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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욕(胯下之辱)과 소무목양(蘇武牧羊)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기는 굴욕[과하지욕(胯下之辱)]을 당하는 부분을 공부하면서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내가 불법 수감된 동안, 어떤 이는 내게 겉으로만 죄를 인정하라고 여러 번 설득했는데 나에게 아주 굴욕이었다. 그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신은 가랑이 밑을 기어나가는 굴욕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왜 배우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대답했다. “그렇다면 소무목양(蘇武牧羊: 소무가 양을 치다, 흉노에게 잡혀가서도 끝까지 변방에서 양을 치며 절개를 지킨 한나라의 충신 소무의 절개를 빗댄 고사성어: 역주)이란 말이 왜 있겠습니까?” 그는 할 말이 없었다.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간 굴욕은 대인지심(大忍之心)의 체현인데 이것은 단지 그 개인이 받은 굴욕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일반인이 참지 못하는 것을 참을 수 있었고 결국 큰일을 이뤘다. 하지만 근본 원칙에 직결되는 주요한 문제에 관해서는 이렇게 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들은 참음을 말하지 않는가? 그럼 공산당이 당신들을 억압할 때 마땅히 참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이유 없이 탄압을 받을 때 그들은 침묵하지 않고 박해받는 중에 진실을 말했습니다. 수년간 고통받으면서 기독교는 마침내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기독교도 인내를 말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왜 참을 수 없었습니까? 다시 말해서 참음은 어떤 의미에서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고, 불합리한 탄압에 대한 묵인과 용인이 아니며, 역경 속에서 신앙을 사수하는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그는 생각해보고 나서 표현에 이치가 있다고 말했다.

소무목양을 다시 말하자면, 소무는 한나라의 사절로서 흉노족의 포로가 되어 엄청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도 10여 년간 머리를 숙이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사자의 사명을 유지했다. 그는 인간의 차원에서 최대한의 참음(忍)을 해냈고, 동시에 진(眞)과 선(善)을 체현해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한신과 소무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사람에게 요구되는 인내를 체현해냈다. 인내에 대한 한 층의 내포를 설명했고, 인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다져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방면에서 포석을 마련했다.

오늘날 우리가 해내야 하는 인내는 그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는 속인을 초월해야 하고, 우리에 대한 인내는 층차마다 각각의 다른 요구가 있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7/8/4086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