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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수련생, 아내가 나의 제고를 도와주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결혼 후 아내와 나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내는 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고 깨끗하고 부지런하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생활에 있어 생각대로 하고 일도 순서를 정해서 하는 분이 아니셨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고부 관계가 불편해 보였다. 아내는 어머니를 보면 볼수록 못마땅해했고 어머니의 결점을 이야기했다 하면 끝이 없었다. 어머니도 갈수록 며느리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아 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처음에는 양쪽을 모두 달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아내의 불평이 점점 많아졌고 어머니 때문에 아내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는 아내를 말로 이해시킬 수 없었다. 나중에 아내는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 가지고도 화를 낼 때가 있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이제 적응하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갈수록 갈등이 심해졌다. 나는 중간에 끼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항상 힘들기만 했다. 때때로 이 어려움은 나를 수련하라고 하는 것이니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지만, 이 갈등 속에서 나는 제삼자에 불과한 것 같아서 항상 구체적인 옳고 그름에 빠져 벗어나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修內而安外)”[1]를 할 수 있을는지 몰랐다.

나중에 어머니 일로 나와 아내는 사흘마다 다투고 닷새에 한 번꼴로 싸우게 됐는데, 아내는 화가 났다 하면 친정집에 가서 한두 주 있다가 왔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녀를 폭발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분위기가 긴장되었다. 나는 처음에 위로하다가 나중에는 냉담해졌고 때로는 이 관문이 왜 이렇게 크고 어려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가 친정에 가고 나면 비로소 마음이 잠시나마 홀가분했다. 때로는 마음을 터놓고 잘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았지만, 갈등은 수시로 터져 나왔다. 아내는 늘 우리 사이의 갈등이 모두 어머니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결혼 후 나의 수련 중의 크고 작은 관문은 대부분 아내가 가져다준 것이었지만, 나는 줄곧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아내가 너무 심하고 어른에게 너무 함부로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웃어른을 존경해야 한다는 나의 관념을 건드렸고, 나는 즉시 화를 참지 못해 아내와 싸웠다. 나중에는 후회하기도 하지만 늘 실패하며 어떻게 참는지 모르고 어떻게 철저히 관문을 넘을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아내는 화가 나면 아주 극단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죽느니 사느니 소란을 피우고 집을 나가거나 신경질적으로 울었는데, 울기만 하면 몇 시간이고 그치지 않았다.

그 후 갈등은 점점 심해져 우리는 분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면 조용할 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우리와 떨어져 산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갈등은 더욱 갈피를 못 잡게 만들고 1초 전에는 좋았다가 1초 후에는 폭풍우가 왔다. 아무튼, 이때의 나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조심하지 않아 언제 또 아내가 화를 낼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무엇이든 경계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여전히 이것이 고부 관계의 ‘후유증’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갈등은 분가해서도 줄어들지 않았고, 아내와 다시 갈등을 빚으면 아내는 또 친정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이 일로 장인을 찾아가 크게 다퉜고, 갈등의 골이 깊어져 두 집안은 풍파에 빠졌다.

오랫동안 나는 수련에 정진하지 않았기에 자신을 닦는 일이 아주 적었고 모순이 있으면 늘 상대방의 잘못을 찾았으며 속인의 방법으로 문제의 발생을 막으려 했다. 부모님과 분가해서 모순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도리어 고부간의 모순은 더 심각해졌다. 아내의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입을 생활 속의 소심함으로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아내는 생활에서 더 극단적으로 ‘생트집’을 잡았고, 속인들이 흔히 하듯이 아내에게 ‘좋다’고 하여 아내가 제멋대로 하는 행동을 막으려고 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더 ‘사리를 구분할 줄 모르게’ 됐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아내를 이해시키려 하자 아내는 나를 ‘원수’로 대했다.

수련은 초상(超常)적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2]

나는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를 찾다가 아내가 매번 화를 내는 것이 사실 나의 집착심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자신의 쟁투심, 주관자가 되려는 관념, 분쟁을 그치고 서로 편안히 지내려는 생각,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마음, 오만함, 색욕심,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마음 등등을 찾았다. 나는 가끔 아내에게 왜 이렇게 화를 내느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아내는 한참을 생각해도 무엇 때문에 화를 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한번은 아내가 또 어떤 이유로 화를 냈다. 처음에 나는 그녀에게 자극받아 화가 나 몇 마디 하다가 나중에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참고 말하지 않고 꼭 이 고비를 넘기로 했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한 말을 붙잡고 늘어지며 크게 떠들다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나는 그녀를 찾아서 평온한 마음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 또 노발대발하며 장롱 속의 옷가지를 모조리 바닥에 내던졌다. 그때 나의 마음은 뜻밖에 약간의 파란도 없었고 그녀가 아무렇게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을 미소 지으며 보았다. 이 일은 나와 아무런 상관없고 모든 것이 연화(演化)된 느낌이었다. 마치 맑은 바람이 스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발산한 후에 나는 묵묵히 옷을 다 챙겼다. 그날 나는 매우 기뻤고 자신이 향상된 것을 알았다.

나중에 점점 갈등이 줄어들었지만, 가끔 그렇게 찾아오곤 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자신의 그 집착심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아내는 한도 끝도 없이 멈추지 않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진심으로 문제를 인식하면 갈등은 금방 지나갔다.

최근 또 한 번 아내와 갈등에서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논쟁이 일어났다. 아내의 표현은 이전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나는 깨닫기 시작했고 갑자기 이것은 심성관만이 아니라 구세력의 의도적인 파괴성적인 검증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아내와 모순이 발생한 후 가부좌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3] 나는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불복하는 심리를 노력해 제거했다. 그리고 발정념했다. 구세력의 모든 교란과 파괴를 해체하고 나는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만 걷고 사부님이 배치하신 관문만 넘겠다.

몇 분 되지 않아 방에서 울부짖던 아내가 울음을 그쳤다. 놀라웠다. 이는 이전에 거의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다. 이튿날 아내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던 사람 같았다. 수련은 정말 현묘하다!

청년 제자로서 가정에서의 모순을 제고할 기회로 보지 않고 장기적으로 자신을 제삼자로 간주하고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도리어 구세력이 빈틈을 타 시련을 더 크게 한다. 수련생께서 거울로 삼으면 좋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修內而安外)’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警言)’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원문발표: 2022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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