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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다

글/ 유럽 대법제자

[밍후이왕] 2년 전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나라에 가서 사회교육 방면의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수련하면서 수련생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의 수련체험을 적어서 여러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새로운 나라에 온 후, 남편은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나는 대놓고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남편을 탓하는 마음이 수시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남편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기에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자신이 수련은 더 좋고 편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내가 문제에 부딪혀 안으로 찾을 때면 자신에게 숨어있는 생각을 발견했다. 그것은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찾고 제거하는 것이 형식이었고, 걱정하고 의심하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있었다. 아래에 나의 일부 체험을 말하려 한다. 이 체험은 나에게 수련이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를 깨닫게 했다.

일에서 수련하다

직장 내 구조조정으로 스트레스가 갈수록 커졌다. 절반이 넘는 직원이 사직하거나 정리되었다. 우리는 새 직원을 훈련 시켜야 했다. 우리 업무 대상은 지적 장애가 있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폭력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많아졌다. 우리 팀원 중 대부분이 이런 인신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 밖에 인신공격에 대한 책임도 우리가 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있었다.

법 공부를 하거나 사부님의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늘 눈물을 흘렸다. 한 수련인으로서 수련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휴식할 때 동료들이 상사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젊은이들이 번거롭게 하면 분노하거나 반감이 생긴다. 만약 나에게 폭력 경향이 비교적 적은 젊은이들을 돌보게 한다면 속으로 기뻐했다.

감정에 이끌려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에 참여해 동료를 도왔다. 예를 들면 한 동료가 휴가를 신청했지만, 휴가 이틀 전에 직원 부족으로 휴가를 미루게 되었다. 동료는 기분이 나빴지만, 감히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간섭했다. 나는 팀장과 업무 일정을 토론하면서 내가 연장근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그녀가 계획대로 휴가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 나의 업무량이 많아져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녀도 휴가를 갈 수 없게 되었는데 그다음 주에 오기로 한 사람이 일정을 취소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당신이 德(더)를 쌓는다고 하자. 당신이 보기에 그 일이 좋은 일이라도 당신이 하면 곧 나쁜 일일지도 모르며, 당신이 보기에 그 일이 나쁜 일이라도 당신이 만약 상관하면 또한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은 그 속에 있는 그것의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다시 점화해주시기 전까지 자신이 수련인으로서 잘못했음을 깨닫지 못했다. 한번은 직원회의에서 매니저는 내가 팀장(신입사원)과 협조하지 못했고 팀장을 존중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억울함을 당해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수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깨달았을 때 한 줄기 슬픈 감정이 솟구쳤다. 하지만 상사에 대해 불만을 내려놓을 수 없어 법 공부를 할 때도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없었고 연공할 때도 교란을 받았다. 발정념 할 때는 또 아주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수련은 이미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부님께서는 “어려운 것은 바로 당신이 속인의 이익 중에서 명명백백하게 손해를 볼 때, 절실한 이익 앞에서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헐뜯고 싸우는 중에서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친척이나 친한 친구가 고통을 겪을 때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당신이 어떻게 가늠하는가 하는 것인데,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는 바로 이처럼 어렵다!”[1]라고 말씀하셨다.

과시심·질투심·쟁투심·안일을 추구하는 마음과 분노하는 마음 등 많은 집착심이 나타나 스트레스가 아주 컸다. 어떻게 해야 제거할 수 있는가? 수련하기 전에는 사람은 자신의 나쁜 품성과 행동을 단기간에 억제할 수 있을 뿐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개변하기란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나는 대법이 근본적으로 일체 나쁜 것들을 제거할 수 있음을 실증할 수 있었다.

업무상의 어려움은 수련에 대한 나의 견정함을 강화하게 했다. 나는 자신의 수련상태와 무엇이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 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려움이 없고 안일한 수련의 길을 배치해주시길 사부님께 바란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 자신의 이익이 손해 볼 때도 사부님을 따라갈 수 있는가? 집착심이 나왔을 때도 법에 따라 할 수 있는가? 나의 마음이 큰 소리로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걸 느꼈다.

그때 나는 신체가 가벼워지면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나는 수련을 잘하리라 다짐했다. 법 공부할 때, 사상업이 나를 교란해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어떤 때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을 두세 구절 읽기만 해도 그 법은 내가 모순에 부딪혔을 때 평정을 유지하게 한다. 동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말을 할 때도 참여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상황에서 잘못했다면 다음번에 잘하도록 자신을 격려한다. 만약 한 번 또 한 번 곤두박질쳐도 예전처럼 엎드려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바로 일어선다.

팀장이 새로 왔고, 무슨 일이나 시작할 때가 어렵다고 나는 늘 동료들에게 말한다. 새로운 팀장은 정말 노력하고 있으며 고생이 많다는 것도 어필한다. 그때부터 우리 팀장은 명랑해졌고 우리의 업무 관계도 개선되었다.

한번은 한 젊은 여자가 내 얼굴을 가격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그녀에 대한 원망이 없었고 오히려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녀가 계속해서 폭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녀도 차분해졌고 앉아서 노래를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계속 불러 달라고 했다.

현재 나는 동료 교체가 빈번한 상황을,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기회로 생각한다. 한 동료는 우연히 우리 단체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했다. 상사가 실수로 메일을 그녀에게 보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고용된 원인이었다. 나는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의 박해상황을 알렸다. 그녀는 중공 악마를 타도하자는 청원서에 서명했고 더 많은 소식을 원한다면서 그녀의 남편과 딸에게도 알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찍 그만둔 동료가 한 명 있었는데 그때 나는 미처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몇 개월 후, 그녀가 다시 돌아왔고 겸직 계약서에 서명했다. 나는 기회가 있게 되어 아주 기뻤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와 박해상황에 대해 알렸다. 그녀는 정신 방면의 화제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나는 중생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줘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갈수록 더 많이 느꼈다. 만약 중생 구도를 1순위에 놓는다면 모든 일에서 집착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고 모순 중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잘하라. 하는 과정 중에서 당신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지 당신의 성공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하는 과정 중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과정은 당신이 수련 제고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당신이 그 일을 달성해야만 중생구도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2]라고 말씀하셨다.

단체 법공부의 중요성

중공 바이러스 기간에 우리는 여전히 단체 법공부를 견지했다. 우리 법공부 팀은 4~5명으로 줄었지만 나는 이 기회를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한 차례 교류 중에서 나는 연장근무 때문에 대법 항목과 법 공부할 시간이 아주 적다고 말했다. 한 수련생은 나에게 구세력의 교란 요소를 배제해야 하고 뭐든지 다 감수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은 수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어 그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그 제의는 줄곧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하여 나는 발정념 하여 구세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교란을 제거했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만 간다. 동시에 사부님께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빌었다.

다음 날, 상사가 연장근무에 대한 보상이라면서 나에게 3주 동안 휴식할 수 있다고 했다. 그 3주 동안에 나는 법 공부를 하고 대법 항목을 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 사이에 남편은 면접을 보고 일자리를 찾았다. 그와 동시에 나도 따지웬(大紀元)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사실 1년 전에 나는 따지웬을 위해 일하고 싶었으나 당시에는 시간이나 경제적 조건이 모두 허락되지 않았다.

3주 후, 출근할 때 나에게서 마치 한 층의 두꺼운 진흙이 벗겨져 나간 것 같이 느껴졌다. 회사의 상황은 겉으로는 변화가 없었지만 내 마음은 그런 것에 끌리지 않았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억제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정화된 것이었다.

파룬따파는 정말로 신기하다. 나는 이 일체가 내가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7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4/4286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