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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중에서 사람을 구할 때 왜 쉽게 높이 말하는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전 세계에서 중공(中共) 바이러스가 이미 1년 넘게 유행하고 있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할 때 다 알고 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파룬궁 진상, 중공 사당(邪黨) 버리기, 9자 진언(眞言) 읽기 등이다. 그러나 현재 수련생이 대면해 진상을 알리거나 대법제자가 만든 매체 프로그램에서 한 가지 보편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쉽게 높이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입을 열자마자 자주 신이나 창세주를 언급한다. 미국 대선에서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1. 조급함은 정이고 정념이 아니다

그중 한 가지 원인은 여러분의 마음이 매우 조급하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을 구하지만 역시 집착이 있다. 조급함은 사람이 정(情) 중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정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왕왕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조급함은 틀림없이 정념이 아니고 더욱이 사악한 요소를 해체해 속인의 구원을 도와줄 에너지가 없다. 법리(法理)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조급함은 우리의 좋은 부분이나 지혜를 제약할 수 있다. 실천 중에서 자신의 수년간 수련의 실제 수련체험을 쉽게 말하고 속인에게 높이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는 인류사회는 도덕 수준이 매우 낮다. 지금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으며 믿더라도 역시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속인의 사상은 금전, 정욕, 자아, 과학이 차지했다. 단지 특별하게 이해한 속인에게만 신을 믿는 방면으로 진상을 알릴 수 있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당신의 이처럼 높은 경지 중의 말을 그에게 해준다면 효과는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속인이기 때문이다. 속인은 매일 주식에 주목하며, 다른 사람과 암투를 벌이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서로 빼앗고 조금만 얻어도 기뻐서 야단인가 하면, 조금 잃으면 고통스러워 야단이다. 속인 중에서 제멋대로이고 칠정육욕이 구전(俱全)한 이것이 바로 속인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많은 수련생이 현 단계에서 모두 쉽게 높이 말하고 게다가 익숙해지는 추세를 보아서 매우 괴롭다. 이때 ‘전법륜(轉法輪)’이 나에게 신기한 깨달음을 주었다. 비록 백 번 넘게 읽었지만 처음으로 이런 각도에서 대법을 이해했다. 나는 ‘전법륜’ 중에는 어느 한 강의, 어느 한 마디, 어느 한 단락에서도 글자로 수련생에게 신(神)을 믿으라고 한 적이 없는 것을 보았다. 신께서 정하는 것에 따라 해야 한다거나 신에 의해 어떻게 될지 등등 그런 말씀이 없다.

나는 자신의 수련 과정을 생각했다.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점점 명리정(名·利·情)을 버리고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고 인생 중의 본질적인 이치를 인식한 후 세계관, 인생관에 차츰차츰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고 최후에는 마음속으로 확고하게 신을 믿고 신사신법(信師信法)했다. 오랜 시간 질서 있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사부님께서 법리로 나를 이끄신 과정이고 역시 내 머릿속의 미혹을 하나하나씩 타파하시는 과정이었다.

그럼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대법제자를 이끄시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모두 이치를 말하는 방식으로, 사람의 이런 관념을 이해하여 당신의 장애를 타파하는 이런 방법으로 말함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우주의 이치를 인식하게 했다.”[2]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잘 생각해야 하고 현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내용으로 진상을 알려야 한다. 당연히 먼저 조급하고 급박한 속인의 정서를 억제해야 한다.

2. 마음을 쓰고(用心), 자비(慈悲)를 수련해내다

높이 말하는 것은 다른 한 가지 원인이 있다. 즉 구원될 사람을 마음속으로부터 진심으로 대하는가, 아니면 타인을 자신이나 자신의 관념으로 대하는가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비를 수련하고 진상을 알리는 데 마음을 쓰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겠다. 현재 어떤 사람이 강에 빠졌는데 홍수에 곧 떠내려갈 것이다. 우리는 다리 위에서 그를 보면서 어떻게 구할지 생각한다. 허리를 굽혀서 그를 붙잡을까? 대나무 장대를 건네줄까? 아니면 직접 강에 뛰어들까? 아니면 배를 저어 갈까? 그를 구할 때 우리는 그의 체력이 어떤지, 물의 온도가 어떤지, 그가 얼마나 견지할 수 있는지 등등을 고려했는가? 혹은 다리에 서서 그에게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당신은 버텨야 합니다! 당신이 열심히 팔을 저어야 합니다!” 도대체 어떤 마음과 행동이 있어야 그를 구할 수 있을까?

이 간단한 사례에서 우리는 똑똑히 우리 자신의 자비를 수련해냈는가? 선타후아(先他後我)했는가? 사람을 구하는 데 도대체 마음을 어느 정도 썼는가? 우리는 마음을 써서 사람을 구하는 이치, 각도와 방식을 찾았는가? 만약 우리가 높이 말하는 것이 자기 마음에는 들지만 도리어 인연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해서 오히려 구원받지 못했다면, 이것은 마치 우리가 다리에서 팔짱을 끼고 큰소리로 외치지만 허리를 굽혀 강에 빠진 사람을 붙잡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3. 사람들에게 9자 진언(真言)을 읽으라고 권하는 좋은 두 가지 방법

현재 속인에게 생명이 위험에 처할 때 9자 진언을 읽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이 인정받고 있다.

1. 실증과학의 태도. 9자 진언을 읽은 중증 환자가 완치됐는데 이런 일은 진실하게 발생했고 국내외 모두 많이 있다. 게다가 읽는다고 손실을 보거나 안전하지 못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들은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중시할 것이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신에게 생존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이 방법은 현실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2. 물리학의 진동 주파수 각도로 설명한다. 사부님께서 “사람의 사유는 일종 정보이고 일종 에너지이며, 물질이 존재하는 한 형식이다. 사람이 문제를 생각하고 사유할 때 대뇌에서 일종 주파수가 생긴다. 때로는 주문을 외우면 아주 효력이 있는데, 무엇 때문인가? 우주도 그의 진동 주파수가 있으므로 당신이 외운 주문이 우주의 주파수와 공진(共振)을 일으킬 때 곧 효과가 나올 수 있다.”[3]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물리학 개념을 결합해 9자 진언을 설명하고 사람의 건강 상태를 바꿀 수 있는가? 가장 좋은 것은 간단명료한 방식이다. 우리가 설명하기 전에 스스로 이 이치를 잘 이해해야 한다. 설명할 때 가장 간단한 언어와 이치로 말해야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생생한 대화 방식은 상대방에게 편하게 생각하게 할 수 있다. 혹은 재밌는 이야기로 이 이치를 증명한다. 만약에 한 가지 정리(定理)처럼 엄격하고 지루하게 설명하면 이 설명 과정을 듣고 있는 사람은 재미가 없어서 도망치려고만 생각할 것이다. 이 방향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앞서 말한 내용을 종합한다. 만약에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방향이 올바르고 마음을 잘 쓰면 반드시 대법에서 더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속인을 더 쉽게 이해시켜 구원받게 할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창춘(長春)보도원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궁’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3/4215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