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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남편과 재회한 주뤄신, 중국에서 8년간 겪은 박해를 말하다

[밍후이왕] 2012년 중국을 떠나 핀란드로 간 주뤄신(朱洛新) 씨는 11년간 헤어졌던 남편과 재회해 마침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았다.

주 씨는 핀란드에 정착하기 전, 중국에서 심신수련법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에 불법 수감돼 1999년부터 8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주 씨는 감옥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겪었지만 살아남았고, 풀려난 후에도 경찰의 계속된 괴롭힘으로 매일 공포 속에 있었다.

주 씨는 2013년 7월 20일 유럽 27개국 파룬궁수련생과 인권단체대표들이 참석한 코펜하겐 집회에 초청받아 박해종식을 촉구할 것을 호소했다. 당시 주 씨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파룬궁 수련자로서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무척 행운입니다. 중국에서는 가족이 해체되고 감옥에서 잔인한 고문을 겪는 수련생이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그분들은 자유롭게 말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을 대신해 인류역사상 가장 어두운 박해를 하루빨리 종식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하자고 호소합니다.”

'图1:朱洛新(左)在芬兰参加活动,向民众讲法轮功真相'
주뤄신(왼쪽) 씨가 핀란드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파룬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광저우 경찰은 주 씨를 체포하기 위해 2002년 12월 3일 현상금 10만 위안을 걸고 불법 수배를 했다. 주 씨는 결국 납치돼 2009년까지 감옥에 갇혀있었고, 독방에만 2년 10개월간 갇혀 믿음을 포기시키기 위한 세뇌와 고문을 당했다. 감옥 측은 주 씨를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게 했고, 연락하지 못하게 했으며, 감옥 밖에서 오는 어떤 정보도 받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장기간 고문받아 죽음 직전까지 갔었다. 어떤 땐 14일간 13~18kg에 달하는 족쇄를 채워 바닥에 고정시키는 고문을 당했는데, 족쇄를 풀었을 때는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고 한다.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중공의 고문: 육중한 족쇄 채우기

주 씨는 해외 인사들의 도움으로 2012년 1월 26일, 그동안 11년을 만나지 못했던 남편(파룬궁 수련생)과 핀란드 헬싱키에서 재회했다. 그녀는 2021년 1월 27일 연례행사인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에 핀란드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저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비인도적인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핀란드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감사드리고, 26년 전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그 때부터 제 영혼에 선량한 씨앗이 심어져 희망으로 가득한 삶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29세에 불치병 진단을 받다

1994년 29세였던 주 씨는 홍콩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얼굴이 가렵고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괴롭고 이상했다. 반점은 2개월 만에 전신에 퍼져 가려웠는데 긁기만 하면 물집이 생겼다. 결국 온몸의 피부가 검붉게 부어올랐고 참을 수 없이 따끔거렸다. 중의와 양의는 모두 홍반성 루푸스라는 진단을 내렸다.

결국 약물치료를 시작했는데, 하루 치료비가 100달러 이상 들었다. 당시 주 씨의 수입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약을 써도 2시간만 지나면 다시 가려웠고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30세가 됐을 때는 손과 무릎 아래 피부만 정상상태였다. 결국 주 씨는 직장도 다닐 수 없게 되었는데, 6개월쯤 되면서부터는 면역력을 잃었고, 의사는 “집에 가서 여생을 보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집에서 죽을 때를 기다리는 삶이 된 주 씨는 민간처방을 하는 사람을 찾아 여러 처방과 치료를 시도해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주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저는 당시 어머니를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몸이 심각해졌습니다. 인생이란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었어요. 사람의 삶이란 것이 참 씁쓸했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의 순환고리에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다 수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파룬궁 수련 후 완전히 회복되다

1994년 12월 중순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께서 중국에서의 마지막 학습반을 광둥성 광저우체육관에서 여셨다. 광저우 인체과학연구회가 주최했고 중국 전역에서 약 6천 명이 학습반에 참가했다.

주 씨는 당시 광저우에 있었는데, 친구가 표 2장을 사서 주 씨에게 주며 “불가(佛家) 기공인데 아주 좋아. 표를 겨우 구했어.”라고 말했다.

주 씨는 강의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주 씨는 강의를 듣는 기간 통증이나 가려움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섯 번째 강의가 끝난 후 집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우연히 피부를 보게 되었는데, 주 씨는 자신의 피부가 매끄럽고 전혀 가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병이 치료도 없이 나은 것이었다.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 리훙쯔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 씨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사부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제 주 씨는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건강이 회복된 후 닌텐도 중국총판 총지배인 보좌직으로 승진했다. 주 씨는 늘 미소로써 올바르고 성실하게 일했다.

믿음을 견지한 일가족 전체가 박해당해

주 씨는 온화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광저우시 리완구에 있는 한 파룬궁 연공장의 보도원이었는데, 1996년 1월경 훗날 남편이 되는 우즈핑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부부와 시어머니, 시댁 형제자매, 이모 등이 모두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주뤄신은 10년 불법 징역, 우즈핑은 2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해 노동교양소(강제수용소)에 각각 갇혔고, 우 씨의 형 우즈쥔도 8년형을 불법 선고받고 투옥됐으며, 동서 리페이전은 2년의 불법 노동교양, 이모 우위윈은 납치돼 독극물 주사를 주입당한 후 2004년 9월 석방 직후 65세로 사망했고, 어머니 우위셴은 불법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2006년 2월 풀려난 직후 사망했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폭로하다

박해 초기에 주 씨와 다른 수련생들은 정부가 파룬궁에 대한 오해가 있는 줄 알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청원하러 갔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청원 절차를 무시하고 수련생들을 체포했다. 그제야 주뤄신은 중공은 파룬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은 이 수련법을 없애려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 씨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을 알릴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주 씨는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그녀는 “내 삶은 파룬궁이 준 것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많은 혜택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부님께서 누명을 쓰고 계신데 양심적으로 나는 사부님을 위해 할 말을 해야 한다. 파룬궁은 더 많은 이가 좋은 사람이 되게 했다. 지금 중공정부와 언론은 사람들을 속여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뒤바꾸는데, 사회 전체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는 진실을 말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주 씨는 깨달은 후 밍후이왕에서 자료를 내려받아 대중에게 배포하기 위해 자료를 인쇄하기 시작했다.

2001년 5월 말 주 씨의 남편이 다른 수련생들에게 자료를 전해주러 나갔다 집에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주 씨는 무슨 문제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납치될 위험도 있는 것 같아 소지품을 챙겨 이른 새벽 집을 나왔다. “밤새도록 걱정하며 그저 돌아오기만 바랐습니다. 밤새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밤은 길기만 했습니다.”

주 씨는 며칠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줄 알고 집을 떠났지만, 그 뒤로 남편을 다시 만나기까지 11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줄은 전혀 몰랐다.

불법으로 현상수배당해

광저우 경찰은 주 씨를 납치하기 위해 현상금 10만 위안(약 1,700만 원)을 걸고 수배했다. 주 씨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고 했다. 중공이 수련생들을 중상모략했는데 정의를 추구해 파룬궁의 진상을 말하는 것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실을 알고 스스로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최소한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들어볼 기회는 줘야죠. 그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할 생각이 있건 없건 간에, 최소한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기 바랄 것입니다.”

2001년 12월 3일 정오 주 씨와 다른 수련생 2명이 택시에 탔을 때 경찰이 그들을 뒤따라와 광저우 중의대학 길 건너에서 납치했다. 경찰은 주 씨의 가족에게 납치 사실을 알리지 않고 면회도 가로막았다.

주 씨는 방음처리가 된 방에 갇혀 심문받았는데, 철제의자에 수갑을 채워 앉히고 24시간 내내 심문했다. 그들은 다른 파룬궁 수련생의 인적사항을 말하라고 강요하며 화장실에 가지 못 하게 했다.

“저는 제가 결백하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저를 모욕하는 이런 식의 학대를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문에 항의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단식 중인 주 씨 앞에 와서 일부러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주 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가장 힘든 것은 밤새 철제의자에 함께 수갑을 채워 잠을 자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수일간 심문받아 너무 졸려 눈을 뜨지 못할 때마다 경찰은 밀고 흔들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중에는 두통과 현기증이 났고 피하출혈까지 나타났다.

새벽 3~4시경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는 찰나, 경찰이 수갑이 채워진 손발을 거세게 치며 고개를 들라고 다그쳤다. “누구와 연락했나? 자료를 어디로 보냈어? 말하면 괴롭히지 않겠다.”라고 윽박질렀다.

단식 14일째가 되면서 주 씨는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 같았지만 경찰은 주 씨에게서 어떠한 정보도 캐내지 못했다. 음식물 강제주입으로 죽임을 당하는 수련생이 많았다. 주 씨도 음식물 강제주입을 당했다.

음식물 강제주입

그날 주 씨는 의식이 거의 없는 채 의자에서 경찰들이 나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잠시 후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수감자 두세 명이 주 씨를 욕실로 끌고 가서 바닥에 밀어눕힌 뒤 눈을 가렸다. 순간 코를 통해 뱃속으로 관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스러웠다. 곧바로 관을 통해 죽 한 통을 주입시켰다.

고문도: 음식물 강제주입

주 씨는 처음 몇 차례는 버둥거렸지만 이윽고 전신에 경련이 일어났다. 코와 배가 뜨거웠다. 잠시 후 한 사람이 “거의 다 됐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주입된 관을 거칠게 뽑았다. 주 씨는 고통으로 온몸이 떨리고 수축됐다. 수감자들과 경찰들이 말했다. “얼마나 오래 버티나 보자. 너를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고문할 것이다.”

그들은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는 주 씨를 버려두고 나갔다. 주 씨는 움직일 수 없었고 눈물이 흘렀다. 몇 시간 후 여러 사람이 와서 주 씨를 감방에 끌고 갔다. “며칠간 계속 뱃속이 아팠습니다. 온몸이 너무 아파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머리가 텅빈 채 단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뿐이었습니다.”

그 일을 당한 후 주 씨는 반드시 살겠다는 의지로 버텼다. “저는 파룬궁은 결백하며 스승님의 가르침은 옳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살아 나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무거운 족쇄로 바닥에 고정시키다

감옥경찰들은 주 씨가 다른 수련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고 악의적인 고문을 자행했다. 주 씨는 반복적으로 리훙쯔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수련 경험을 회상했다.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따르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굳게 믿었다.

감옥경찰은 주 씨의 의지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13~18kg 되는 족쇄로 주 씨를 콘크리트 바닥에 눌러놓았다. 주 씨는 며칠을 움직이지 못하고 묶여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무거운 사슬이 피부를 누르며 파고들었다. 주 씨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슬을 조금씩만 움직였다.

발 전체가 붓고, 통증과 마비가 발목, 무릎, 허벅지 피부와 뼈로 퍼져갔고 전신이 떨렸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고문 설명도: 족쇄 채우기

굴욕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수감자 몇십 명 앞에서 소변을 봐야 했는데, 감옥경찰들이 모니터로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어요. 굴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중공은 매순간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도록 조성합니다.”

15일째 되는 날 한 남자죄수가 족쇄를 풀어주러 와서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걸 견뎠지?” 당시 쇠고리가 살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고 종아리는 부어서 허벅지만큼 굵어져 있었다. 주 씨는 그 죄수가 주 씨의 상황을 보고 동정심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어도 걸으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리가 완전히 못 쓰게 될 거예요.” 주 씨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자 그는 “너무 잔인하잖아. 복도 건너편에 있는 사형수도 족쇄를 차고 있지만, 훨씬 가볍고 걷는 데 문제없는 정도인데, 파룬궁 수련생들에게는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족쇄를 제거한 후, 주 씨는 걷지 못했다. 천천히 발을 움직였지만 움직일 때마다 다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거렸다. 주 씨는 벽을 잡고 한 걸음씩 디디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살아서 여기서 나갈 것이다. 나는 죽을 수 없다. 삶이 이럴 수는 없다. 사부님께서 불치병에서 나를 구해주셨는데, 살아남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을 회상하면서 “그 암흑의 나날 나를 지탱해준 것은 정신력이었다.”라고 말했다.

마음 속의 선(善)을 지키다

2년간 고문당했어도 주 씨는 한결같이 파룬궁 수련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감옥경찰들은 주 씨를 2~3㎡짜리 방에 가두고, 다른 사람이 자는 시간에 주 씨에게 파룬궁과 리훙쯔 사부님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볼륨을 최대로 해서 강제로 보게 했다. 주 씨가 눈을 감으면 감시자가 뺨을 때렸다. 당시 주 씨는 이 일념을 지켰다고 한다. ‘이 내용은 중상모략이다. 나는 듣지도 보지도 않을 것이다. 스승님은 내 마음에 진선인(真·善·忍)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 그들이 내 마음에서 그것을 뽑아내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장기간에 걸친 파괴적인 박해로 몸이 쇠약해진 주 씨는 특히 청력이 떨어졌다. 귀에서는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종종 두통과 현기증이 났다. 하루 3~4시간만 침대에 누울 수 있었지만 그 영상에서 나오는 심한 소음이 계속 들리다보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을 감고 누워서 긴장을 풀려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감옥경찰들이 주 씨의 믿음을 포기시키기 위해 교대로 고문하고 세뇌했는데, 14일을 지속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하며 주 씨의 기억에서 삶의 좋은 부분을 파괴시키려 했지만, 주 씨는 과거의 기억을 조각조각 지켜냈다. 부지불식간에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어머니의 죽음,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한 기억, 파룬궁 수련으로 불치병이 완치된 것 등 삶의 기복을 계속 떠올렸다.

아버지의 격려

2001년 체포된 이래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견디면서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주 씨는 가족 면회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주 씨에게 더 강도 높은 독방세뇌를 실시하려고 2003년 4월 25일 광저우 샤오관(韶關)감옥으로 이송시켰다. 그러던 2004년 말 뜻밖에 감옥 측은 70세 아버지가 면회를 왔다며 주 씨와 만나게 했다.

그날 주 씨가 어떤 방으로 옮겨진 후 갑자기 문이 열렸는데, 휠체어를 탄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딸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순간 머리가 텅 비더군요. 아버지가 계속 우셔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많은 장면이 떠올랐어요.”

아버지는 그날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병원에 예약을 해둔 상태셨다. 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조직인 ‘610’ 관계자가 병이 심한 주 씨의 아버지를 감옥에 끌고 온 것이다. 주 씨는 석방되고 몇 년이 지나서야 당시 610이 아버지의 면회를 주선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 610이 아버지에게 압력을 가해 주 씨를 설득해서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주 씨는 말했다. “아버지는 마카오에서 근무하셨는데 제게 대학교육을 시킬 만큼 수입이 넉넉하셨어요. 제가 불치성 피부암에 걸려서 우리 집은 돈을 거의 써버리게 됐어요. 그러던 와중에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몸이 좋아지니 아버지는 정말 안도하셨어요. 그리고 종종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를 도와준 분들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않고 보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버지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제 생명을 구해주셨으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 씨는 면회실에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돌봐드리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단지 믿음을 견지하고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고령에 몸도 성하지 않은 아버지가 감옥까지 찾아오신 데 대해 죄책감도 느꼈지만, 고개숙이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 아버지를 보았을 때 주 씨는 정신이 났다. “아버지가 격려하는 눈빛으로 저를 보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제게 살아서 나오라고 격려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간 아버지 옆에 서있던 사람이 다그쳤다. “말 하시오! 빨리 말해!” 아버지는 그 사람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슬퍼보였고, 급히 쫓겨 나갔다.

독방에 갇혀 2년 10개월간 세뇌당해

주 씨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남편이 아내가 세뇌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도우려 한 사실을 거의 몰랐다. 남편은 아내에게 강해지고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의 편지를 많이 보냈지만, 주 씨는 단 한 통도 받지 못했다.

2007년 초까지 주 씨는 2년 10개월간 독방에 갇혀 집중 세뇌를 당했다. 감옥경찰들은 다른 사람과 말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외부 정보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들은 마약중독자인 죄수에게 지시해 주 씨를 향해 날조된 비방 내용을 큰 소리로 읽게 했다. 주 씨가 청력이 손상된 것을 알고 그들은 귀에 가까이 대고 소리쳤다. 그 뒤로 시력도 나빠지고 종종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나 식은땀, 악몽 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어떤 것도 주 씨의 믿음을 흔들 수 없었다.

장기간 고문받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있었지만, 주 씨는 1994년 리훙쯔 사부님의 강의를 직접 들었던 장면을 자주 회상하면서 삶을 되찾고 행복했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가장 힘들 때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직접 기적을 경험했다. 사부님께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 생명을 구하셨다.”

“인생이 항상 순조로울 수는 없습니다. 고난을 겪을 때마다 사람이 되는 준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종종 자신을 상기시키고 마음속으로 스승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지가 점점 강해졌고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미래의 희망

주뤄신·우즈핑 부부. 주 씨는 중국을 탈출해 핀란드에서 남편과 11년 만에 재회했다.  

올해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에 주 씨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22년 동안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수련자들과 다른 신앙인들을 끊임없이 박해했으며, 강제 장기적출까지 자행했습니다. 잔인한 박해가 즉시 종식되도록 전 세계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중국공산당은 재판을 받고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8/421551.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3/14/1913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