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쑤(江蘇)성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어느 날 우연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파룬궁수련자 왕싼슈(王三秀)를 만나게 됐다. 그녀를 보는 순간, 눈앞의 이 사람이 2003년에 봤던 그 왕싼슈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왕싼슈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뽀얗고 붉은 기운이 도는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선 그녀는 노쇠하고 야위었으며, 얼굴에는 짙은 흉터가 여러 개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왕싼슈 맞나요?” 그녀는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왜 이렇게 말랐느냐고 묻자 그녀는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왕싼슈는 본래 난징 지질광물연구소의 지질 엔지니어였다. 1996년 2월 파룬궁을 수련하게 된 이후,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고 사상 경지가 높아졌으며, 타인에게 선하게 대하고 업무에 성실했다. 그녀의 건강은 회복됐고, 피부는 뽀얗고 붉은 빛을 띠었으며, 활력이 넘치고 걸음걸이도 가벼워졌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후,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장기간 박해를 당했다. 세 차례 불법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최소 세 번 세뇌반에서 학대를 당했으며, 여러 차례 납치와 가택수색, 불법 구류를 겪었다. 난징시 구치소, 장쑤성 여자 노동수용소와 난징시 ‘610’(중공의 파룬궁 박해 전담 불법기구) 세뇌반에서 구타, 수면 박탈, 야만적인 강제 음식물 주입 등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005년 3월 8일 저녁, 당시 바이샤구 공안분국 정치보위과 책임자였던 쾅위칭(匡宇淸), 황수이청(黃水成) 등과 루이진로 파출소 경찰 장쯔유(蔣自有) 및 ‘610’ 등 여러 명이 왕싼슈의 집을 찾아와 그녀를 납치하려 했다. 당시 왕싼슈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집 문 앞까지 몰려왔지만 왕싼슈는 문을 열지 않았다. 누군가가 문을 부수겠다고 위협했지만 왕싼슈는 끝까지 문을 열지 않았고, 한참 후에야 그들은 하나둘씩 물러났으나 그녀의 집 주변을 밤새도록 감시했다. 한편 그녀의 남편은 직장 상사에게 불려가 다음 날 왕싼슈를 사무실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강요받았다.
직장 상사를 난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왕싼슈는 다음 날 출근했다. 그러나 그녀가 사무실 건물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경찰과 경비원들이 에워싸서 팔과 다리를 강제로 잡아끌어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왕싼슈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크게 외쳤다. 그날 그녀는 난징시 시화문호텔 세뇌반(창문에는 쇠창살이 설치됨)으로 납치됐다. 그곳에는 루이진로 주민센터, 중산먼 지역사회 및 난징 지질광물연구소 등 여러 기관에서 온 수십 명이 24시간 교대로 감시했다. 남자 감시자들은 맞은편 방에 머물렀다. 왕싼슈는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을 했다. 바이샤구 610의 지휘[우두머리는 쑹 씨였고, 주요 책임자로 우융(吳勇)과 위안쭈후이(袁祖輝)가 있었다] 아래, 체격이 크고 건장한 여성 몇 명이 그녀의 손발을 강제로 누른 채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강제 주입했다. 왕싼슈는 힘겹게 뱉어내려 했고 결국 구토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에도 역시 그 몇몇 건장한 여성들이 그녀의 손발을 억압한 채 약물을 강제로 주사했다. 당시 왕싼슈는 그들이 그토록 악랄하리라고 생각지 못했고, 주사하는 약물에 독약을 섞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 달 후, 왕싼슈는 몇몇 공안에게 손가락을 강제로 눌려 지문을 채취당한 뒤, 다시 난징시 세뇌반(당시 보러호텔에 임시 설치)으로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시 세뇌반에서 ‘610’ 직원들은 며칠 밤낮으로 왕싼슈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벽을 향해 서 있도록 강요했다. 바닥에는 대법 사부님을 공격하고 모욕하는 글이 가득했는데, 이는 바이샤구 ‘610’의 위안쭈후이가 쓴 것이었다. 그녀는 발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강요받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문을 지키던 남자 청년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 벽에 세게 부딪쳤다. 충격으로 왕싼슈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세뇌반에서 풀려났을 때 그녀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지만, 그때까지도 그녀는 중공의 이른바 정부 관리들이 자신에게 독약을 주사했을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납치되기 몇 개월 전, 왕싼슈의 직장에서 등산 대회가 열렸고 그녀는 여성부문 10위 안에 들어 상을 받았다. 그러나 세뇌반에 있던 후반기에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여러 증상이 뚜렷하게 악화됐다. 눈에서 눈물이 분비되지 않고, 입안에 침이 나오지 않았으며, 눈과 입, 코가 모두 극도로 건조해졌다. 밤에 잘 때는 옆에 물병을 두어야 했고, 깨어나서는 먼저 물을 마셔야 말할 수 있었으며, 눈은 하루종일 충혈되고 부어 있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의사는 전형적인 ‘건조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의사는 ‘건조증후군’은 현재 국제적으로도 완치할 수 있는 약물이 없으며, 약을 복용해 생명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세뇌반에서 박해받은 후, 왕싼슈는 삿되게 깨달아 오랫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않았다. 몸이 너무 약해져 출근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그녀는 깨달았다.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만 한다. 오직 파룬궁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
다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왕싼슈의 몸은 눈에 띄게 호전됐다. 하지만 그 완고한 ‘건조증후군’은 여전히 증상이 남아있어, 수년 동안 그녀의 모습은 점점 더 노쇠하고 야위었으며, 피부는 건조해지고 짙은 흉터까지 생겼다.
왕싼슈는 자신이 세뇌반에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불경한 글을 쓴 것에 깊은 후회를 표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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