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세상에 불의의 재난은 없다

글/ 칭촨(清川)

[밍후이왕] 올해 단오절 날, 베이징 교외의 먼터우거우(門頭溝)에서는 ‘6월 강설’이 재현됐다. 이 보기 드문 현상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년 중국 내 여러 지역에서 모두 발생했고, 2007년에만 적어도 세 차례[6월 20일 간쑤성의 폭설, 7월 30일 베이징 싼환루(三環路) 내부의 강설, 8월 6일 베이징 하이뎬(海澱)구의 폭설] 발생했다. 2012년 7월 12일 오후 2시 20분경에는 베이징 얼환루(二環路) 동쪽 바오리(保利) 빌딩 부근에서 뜻밖의 눈이 내리다가 몇 분 후, 맑은 하늘이 나왔다.

6월에 눈이 날리는 것을 단지 기상이변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고대 중국인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말했으니, 하늘이 기이한 현상을 내리는 것도 원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두아원(竇娥冤) 이야기에서 천지가 진동하고 모든 집이 알았는데, 그녀의 마을 사람들은 왜 따라서 벌을 받아 3년 동안 큰 가뭄으로 고통받았을까?

1. 두아의 억울함을 분명히 알고도 옳은 말을 하지 않으니 의롭지 않다.

13세기 중엽의 원나라 시기, 일반 백성이었던 두아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 두천장(竇天章)은 가난한 수재였는데, 상경하여 과거를 보려니 여비가 없어 과부였던 채(蔡) 노파에게 고리대금을 빌렸다. 두아는 강요로 노파의 민며느리가 되었고, 성장해 채씨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2년도 안 돼 남편이 죽었다. 후에 무뢰한인 장려아(張驢兒) 부자(父子)가 우연히 채 노파의 목숨을 구했는데, 그 기회를 이용해 채 노파의 집으로 찾아와 노파와 며느리에게 그들 부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장려아는 두아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병에 걸린 채 노파를 독살할 계획을 세웠는데, 뜻밖에 일을 그르쳐 장려아의 아버지가 독을 먹고 사망했다.

장려아는 이 일을 구실로 두아를 협박했는데, 두아가 꼼짝도 하지 않자 두아를 모함해 관아에 고발했다. 어리석고 무능한 관아에서는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노파와 며느리에게 형벌을 내렸다. 두아는 온갖 능멸과 학대에도 굴하지 않았지만, 노파가 고문받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 억울하나 별수 없이 살인을 자백했다.

사형 당일은 마침 무더운 6월이었는데, 두아는 죽기 전 사형 집행인에게 창끝에 흰 명주 천을 걸어달라고 부탁하고, 하늘에 맹세했다. “첫째, 만약 나 두아가 정말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칼로 내 머리가 떨어져도 가슴에 가득 찬 뜨거운 피가 조금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날아서 창에 달린 명주 천에 묻을 것이오. 둘째, 만약 두아가 정말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죽은 후에 하늘에서 삼 척 깊이의 눈이 내려 나의 시체를 덮을 것이오. 셋째, 나 두아가 정말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오늘부터 삼 년 동안 큰 가뭄이 들 것이오.”

탐관이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저으며 “우매하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마음속으로 ‘6월 혹서에 무슨 눈이 내려? 사람의 피는 아래로만 흐르는데, 피가 어떻게 날아오르는지 볼까?’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에게 명하여 삼 척 길이의 명주 천을 가져와 높은 장대에 매달게 했다.

망나니가 든 칼이 떨어졌을 때 두아의 뜨거운 피는 기적처럼 사방으로 흩날려 공중에 매달린 흰 명주 천에 붙었고, 땅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두아의 머리가 떨어졌을 때 뜻밖에도 정말 찬바람이 불어오더니 폭설이 내렸다. 더워서 땀을 흘리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어깨를 감싸며 집으로 뛰어갔으며, 연달아 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두아가 죽은 후, 정말 삼 년 동안 큰 가뭄이 들어 곡식을 수확하지 못했다. 현지 백성들은 모두 하늘이 두아를 위해 원망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해가 지나고, 두아의 아버지는 과거에 합격해 고관이 되었다. 그는 귀향해 친지를 찾았을 때 두아 사건을 재심해 두아의 억울함을 씻어 주었다. 고향 사람들이 잇달아 두아의 아버지를 찾아와 말했다. “우리는 일찍이 두아의 억울함을 알았지만, 탐관의 권세가 무서워 분해도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아를 해친 것도 아닌데, 왜 삼 년 동안 가뭄으로 고통받아야 했습니까?”

두아의 아버지가 말했다. “여러분이 두아의 억울함을 분명히 알고도 공정한 말을 하지 않은 건 불의요. 더구나 어떤 사람은 탐관을 믿고 두아가 정말 살인했다고 여기면서 선량한 사람을 모욕했으니 어질지 않다고 할 것이오. 하늘에 눈이 있고, 불의의 재난은 없으니 천재 인화는 바로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무리를 징벌하는 것이오!”

이 이야기가 후세인을 깨우치는 것은 세간의 사람이 반드시 시비를 분명히 하고, 정의를 견지하며, 사악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과 사건이 무관하다고 여기지만, 그런 사건이 나타났을 때 당신이 듣고 마주쳤을 때 보인 반응, 즉 당신 사상 속의 시비 판단이 바로 선악에 대한 선택이며,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될 것이다.

2. 백성이 조정의 거짓말을 믿고 박해에 동조해 ‘공동의 업’을 짓다.

만약 두아가 희곡 속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원숭환(袁崇煥)의 억울한 누명은 현실에서 발생했다. 중국 역사에 정통한 양계초(梁啟超)는 말한 바 있다. “한 사람의 언행·진퇴·생사(生死)로서, 국가의 안위와 민족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예로부터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있다. 원 독사(督師)가 바로 그 사람이다.” 원 독사는 바로 명나라 말기에 청나라에 저항한 영웅 원숭환(袁崇煥)이다.

명나라 말기의 조정은 청나라 군대에 속수무책이었고, 요동 지역의 군량을 해결하기 위해 원숭환이 현령으로 임명되기 전, 1년 동안 전국에서 긴급하게 요향(遼餉), 요동 지방으로 군비를 보내기 위한 세금으로 20만 냥의 은전을 징수했다. 이는 국가 전체 세금의 3분의 1 이상에 해당했고, 백성들이 터무니없는 세금의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르하치의 청나라 군대를 당해낼 수 없었으며, 수십만의 명나라 군대는 전멸했다.

북경의 인심이 흉흉해지자 병부 6품 관리에 불과했던 원숭환이 용감하게 나서서 위기에 맞섰다. 그는 5천 명의 병사를 요청해 산해관(山海關)에서 북쪽으로 2백 리 떨어진 영원(寧遠)에 진주했다. 그는 병사를 이끌어 맹렬하고 신속하게 성을 쌓았는데, 벽이 높고 담이 두꺼워 산해관 바깥의 요충지가 되었고, 후금의 대군을 20년 동안이나 산해관 밖에서 막아냈다.

그는 성을 포위한 누르하치의 대군을 맞아 요동(遼東)의 전장에서 처음으로 대승을 거두었고, 다시 황태극(皇太極)의 대군을 상대로 영금대첩(寧錦大捷)의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원숭환의 초인적인 용기와 노력 덕분이었다. 후세인은 그를 역사적 인물인 악비(岳飛)와 어겸(於謙)에 견주며,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애국 장수로 평가한다.

그러나 요동의 상황이 안정됐을 때, 숭정(崇禎) 황제는 청나라 군대에서 도망쳐 온 태감(太監, 내시) 두 명의 밀고를 믿고 청나라에 대항할 전선의 총지휘자 원숭환을 북경으로 소환해 감옥에 가두었다. 죄명은 원숭환이 청나라와 짜고 모반했다는 것이었다. 조정 대신 대부분은 그 고발을 믿지 않았고, 숭정 황제도 자신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꾸며대지 못했다.

천고의 억울한 일은 이렇게 발생했다. 숭정 황제는 직접 원숭환의 처형을 명했다. 그는 황제의 명으로 명나라에서 가장 무거운 촌책(寸磔, 사지를 죽을 때까지 조금씩 도려내는 형벌)형을 내렸고, 3600번의 칼질로 능지처참했다. 능지형은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칼로 천천히 도려내는 것인데, 만약 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면 집행인이 처벌받아야 했다.

형장에서 원숭환은 유언을 남겼다. “일생의 사업이 모두 허사요, 반평생의 공명이 꿈속이로다. 사후에 용장이 없더라도 충직한 귀신은 여전히 요동을 지킬 것이다.” 능지형을 당하면서도 그는 “빨리 죽여만 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위엄을 잃지 않았다.

원숭환이 형장에 있을 때, 그가 지켜 주었던 북경 백성들은 다투어 그의 살점을 씹었는데, 대략 만 명이 원숭환의 생살을 먹었고, 또 그것을 자랑했다.

원숭환의 억울한 죽음은, 상당수의 관리와 백성을 선동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대신들은 숭정 황제의 명에 따라 원숭환의 모반을 비난했고, 더욱더 많은 사람이 시비를 가리지 않고 공정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능지형을 당한 억울한 사람의 육신을 쟁탈했다.

명나라가 통치한 277년 동안 약 백여 차례의 유행성 전염병이 발생했지만, 그런 전염병은 대부분 각각의 주, 부, 현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전염성과 독성이 모두 심각했다. 특히 명나라 말기에는 전염병의 범위와 강도가 역사적으로 보기 드물 정도였다.

고대의 군주는 왕권을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했고, 커다란 재난을 만나면 자책하고 반성하면서 관리들에게도 명을 내려 수양하고 반성하게 했다. 영락(永樂) 9년(서기 1411년) 7월, 섬서(陝西)에서 큰 역병이 발생했다. 영락 황제는 ‘죄기조(罪己詔)’를 써서 정치적 과실을 진심으로 반성했고, 재해민 구제에 온 힘을 쏟았다. 명나라 전기와 중기에 재해를 당했을 때는 국민이 서로 돕는 일이 대단히 많았고, 관원들의 덕행과 너그러운 마음씨도 모두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 말년에 전염병은 점점 늘어났다. 조정에서는 이전의 관례에 따라 똑같이 억울한 옥사를 조사하는 한편, 대신들의 직언을 들었고, 숭정 황제가 여섯 차례나 죄기조를 발표했지만, 형식으로 흐른 이후에는 현실적으로 충신과 간신의 구분이 없었으며, 억울한 옥사가 그치지 않았다. 원숭환의 능지 사형에 이르러서는 덕이 없고 너그럽지 않은 상태가 극에 달했다. 공동으로 업을 지으니 반드시 공동의 죄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명나라 말년의 큰 역병이 우연이었겠는가? 덕을 잃은 세간을 향한 하늘의 천벌이 아니었겠는가?

화와 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스스로 불러온다는 말이 있다. 숭정 16년 2월, 흑사병이 북경 성을 공격해 들어오니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었고’, ‘열 집에 아홉 집이 비었고, 심지어 장정이 전멸해 곡식을 수확할 자가 없었다.’ 어떤 환자는 하루 이틀 만에 죽었고, 어떤 자는 아침에 병을 얻어 저녁에 죽었고, 어떤 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전의 번화했던 수도가 흡사 ‘죽음의 도시’와 같았다.

하늘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을 내렸다. 하늘에는 눈이 있어 사람이 일으킨 마음과 행동은 모두 그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3. 6월에 눈이 흩날리면 반드시 억울한 일이 있다.

‘6월에 눈이 흩날리는’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는 또다시 2001년 허베이(河北) 스자좡(石家莊)에 내린 폭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허베이성 스자좡시 파룬궁 수련생 쭤즈강(左志剛)은 수련을 견지하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며,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1년 5월 30일, 결혼식 전날 오후에 현지 국보(國保) 경찰에 납치되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받았고, 당일에 흉악범의 가혹한 구타로 사망했다. 시체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한쪽 귀는 흑자색이었으며, 허리 뒤쪽에 커다란 사각형 구멍 두 개(생체장기 적출 흔적)가 있었고, 목에는 아주 가는 줄로 묶인 자국이 있었다.

이튿날 현지의 차오시(橋西) 공안지국 부국장이 쭤즈강의 부모에게 쭤즈강이 자신의 와이셔츠로 목을 매어 사망했다며 거짓 통지를 했다. 그런데 쭤즈강이 박해로 사망한 날, 스자좡에서는 연일 화로 같았던 고온의 날씨가 갑자기 떨어져 순식간에 추워지는 이상기온이 나타났다. 관광지인 허베이성 링수(靈壽)현에서는 5월 하늘에 대설이 쏟아져 적설량이 1척이나 되었다. 이상기온에 놀란 시민들은 6월에 눈이 내리다니 분명히 억울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며 곳곳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2020년 7월 11일까지 우한 폐렴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서 사망자 55만 명을 냈다. 각국에서는 서로 다른 최고점의 곡선이 나타났다. 7월 2일, 저명한 셀(Cell) 잡지가 최신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현재 전 세계에서 유행하는 우한 폐렴 바이러스가 이미 변이를 일으켰다는 내용이었다. 우한 폐렴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D614G’라는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는 갑자기 감염력이 3~6배 상승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면역학 교수 대니 알트만은 상황이 “대단히, 대단히 두렵다.”며, “백신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의 거대한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새로운 파도가 이미 곳곳에서 해안을 덮치고 있다. 어떤 큰 재난이든 사전에 모두 천상(天象)의 이상, 중소규모 재해의 연속, 동식물의 비정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하늘이 아직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며,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남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회가 계속 있을 수는 없다. 무수한 경고는 사람들에게 큰 난이 임박했으니 빨리 진상을 알아야 한다며 독촉하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0년 7월 12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0/7/12/4088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