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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을 넘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사람들은 설을 쇤다는 말을 ‘설 대목을 넘는다’라고도 한다. 묵은 한 해를 잘 넘겨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2021년의 중국의 설 기간에 나도 몇 개의 심성 고비를 연달아 돌파했으니 명실상부하게 설 관문을 넘은 것이다.

멀리 중국에 있는 아버지께 전화하다

중국에 있는 가족들이 위챗에 대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사진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출국 전 국내에서 설을 쇠던 당시의 시끌벅적한 장면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인정에 이끌린 것이다. 그리하여 국내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했다.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눈물이 나오고 진한 그리움이 나를 감쌌다.

나와 아버지는 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나는 90년대생으로 중국을 떠날 때는 아직 어린 소녀였는데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여러 해 전에 이혼하셨다. 아버지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우리에게 관심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이혼하자 나를 데리고 중국을 떠나셨다. 해외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아 오랫동안 모녀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점차 가시어져서 먼저 전화를 걸어 관심을 보였고, 아버지가 전화에서 때때로 싫은 소리를 하고 나를 원망해도 참고 참았다. 한 번은 전화로 “내가 전화에서 싫은 소리 해도 화내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다.

올 설에 전화가 연결된 순간 감정이 북받쳐 왔고, 울먹이는 걸 눈치챘는지 아버지도 더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두어 마디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전화를 끊은 후 둑을 무너뜨린 홍수처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다른 한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관문(고비)이며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부께서 말씀하셨다. “‘정(情)’이란 글자는 놓기가 매우 힘들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사람은 모두 자기의 사상 감정을 자기 신체 중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생각을 통해 생긴 것이라고 여기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정’은 바로 가장 이지적이지 못한 반응이다. 당신들이 무릇 ‘정’에 의해 이끌릴 때 당신들은 전혀 이지적이지 않다.”[1]

‘정’은 이기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정(私情)’이라고 한다. 내가 정에 이끌리는 것은 사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정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얼마를 주든 미래에는 보답을 받기 위한 것으로 조건과 대가(代價), 목적이 있다. 그것이 사(私)이기에 그것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조건도 대가도 목적도 없이, 사심 없이 남에게 베푸는 것뿐이다. 중국에 진상을 알리는 전화를 했다.

섣달그믐날이라 집집이 설날의 기쁨에 잠겨 있었다. 축복을 보내며 삼퇴를 권하자 평소보다 삼퇴율이 높았다. 나는 가부좌하여 움직이지 않고 세 시간 반 동안 전화하여 많은 사람을 탈퇴시켰다. 전화를 다 하고 나니 환골탈태한 듯 정신이 맑고 상쾌하며 몸이 가벼웠다. 중국 사람들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고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내 마음에 매우 성취감이 넘치고 전에 없이 영광스러웠으며, 사부님께서 주신 설 선물에 깊이 감사드렸다.

정월 초하루에 ‘인(忍)’을 닦다

다음날 정월 초하루에 두 번째 고비가 이어졌다. 오전에 어머니께서 집에 오셔서 남편과 함께 만두를 빚었다. 설 명절은 매우 기쁜 날인데 어머니께서 듣기에 안 좋은 말씀을 하시기에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아 “설을 쇠는데 듣기 좋은 말을 좀 하세요”라고 했다. 참을 인을 행하지 못한 것이다. 이어서 갈등이 일어나 속으로 화를 참으며 만두를 먹었다.

오후에 수련생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나를 찾는다는 전화가 왔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련생이 나를 나무랐다. 당시 관련 수련생들이 모두 온라인 상태라 나는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떠나 좀 울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수련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명 당신이 잘하지 못했지만, 나는 당신과 똑같이 하지 않았고, 눈물을 참고 사과했는데도 당신이 이러니 수련자답지가 않아, 수련을 형편없이 했어. 이래 가지고도 협조인이야?!’라며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감정이 솟아 나왔다.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인데”[2] 이 이치를 알고는 있지만, 일에 부닥치면 정말로 참기 힘들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 와중에 또 머릿속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고, 또 조용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야 한다. 때때로 생각하다가, 안을 향해 자신을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예를 든 것처럼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야단이지만 입으로는 아직도 염불하고 있다. 당신이 말해 보라. 연공(煉功)할 수 있겠는가?”[3] 가장 중요한 것은 오성(悟性)을 제고해야 한다. 수련생의 문제와 부족한 점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야 한다. 자신은 수련인이기에 수련생을 수련시키면 안 된다. 수련생에게는 그의 수련 길이 있고 나는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닦아야 한다. 눈물을 참으며 법을 외웠다. “한신은 정말로 그의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갔다. 이는 한신이 대단한 대인지심이 있고, 그가 일반 속인과는 달라서 그는 비로소 이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은 체면을 살려야 한다는, 그것은 속인의 말이다.”[3]

이때 자신에게도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갈 수 있는 큰 인내심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난은 갑자기 온 데다가 기세가 맹렬해서 다음 날 오전 빠오룬(抱輪, 제2장공법 파룬쫭파)을 한 시간 했을 때야 수련생과 잘잘못을 따지고 승패를 다투려는 집착을 내려놓았다. 내려놓자마자 사상이 확 승화되고 자신의 심성도 승화된 기분이었다.

다년간 만나지 못한 친척과의 원한을 풀다

정월 초이틀 토요일, 연공을 마치고 오후에 예전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전화했다. 그러다가 서러운 감정이 또 올라와 울먹이는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몇 통화 못 하고 그만두었다. 만두를 먹으러 어머니 집에 갔더니 마침 어머니는 멀리 미국에 있는 막내 이모(어머니의 여동생)와 통화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감개가 무량했다.

2005년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외국으로 올 때는 막내 이모에게 의탁하러 왔다. 그때 이모는 아직 미국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외국어를 할 줄 모르고 나는 매우 어렸다. 이모네는 국외에 자신의 사업이 있어서 경제적 여건이 좋아, 어머니가 집에서 이모를 도와 아이를 돌보면 나는 외국에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것은 4년 후 내가 그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을 1년 남겨두고 이모네가 미국에 이민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한다. 이때 가면 내 학업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다. 어머니는 그들의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모는 자기의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막내 이모네 일가는 그들의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의지할 곳 없는 우리 모녀를 여기에 버리고 떠날 때 어머니가 요 몇 년 동안 그들의 집안일을 도와준 월급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친자매는 10여 년 동안 연락도 없고 전화도 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속에 매듭을 남겼다. 우리 모녀는 속으로 이모가 인정도 의리도 없는 사람이어서 친자매도 이렇게 버려두고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월 초이틀에 두 사람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다. 각자의 아이들은 이미 다 자랐고 두 사람도 할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는 대법을 수련했기에 마음속에 이모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점차 내려놓으셨다. 전화를 받은 후 이모가 눈물을 흘리자 오히려 어머니가 이모를 위로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너희들이 걱정되는데 잘 지냈어?” 두 자매는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수련인으로서의 활달함과 선의로써 이모를 감동하게 했다. 이모는 미국에서 대기원과 NTD의 열렬한 청취자였고, 어느 수련생이 만든 자체 미디어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했다. 어머니는 파룬따파는 진정한 정법정도(正法正道)라고 말씀하시면서 수련을 서둘러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이모는 조용히 모두 들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 두 사람은 앞으로 자주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나는 어머니와 이모의 대화를 들으며 감개무량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다치게 할 수 있다.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잊히거나 고의로 무시되겠지만 부딪히면 여전히 피가 흐른다.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에 대법의 자비와 지혜가 나와 어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상처를 씻어 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았다면 그 낙인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을 것이며, 애써 무시하거나 일부러 감추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 ‘진선인(真·善·忍)’은 이런 낙인을 싹 지우고 세 사람의(어머니, 이모, 나) 삶 사이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사부님의 시(詩)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사 어지러움 그 얼마이든가 쌓이고 쌓인 은혜와 원한 수없이 거쳐왔구나 마음은 악하고 업은 커 희망이 없으나 대법은 연원(淵源)을 모조리 풀어 가누나”

통화 끝에, 슈퍼우먼이며 나이가 든 막내 이모는 순진한 모습을 보이며 둘째 언니(나의 어머니)와의 옛 추억을 떠올렸다. 어떤 말은 입 밖에 내놓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투에는 원망과 불만이 없고 관심과 포용으로 가득 차 있어 이모는 매우 감동했다. 이모로 말하자면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한 것은 일종의 해탈이었고 큰 위안이었다.

일이 끝난 후 나는 “우리가 맨 처음 이 도시에 온 것은 이모 때문인데 오늘 이모와의 전화는 마침내 그 매듭을 풀었네요. 이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로, 이 과정을 마침내 원만하게 마무리 지었네요.”라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이렇게 사흘 동안 희비가 교차하는 가운데 눈물도 사흘 동안 끊이지 않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단련 속에서 승화되어 인간관계에 대해 더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생존 과정에서 삶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빚을 지고 갚는 윤회의 고해 속에서 기복은 끝이 없으니 정말로 고생이다. 하지만 이런 고통 속에서 사람이 계속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情) 속에 그 짧은 달콤함이라는 행복이 있어야 하고, 그러므로 계속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사람의 정은 고층 생명체들에 의해 업과 빚에 관계된 삶에 묶이게 하고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중생을 미혹시킬 뿐이다.

고해는 끝이 없다. 오직 파룬따파를 수련해야만 생명을 승화시킬 수 있고, 고해에 더는 침몰하지 않고 구원의 법선(法船)에 오를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대겁을 풀다’

 

원문발표: 2021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17/4210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