고 외치며 침전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경공이 두려워 점쟁이를 불러 물으니 “올해 보리가 익는 것을 보지 못하실 것입니다”라는 흉조를 들었다.

한바탕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궐은 시기를 포착했다. 그는 넌지시 경공에게 조씨 가문의 옛 공훈을 칭찬하고 오늘날 조씨 가문이 뜻밖에도 대가 끊긴 것을 애탄하며, 그 원혼이 빌미가 되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말을 들은 진 경공이 놀라며 “조씨 가문에 혹시 아직 후손이 남아있는가?”라고 묻자 한궐은 비로소 15년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놨다. “조무(趙武)라는 소년이 있사옵니다.”

한궐의 계책 덕분에 조씨 가문의 억울한 사건은 씻은 듯이 밝혀졌고, 조무는 가업을 이었으며, 아울러 여러 장군과 연합해 간신 도안가를 제거했다. 이로써 공손저구의 희생과 정영의 헌신은 마침내 한궐의 호위 아래 정의로운 결말을 맞이했다.(역주: 공손저구와 정영은 당시 조씨 가문의 식객이었는데, 다른 아기를 조무 대신 산속에 숨겼다. 정영이 도안가에게 거짓으로 밀고하여 군사를 그곳으로 유인하고, 공손저구는 결국 바꿔친 아기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

사마천의 진기(眞機): 왜 ‘남을 괴롭히면 곧 자신을 해치고, 덕을 쌓으면 반드시 번성한다’고 하는가?

여기까지 오면 많은 사람은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는 오히려 2백 년 후 한궐의 후손에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한 ‘답례’를 보냈다.

진나라에서 한씨 가문은 사실 놀라운 공훈을 세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한씨 자손은 오히려 조씨, 위씨(魏氏)와 함께 진나라를 분할해 단숨에 ‘전국 칠웅(戰國七雄)’ 중 하나인 한(韓) 나라가 됐고, 제후로 봉해져 나라를 세우며 부귀가 십여 대를 이어갔다.

왜 공훈이 뚜렷하지 않은 가문이 이처럼 거대한 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

대역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한세가(韓世家)’의 결말에서 이 배후의 천기를 간파했다.

“한궐이 진 경공을 감동하게 해 조무에게 대를 잇게 했으니…… 이는 천하의 음덕이다…… 그러니 조씨, 위씨와 함께 마침내 십여 대에 걸쳐 제후가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맺음말: 진상을 아는 것이 복이며, 양심을 지키는 것이 희망의 길이다

‘조씨고아’가 천년을 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심지어 유럽에까지 전해져 볼테르, 괴테 등 서양의 대가들을 감복시킬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 속에 인류의 영원한 보편적 가치인 충의 정신과 선악에 보답이 따른다는 진리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복잡다단한 정치 운동과 관련된 ‘현실적 이익’ 앞에서 어떤 사람은 도안가의 ‘앞잡이’가 되기를 선택한다. 눈앞의 짧은 명예와 이익을 위해 남을 괴롭히고, 해치며,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를 짓밟아 결과적으로 늘 신세를 망치고 자손에게까지 화가 미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한궐과 같은 선택을 한다. 비록 험난한 환경과 압력의 소용돌이에 처하더라도 마음속 양심의 마지노선을 굳게 지키며, 차라리 병을 핑계 대고 암암리에 도울지언정 ‘진선인(眞·善·忍)’을 사람이 되는 지도로 삼는 파룬궁수련자를 절대 해치지 않는다.

한궐은 그의 역사적 선택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결정적인 시기에 선량함을 보호하고, 천도를 경외하며, 박해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자신과 자손 후대를 위해 가장 큰 복을 쌓는 것이다. 이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역사의 전환점에서 우리 모두 양심을 닻으로 삼아 진상을 더 똑바로 직시하고, 눈앞의 공리와 이익을 좇는 맹종을 줄이길 바란다. 그리하여 자신을 위해 음덕을 쌓고 평안으로 향하는 항로를 선택하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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