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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내려놓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하는 사람에게 어떤 마음이 많으면 대응하는 관이 많아지고, 어떤 관념이 깊으면 그에 대응하는 대가도 적지 않다. 나는 걱정하는 마음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평소에 자식들, 형제자매, 함께 수련하는 수련생, 친인척, 친구 등에 대해 늘 걱정하며 항상 전화해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때로는 가부좌하거나 포륜 동작을 할 때도 잡생각이 아주 많이 떠올랐다.

최근 들어 법공부하면서 나는 인식하게 됐다. 매 개인은 역사 무대에서 모두 하나의 역할이 있다. 가장 친근한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데 누가 타인을 개변할 수 있고 좌우할 수 있겠는가? 걱정으로 파생된 많은 사람 마음과 관념은 자신의 수련에 적지 않은 시끄러움을 초래했다.

자신이 누구를 거슬리게 여기거나 좌우하려 하거나 누구를 대신해 무엇을 하려는 등등은 모두 이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날 쉽게 바꿀 수 있을까? 답은 불가능이었다. 그럼 내가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답은 더욱더 불가능이었다. 생명은 모두 자신의 독립적인 개성, 성격, 타고난 특성이 있으며 부동한 대궁(大穹)의 특징을 갖고 있다. 대법을 제외하면 무엇이 한 생명을 개변시킬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자 걱정하는 마음이 아주 많이 담담해졌다.

‘걱정’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서 사람들은 그것의 나쁨을 인식하기가 아주 어렵다. 애착하는 마음의 체현으로 간주하고 쉽게 홀시하는 것이다. 그것도 생명이고 때로는 우리에게 강렬하게 ‘생각’하도록 하며 생각할수록 더욱 커진다.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해 그것을 배척해야만 끊임없이 적어지는 것이다.

어릴 때 어른들은 ‘하느님은 눈먼 참새도 굶어 죽지 않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마음속으로 ‘눈먼 참새가 어찌 먹이를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 수 있지?’라는 걱정이 있었다. 수련하면서 비로소 참새가 눈이 멀어도 신께서는 참새에게 굶어 죽지 않게 살길을 열어주시는데 이것은 업을 갚는 것이고 하늘의 이치임을 알게 됐다. 하늘이 누구에게 불공평하게 대하겠는가?

명백히 말하면 걱정은 바로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아주 깊은 정이자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함정과 다름없는 것이다. 알고 나면 ‘걱정’에서 맴돌지 않고 이런 염두가 다시 나올 때 그것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즉시 제거해 버릴 수 있다. 정이라는 실타래가 올라올 때 따라가지 말고 즉각 깨끗이 제거하자! 정진할수록 힘들지 않고 나태할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때로는 숨을 한번 돌리고 안일해지려 하지만 나중에 따라잡으려면 오히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혀 쓸모없는 ‘걱정’이라는 마음속에서 맴돌지 말자.

개인의 현재 층차에서의 작고 옅은 인식이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27/4210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