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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작은 일에서 사람 마음을 닦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부님께서는 “그러므로 흔히 오성(悟性)이 좋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많이 겪어야 하는데, 업력이 크고 오성이 차(差)하면 그는 수련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형식적으로 했기에 난관에 부딪히면 급히 넘으려고만 했지 자신을 법으로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심성을 제고하지 못해 마난과 고생을 적지 않게 겪었으며 마땅히 제고해야 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남과 다투다

아들은 사람을 만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결혼했습니다. 며느리와 며느리의 어머니는 겉으로 보면 의심이 많고 사귀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이 결혼하자 며느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결혼한 그해에 손녀가 태어났는데, 저는 아들과 며느리를 생각해서 언제든지 부르면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믐날 저는 아들에게 “며느리가 산후조리를 하고 있으니 설날에 함께 만두를 먹자. 내가 만두소와 반죽을 해서 너의 집으로 가서 만두를 빚을게”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그러세요”라고 했습니다. 설날 아침에 위아래가 바뀌어 내가 아들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손녀에게 세뱃돈도 주었습니다. 며느리로서는 마땅히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며느리는 아는 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인상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몹시 난처해서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마음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한 마음,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안사돈이 아들 집에 사는 질투심 등 사람 마음이 전부 나왔습니다. 그 괴로움은 말도 못 했습니다. 수련하기 전에 저는 체면을 중시하고 좋은 말을 듣기 좋아했으며, 다른 사람이 저를 존중해주기를 바랐고 명예를 아주 중시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법공부를 하고 있을 때, 며느리가 와달라고 했는데, 말투가 좀 이상했습니다. 며느리가 평소에 불쾌한 말을 자주 했기에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심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문에 들어서니 며느리와 안사돈은 잔뜩 화가 나서 거실에 서 있었는데, 마치 저를 보지 못한 것처럼 침실 침대에 앉아있는 아들에게 함께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얼른 안사돈을 위로하면서 화내지 말라고 하고 며느리를 달랬습니다. 안사돈과 며느리는 제 말을 듣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습니다. 그때 아들은 안사돈에게 두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지만, 안사돈은 못 들은 척하면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저를 보더니 “엄마, 가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들의 팔에 벌겋게 긁힌 자국과 몹시 난처해하는 표정을 보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움직였고 잠을 깬 손녀를 안고 내려왔습니다. 아래층에서 한참 있었지만, 위에서는 다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움직여서 손녀를 안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며느리와 안사돈의 난폭함을 보자 저의 마성은 바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손녀를 며느리에게 밀어주고 며느리와 안사돈에게 소리쳤습니다. “왜 나를 부른 거야? 나더러 이런 꼴을 보라고?” 그리고 다시 아들에게 “너는 집에 와서 뭘 하는 거니? 밖에 나가 돈을 벌고 일이 없으면 들어오지 마”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안사돈과 며느리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반응이 없었는데, 제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순순히 저를 따라왔습니다. 저는 문이 열리지 않자 “문 열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들이 문을 열자 저는 문을 확 열면서 아들과 함께 나왔습니다. 아들은 차를 운전했고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자전거가 아주 무겁게 느껴졌고 마음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아직도 자신을 파악하지 못해 안사돈과 며느리에게 그렇게 화낸 것을 후회했습니다. 돌아오는 동안 계속 사람 마음과 수련인의 정념이 격렬하게 싸웠는데, 생각할수록 제가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구도 해내지 못해 정말 부끄럽고 사부님께 죄송했습니다. 대법제자가 속인과 모순이 생겼을 때 100% 대법제자의 잘못입니다. 생각할수록 후회가 돼 그 상황을 수습하려 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아들에게 빨리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한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며느리가 울고불고 난리 났다면서 아들에게 빨리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가고 나서 저는 법공부를 하려 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는 온통 안사돈과 며느리가 억지 부리는 모습이 떠올랐으며, 온밤을 한잠도 자지 못하고 후회했습니다. 전반 과정을 돌이켜보니 부끄러워 진땀이 났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정말로 그 고비를 넘길 수 없었습니다. 사람 마음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 표면으로 자신을 단속하려고 하니 매우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개변하기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이 한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진짜 달라졌습니다. 오직 대법만이 매사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저를 개변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달라지다

한동안 지나서 또 고험이 왔습니다. 며느리는 옷가게를 차리는데 타지에 가서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며느리가 물건을 들여온 다음 날, 저는 진상을 알리고 11시가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멀리서 두 모녀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자전거에서 내리면서 인사를 하자 며느리는 화가 나서 “전화기도 가져가지 않고 밖에 나가는데 전화기는 사서 뭐 해요? 오늘 제가 가게에 물건을 진열하는 걸 몰랐어요?”라고 소리 질렀고 아이를 저에게 맡기면서 바로 가버렸습니다. 저는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라고 했습니다. 안사돈은 “그러게요, 미리 전화했어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안사돈과 며느리가 돌아가고 저는 아이를 안고 올라갔는데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움직이면서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또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일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왔는데 저를 고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마터면 속을 뻔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은 아주 큰 집착이었고, 수련하기 전에 체면을 생명보다 중하게 여긴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게 강한 마음인데 수련한다고 해서 쉽게 제거되겠습니까? 틀림없이 고생을 겪어야만 제거가 가능합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나마 피해갈 수 있었지만, 며느리에게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책임이고 중생에 대한 책임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고 행동으로 보여주어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해야 합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는 것을 제외하고 저는 또 법을 외우고 있습니다. 법을 외우는 데 기초가 있어서 현재는 외우는 것도 빠릅니다. 법을 외우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심성을 제고하는 것도 빠르며 보람차다고 느낍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그에 맞는 법이 바로 생각납니다.

철저히 개변하다

대법은 이기적이고 선량하지 못했던 저를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손자를 통해 몇 번이나 관을 넘는 일을 겪었고 제가 많이 선량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할 줄 알고 마음은 더는 다른 데로 이끌리지 않았습니다. 손자가 젖을 떼지 않았을 때 며느리는 여행 때문에 아이를 저에게 맡겼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젖을 어떻게 먹이냐고 하자 며느리는 분유를 먹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2, 3일인데’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돌아와서 “이후부터 아이는 어머니가 맡아주세요. 젖을 끊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오후에 저의 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할 때 저는 수련생들에게 아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아이가 좀 어리고 아이를 맡으면 모든 일이 지체된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러 왔을 때 저는 “지금 젖을 끊기에는 아직 어리니 너무 모질게 하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어리지 않다고 하면서 내일 아이를 데리러 와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는 위챗 친구들에게 “보아하니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한 뜻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올렸습니다. 그리고 옆에 “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라는 이모티콘이 있었습니다.

딸은 저에게 “엄마는 대법제자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체면을 위해서 산다면, 사는 것이 힘들지 않겠는가?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가치가 있겠는가?”[1] 저는 딸에게 “별거 없어,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 내가 가서 아이를 데려올 거야. 나는 제고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며느리 집으로 가서 평온하게 안사돈과 며느리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기다렸죠?” 며느리는 좀 미안해했습니다. 아마 제가 그렇게 평온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얌전히 아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홀가분했고 그 강력한 물질이 없어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정말 제고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문제를 보는 것이 사람의 입장에서 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1]와 같았습니다.

대법의 지도로 며느리가 어떤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도 모두 참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와서 아이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수건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거나, 젖병을 들고 어떻게 닦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이불이 더러워졌다고 말하는 등이었습니다. 늘 그런 식이었지만 저는 참는 것이 저의 자존심과 남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정말 다른 사람들을 말하지 못하게 했고 누가 뭐라 하면 참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모두 괜찮습니다. 아무리 듣기 거북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고난 속의 광명

저의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며느리도 점차 바뀌었습니다. 집에 오면 까다롭게 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제 딸에게 “우리 어머님도 정말 쉽지 않으니 많이 이해해줘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 딸은 대학교에 다니는데, 며느리는 아들에게 매달 1500위안(한화 30만 원정도)씩 용돈을 주라고 했고 매달 정확하게 용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올여름 방학에 딸에게 운전학원에 등록해주었는데 며느리가 직접 계산했습니다.

저는 여러 번 며느리에게 진상을 알렸고, 며느리는 삼퇴(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에서 탈퇴)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세심하게 잘 돌보면서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기에 며느리는 매우 안심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가 영상에서 흐느끼며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는 인내심이 있는데 엄마는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손녀는 파룬궁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아주 적극적입니다. ‘전법륜’의 글자들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전법륜’을 받쳐 들고 저에게 읽어달라고 합니다. 저의 집에 올 때마다 함께 법공부를 하자고 합니다.

두 살이 넘는 손녀는 늘 맛있는 것을 책상에 놓으면서 “사부님 드세요”라고 말합니다. 사부님께 인사를 올릴 때 언제나 머리를 끝까지 조아립니다. 대법제자의 집에 가서 사부님의 법상을 보면 바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올립니다.

대법제자가 일하는 것은 공능이 작용을 일으킵니다. 오직 대법을 앞자리에 놓으면 무엇이든 지체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대부분 시간을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사용합니다. 아침 연공을 마치면 6시 발정념 하고 한 시간 동안 법을 외웁니다. 오전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점심에 아이가 낮잠 자면 저는 또 법을 외우고 발정념 합니다. 저녁에도 법공부하고 발정념 합니다. 어린 손자는 거의 우리 집에 있지만 저는 아주 바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 둘을 돌볼 때는 모두 함께 전동차를 타고 진상을 알리러 가는데, 진상 효과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오히려 사람 마음을 닦을 수 있습니다. 저는 큰일도 냉정하게 대할 수 있는데 왜 작은 일은 넘어가지 못하고 옥신각신하냐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머릿속에 작은 일을 개의치 않았기에, 사악이 그 틈을 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마다 모두 가정이 있는데, 가족은 선한 인연이든 악연이든 모두 대법제자가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원만으로 수련하기 위해 배치된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 수련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7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0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17/4148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