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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파란 많던 결혼 생활이 탄탄대로로

글/ 헤이룽장 대법 제자 후이성

[밍후이왕] 대법의 신기함은 비범하고, 법력(法力)이 미세하게 널리 퍼졌다. 본 기사에서 말한 사례는 대법의 위력이 인간 세상 측면에서 체현된 작은 표현일 뿐이다. 대법은 인류에게 인간 세상의 복을 가져다줄 수 있고 더욱이 대법의 신기함과 신성함은 사람에게 반본귀진(返本歸真)하게 한다.

남편은 항상 부모, 친구, 동료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그동안 집사람 덕분입니다.” 친구들 눈에 우리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부부이지만, 8년 전 남편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고 우리 가정은 거의 파탄 날 뻔했다.

심신이 지치고 눈물로 지낸 결혼생활

8년 전 시어머니는 중국공산당(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나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이 아들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 남편에게 나와 이혼하라고 부추겼다.

따라서 남편은 항상 나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벌써부터 당신과 살기 싫었어! 당신과의 결혼을 정말 후회해, 꺼져!” 또는 “이혼하자! 합의서가 책상에 있으니 빨리 사인해, 다 사인하면 당신 가족에게 당신을 데려가라고 할게.” 그때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정말 하루도 그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매일 직장에 가서 출근 보고를 한 후 부근 공원이나 거리에 가서 내가 아이를 안고 사람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리는지를 보았다. ‘단서’라도 발견하면 집에 돌아온 후 나를 기다린 것은 ‘대전’이었고 낮에서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그는 의자, 휴대폰을 내던지고 나에게 법원에 가자고 강요했고 칼을 들고 나를 협박하면서 강경책을 다 썼다. 나의 심신은 피곤했고 늘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내가 끈질기게 견지하여 남편은 마침내 나에게 일주일에 두 차례씩 세 시간 이내로 나가는 데 동의했다. 이 세 시간은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어 나는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처음에는 말할 줄 몰라 조급하여 길에서 내내 울었다. 수련생은 조금씩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차츰 나는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었고 파룬따파의 구도(救度)를 받은 사람을 보면 나와 수련생은 격동되어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건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진상을 다 알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마음이 또 무거워졌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웠고 계단을 올라갈 때면 가슴에 토끼를 품은 것처럼 걱정되었으며 자신이 또 폭풍우를 맞는 것이 두려웠다. 시어머니는 파출소에 가서 이치를 따지겠다고 우리 친정 식구를 위협했고 나에게는 머리가 아파 저녁에 아이를 돌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시어머니는 저녁에 마작하러 나갔다.

나는 속으로 정말 억울했다. 나는 대도시 생활과 대우가 꽤 높은 직업을 포기하고 남편을 따라 그의 고향으로 왔다. 집이 없어 임대 주택에서 살았고 일자리가 없어 시어머니는 이 때문에 나를 업신여겼다. 돈이 없어 종일 내가 아이를 돌봐야 했고 의지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육친이라곤 남편 한 사람밖에 없는데 그는 매일 화를 내고 나의 자유를 제한하여 포대기 속에 있는 아이를 보면 정말 너무도 슬펐다. 나는 수련생에게 불평을 쏟았고 어머니에게 하소연했으며 법공부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정말 어떻게 이 가정환경을 개선할지 몰랐다.

남편, “이 가정은 언제나 희망이 있다”

나는 많은 법공부,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차츰 자신을 닦는 것을 배웠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대법제자는 한 수련인으로서, 문제를 볼 때 사람과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1] “언짢은 일에 부딪혔을 때가 바로 당신 자신을 수련할 때이며 마음을 수련할 때이다.”[1]

나의 마음은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불복, 논쟁, 반격, 풍자하던 데에서 조용하게 남편 말을 다 들었고 남편이 펄쩍 뛰며 노발대발하는 것을 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속으로 냉정하게 생각했다.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남편 입장에 서서 이해하자.’

나는 남편을 설득했다. “화내지 마세요.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입니다.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평소 내게 옳지 않은 점이 있으면 나를 바꿀게요. 그런데 나에게 수련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나의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법공부, 연공하기에 누구에게도 영향 주지 않고 집안일, 아이를 돌보는 것도 지체하지 않는데 왜 안 되는 거예요? ‘헌법’에는 공민에게 신앙 자유가 있다고 규정했어요! 뭘 믿는가는 나의 자유이기에 당신이 간섭해서는 안 돼요.”

이 말을 듣고 남편은 수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웃으며 다가가서 남편 소매를 당기면서 “내가 밥을 다 지었으니 밥 드세요”라고 말하면 남편은 나의 손을 뿌리치고 갔다. 나는 다시 가서 당겼다. “밥을 드시지 않으면 안 돼요. 굶으면 안 되지요! 밥과 반찬을 다 차려놓았어요.” 남편을 억지로 밥상 옆에 앉혀 놓으면 남편은 말도 없이 밥을 먹었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말을 할 수 없어 우리 집은 질식할 정도로 조용하고 침울했다.

이튿날 남편은 계속 나를 공기처럼 대했지만 나는 계속 웃는 얼굴로 맞이했고 남편을 밥상에 당겨왔다…. 이런 ‘저기압’ 기분이 며칠 지속됐다.

내가 이렇게 매일 남편을 불러 밥을 먹은 지 한 달이 돼도 남편은 나와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또 한 번은 3개월간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평소처럼 남편에게 여러 가지 요리를 해주었다. 남편은 편식하여 남편 입맛에 맞게 하려고 나는 조림・볶음・튀김을 모두 배웠다. 남편이 식욕이 없어 고추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아 나는 동영상을 보고 사천요리를 배웠다. 한 가지는 아이 음식, 한 가지는 남편 음식을 하느라 끼니마다 두 가지 맛 요리를 해야 했다.

한동안 남편은 출근해서 매우 힘들게 일해 나는 저녁에 네 가지 요리를 볶았다. 남편은 식욕이 적어 나는 6인치짜리 작은 사각 접시를 사서 요리를 한 접시 양만큼 했다. 이러면 밥과 요리가 남지 않아 이튿날 또 새로 해야 했는데 중복되지 않게 했다. 마지막에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매일 이렇게 풍성하게 준비하니 나는 나중에 다른 음식을 먹지 않을 것 같소.” 또 “당신이 한 모든 일은 다 헛되이 한 것이 아니오. 모두 종자처럼 나의 마음에 뿌리 박혔어.”

지금 남편은 내가 요리하는 것을 보면 말한다.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아무거나 해도 돼. 당신이 뭘 하면 그걸 먹으면 되지, 먹을 밥만 있으면 돼.” 남편은 더는 편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몇 번이나 나에게 “당신이 나를 제일 감동시킨 것이 뭔지 알아? 바로 당신이 매일 나에게 밥 먹으라고 한 거야. 그건 우리가 어떻게 싸우든 당신에게는 저지선이 있어, 나에게 언제든지 이 가정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어”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내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여 남편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여 이 가정을 지킨 것으로 생각한다.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고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선을 권하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여 늘 술을 취하도록 마셔서 때로는 바지도 추스르지 못한 채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잠들 때가 있었고 때로 마셔서 의식을 잃었으며 한밤중에 침대에서 떨어져도 모르고 바닥에서 날 샐 때까지 잘 때가 있었고 때로 술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잊고 누구나 감히 욕했다.

작년 설에 나의 부모님과 남동생이 우리 집에 왔다. 가족이 함께 모이니 매우 시끌벅적했는데 남편이 좀 많이 마셨다. 이 자리에서 남편은 시어머님이 이사하겠다며 친척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나의 친정 식구는 완곡하게 말했다. “그건 친척의 돈이니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쉽게 말할 수 없네.” 뜻밖에 남편이 술기운에 나의 부모님과 남동생에게 욕했다. “모두 나가!”

이번에 나는 정말 속상하여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남편이 너무 철없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수년간의 모든 억울함과 슬픔이 모두 올라왔고 한 건씩 뒤집어 나왔다. 우리가 결혼한 날 남편은 내 어머니에게 화를 냈고 어머니가 밤낮없이 나의 산후조리를 했지만, 그는 기분 나쁘면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결혼할 때 남편이 차가 없어 나의 부모님이 그에게 자동차를 사주었는데, 그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곳곳에 다니면서도 우리 부모님이 1년에 한 번 와도 한 번도 맞이하러 가지 않아 매번 내가 택시 타고 나가 우리 부모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나는 축축하고 습하고 더러운 작은 여관에 있으면서 성 소재지 병원에서 시아버님을 한 달간 돌봐드렸는데 우리 부모님이 몇 마디 말을 했다고 나를 여섯 시간 욕했다.

오늘은 설날인데 그는 더 심했다. 나는 생각할수록 억울했고 보람 없다고 여겼으며 불평했다. 부모가 없었다면 나는 한 바탕 크게 울었을 것이다. 남동생은 화가 나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가려 했다. 나는 한편으로 남동생을 끌어당겼고 한편으로 남편을 말렸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남편도 본인이 지나친 것을 의식하고 돌아서서 부모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제가 많이 마셨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체면때문에 말을 돌려 내가 수련하는 일을 문제 삼고 내가 연공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에 돌아간 후 남편은 또 나를 반나절 욕하고 나의 부모님이 간 후 이혼하러 가자고 위협하면서 꼭 이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모두 수련인이기에 나를 설득했다. “그가 술에 취한 거니까 그를 원망하지 말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라.” 남편은 욕하다 지쳐서 눕자마자 잤다. 나는 고통스럽고 분노하여 한밤중에도 잠잘 수 없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여전히 내가 어딘가가 옳지 않은 것이다. 대법제자와 속인이 모순이 있으면 그건 대법제자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디가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뭘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알았다. 정이었다. 가족에 대한 정이었다.

나는 가족 관계는 품위 있고 조화로우며 따뜻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부모는 반드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나는 생활 속에서 부모에게 대든 적이 없었고, 효도하지 않는 모든 행위를 매우 싫어했다. 오늘 나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언행이 모두 일어났다. 이는 나의 내심을 강하게 충격하여 참을 수 없었고 불평, 원망과 미움이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련은 다른 사람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선을 권해야지 원망해서는 안 된다. 친정 식구가 간 후 나는 남편에게 14페이지 되는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나는 요 몇 해 동안 겪은 각종 가정 난, 평소 부부가 참을 수 없는 고비와 난을 하나씩 그에게 열거했다. 나는 원래 체면이 서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 중급 간부에서 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과정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솔직히 말했다. 사람을 질식하게 하는 결혼생활에서 나는 여러 번 이제 더는 못 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진선인에 대한 신념이 나를 버티게 했고 시어머니와 남편의 각종 비난을 거듭 포용했다.

편지에서 나는 “이전에 밤새 잠을 못 잤고 조금만 배고파도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는데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여 좋아진 거잖아요? 내가 좋아졌는데 나에게 연공하여 나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라고 강요하고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데 어찌 가능할까요? 파룬따파는 나에게 혜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온 가족에도 혜택을 주었어요. 이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나의 인내로 혜택을 보았는데 나를 인내하게 한 파룬따파에 분명하게 명분을 잡아주지 않는 이것은 군자의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어찌 당신을 존경할 수 있겠어요?”라고 썼다.

“요 몇 해 결혼 생활에서 나는 자신에게 포용하자.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아낌없이 대가를 치르고 손해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깨워주었어요. 6년 동안의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나는 확실히 이렇게 했기에 이번 결혼에 나는 후회도 원망도 없어요. 포기할 수 있는 것을 나는 다 포기했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양보했어요. 결과가 어떠한 지에 관하여 나는 최악의 계획을 세운 적이 있어요.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지만, 이혼이 두렵지 않아요. 내가 수련하여 체포될 수 있는 꼬투리가 있어 내가 여러모로 인내하고 관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선량함과 포용은 아무나 짓밟고 모욕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편지를 본 첫날 밤에 여전히 나를 욕했다. 이튿날 이후 그는 점점 침묵했고 점점 냉정해졌다. 나중에 그는 말했다. “나는 정말 너무 놀랐고 갑자기 납득이 됐소. 내가 잘하지 못했소. 앞으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요.”

어느 날 밤, 그는 술을 좀 마시고 기어이 나에게 고백하겠다고 했다. 나는 여러 번 그에게 자라고 했지만, 그는 자지 않고 말했다. “고맙소, 여보, 진심으로 당신에게 감사드리오. 내가 누구와 살던 당신만큼 좋지 않을 거요.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은 좋은 아들과 좋은 아내가 있기 때문이오. 근심하지 마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당신을 대하지 않고 그렇게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대하지 않을 거요. 나는 처남이 잘 살길 바라오. 당신 남편은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오. 앞으로 나는 그들을 꼭 잘 대할 거요.”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

이런 말을 남편은 나에게 한 번 또 한 번 거듭 말했고 나는 내심으로부터 감동했다. 남편도 정말 말한 대로 했다.

작년 여름, 나의 부모님이 다시 우리 집에 왔을 때 남편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매일 차를 몰고 그들을 태우고 관광하러 나가 주변 관광지를 다 돌았다. 그는 나에게 거듭 당부했다. “장인, 장모님이 오래간만에 오셨는데 아까워하지 말고 드시고 싶은 걸 다 사요. 절대 장인, 장모님이 돈을 쓰게 하지 말아요.”

설이 되면 남편은 자발적으로 영상통화를 하여 나의 부모님에게 새해 인사했고 처남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여자 친구가 생겼어? 빨리 결혼해. 빨리 아이가 있어야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시름 놓으시지.” 섣달그믐날 이종사촌 언니 집에 설 쇠러 갈 때 그는 “당신 친정집에 설 쇠러 가는 데 돈을 얼마를 써도 아깝지 않으니 좋은 거로 사야 해.” 우리는 많은 선물을 사 들고 이종사촌 언니 집에 갔는데 남편은 본의 아니게 많이 마셔 돌아온 후 후회하며 말했다. “나는 종일 괴로웠소. 원래 잘 표현하려 했는데 또 당신의 체면을 깎았구먼.”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창피하지 않아요. 모두 집안사람인데 괜찮아요.” 그는 더는 술기운을 빌어 미친 척하지 않았고 술을 마신 후 절제할 줄 알았으며 취하게 마실 때가 적었다.

남편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지만, 안으로 찾을 줄 알았고 가정을 지킬 줄 알았다. 그는 자율적으로 집안일을 분담했다. 예를 들면 내가 설거지할 때 가서 이불을 갰고 가끔 나를 도와 바닥을 닦고 설거지를 했으며 아이 공부를 도와주었다. 매일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왔으며 내가 힘들어할까 봐 나에게 로봇 청소기를 사주었고 아들에게 “점심에 엄마가 번거롭게 너에게 도시락을 싸주게 하지 말고 학교에서 영양식을 먹어라”라고 설득했다.

남편은 나에게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점을 살펴보고 제때 고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솔직하고 성실하며 선량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했다. 나의 진상 알리기를 더는 관여하지 않았고 수련생이 오면 그는 매우 자연스럽게 인사했다. 나는 집에 파룬궁 진상 자료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를 설치했다. 나의 수련 환경은 점점 여유가 있었고 가정 분위기도 점점 조화로워졌다.

남편은 종종 부모, 친구, 동료 앞에서 나를 칭찬했다. “그동안 집사람 덕분입니다.” 남편 친구들 눈에는 우리 두 사람은 행복하고 화목한 부부고 심지어 혼인 위기를 처리하는 ‘고수’이며 그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다. 그의 사촌 형은 자주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 “두 사람은 어떻게 지낸 거야?” 남편은 내가 대법 수련에서 얻은 체험을 말했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자기를 바꾸어야 하는’ 이치를 친척, 친구와 동료에게 나누었다. 자신의 직접 겪은 사실로 그들에게 아내를 이해하고 가정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남편은 자발적으로 나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주어 나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했고 우리 수입도 많아져 삶이 더 향상되었다. 가족들은 모두 “이것은 대법을 수련하여 복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와 남편 관계는 2년에 한 번씩 비약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당초의 서로 어울리지 못하던 데에서 서로 이해했다. 우리 이 8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진선인이 우리 집을 깨끗하게 씻어주었고 남편은 파룬따파의 자비로움 속에서 은연중에 조금씩 파룬따파의 세례를 받아 기꺼이 나를 따라 배웠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을 줄 알았으며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보고 더 넓은 흉금을 가지게 됐다.

8년 동안 직접 겪은 일에서 나는 얼마나 첨예한 모순이든 얼마나 절망적인 시간이든 모두 진선인의 우주 진리를 굳게 믿고 사부님 말씀대로 하고 진정으로 파룬따파로 자신을 바로잡으면 반드시 “겹겹의 산과 수많은 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마치 앞에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라는 것을 체험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발표: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30/4260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