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몇 년간 저는 여러 대법 항목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실증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갖가지 집착심이 끊임없이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제가 지난 1년여간 체득한 수련 경험입니다.
1. 대학 졸업 후 직업 선택에서의 심성 시험
저는 작년 5월 말 매체 업무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정확히 1년이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수학 통계학을 전공했는데, 이론과 프로그래밍 분야라 매체나 경제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졸업 전에 매체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졸업 후 매체에서 전임으로 일할 수 있는지 문의했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망설였습니다. 단순히 전공이 맞지 않아서만이 아니라 이전 매체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학업 중에도 저는 가끔 매체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그것 역시 제 전공과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상당한 압박감을 주는 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매체 실습을 마친 후 저는 스스로에게 ‘앞으로 다시는 매체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서는 항상 매체 업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저는 더욱 이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체 수련생이 다시 저를 찾아왔을 때 저는 거절할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면접 후 담당 수련생이 말씀해 주신 매체에 대한 견해가 제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지금은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씀이 제 관념을 흔들어 놓았고 저는 과연 무엇이 저를 매체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지, 무엇이 저를 가로막고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과정에서, 제가 매체 참여를 주저했던 가장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매체의 업무 방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전공이 전혀 다른 상태에서 기초 없이 시작하는 일이었기에, 업무 교육이 없을까 봐, 처음부터 너무 큰 압박을 받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습니다. 하지만 발정념을 통해 이런 관념을 제거하면서 점차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먼저 일반 회사에 들어가 전공을 살리는 업무 경험을 쌓은 뒤, 나중에 대법 항목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나중에 항목으로 돌아올 거라면, 일찍 참여하든 늦게 참여하든, 어느 항목에 참여하든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일체 일은 다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전법륜법해-광저우 설법 문답풀이)라는 설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매체 수련생이 저를 찾아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저를 불편하게 했던 고비와 어려움들도, 만약 그것이 제가 넘어야 할 고비이고 심성을 제고해야 할 관문이라면, 환경만 바뀐다고 약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피할 수 없을 바에야 왜 담담하게 마주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런 생각 끝에 마침내 매체로 돌아가 전임으로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체 항목에 막 합류했을 때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주변의 또래 친구들이나 어른들 대부분이 왜 매체를 선택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겉으로는 제가 매체에 참여한 이유를 묻는 것 같았지만, 말투에서 그들이 제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심지어 매체에서 함께 일하는 수련생 중 일부도 왜 일반 회사에 가지 않고 하필 매체를 선택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수련생들에게 매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같은 질문을 하자, 어쩌면 저에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이미 매체를 선택했고 앞으로도 계속 일할 것처럼 보였지만 누군가가 “왜 전공을 살려 일반 회사에서 일하지 않아?” “데이터 분석 일을 하면 급여도 더 높을 텐데?”라고 묻기만 해도 제 마음이 흔들렸고, ‘혹시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확고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곧바로 주변 사람들의 이해 부족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확고히 다잡기 시작했고, 사부님께서 제게 안배해 주신 길이 분명히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제 안에 뒤섞여 있던 온갖 생각들을 내려놓자 주변에서 들려오던 소리들도 점점 잦아들더니 결국 사라졌고, 지금까지 제 마음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2. 무조건 안으로 찾으며 원망심을 제거하다
제가 전업으로 매체 항목에 참여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일 중 하나는, 모두가 수련생인 환경에서 수련생과 마주할 때 무조건 안으로 찾기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줄곧 하나의 매우 좋지 않은 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수련생과 고비를 넘는 것이 일반인과 고비를 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한 수련생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그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며 수련생과의 고비가 가장 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인과 갈등이 생기면 저는 철저히 안으로 찾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수련생과 갈등이 생겨 그것을 넘기려 할 때는, 비록 먼저 나 자신을 찾아보긴 해도 곧바로 상대의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우리는 모두 같은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모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해야 하는데, 당신은 왜 진선인대로 하지 않는 거지? 당신의 그런 행동은 너무나 명백하게 법에 부합하지 않아’ 등등 자신이 매우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상대방을 찾을 때가 자신을 찾을 때보다 더욱 깊이 들어갔습니다. 수련생은 제 불평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조건 안으로 찾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나요?” 저는 잠시 생각한 뒤 “네, 저는 첫 번째로 저 자신을 찾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건 무조건 안으로 찾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안으로 찾기는 조건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멍해졌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안으로 찾기가 사실은 상대방을 탓하는 마음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했던, 이른바 ‘안으로 찾기’는 매우 형식적이었고, 마치 자신을 변명하거나 빠져나가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안으로 찾은 다음 본격적으로 상대방을 지적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좋지 않은 관념은 결과적으로 제 안의 강한 원망심을 자극하게 되었고,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늘 한두 마디 불평을 내뱉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저는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협조하고 있는 다른 항목에서, 한번은 다른 수련생에게 또 다른 수련생이 왜 항목에 협조하지 않는지 불평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원망심이 매우 강했던 저는 그 수련생이 협조하지 않은 여러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았습니다. 심지어는 재작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일까지도 언급했습니다. 비록 불평을 한 후 이런 원망심이 좋지 않다고 느꼈고 마땅히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이 옳다’는 관점에서 고려했습니다.
얼마 후, 제가 불평했던 그 수련생이 큰 팀에서 발표를 했는데, 그 기간의 수련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수련생은 그 시기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큰 고비를 넘고 있었고, 본인의 상황도 이미 어려운데 항목의 압박까지 짊어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의 교류를 들은 뒤 저는 깊이 후회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그 시기 정말로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계셨는데, 저는 그런 분을 협조하지 않는다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당시 제가 그분께 원망심을 가졌던 것은 정말로 부적절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 안에 있는 ‘사심’을 더욱 명확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수련생에 대해 지녀야 할 자비심은 어디로 간 걸까요? 저는 그 수련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더욱이 사정의 전모를 알지 못한 채 상대방을 원망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 수련생이 당시 협조하지 않는 듯이 보였던 것은, 어쩌면 제 말투가 너무 강했고 그분의 입장에서 당시 처지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니었을까요?
그때부터 저는 제 안의 원망심을 억제하고 제거하려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유사한 상황이 생길 때면, 저는 우선 ‘그 수련생에게도 정말 어떤 사정이 생겼거나, 지금 매우 힘든 심성 고비를 넘고 있는 중이어서 제때 협조하지 못했거나 예정된 시간에 어떤 작업을 끝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혹시 어떤 어려움은 없는지,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는지 먼저 묻기도 합니다.
3. 청년 수련생들의 단체 법공부 조직하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매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매일 고정된 두세 명의 수련생과만 함께 법공부를 했고, 청년팀 수련생들과는 함께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청년팀 법공부는 다른 수련생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수련생이 한동안 토론토에 있지 않아 그 일을 더 이상 맡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해서 청년팀 법공부 상황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매체에 들어간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저녁마다 매체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게 되었고, 가끔 청년팀 법공부 방에 들러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함께하고 있는지를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저는 다시 청년 수련생들의 법공부 조직 책임을 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대면해서 법공부하기 어려운 수련생이거나, 어떤 항목에도 속해 있지 않아 단체법공부 환경이 없는 청년 수련생들에게 안정적인 법공부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저 그런 생각만 있었을 뿐 그것을 곧바로 실천에 옮길 만큼의 확고한 의지는 부족했습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수련생 중에는 업무로 바쁘거나 항목으로 바쁜 경우가 많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찾기 어렵습니다. 저만 해도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은 항목 법공부가 있고, 금요일에는 큰 팀 법공부, 토요일에는 청년팀 법공부 교류가 있어, 일주일 중 단 3일만 청년팀 법공부 방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청년 수련생들이나 장년 수련생들께서 저를 찾아와 “청년 수련생들의 단체 법공부가 있나요?”라고 물으며 본인 혹은 자녀를 참여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몇몇 수련생들과 청년 수련생들의 현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서둘러 고정된 법공부 팀을 구성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 도착해 물컵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심코 제 자리 근처에 있는 화장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휴게실로 향했습니다. 컵을 다 씻고 나가려는 찰나, 한 청년 수련생이 휴게실로 들어왔습니다. 그 수련생이 제게 “혹시 저희 법공부 팀에 함께 하실 생각 있으세요? 다 아시는 청년 수련생들이에요”라고 물어 저는 몇 시쯤 하는지 물었고, 그 수련생은 8시 30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바로 기쁜 마음으로 “혹시 시간을 저녁 9시로 조정할 수 있을까요? 그럼 아예 청년 수련생들의 고정 법공부 시간으로 함께 조직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물었고, 그 수련생은 기꺼이 동의해 주었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제 심장은 계속해서 두근거렸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평소에 아침 일찍 휴게실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고, 그 수련생과 마주치는 일도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법공부 팀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을 보셨는데, 제가 오랫동안 실천에 옮기지 못하자 이 수련생을 통해 저를 밀어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기에 마치 우연의 일치 같지만, 사실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였습니다. 사부님의 절묘한 안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 청년 수련생들의 법공부는 고정된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매일 저녁에 먼저 각지 설법을 공부한 다음 ‘전법륜’을 한 강의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단체 법공부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 외에도, 청년 수련생들은 매주 토요일 저녁에 법공부를 마친 후 심득 교류를 하고 있으며, 해마다 캐나다 법회가 열리기 전에는 자체적으로 소규모 법회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각자 대법 항목에 참여하면서 느낀 감회와 반성을 서로 교류합니다. 예를 들면, 션윈 기간 중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다가 션윈에 깊은 관심을 보인 상점 주인을 만난 이야기, 극장에서 대법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관객을 만난 이야기, 전시 부스에서 수련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인연 있는 중생을 만난 이야기, 혹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서 대법을 알리는 과정에서 마주한 저항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상을 알린 이야기 등등, 이러한 다양한 체득과 이야기들을 들으며, 저는 제 또래의 청년 대법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교류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그 교류 내용이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한마디 말이 제 마음을 울리거나, 제가 자신의 집착에 직면했을 때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청년팀 수련생들 사이에서는 점차 ‘비학비수(比學比修)’하고 ‘공동정진’하는 수련 환경이 형성되었습니다.
맺음말
제가 일하는 책상 위에는 작은 팻말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그 위에는 사부님께서 ‘홍음2’에서 ‘가로막지 못하리(無阻)’라는 시에서 말씀하신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저는 매번 넘기 어려운 관문을 겪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대법 항목이 순조롭지 않을 때마다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홍음2-가로막지 못하리)라는 이 말씀을 떠올립니다. 반드시 자신의 어떤 집착심이 일을 순조롭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아가 언제나 무조건 안으로 찾으라고 자신을 상기시킵니다.
이상은 제가 지난 1년간 수련하며 체득한 것으로, 제 층차는 제한되어 있어 부적절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2025년 캐나다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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