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RTC 플랫폼에 여러 논란이 있으며, 주로 어떻게 진상을 알릴 것인가 하는 내용이나 방법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저도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어 이 기회를 빌려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며, 더욱이 여러분의 지적을 바랍니다.
저는 스스로 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최전선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 특히 오랫동안 견지해 온 분들을 항상 매우 존경해 왔습니다. 나중에 글쓰기 팀이 자료 정리를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문득 깨달음이 있었는데, 수련생들의 유창한 언변에는 후원이 있었으며 역시 모두가 합심하는 힘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저 자신도 많은 진상 원고를 보았고 어느 정도 쓸 수도 있게 되었지만, 중국인을 만났을 때는 여전히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를 통해 수련생들의 조리 있고 근거 있는 설명은 마음을 써서 외우고 기억하며, 반복해서 연습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수련생들이 전화할 때 각종 좋지 않은 반응에도 태연하고,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며, 낯선 이와 친구처럼 매끄럽게 대화하고, 온 마음으로 경청하는 인내심 등을 보며 저는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것 역시 수련 상태의 반영이며, 더욱이 우리의 수련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수련생이 견지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상대방이 진상을 알고 구원되기를 바라는 그 진심일 것입니다.
RTC 플랫폼에서 발생한 여러 논란에 대해, 저는 그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바에 근거해 이것이 아주 좋은 ‘안으로 찾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1.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일은 다 좋은 일임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우리가 수련인이기에 마주치는 모든 일, 특히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들은 모두 우리로 하여금 안으로 찾게 하고, 그 속에서 제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 기간 일부 수련생들의 메시지를 들으며 저 자신에게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야 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마침 속인 업무 중에서 제가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동료가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조짐이 보였는데, 제가 아직 입사 학습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전 경험이 있다 해도 결국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것인데, 스스로 잘났다고 여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특별히 주의하게 된 점은, 자만심이 사실 자신으로부터 많은 학습 기회를 잃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만약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수정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치 ‘물결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곧 퇴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영향은 차치하고라도 결국 마지막에 손해를 보는 것은 자신입니다.
2. 절대로 돋보기를 들고 타인의 부족함을 봐선 안 된다
최근 저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볼 때 마치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아주 뚜렷하고 명확하게 보며, 심지어 때로는 상대방의 부족함을 만든 원인인 집착심까지 매우 분명하게 보고 조목조목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한 점이 있는데, 상대방의 부족함을 본 것은 어쩌면 제게도 같거나 비슷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저 역시 이 층차에 있기 때문이며, 더욱이 제가 자신의 각도와 집착에서 출발했기에 사람과 일을 이러쿵저러쿵 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위해 문제를 찾아준다고 하기보다는, 문제가 있는 자신의 생각으로 타인을 바라본 것이라고 하는 게 낫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왜 고치지 않는지, 왜 수정하지 않는지, 왜 안으로 찾지 않는지에 집착하기보다는, 제가 얼른 안으로 찾아 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정말로 수정하고 잘 수련한다면 상대방을 볼 때 이해하는 마음이 더 생길 것이며, 심지어 상대방의 좋은 면을 보기도 매우 쉬워질 것입니다.
제가 자신의 교만함과 남을 깔보는 마음을 발견한 후, 동료들이 제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서로의 관계도 갑자기 훨씬 편안해졌고 제 마음에도 따뜻함과 즐거움이 더해졌습니다. 저는 우리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 매일 원망이 가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닐 거로 생각합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본다면 아마도 상대방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제가 계속해서 자신에게 일깨워 주어야 할 부분입니다.
3. 선(善)의 힘을 느끼다
최근 마침 사부님의 《각지 설법5》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을 공부했는데, 그중 한 질문에 대한 사부님의 답변을 통해 선의 힘을 깊이 느꼈습니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는 중에 냉정(冷靜)하지 못하고 언어가 과격합니다.
사부: 우리 대법제자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선념(善念)에 입각하여 냉정하게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든 아니면 어떤 활동에 참여하든, 모두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보게 해야 하며, 어떠한 과격한 일도 절대로 하지 마라. 당신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진상을 알리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과격하게 이야기한다면, 바른 일면(正面)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불선(不善)은 독해를 받은 사람의 사상 속의 그런 사악한 요소를 해체 시킬 수 없으므로, 당신은 바른 일면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한다.
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선(善) 그것은 가장해 낼 수 없으며, 표면적으로 유지하는 하나의 상태도 아니며, 선은 진정으로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며, 그것은 수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체현되어 나올 수 있다. 중생들 앞에서, 당신의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당신의 염(念)이 움직이자마자, 좋지 않은 요소를 바로 해체 시킬 수 있고, 세인들을 독해하는 것과 사람의 사상요소 중의 좋지 않은 것을 바로 해체 시킬 수 있어, 사람은 알게 되고 당신은 그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진정한 선(善)의 강대한 역량의 작용이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해체 시킬 수 없고, 당신은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특히 극단적으로 하는 이는,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주겠는데, 절대 좋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바, 바로 당신이 수련한 능력이 체현되어 나오지 못하고, 당신의 선(善)도 체현되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지 모두 대항해서 하거나 싸우려는 생각을 품고 하지 마라. 이것은 모두 맞지 않는 것으로서,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 설사 영사관에 가더라도 그러하다. 사람에 대해서는 역시 慈悲(츠뻬이)해야 한다. 사악한 생명에 대해서는 또 다른바, 우리가 발정념 중에 청리하고 있는 그러한 인류에 속하지 않는, 사악한 박해를 만들어 내는 요마귀괴(妖魔鬼怪), 그러한 썩어빠진 귀신, 흑수(黑手)는 당신이 어떻게 대해도 모두 문제가 없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선(善)해야 한다.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서 선하지 않다면 당신은 사람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저는 우리 수련생 간의 논쟁도 마치 속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과 같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방적으로 상대방이 자신의 관점을 받아들이기만을 바라며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려 한다면, 상대방의 반발을 사기 쉬워 각자 자기 말만 하며 양보하지 않게 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때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법(法)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 시작하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런 뜻’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보고 들은 후, 저는 절대로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에 대해 함부로 정의를 내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현재는 이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을 수 있지만, 수련이 끊임없이 추진됨에 따라 또 다른 이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문구라도 다른 수련생은 또 다른 이해가 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서로 교류하고 일깨워 준다면 아마도 서로 영감을 얻어 함께 제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교류할 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며, 상대방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도록 계발해 주어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한다면 더 잘 소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요? 때로는 중국공산당(중공)의 사악함을 매우 엄숙하게 서술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전통적인 좋은 어휘로 분위기를 완화하며 상대방이 전통적인 이념을 떠올리도록 유도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대법의 아름다움, 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상대방이 긍정적인 에너지와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무엇만 말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규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련생마다 각자의 판단력이 있으니, 서로 다른 시기에 따라 언제 무엇을 말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말이어야 그 선의 힘이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4. 사명 저버리지 않기
최근 아마도 많은 수련생이 어떤 충격과 파동을 겪었을 것이며, 수련생 간에도 신뢰의 도전에 직면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누구의 진상 원고가 좋고 나쁜지를 다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모두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더 잘 알게 하려는 일념뿐이라면, 아마도 사부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묘필생화(妙筆生花, 글솜씨가 매우 뛰어남)하게 하시어 쓰인 것들 모두가 매우 힘 있는 원고가 될 것이며,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모두가 원고를 공유한다면 거두는 효과가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에너지를 상대방의 원고가 어떻게 좋지 않은지, 어떻게 적합하지 않은지 분석하는 데만 쏟는다면 본말전도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이해하기로 최전선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은 현재 사람들의 상태를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어떻게 대화해야 상대방을 더 잘 감동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반면 글쓰기 팀은 이러한 정보들을 결합하여 자료를 찾는 데 치중함으로써 표현을 더 조리 있게 만들고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을 위해 준비 작업을 해주는 것이며, 결국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의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똑같은 한마디인데 왜 어떤 사람이 말하면 상대방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5. 두려워하는 마음 제거하기
과거에 저는 자주 침묵하는 다수 중의 일원이기를 바랐으며, 그래야 더 안전할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최근의 사건들을 보며 제 이런 마음이 좀 옅어졌음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별로 원치 않는 듯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물었습니다. ‘판단을 잘못해서 타인을 오해할까 봐? 잘못할까 봐? 일이 생길까 봐?’
사부님의 ‘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은 저로 하여금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으며, 제 두려움 뒤에 숨은 사심(私心), 즉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마음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언젠가 수련생 교류 글에서 본 내용인데,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돕는 작용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 게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잘못을 범하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자신의 집착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집착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무서운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심조심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해야 할까요?
생각해 보면 좀 부적절한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일부 갈등과 충돌은 침입한 바이러스와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고 각자 싸우게 하여 각개격파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련인이 안으로 찾는 것은 자동 복구 기제와 같아서 외부의 삿된 것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중의(中醫)에서 말하는 “정기가 안에 있으면 사기가 침범하지 못한다(正氣存內, 邪不可干)”라는 말과 같습니다. 매번 겪는 듯한 ‘외사(外邪)의 침입’은 어쩌면 우리가 정기를 강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대법을 함께 수련하고 같은 항목에서 서로 지지하고 협력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당시에 했던 약속이자 만고의 기연(機緣)이 지금 이 시점에 실현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만약 서로 간의 불신으로 인해 우리 정체(整體)의 힘이 손실된다면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이상 몇 가지 생각을 여러분과 나눕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5/50747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3/5/50747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