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네이멍구 통신원) 네이멍구 츠펑(赤峰)시 바린쭤(巴林左)기 파룬궁수련자 돤쉐친(段學琴)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20여 년간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요원들에게 수차례 납치돼 불법 강제노동과 세 차례의 불법 형 선고(징역 4년·5년 6개월·3년)를 겪었다. 그녀는 수없이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고문을 당하며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에 섰으나, 결국 2024년 60여 세를 일기로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돤쉐친은 츠펑시 바린쭤기 쓰팡청(四方城)향 출신이다. 수련 전 그녀는 결장염, 담낭염, 위염, 심장병, 간질환 등 온갖 질병을 앓아 장기간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했다. 1998년 파룬궁 수련을 막 시작했을 때는 누워서 법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그러나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기준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전신의 질병이 기적처럼 사라졌다. 침대에 누워만 있던 환자에서 타인을 돌볼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후 수년간 그녀는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가정의 경제적 부담도 크게 줄어 온 가족이 수련 속에서 화목하게 지냈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시작한 후, 돤쉐친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고문을 당하며 생사를 넘나들었고 심신에 막대한 손상을 당했다.
2000년 정월 28일, 돤쉐친은 공원에서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15일간 불법 구류됐고 온 가족이 강제로 원적지로 송환됐다. 같은 해 섣달 초, 바린쭤기 쓰팡청향 정부와 파출소 직원들이 다시 집으로 찾아와 괴롭혔다. 돤쉐친은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정부에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는 서신을 전달했으나, 향장 장궈중(張國忠)과 파출소 치젠쉐(遲建學)는 그녀를 쭤기 공안국에 모함했다. 섣달 11일 밤,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장 투부신(圖布新) 등이 그녀를 쭤기 구류소로 납치했다. 단식으로 항의하다 몸이 쇠약해진 그녀는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파출소 자웨이잉(賈偉英)은 공안국에 전달한다며 1500위안을 갈취했고, 구류소 직원 정(鄭) 씨는 단식 중이라 식사도 하지 않은 그녀의 남편에게 ‘식비’ 명목으로 100위안을 뜯어냈다.
2001년 6월 13일, 돤쉐친 부부가 채소를 팔러 나갔을 때 치젠쉐는 공안국 류즈쥔(劉志軍), 바이슈전(白秀珍) 및 츠펑 경찰을 이끌고 가택수색을 자행해 대법서적을 모두 빼앗아 갔다. 당시 15세였던 딸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대법이 우리 엄마 병을 고쳤어요”라고 말하자 치젠쉐는 아이의 뺨을 때렸다. 사흘 뒤 저녁, 부부가 일을 마치고 귀가하자 치젠쉐, 류즈쥔, 바이슈전 일당은 돤쉐친과 딸을 납치했다. 딸은 15일간 불법 구류됐고, 돤쉐친은 3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아 싱안맹 투무지 노동수용소 여자 대대에 갇혔다. 그곳에서 강제노동과 법공부·연공 금지로 위천공이 발생해 생명이 위독해지자 수용소 측은 그제야 그녀를 집으로 보냈다. 당시 그녀는 박해로 인해 몰골이 너무나 초췌해져 가족과 이웃이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돤쉐친은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며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향 정부와 파출소는 끊임없이 집으로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다.
2002년 9월, 돤쉐친이 큰딸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집을 비우자 악당들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남편을 파출소에 이틀간 불법 구금했다. 또한 총으로 둘째 딸을 위협해 아이가 심장병에 걸리게 했다. 그 후 그들은 큰딸의 집에서 돤쉐친을 납치해 와 감시했다.
2002년 10월 14일, 치바이린(齊柏林) 등이 갑자기 들이닥쳐 ‘학습’을 하러 가자고 했다. 돤쉐친이 거부하고 정념으로 빠져나가자 심야 12시에 경찰 20여 명이 집을 포위하고 샅샅이 뒤졌으며 모든 친척 집까지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70대 노인이 겁에 질려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그녀를 잡지 못하자 경찰은 아들을 파출소에 납치했고, 치바이린 일당은 뺨을 20여 차례 때리며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2003년 1월 29일, 돤쉐친은 귀가했으나 장기간의 고압적인 공포를 견디지 못한 남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길거리를 떠돌며 구걸로 연명해야 했다. 2003년 2월 7일, 돤쉐친은 구걸하며 츠펑시에 이르렀다.
1. 고문으로 위독한 상태에서 징역 4년형 선고
2003년 2월 11일, 돤쉐친은 저우차이샤(周彩霞), 정란펑(鄭蘭鳳), 톈쑤팡(田素芳)과 함께 츠펑시 훙산구 국안대대에 납치됐다. 열흘 뒤 정란펑은 훙산구 구치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유족이 시신을 닦을 때 보니 입은 크게 벌려져 있고 눈은 부릅뜬 채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으며 눈꺼풀이 감기지 않았다. 등에는 심한 구타로 인한 청자색 멍이 가득했고 열 손톱은 모두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저우차이샤(전 네이멍구 츠펑시 총공회 여성노동자 부부장)도 단식 항의 중 여러 차례 생명이 위독해졌다.
돤쉐친은 납치 후 경찰에게 맞아 오른쪽 어깨와 왼쪽 다리를 다쳤다. 그녀가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하자 매일 죄수 7~8명이 달려들어 입을 강제로 벌리고 음식물을 주입해 치아가 톱니 모양으로 변했다. 한번은 경찰 장 씨가 소금 반 봉지를 입에 털어 넣어 속이 답답하고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또 다른 날에는 음식물 주입 후 죄수들이 그녀를 침대에 내동댕이쳐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18일 후 그녀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구치소는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부런 등 악당들에게 납치돼 훙산구 구치소에 갇혔다. 이송 도중 그녀는 계속 피를 토했다. 구치소에 들어간 뒤 여경 덩리옌은 남자 죄수 2명을 시켜 강제 음식물 주입을 자행했다. 이튿날 덩리옌은 열쇠로 돤쉐친의 머리를 누르며 밥을 먹으라고 협박했고, 먹지 않으면 전기충격기로 지졌다. 병원으로 옮겨져 삽관을 반복할 때마다 매번 1~1.5kg가량의 피를 쏟아냈다. 악당들은 그녀를 장기간 죽음의 침대에 묶어놓아 양팔 근육이 위축되고 전신이 뻣뻣해졌다. 돤쉐친은 피골이 상접해 위독한 상태가 됐고 병원 검사 결과 위출혈로 진단받았다. 악당들은 가족에게 3천 위안을 요구했으나 돈이 없고 사람이 죽을까 봐 두려워지자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저우차이샤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7월 4일 네이멍구 바오안자오 감옥으로 이송됐으나, 7월 12일 밤 감옥장 저우젠화 등에 의해 농구대에 매달려 살해당했다. 톈쑤팡(전직 교사)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2011년 3월 15일 한을 품고 별세했다. 돤쉐친도 당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당일 저우차이샤, 돤쉐친, 톈쑤팡 세 사람은 너무 쇠약해 걷지 못했고 각각 죄수 두 명에게 붙들려 법정에 끌려 들어왔다. 옆에서는 죄수가 링거병을 들고 따라왔다. 판사는 조롱 섞인 어조로 책상을 두드리며 재판을 시작했는데 그 광경은 냉혹하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2005년 10월 17일, 시아버지가 돌아가셔 장례를 치르려 할 때 바린쭤 파출소와 공안국 직원들은 ‘형기가 남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다시 바린유기 다반 구치소로 납치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남녀 경찰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그 후 돤쉐친은 네이멍구 제1 여자 감옥으로 납치됐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들것에 실려 들어갔다.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했으나 마약범들의 조롱과 욕설에 시달렸고 소위 전향 요원들의 거짓말에 속았다. 츠펑의 주펑원(朱鳳文)과 류강(劉剛) 두 악당은 파룬궁수련자 전향을 전담했는데, 그들은 그녀를 잠재우지 않고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위선과 거짓말로 번갈아 공격했다. 강력한 고압 속에서 돤쉐친은 머리가 큰 광주리에 짓눌린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정신과 육체에 이중적인 괴롭힘을 당해 온종일 죽음보다 못한 고통 속에서 신음했다.
2. 두 번째 징역 5년 6개월형, 박해로 하반신 마비
2012년경 돤쉐친은 바오터우(包頭)시에서 다시 경찰에 납치됐다. 바오터우시 구치소에서 폭행을 당해 미골(꼬리뼈)이 부러졌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다.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경찰은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죽음의 침대에 묶어 수치심을 주는 고문을 가했다.
징역 5년 6개월형을 선고받은 그녀는 네이멍구 제1 여자 감옥으로 이송됐다. 이때도 그녀는 들것에 실려 들어갔다. 감옥 안에서도 진상을 알리자 ‘바오자(수련자를 감시하는 죄수)’는 그녀를 방 안에 가두고 독하게 때렸고 밖에서도 비명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녀가 이른바 보고사를 외치지 않고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자 가족 면회권이 박탈됐다.
감옥 측은 진선인 신앙을 포기하게 하려고 그녀에게 폭력적인 전향을 실시했다. 잠을 재우지 않고 거짓말로 유혹하며 사오(邪悟)자들이 번갈아 가며 속이고 압박을 가했다. 돤쉐친은 머리가 터질 듯한 통증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정신과 육체에 이중적인 괴롭힘을 당해 오랫동안 죽음보다 못한 고통 속에서 지냈다.
지속되는 박해로 돤쉐친은 결국 하반신이 마비돼 자립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누군가 그녀에게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통스럽게 말했다. “내가 당한 박해는 사흘 밤낮을 말해도 다 못합니다.”
3. 세 번째 불법 징역 3년형 선고와 한 맺힌 별세
2018년 12월 6일, 돤쉐친은 바린유기에서 시민들에게 파룬궁 진상 달력을 배포하다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바린유기 공안국 경찰 4명에게 강제로 경찰차에 실려 납치됐다. 바린유기 구치소에서 그녀는 사진 촬영을 거부하다 남자 경찰 3명에게 번갈아 가며 세 차례 전기 충격을 당했고, 여의사에게 귀를 잡힌 채 강제로 사진이 찍혔다.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자 김 씨 성을 가진 여경은 그녀에게 배수갑(양팔을 등 뒤로 꺾어 채우는 수갑)을 채워 온종일 방치했다가 오후 퇴근 무렵에야 풀어줬다. 이때 그녀는 양팔이 마비되고 통증을 견디기 힘들었으며 전신이 뻣뻣해지고 왼쪽 몸이 마비돼 걷지 못했다. 그녀는 박해로 혈압이 180까지 치솟고 심박수는 105에 달했다.
돤쉐친이 납치된 지 일주일 후 바린유기 공안국은 그녀를 바린유기 검찰에 모함해 넘겼고, 2주일 후에는 츠펑시 검찰로 넘겼다. 3주째 되던 날 바린유기 검찰 공소인 천쓰친(陳思琴)은 그녀를 불법 기소했다. 2019년, 바린유기 법원은 그녀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같은 해 5월, 법원이 돤쉐친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하고 5천 위안의 벌금을 갈취했으며, 그녀의 금우카드에서 현금을 직접 강제로 인출해 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후 돤쉐친은 다시 네이멍구 제1 여자 감옥으로 납치됐다. 감옥에서 그녀는 파룬따파 신앙 포기를 거부해 엄격 관리 대상이 됐고 생활필수품 구매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감구장 백 씨는 마약범 류훙(劉紅)에게 그녀를 전담해 박해하도록 지시하며 “감방 안에 일이 생기면 감구에 알릴 필요 없이 류훙이 직접 처리하라”고 말했다. 류훙은 “파룬궁은 죽을 때까지 패야 한다”고 소리쳤다.
한번은 돤쉐친이 박해로 혈압이 올랐으나 감옥에서 주는 약 복용을 거부하자 류훙 등은 CCTV를 가린 채 그녀를 구타했다. 류훙은 그녀의 목을 조르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머리를 뒤로 강하게 꺾어 돤쉐친을 그 자리에서 혼절하게 했다.
돤쉐친의 꼬리뼈는 2003년 경찰에게 차여 부상당했고 2012년에도 다시 다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지만, 류훙 등은 그녀가 누워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돤쉐친이 당직 감옥 경찰 치치거에게 상황을 알렸으나 오히려 “입 닥쳐”라는 호통만 들었다. 그녀가 몇 차례 기어서 감구장을 찾아가 호소했으나, 감구장은 오히려 류훙이 돤쉐친에게 맞아 ‘온몸이 멍들었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한번은 돤쉐친이 ‘공견조(전향 강요반)’로 끌려가 박해가 가중됐다. 죄수들은 그녀를 침대에 누르고 하반신을 침대 밖으로 내밀게 했다. 류훙은 그녀의 옷을 걷어올려 머리를 덮어씌운 뒤 왼팔로 가슴을 누르고 오른손 주먹으로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난타해 입안이 피범벅이 되게 했다. 돤쉐친이 “사람 살려”라고 외치자 류훙은 그녀를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 그녀가 문쪽으로 기어가려 하자 죄수들이 다시 끌어다 놓는 식으로 고문을 반복했다.
장기간의 잔인한 박해로 돤쉐친의 몸은 심각하게 망가졌고 평소 침대에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으며 바닥에서는 기어 다녀야 했다.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귀가한 후 그녀는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으나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런데도 바린유기 주민센터 직원들과 ‘610 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 공안국과 파출소 경찰들은 끊임없이 갖은 구실로 그녀와 가족을 괴롭혔으며,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동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촬영했다.
돤쉐친은 결국 2024년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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