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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베이징 찻집’ 항목에서 수련하면서 끊임없이 바로잡다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2014년 희망지성(2003년 미국에서 설립한 대중국 단파방송)에 들어왔고 2016년 6월부터 미국 중부 지역에서 뉴욕으로 왔다. 뉴스 대담 프로그램 ‘옛 베이징 찻집(老北京茶館)’에 참여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본사의 요구에 따라 ‘옛 베이징 찻집’ 프로그램에서는 옛 베이징 말투를 쓰는 두 사람이 함께 뉴스에 관해 대화하며 중공(중국 공산당)은 중국이 아님을 유머러스하게 알리며 중공에 의한 왜곡된 옳고 그름의 관념을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는 베이징 사람이 아니다. 평소에 말수가 많은 편이지만 베이징 말을 할 줄 몰랐다. 내 파트너는 베이징 사람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이런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됐고, 서로에게 심성을 향상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이제야 우리는 좀 나아지고 있는데 전부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들의 도움 덕분이다. 우리 두 사람은 이 과정 중의 수혜자가 되어, 점차 자신을 바꾸게 하고 협조를 배웠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존과 수련생들에게 나의 수련 체득을 보고하겠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자마자, 내 첫 번째 시련은 다른 사람의 부정(否定)에 어떻게 맞서는가였다. 처음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베이징 말투를 배우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이전에 비교적 곡예[曲藝: 지방 색채가 매우 강한 각종 설창(說唱) 예술]를 좋아해 각종 말투와 희곡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상 나는 ‘자신이 배웠다고 느껴’ 버텨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열심히 노력해도 말투를 배우지 못한다면 나는 자신이 이 프로그램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꿀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베이징 사람이나 베이징 말에 능통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차이를 판단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라 한두 마디를 듣고 알아챈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권유했다. “그냥 표준어로 하세요. 억양이 어색해요. 당신도 힘들잖아요.” 이런 건의로 나는 매우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이 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마음속에 아직 베이징 말투를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약간의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다.

도대체 내가 견지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실증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을 실증하고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보증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물론 프로그램의 요구였지만 나는 그래도 베이징 말투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 끊임없이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을 찾아 차근차근 제거해 가는 것이 이 항목 특유의 수련이 됐다.

처음 일 년간 협조인은 내 앞에서 우리 프로그램을 듣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녀는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평가하는데, 이때 꼭 마음을 자극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저번 몇 회에서는 그래도 약간 느낌이 있었는데, 왜 점점 나빠져요?” “내가 만약 일할 때 당신 프로그램을 들으면 분명 정신이 딴 데로 갈 겁니다. 조금도 사람을 매료시키지 못해요!” “너무 임의로 주입했어요.” “당신 말투를 들으면 담임선생님 같아요.” 등등이다.

“당신 말투는 담임선생님 같아요.” 이 말을 협조인은 대략 2년 넘게 말했다. 나는 이전에 대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고 진짜로 사람을 교육하는 일종 말투를 양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이미 습관이 됐고 남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느끼지 못했다. 고치려고 해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서 나는 무척 우울했다.

협조인이 여러 의견을 제시할 때 나는 겉으로는 평온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들끓었다. 가끔은 참지 못하고 직접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당신이 나에게 한번 시범을 보여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이에 대해, 협조인의 대답은 “나도 몰라요. 당신이 스스로 생각해야죠.”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속인의 ○○ 프로그램 여자 사회자를 보세요. 웃는 것이 얼마나 시원해요? 당신 두 사람은 왜 웃지 않아요?” 나는 즉시 반박했다. “아저씨 둘이 여기서 그렇게 웃는다면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누가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유머러스할 수 있겠어요? 조금씩 변화를 줘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고, 솔직히 말해서 잘한다고 생각했다. 완고하게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남의 질의와 비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1] 법공부를 통해 안을 향해 찾으면서 나는 자신의 문제점을 찾았다. 겉으로는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남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뒤에 숨어있는 건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자신이 잘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독선은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게 만든다.

우리의 각본은 미리 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상상하고 모의하는 것은 혼자 하고 방송에서는 둘이 수다를 떤다. 초반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과 바람잡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마치 물건을 파는 느낌이 강했다. 프로그램은 ‘중공에 의해 왜곡된 옳고 그름의 관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나조차도 중공에 의해 왜곡된 관념이 매우 많았고, 중공이 어떻게 중국인의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관념을 왜곡했는지 해석하는 문제에서 늘 모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토론과 분석은 중공에 대한 단순한 비판처럼 들리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청중이 “이 프로그램은 중공을 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공에 의해 왜곡된 옳고 그름의 관념을 바로잡으려면 전통적인 옳고 그름의 관념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나와 파트너는 모두 중국에서 자랐고 전통적인 관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몰랐다. 이렇게 되면서, 전통적인 도덕을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우리가 조기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제자규(弟子規)’와 같은 가족 윤리가 방송에 비교적 딱딱하게 삽입됐다. 프로그램 방송 날짜에 맞춰 그날에 해당하는 전통적인 명절, 절기와 관련된 전설, 연고, 풍습을 이야기하며, 이런 방식으로 중국인들에게 전통문화 이념을 전달하려 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나는 방송 도입 부분부터 절기, 명절을 인용해, 전통적인 전고[전례(前例)와 고사(故事)]를 한바탕 이야기했다. 나는 전통문화를 매우 좋아하며, 매번 너무 즐거워서 청중도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번은 아내 수련생이 피드백을 주었다. “당신은 왜 늘 절기를 말해요? 그런 것은 모두 인터넷에 있는데 당신이 말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오랫동안 말하니, 듣고 있자니 재미가 없네요.” 그녀의 피드백에 나는 매우 놀랐다. 그러나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전통문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나중에 희망지성의 프로그램 지도수련생이 우리 프로그램을 듣고 역시 이렇게 말했다. “뉴스를 논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요? 왜 시작하자마자 절기를 말하나요?” 또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박자가 느리면 청취자들은 인내심이 없어지고 나중에 아무리 재밌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옛 청취자들은 아마 듣기 좋아할걸!’이라는 요행을 바랐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자신의 취향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끝내 아픔을 참고 전통 이야기를 넣어 서술하는 서두를 없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그리워하는 청취자는 없었다. 나는 자신이 너무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예전에는 매번 프로그램 제목에 대해 나는 골머리를 앓았고, 떠오르는 것은 창의적이고 문예적인 것이었다. 한 편집장은 나에게 제목을 고치라고 제안했고 나에게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알려줬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그렇게 고치면 일반 뉴스 제목 같은데, 이 프로그램은 마땅히 자신의 특징을 살려야지!’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유튜브 기술교육 자료를 보고 나는 알게 됐는데, 나의 이른바 문예적인 제목은 뉴스 사건에 대응되는 키워드가 없어 검색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회 수가 계속 올라가지 않는 관건적인 이유였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들이 듣지 않고 자신만 즐거워한다면 전혀 소용이 없다.

사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 이런 문제는 또 표지 그림을 만들면서도 체현됐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디자인하는 것에 여전히 중독돼 있어서 잠재적으로 이런 중독을 방출하는 기회로 삼았다. 하다 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즐기기도 하면서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집착하게 됐다.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해 보니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나중에 협조인 수련생은 나에게 법 공부와 연공할 시간을 주려고 한 수련생을 찾아 나를 돕게 했다. 시작할 때 나는 여전히 간섭했고 한 무더기의 수정안을 내놓았으며 심지어 문서를 가져다가 직접 수정했다. 이렇게 하자 그 수련생은 매우 괴로워했고 나 자신도 매우 지쳤다. 결국, 팀 수련생의 강제적인 개입으로 나는 손을 떼게 됐다.

법 공부할 때 나는 이런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나의 독선과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 마음은 구세력의 상태가 아닌가? 자기 자신은 훌륭하고, 자기 자신은 옳으며, 남만 바꾸려고 하고 자기 자신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힘겹게, 조금씩, 그다지 내키지 않은 듯 그 껍데기를 벗겨내고 있었다. 심성을 높이는 과정은 정말 구세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정진하지 못해 돌파가 너무 더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 버리려면 우선 당신의 이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2] 가끔 상태가 좋을 때 나는 큰 폭으로 자신의 상태를 고쳤다. 이것을 해내려면 먼저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자신은 절대 완벽하지 않으며 심지어 아직 멀었고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인정해야 한다.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항목이 조금씩 진척됐다. 예를 들어 협조인은 광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화제를 바꾸라고 했고, 그 시기 나는 조건 없는 협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즉시 파트너와 상의해 화제를 바꿨다. 잃어버린 구독자나 떨어진 클릭 수에 얽매이지 않았다. 장애는 점차 해소되어 찻집에도 광고가 생겼다. 채널 댓글 창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갈수록 많아졌고 많은 팬이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됐다. 작년 크리스마스 날과 신정 이후 우리는 팬으로부터 탈당을 도와달라는 이메일도 받았다.

올해 중국 전통 신정에 협조인의 주선으로 화면에 얼굴을 비추는 진짜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촬영하는 수련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팀에 합류했고, 풍부한 촬영과 편집 경험은 물론 책임감도 있었다. 우리가 촬영한 지 4개월이 넘었는데 중간에 몇 차례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해내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잘 배치해 주셨고 남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는가이다.

중공 폐렴의 전파는 정상적인 질서를 흩트려놓았다. 뉴욕 주(州)에서 이동 제한 정책을 편 후 프로그램이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고 나는 협조인 수련생 집으로 이사했고 촬영 수련생과 같이 머물렀다. 그 시기에 내 수련에 한 가지의 돌파가 있었다. 나는 자신의 당(黨) 문화를 의식하게 됐고 조금씩 없애기 시작했다.

요즘엔 협조인 수련생은 직접 원고를 고쳐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협조인 수련생은 이전부터 전문 언론인이었고, 수련이 매우 착실하고 내면은 무척 깨끗했다. 뉴스 화제의 선정과 구성, 프레젠테이션 등에서 경험이 많고 특히 당 문화를 발견하고 지적하는 데 예리하며 짜증도 내지 않는다.

여러 차례, 수련생은 원고를 보는 과정에서 당 문화가 담긴 내용을 가리키며 내게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느껴보라고 했다. 나는 자신이 쓴 것이 어디가 틀린 것인지 느끼지 못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쓴 것 같았다. 그러나 수련생의 눈에는 그런 표현방식과 내용이 도드라져 보여 불편해했다.

수련생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논조는 매우 과장되고 날카롭고 투쟁적이네요, 왜 이야기를 할 때 부정적인 묘사가 그렇게 많이 쓰였을까요? 왜 중공 외교부나 관영 매체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했나요? 왜 그렇게 절대적으로 말해요? 왜 충분한 근거 없이 정의를 내리고 결정을 하나요? 왜 ‘전투 늑대’, ‘닭 피를 주입하다’, ‘침을 뱉다’ 이런 단어를 쓰나요? 중공을 좇아 마주 보고 욕하는 건가요? 마음속에 중공이나 경찰에 대해 적개심이 있나요? 시청자들은 이 두 사회자를 까칠하고 악랄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까요? 대법제자의 선(善)은 어디로 갔나요?”

수련생이 이렇게 말할 때 나는 놀라고 당혹스러웠다. 남들이 보기엔 이런 느낌인 줄 몰랐고 내가 왜 그렇게 뉴스를 얘기하고 방송하는지 의아했다. 곤혹스러운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된 것이다. 마치 내가 유머와 부정적인 면을 같은 것으로 이해해 중공의 추악함을 잘 폭로하지 못했고 풍자와 유머도 부족한 것 같았다.

자신의 당 문화를 제거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때로는 당 문화가 무엇인지를 몰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비로소 점차 이해하게 됐다. 만담이라는 이 풍자적인 예술은 꼭 날카롭거나 예리하고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온화하게 할 수도 있다. 나는 비로소 이해하게 됐는데 좋은 만담가는 까칠한 사람보다는 소양을 갖춘 예술가로 느껴져야 한다.

수련생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어떠한 대사를 쓰더라도 아직 진상을 모르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심지어 아직도 공산당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반감을 품을 것인가? 보는 사람이 보지 않고 조금 보고 떠나 버리면 누구한테 들려줄 것인가?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천천히 알게 됐다. 마음가짐이 바뀐 뒤 마음속의 악(惡), 사(私), 부정적인 것이 제거되고 유머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바른 면의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고수한 것을 포기한 후 비로소 알게 됐는데 그런 것들은 수련에서 의미가 없을뿐더러 보통 사람들의 업무 차원에서도 수준이 낮은 것이고 심지어 도덕 수준 역시 낮은 것이었다. 업무상에서도 부정(否定)에서 승화하고 향상됐는데,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종교를 놓고 말한다면 정말 명백한 사람은 종교의 형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수련하지만, 명백하지 못한 사람은 그 종교 형식을 수호한다.”[3] 나는 이 말씀을 자주 떠올렸고, 매번 생각했다. 나는 매우 바쁘다. 그러나 표면상의 바쁜 일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실질적으로 수련해야만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매체 항목은 종교를 수호하는 형식이 된다!

사존께서 나에게 이 항목에 참여할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리고 협조하는 수련생들이 지속적인 지지와 격려, 도움에 감사드린다. 법에 입각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로스앤젤레스 법회 설법’

(2020년 ‘희망지성’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0년 6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17/4078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