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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위 경제체’의 돈을 어디에 썼을까?

글/ 리밍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양회(兩會) 마지막 날 리커창(李克強) 국무원 총리가 발표한 자료에 많은 중국인이 충격받았을 것이다. “6억 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 원) 미만이다. 1000위안으로는 중등도시에서 셋집을 얻기조차 어렵다. 현재는 전염병마저 만났다.”

중국은 세계 제2위의 경제체인데도 가난한 인구가 이렇게 많다니,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열광적인 민족 자부심이 땅에 떨어진 것이다. “대단하다, 나의 국가여”라고 높이 외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동영상에 종종 나타나는 장면을 잊은 듯하다. 산간마을의 황폐한 마을 주택, 매우 가난한 가정, 벽돌을 쌓아 만든 책상…….

희석된 빈곤

빈곤은 중공의 ‘위광정(偉光正: 위대하고 영광스러우며 정확함)’ 선전으로 희석되어 잊혔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상 2017년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약 5억 중국인이 매일 5.5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즉 매달 수입이 1000위안 좌우이다. 중공의 공식 빈곤선(貧困線) 기준에 따르면 연평균 소득 2300위안(약 39만 원) 이하, 월평균 소득 200위안(약 3만 4000원)인 극빈층 인구가 3000만 명이 된다.

2015년에 중공은 2020년까지 빈곤에서 벗어나겠다고 했는데 이제 2020년이 됐다. 많은 지방공무원은 이 요구에 도달하지 못해 문책받을까 봐 잇따라 가짜를 만들어냈기에 사람들은 “숫자로 빈곤을 벗어났다”고 비난했다. 2020년 5월 27일 광저우(廣州)시 정치협상위원회 한즈펑(韓志鵬) 위원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따르면, 그가 광저우에 빈곤퇴치 프로젝트를 조사하러 가서 촌민에게 그 프로젝트가 촌민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더니 촌민은 촌위원회를 도와주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촌위원회 간부들이 빈곤퇴치 구제금을 얻었고 촌민은 얻지 못한 것이다.

‘중국 민생발전 보고서 2015’에 따르면 “가구의 상위 1%가 사회 재부(財富)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반면, 하위 25%는 약 1%만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빈부 격차가 극심해져 비극이 빈발하고 있다. 2020년 5월 25일,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 한위안(漢源)현에 비극이 발생했다. 한 여성이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다리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2019년 4월 21일, 쓰촨성 판즈화(攀枝花)시 미이(米易)현의 한 여성이 자녀 셋을 데리고 미이룽(米易龍) 다리에서 강에 뛰어내려 익사했다. 2018년 10월, 후난(湖南)성 신화(新化)현의 한 여성이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누가 빈곤을 초래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중국인이 부유해지기 시작한 것은 ‘일어서기’ 시작해서부터가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서부터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융합된 후 중국인은 자신의 노력과 지혜로 재부를 창조했다. 중공의 잘못된 정책이 중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중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구가 많고 국토 면적이 넓은 중국은 벌써 세계 제2대 경제체가 되었다. 서기 원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제2위였고 서기 1500년은 세계 제1위였는데 근대에 와서 미국이 중국을 넘어섰다. 1900년 8개국 연합군이 중국을 침범했을 때도 중국의 GDP는 여전히 세계 제2위였다.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찬탈하기 전에는 세계 제4위를 차지했으며, 1978년 소위 ‘개혁 개방’을 하기 전에는 제9위로 떨어졌다.

1인당 GDP를 볼 때 중국은 1948년에 세계 제40위였으나, 1978년에는 끝에서 제2위였다. 원인은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찬탈한 후 중공이 삼반오반, 대약진, 문화대혁명 등의 운동을 일으켜 중국 경제가 거의 붕괴했기 때문이다.

1976년 중국 농촌 지역의 사원이 집체(集體)에서 분배받은 연간 소득은 63.3위안(약 1만 1000원)에 불과했다. 1977년 전국 1.4억 인구의 연평균 배급 식량이 180㎏ 이하였기에 반기아(半饑餓) 상태에 처했다. 1978년 전국의 절대빈곤 인구가 2.5억 명이 되었다. 유엔과 세계은행 지표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빈곤선 이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공은 전 중국 국민을 속였다. 전 세계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도탄에 빠져 우리가 가서 해방하고 구조해주길 기다린다고 했다. 당시 중국이야말로 진정으로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인은 중공의 선전을 진실이라고 믿고 열광적으로 따랐다.

1949년 마오쩌둥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에게, 혁명의 승리를 위해 중국은 3억 명을 죽일 준비가 됐다고 했다. 나중에 스탈린의 후임 흐루쇼프는 “마오쩌둥은 미치광이가 아니라 히틀러와 스탈린보다 더 교활하고 잔인하다”고 평했다.

국민의 생명과 의식주는 중공의 눈에는 초개와 같다. 국민들을 빈곤과 혼란에 빠뜨리면 중공의 통치에 ‘큰 도움’이 된다. 빈곤과 혼란 속에서 국민들은 의식주와 생존 이외에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교육과 전통문화를 받아들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정부

올해 우한(武漢) 및 후베이(湖北) 양회 기간, 지방정부는 안정을 고려하여 전염병 추가 확진 사례를 발표하지 않아 전 세계에 재난을 가져다주었고, 중공 역사에서 가장 비싼 양회라는 비난을 받았다.

실제로 중공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정부다. 중국인이 그것을 ‘공양하는 비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다음 몇 가지 자료를 살펴보자.

세계의 경제 수도인 뉴욕은 인구 1800만 명에 GDP가 2조 6000억 달러이며, ‘시 지도자는 6명(시장 1명, 부시장 3명, 의장 1명, 부의장 1명)이다.

도쿄는 인구 1300만 명에 GDP가 1조1000억 달러이며, ‘시 지도자’는 7명(시장 1명, 부시장 4명, 의장 1명, 부의장 1명)이다.

중국 랴오닝(遼寧) 톄링(鐵嶺)시는 인구 300만 명에 GDP가 45억 달러이다. 인구는 도쿄의 5분의 1, 뉴욕의 6분의 1이고, GDP는 도쿄의 0.42%, 뉴욕의 0.18%에 불과하나, ‘시 지도자’는 41명으로, 도쿄와 뉴욕의 6배나 된다. 시위원회 서기 1명, 부서기 1명, 상무위원 11명, 시장 1명, 부시장 9명, 시장 보좌관 3명, 인민대표주임 1명, 부주임 7명, 정치협상회의 회장 1명, 부회장 8명이 있으며, 시청에는 또 20명의 처급(處級) 부비서장이 있다. 시장 1명당 평균 2명의 비서장을 배치했다.

중국 허난(河南) 신샹(新鄉)시는 인구 565만 명에 GDP가 100억 달러이다. 인구는 도쿄의 절반 미만, 뉴욕의 3분의 1이고, GDP는 도쿄의 0.9%, 뉴욕의 0.4%에 불과하나, 시 지도자는 43명이다. 톄링시와 마찬가지로 도쿄와 뉴욕 지도자의 6배나 된다.

이런 서기, 주임, 상무위원이 단지 권세 높은 지위여서 돈을 들여 공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정반대로 이런 ‘지도자’, ‘공복’들은 국민에게는 경제적으로 과중한 부담이다. 전용차, 비서, 호화 주택, ‘공작’에 필요한 연회, ‘교류 시찰’, 해외 ‘학습’, ‘뒷돈이나 작은 선물’ 등등! 이런 것들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서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공복’들은 2007년에 해외 시찰, 관용차, 먹고 마시는 세 가지에서만 9000억 위안(약 152조 9010억 원)을 낭비했는바, 2007년에 국가에서 건강 보건 경비로 지출한 1800억 위안(약 30조 5802억 원)의 5배, 2007년에 중앙 재정 교육비로 지출한 1100억 위안(약 18조 6,879억원)의 8배가 된다! 다시 말하면 전국 인구의 4% 미만에 불과한 ‘공복’들이 전 국민 재정수입의 30%를 소비한다! 이것은 단지 공무원 부분만 계산한 것이다.

이런 ‘공양’ 비용이 독일은 재정수입의 2.7%, 이집트는 3.1%, 인도는 6.3%, 캐나다는 7.1%, 러시아는 7.6%에 불과하나, 우리 중국은 30%나 된다!

중공은 전(前) 30년은 ‘혁명을 틀어쥐고서 생산을 촉진’했고 ‘계급투쟁은 잡기만 하면 영험’했다. 파헤친 계급의 적이 많을수록 직급이 더 높았다. 후(後) 수십 년은 경제로 통치의 합법성을 유지하며 피비린내 나는 GDP 우위를 추구했으며, 출세와 재물을 위해 민생과 환경을 돌보지 않았다. 보기에는 다른 것 같지만, 중공이 아무리 변해도 그 사악함, 국민을 약탈하고 해치는, 살인을 일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안정 유지비

수년간 중공의 GDP는 약 100조 위안(약 1경 6989조 원) 규모에 이르렀다. 재정 수입도 20조 위안(약 3397조 8000억 원)이 넘었다. 정부 지출 이외에 중국 국민이 창출한 재부의 상당 부분을 중공의 안정 유지에 썼다. 2018년 사례를 들면, 중공의 안정 유지비는 예산지출 중 공공안전 지출과 거의 맞먹는다. 중앙과 지방의 총합은 1.28조 위안(약 217조 4592억 원)으로서 국방비 총지출 1.1조 위안(약 186조 8790억 원)과 막상막하다.

극빈층에 대한 최저생계보장금은 얼마인가?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전국 각급 재정에서 지출된 최저생계보장금은 도시는 687.9억 위안(약 11조 6867억 3310만 원), 농촌은 1014.5억 위안(약 17조 2353억 4050만 원)이다. 둘을 합치면 1702.4억 위안(약 28조 9220억 7360만원)이다. 이것은 중공이 빈곤 가정을 돕는 데 사용한 자금이 안정 유지비의 약 15%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거액의 안정 유지비를 어디에 썼을까? 국민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데 썼는바, ‘안정유지’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탄압이다.

1999년 이전에는 안정 유지비가 재정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았으나, 1999년부터 해마다 증가했다. 매년 1000억 위안(약 16조 9890억 원)에서 2016년에는 9000억 위안(약 152조 9010억원) 이상으로 증가했고, 최근에는 계속 1조 위안(약 169조 8900억 원) 수준을 유지했다.

왜 1999년에 안정 유지비가 급증하기 시작했을까? 근본 원인은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집단이 전국의 1억 명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자를 잔인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추악한 장쩌민은 공공연하게 드러내 놓고 못된 짓을 했다. 재정을 동원하여 전국의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가도(街道), 직장, 학교, 외교 분야 등이 전 방위로 박해에 가담하게 했다.

장쩌민의 코앞에 있는 베이징(北京)이 맨 먼저 공공재정에서 마구 혈세를 뽑았다. 1998년에서 2002년까지 베이징의 공식 재정 자료에 따르면, 2001년과 2002년 베이징의 기본 건설 재정 예산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농업과 교육 분야의 지출도 200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와 법률 분야의 지출 증가율은 1998년에 끝에서 제2위이던 것이 2002년에는 제1위가 되었고, 증가 폭은(37%) 다른 모든 항목의 투자예산을 훨씬 넘어섰다. 1999년의 이 분수령은 바로 장쩌민 집단이 대규모로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중공은 매년 양회와 ‘4·25’(파룬궁 수련생의 중난하이 청원 기념일) 등이면 마치 큰 적이라도 만난 듯 총출동하여 전국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하고 소란을 피웠다. 낭비한 국민의 재물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이 거액의 안정 유지비 절반만 민생과 민간에 사용해도 많은 국민이 당연히 받아야 할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5월 31일 오후, 푸단(複旦)대학 부속 화산(華山)병원의 감염과(感染科) 주임 장원훙(張文宏) 교수는 중앙텔레비전방송국 뉴스 생방송에 초대되었을 때 가을과 겨울에 두 번째 전염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역사상의 중공에서 오늘의 중공에 이르기까지 국민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권력 유지를 위한 살인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들이 마음을 돌릴 것이라는 기대는 가장 위험하고도 잘못된 생각이다. 오로지 이 사악한 정권을 철저히 해체해야만 중국인이 진정하게 중화 민족의 존엄을 되찾을 수 있다. 이날이, 이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으니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앞에서 올바르게 선택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6월 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9/4074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