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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글/ 중국 장쑤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손자병법 총 13편 중 마지막 편인 ‘용간(用間)’에서 손자는 말했다. “이렇게 몇 년을 버티는 것이 바로 결승전 그날을 위한 싸움이다. 벼슬과 금전을 너무 중시하고 적의 상황(敵情)을 파악하지 못하면 참으로 어질지 못한 것으로 그런 자는 군 장수도 아니며 군주를 보좌하지도 않으며 승리자도 될 수 없다. 현명한 군주와 장수가 출병하면 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을 능가하는 공적이 있었기에 적의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의 상황을 미리 알기란 신에게 빌거나 귀신에게 물어볼 수도 없으며, 표상만 봐서도 알 수 없고, 해와 달, 별자리의 운행 위치로 검증할 수도 없고, 반드시 적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

이 단락은 내게 이런 생각이 들게 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흐리멍덩해서 제정신이 아니면 안 되고 명명백백해야 한다. 간단한 예로, 집에서 운전해 나가려면 차를 출발하기 전에 타이어를 점검해야 한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상식적으로 행동하되 특수한 상황에서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나는 일을 하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가정생활에서 사악과 맞서고 싸울 때 항상 법에서 사고하고 자신을 잘 파악하며, 깨달은 법과 나의 사상을 결합해 반영(즉 대법에 동화된 것과 동화되지 못한 것의 차이, 느낌, 심태 및 외적인 표정과 행위의 표현)했는데 아주 뚜렷한 효과가 있었다. 바로 점진적으로 나의 사상은 대법의 지도로 법에 녹아들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을 제대로 구하려면 ‘전법륜(轉法輪)’ 대법과 ‘9평’을 나의 사상, 생활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대법의 지도하에 분석하고 사고하고 행동하며, 문제를 보며 제고하여 돌파해야 한다.

최근 밍후이왕에 참 좋은 문장 몇 편이 올라왔다. 예를 들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라는 문장이었다. 필자는 법 공부, 법 암기와 실제 수련이 어떻게 연계됐는지 서술했는데 세부적인 내용도 참 좋았다.

예를 들어 ‘관심도에서 생각해 본 것’과 ‘대선과 사람을 구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생각’, 이 두 문장은 하루 이틀 간격으로 올라왔는데, 이를 통해 일부 해외 대법제자들의 일부 상황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두드러지고 보편적으로 반영된 하나의 문제(중국에 있는 대법 수련생에게도 보편적으로 존재. 예를 들면 ‘션윈을 보는 마음과 결과’에서 이와 유사하게 반영된 문제를 알 수 있음), 바로 대법제자는 ‘결국’ 누구를 위해 수련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중공 사당을 적으로 본다면(물론 수련인에게는 적이 없지만, 정사대전은 적과 아군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적에게 포위당하고도 어떤 사람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내가 도망갈 수 있게 길을 좀 내주면 좋겠는데!’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오히려 살 수 있는 길은 ‘전법륜’에 있고 ‘9평’에 있으며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세 가지 일에 있다는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절대 관망해서는 안 된다. 일시적인 슬럼프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대법 서적를 많이 보고, 사부님의 9일강의 녹음을 많이 듣고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홍루몽의 임대옥처럼 눈물 흘리고, 감상적이고, ‘대선의 공평 불공평을 둘러싸고’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을 안다. 또,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있다.

우리는 자신을 잘 수련하는 동시에 대법을 실증하고 수많은 중생을 구하고 있으며 인류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층차의 제한이 있으므로 사고에 참고하시기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2/4215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