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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온 힘을 다해 그곳의 중생을 구하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염병이 세상을 바꾸면서부터 우리 모든 대법제자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중생을 구할 시간이 이미 매우 급하므로 우리는 1분 1초를 다퉈야 합니다. 다음은 전염병 발생 기간인 지난 4월 이후 우리 수련생들이 현지에서 수련하며 사람을 구했던 체험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어려움을 물리치고 서둘러 사람을 구하다

저는 2017년 한 농촌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하러 가서 중국공산당에 납치되었다가 그 검은 소굴을 뚫고 나온 후 현지 경찰에게 쫓기게 되었고, 많은 박해를 당하면서 저를 알아보는 경찰이 많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외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올해 중공폐렴이 발생하자 지난 4월 고향 현(縣)의 협조수련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현의 농촌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니 그 문제에 대해 함께 협의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향으로 가서 그곳 몇 명의 수련생과 교류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그동안의 통제가 해제된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중생을 구할 시간을 연장해 주신 것입니다. 사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공바이러스(우한 폐렴)’ 이런 역병은 목적이 있으며, 목표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것은 사당분자(邪黨份子) 및 중공사당(中共邪黨)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도태하러 온 것이다.”[1]

우리는 앞으로 중국의 전염병은 가볍지 않을 것이고, 가장 심각해질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현의 수련생은 직접 사람들을 대면해서 말하기에는 수련생이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농촌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해야 했습니다. 현재 중공사당의 일언당(一言黨)인 언론 매체들은 자신들을 영웅으로 분장해서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으며, 특히 중공바이러스의 출처가 해외라는 거짓말로 현혹하여 사람들이 악당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법제자의 가족도 그 거짓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상자료는 적시에 정확하게 사악을 폭로하여 진상을 똑똑히 알리게 되었고, 전염병을 피하는 명약도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몇 개 진(鎭)의 수련생과 교류한 후 마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나이가 많아 자전거 타기도 힘들 정도였고, 또 수련생의 수가 너무 적어 많은 진과 마을을 어떻게 다 할 수 있을지가 무척 걱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며칠을 생각하면서 ‘나도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그들에게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부 경찰들이 저를 알아볼 수 있겠지만 현재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니, 마스크를 쓰면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결정을 내린 바로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사촌 형과 외할아버지를 보았는데, 사촌 형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나는 한 손에는 형의 손을, 다른 한 손은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네 손을 겹쳐 놓았습니다. 한바탕 슬픔이 복받쳐 올라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다 내 중생들이야!” 하고 울먹였습니다. 깨어난 후, 사부님께서 나의 고향 현으로 돌아가서 중생을 구하라고 격려해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난 4월 중순 고향 현으로 돌아가 셋방을 얻었습니다. 대개 낮에는 자료를 접고 밤에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자료에는 소책자, 진상편지와 QR코드 카드 등이었습니다.

처음 60대 후반의 수련생 A와 함께 활동했습니다. 한번은 둘이 오토바이를 타고 현으로 돌아가던 날 몇십 리나 되는 거리가 온통 황사로 뒤덮였고, 잠시 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다른 공간의 악의 요소가 교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진상을 알리러 갔을 때, 자료를 큰 가방에 가득 담아 오토바이에 실으면서 과거 박해당했을 때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제거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신의 뜻을 지니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니, 모든 구세력의 방해와 박해를 용납하지 않는다.’

며칠 후 현지 협조수련생이 현에서 교류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전체 현에 자료를 배포하는 중요성과 시간의 급박함을 더욱 잘 알게 되었고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하여 이곳의 중생을 구도하기로 했습니다. 나갈 수 없는 노년 수련생들은 모두 집에서 발정념(發正念)을 했습니다. 매일 7시에서 7시 10분, 8시에서 8시 30분까지 전 현(縣)에서 이 항목에 대한 통일적인 발정념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최근에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을 때 느낀 점과 그때 생각났던 ‘홍음5’의 시구를 공유하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기에 한번 찾아보려 했지만, 수중에 전자책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찾지?’ 저는 시험 삼아 전자책 ‘홍음5’를 클릭했습니다. 그러자 ‘人來世的秘密(사람이 세상에 온 비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법도는 신의 뜻을 지니고 있나니 중생구도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네”[2] 바로 내가 찾으려던 구절이었습니다. 깊은 감동이 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우리 옆에 계시고 우리를 가호하고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다만 중생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수련생 A와 처음 자료를 배포하던 날 밤은 너무 추워서 집에 도착했을 때 두 다리가 시리고 저렸습니다. 그날부터 수련생 A는 줄곧 온몸이 아파 왔습니다. 한 달이 넘어도 낫지 않아, ‘수련생 A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에게 먼저 집으로 돌아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수련생 A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갔으므로 스스로 교통수단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오토바이를 당장 구매하려고 해도 운전면허가 없고, 또 밤에는 경찰이 자주 단속한다는 말도 있기에 무단으로 오토바이를 탈 수도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또 전동차를 구매하려면 대형 배터리가 부착된 걸 사야 했습니다. 그 며칠 뒤 매번 휴대폰에 “중량 50킬로 이상의 전동차번호판 등록을 해준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수련생 A의 사위가 며칠 전 번호판이 없는 전동차를 타다가 벌금을 부과받았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소식을 듣기 전에 이미 두 번이나 오토바이에 수련생 B를 태워 함께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일도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소식을 듣고부터 걱정이 생긴 것입니다. 어느 날도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남아 있는 길을 신(神)의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당신들의 사전(史前)의 큰 소원(大願)이 원만(圓滿)에 이르도록 하라!”[3]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모든 걱정과 염려는 모두 사람 마음으로 사람이 일하는 것이지, 신의 올바른 생각과 행동이 아니다.’ 그로부터 오토바이든 전동차든 뭘 타든 다 좋았고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며칠 후 한 수련생이 나에게 돈을 내놓으며 전동차를 구입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 “가장 적합한 전동차 한 대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하고 청을 드렸습니다. 자동차매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장거리에 적합한 전동차가 있었습니다. 차종과 크기도 매우 적당했습니다. 정말 사부님께서 모두 준비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 2시경 혼자 시골로 자료배포를 하러 갔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한 손에는 네비게이션을, 또 손엔 핸들을 붙잡고 가다가 갑자기 전방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정지하면서 급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크게 쓰러졌고, 가슴과 무릎에 통증이 심했습니다. 전동차를 일으켜 세워보니 다행히 고장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친 다리가 아파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동차에 탄 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날은 개가 몹시 짖는 등 교란이 컸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난 마을 사람 한 명이 나의 자료배포를 막으려고 해서 그의 옆을 스치면서 그대로 지나쳤고, 이미 완전히 날이 밝아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안으로 찾아봤지만 큰 문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두 마을의 수련생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고, 보내준 자료도 다 배포하지 못해 쌓여 있었습니다. 마음이 다급했습니다. 혼자 배포해봤자 능률이 오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수련생 모두가 함께 협력해야만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두 마을을 찾아가서 그곳 수련생들과 교류하여 장벽을 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약 800부의 포장된 자료를 가지고 한 마을로 갔습니다. 여기는 아마 우리 현에서 가장 큰 마을일 것입니다. 만약 수련생이 모두 나올 수 있다면 오토바이 4대는 충분히 출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저녁에 이 마을 협조수련생 집에 도착하여 방문한 뜻을 설명한 후 “잠시 후 우리 둘이 나가서 자료를 배포합시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는 아직 포장하지 않은 것뿐이니 오늘 당장은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가 여전히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오늘 나가요, 당신은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나를 태워요.” 저는 속으로 ‘사부님! 오늘 너무 바빠 법 공부도 못하고 발정념도 못했습니다. 저희가 순조롭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가지(加持)해 주십시오.’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날 저녁 순조롭게 300부의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밤에 잘 때 전동차가 쓰러져 다쳤던 가슴의 통증이 심했습니다. 수련생 집에 마침 커다란 스펀지가 있어서 그걸 깔고 누었으므로 조금 견디기가 수월했습니다. 이런 통증도 모두 사악의 요소가 박해하는 것이고, 저의 활동을 막으려는 것이었지만 저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아무리 통증이 심해도 버텨야 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 우리는 한 부부수련생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성 수련생은 원래 이곳의 협조수련생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사업이 바빠 수련상태가 느슨해졌습니다. 몇 년 동안 그녀를 몇 차례나 만나려고 했어도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고, 만났어도 별로 효과가 없었으며, 우리 진에서 교류회가 열렸을 때도 그녀는 거의 불참했습니다. 그녀는 사악의 박해가 가장 심했던 그 몇 년간은 매우 착실히 수련했던 수련생이었습니다.

우리가 오토바이를 밀고 밖으로 나갔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비가 오는데 오늘 가지 말지요” “이건 교란입니다. 외국 수련생들은 퍼레이드 할 때 비를 무릅쓰고 거리에서 몇 시간씩 행진해도 낙오자가 없어요. 요만한 비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요?” 오토바이를 타면서 맘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도와주세요,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은 올바른 일이니 돌아올 때는 비가 그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그 부부수련생 집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점점 거세졌으며, 당시는 가장 큰 비가 내린 시기였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오늘은 돌아갈 수 없으니 여기에서 묵어요.” “괜찮아요, 돌아갈 때 비가 그칠 거예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수련생의 매듭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마지막에는 대법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설법으로 교류했습니다. 사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결정적인 시기에 진정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대법제자이다. 대법제자의 기원(來源)에서부터 줄곧 역사상에서 위덕을 세우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감당한 것을 보면 역사상 어떠한 성인이 담당한 것보다도 더 크다. 왜냐하면 이 최후의 시각에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시작에서 우주의 마지막 인류의 60여 년 전까지 모두 끊임없이 정법에 필수적인 기반을 닦고 경험을 쌓고 최후의 이 역사시기에 참여할 생명의 사상과정과 생명의 행위를 육성하였는데, 이것이 인류역사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이든, 이와 관련이 있는 생명이든 모두 이 일을 위해 윤회 중에서 각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것을 시험해 보고 쌓고 다져왔다.”[4]

저는 수련생과 교류했습니다. 우리가 대법제자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대법이 이루어 준 것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대법이 전해지고, 서약을 실천하고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는 날까지 기다려 왔으니 절대 방향을 잃지 말고 이 만고의 연분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상태가 좋아졌고, 잘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8시에서 8시 30분까지 전체 현이 통일적으로 하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줄곧 내리던 큰비는 8시 25분이 되자 뚝 그쳤습니다. 8시 30분,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길에서 협조수련생과 교류했습니다. 수련생이 “나는 이전에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모두 어떻게 해야 완전하고 안전하며, 무슨 카메라, 이것저것 등등을 고심했어요. 이번에 나는 어떻게 완벽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생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이틀 후 자료배포 경험이 있는 외지 수련생 몇 명이 현지의 수련생과 함께 교류했습니다. 그리고 부부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진상자료 400부를 신청했고, 다른 여러 수련생이 모두 신청해 2000여 부 자료를 순식간에 다 나누었습니다. 며칠 후 이곳 수련생들은 2000부를 더 보내달라고 했으며, 자신들이 다른 한 진도 책임지고 자료배포를 담당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또 다른 진의 협조수련생 집에 가서 그녀와 상의해 다음 날 그곳의 수련생들과 교류하자고 하자, 참석할 수련생이 몇 명 안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집에 환자가 있고, 어떤 수련생은 남편이 늦게 퇴근하므로 참석하지 못한다는 등등 여러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지금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는데 당신이 먼저 사상 속에서 수련생이 올 수 없다고 정해 놓은 것은 정념(正念)이 아닙니다. 수련생에게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당신은 아무 걱정말고 가서 통지만 하세요. 오고 안 오고는 그들의 몫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통지 받은 수련생은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협조수련생은 전날의 생각은 모두 자신의 사람 마음과 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들은 교류가 잘 되었습니다. 가지고 간 자료를 배부한 후 “내가 함께 배포할 필요 없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그곳의 수련생들이 1000부를 더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2. 교란을 배제하고 쉬지 않고 사람을 구하다

어느 날 저녁 수련생 집에 젊은 여성 수련생 C가 왔습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싶은데 함께 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오늘 저녁에 노년 여성 수련생 두 분이 택시를 타고 인근 마을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끝나면 걸어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젊은 수련생으로서 나가지 않는다면 너무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녀와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시간이 늦었고, 원래 법 공부를 해 자신을 충실히 할 생각이었지만, 수련생이 사람 구하려는 마음을 보고 반드시 협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년에 저와 함께 박해받은 여성 수련생 D와 며칠 전에 두어 번 교류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대규모의 자료배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막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쳐있는 상태였습니다. 차를 구입하고 돈도 투자했는데, 지난번에 받은 박해로 경제적인 압박이 심해서 몸을 빼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차로 나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어젯밤 당신과 수련생 몇 명이 함께 있는 꿈을 꾸었어요. 함께 있다가 당신이 먼저 가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큰 도랑 두 개를 날아 넘었어요. 나중에 누군가 우리에게 집에 돌아가려면 졸업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안 해준다고 알려 주었어요.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해줘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니까 그제야 해주겠다고 동의했어요.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에게 점화해 주시는 거예요! 정진해야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녀는 잠시 사업을 접고 함께 자료를 배포했으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후, 여성 수련생 두 명이 더 참여해 네 명이 함께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좀 가까운 곳은 전동차를 타고, 좀 먼 곳은 전동차를 타고 가서 인근 마을 수련생 집에 두고, D 수련생이 우리를 전동차 있는 데까지 차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자료를 다 배포하고 전동차로 다시 수련생 집으로 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하니 일이 빠르고 능률도 향상되어 외진 시골 마을도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서 자료를 배포한 지금까지 온갖 방해가 수시로 발생했는데, 몇 번씩이나 추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강화해야 했습니다. 상태가 좋고 정념이 강할 때는 마치 천군을 휩쓰는 장군(戰將)과도 같이 자신감이 충만해집니다. 하지만 두려운 물질이 올라오면 마음은 무엇에 억눌린 것 같습니다. 압력을 무릅쓰고 나가 자료를 배포할 때면 곧 나아지고 다 배포하고 나면 매우 홀가분합니다. 총체적인 깨달음은 교란을 만나면 안을 향해 찾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며 미리 고밀도 발정념을 하여 가고자 하는 지역을 깨끗이 청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보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을 많이 배우면 마음가짐이 좋아지고 발정념을 많이 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여러 가지 교란과 가상이 적어집니다.

한번은 자료를 배포하고 돌아오는 길에 언제인지 모르게 경찰차의 추적을 받고 있었습니다. D 수련생이 걱정하면서 멈추지 않자 경찰차가 바짝 뒤쫓아 왔습니다. 내가 멈추자고 말하자, D는 “멈추면 문 열고 뛰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멈추자 경찰차에서 경찰 4명이 내려와 운전면허증과 신분증, 음주측정에 트렁크까지 검사하고 난 후 보내주었습니다.

우리는 안을 향해 찾았습니다. D는 지난번 박해당한 후부터 항상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만, 배제가 되지 않고 늘 최악의 상태를 염두에 둔다고 했습니다. 저는 평소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오늘 이런 갑작스러운 일에 직면했어도 무섭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낮에 고밀도 발정념을 한 결과인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자료를 배포하고 나서 잔치를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큰 솥에 만두를 삶았는데 작은 거실만큼 큰 솥에 만두가 밖으로 넘칠 정도로 많았으며, 많은 사람이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만두가 참 맛이 좋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줄로 선 사람들이 우리가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그들은 이방인인데, 만두가 먹고 싶은가 봐”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 중생이 구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늘 우리 네 사람만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는 것에 마음이 좀 조급해졌습니다. 수련생들이 서둘러 나머지 부분을 하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원망을 품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순수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왜 초조한가? 성급하게 성공하려는 것입니다. 마음을 넓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백 개의 마을을 상대해야 했고, 초심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초조와 원망이 사라지고 다시 평온해졌습니다. 우리가 세 개의 큰 지역을 남겨두고 배포하지 못했을 때 밤에 꿈을 꾸었는데 큰 슈퍼마켓의 한쪽 구석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에는 부식 등 상품들이 가득 차 있었고, 슈퍼마켓 내부도 매우 깨끗하고 가지런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 군데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있지 않은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 현에 수백 개의 마을 중 8월 중순까지 30~40개 마을을 제외하고 전부 다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현의 관내 각 구역에도 모두 노수련자가 책임지고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중 우리 현과 접경한 외곽지역 수련생들도 일부 마을의 배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3. 대단한 수련생들

60여 세의 노년 부부수련생이 자신의 진 지역 20여 개 마을에 전부 다 배포하고 다른 마을도 도와주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이곳은 큰 가뭄으로 많은 지역의 추수가 부진했습니다. 어느 날 그 가뭄지역 수련생에게 자료를 가져다주면서 “올해 너무 가물어서 농사가 별로 좋지 않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우리 집은 괜찮네. 막 비가 흠뻑 내렸어. 몇 리 떨어진 곳에도 비가 별로 오지 않았는데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현의 다른 지역은 거의 비가 오지 않았는데, 수련생이 사는 그곳에만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료점 수련생도 고생스럽습니다. 이번에 도시와 농촌이 모두 자료가 필요했지만, 연속 몇 달 동안 한 번도 늦어진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오후 8~9시가 돼 귀가하게 되는데 식사준비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또 법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늦을 때는 새벽 1~2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몇 마디 더 하고 싶은 것은 자료점의 수련생은 십몇 년을 하루와 같이 묵묵히 자료점을 운영했습니다. 임차한 집도 모두 부실해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습니다. 어느 해 여름 저도 자료점에서 잠시 함께 작업했을 때 방음을 위해 방문을 열지 않아 덥고 답답해서 일은 고사하고 그냥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련생은 아침에 와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몸에 땀이 마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던 시기여서 언제 다시 급히 이사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현의 협조수련생은 몇 년간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이번에 각자 구역을 나누어 자료를 공급하면서부터 더욱 바빠졌습니다. 구역별로 모두 자료를 나누어 주고, 나오지 않는 수련생을 찾아 교류하는 등의 일로 바빠 식사를 거를 때가 많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많습니다.

4. 맺음말

20여 년의 정법수련에서 비바람과 사생결단의 길에서도 다행인 것은 줄곧 조사정법, 중생구도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길에서 삶의 모든 것을 관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와 가호 때문이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오직 한 생명이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설법 한 구절을 함께 배우며 격려하고자 합니다. “아득한 길은 이미 끝에 달하고, 자욱한 안개는 점점 흩어지누나; 정념으로 신(神)의 위풍 떨치니, 하늘로 돌아감은 바람이 아니어라.”[3]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이성(理性)’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5-人來世的秘密(사람이 세상에 온 비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새해 문안’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밍후이왕 제17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0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11/13/4148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