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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길을 바로잡아 준 파룬따파

글/ 중국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신성한 불광 속에서 나는 내가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수련 중 하찮고 작은 일 속에서도 대법을 실증할 수 있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은 있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금전에 직면하다

나는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출근할 때 내가 속한 부서는 풍족한 곳이었다. 세풍이 날로 떨어지는 거센 흐름 속에서 부서의 관리가 소홀한 데다 금전의 유혹을 받으니 선물을 받고, 금일봉을 받으며, 심지어 몰래 비용을 받는 것도 이미 하나의 정상적인 상태였다.

나는 씬씽(心性)을 지키며 탐하거나 취하지 않았고, 업무상 편리를 이용해 선물과 금일봉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요금을 내는 곳에서 사정이 생겨 잠시 요금을 받을 수 없으면 내가 환자를 도와서 받은 후 휴대전화에 메모해 두었다가 액면 그대로 윗사람에게 제출했다. 사실 내가 제출하지 않으면 부서의 누구도 그런 돈이 있는지를 몰랐고, 이렇게 사적으로 1년 동안 받는 돈이 그해 연봉보다도 많을 지경이었다! 아주 대단한 수입이었다. 나는 같은 부서의 한 동료가 아무 거리낌 없이 받는 것을 알았다. 다른 부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나의 마음은 그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도 조금의 동요도 일지 않았다. 그저 업을 쌓으면서도 알지 못하는 미혹 속의 중생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어리석다며, 공적인 것을 가지지 않는 건 바보라고 말했다. 또 나에게 선물을 주려다 거절당한 친구는 이해를 못 하겠다며 “아이고, 정말이네. 너는 인간 세상을 벗어났구나!”라고 말했다. 나는 만약 대법이 나를 바꾸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들보다 더 교묘한 수단으로 사리사욕을 취하고, 아마도 더 많은 것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사람들에게 내가 아주 고상하다거나, 나라는 사람이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하게 할 것이 아니라 대법을 실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기회를 이용해 이해 못 하는 동료나 친구에게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며, 파룬따파의 ‘진선인(真·善·忍)’ 법리가 나의 마음속에 이미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직장의 상사도 탐오하고 횡령하는 부패한 사람이어서 어떤 동료는 “그가 크게 탐오할 수 있는데, 일하는 우리가 왜 적은 돈을 가질 수 없겠어? 적은 월급에만 기대면서 상여금이나 복지도 없으니 살림이 힘들지….”라고 말했다.

다년간 수련해 온 나는 일찍이 그런 불평하는 마음을 버렸지만, 어쩌다 미약하나마 생각이 올라왔다. ‘국가의 돈을 그들에게 횡령당하기보다는 자료점에 가지고 가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낫겠지.’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곧 부정했다. 그건 불법(佛法)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파룬따파는 너무나 바르고, 조금이라도 바르지 못한 요소로 더럽혀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사람을 구하는 신성한 일에서는 더욱 바른길을 걸어야 하며, 어떠한 핑계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입고 먹는 것을 아끼고, 여유롭지 않은 자금을 이용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만, 우리의 돈은 깨끗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성실하면 파룬따파의 성결함이 일체의 부정확한 상태를 바로잡아 ‘진선인’의 법리로 현재의 사회에 하나의 정토(淨土)를 남기게 된다.

원한과 억울함에 직면하다

가정의 사소한 일 때문에 동서가 시어머니에게 원한을 품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시어머니와 화목하게 지냈다.

동서는 자신의 논리와 관념으로 일부 일을 짐작하면서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다며 시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였고, ‘사람이 싫으면 그 집 지붕 까마귀까지 싫어진다’ 듯이 감정을 나에게까지 전가했다. 동서가 자기 딸에게 말을 어떻게 함부로 했는지는 몰라도 질녀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집에 오더니 한바탕 울면서 원망했다. 말인즉 내가 두 달 동안 자기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고, 전화도 안 했다는 것이었다. 동서와 나 사이의 관계에서 내가 수련해야 할 요소에 대해서는 잠깐 이야기를 미루겠지만, 나는 질녀의 말을 듣고 정말 얼떨떨했다. 질녀가 말한 그 두 달 동안 나는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어 동서를 만나러 두 번이나 집으로 찾아갔고, 동서의 직장에도 한 번 찾아갔고,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한 번 만났다. 뜻밖에 닥친 억울한 상황에서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질녀에게 설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튿날 내가 질녀의 집으로 가니 마침 동서가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다음 날 선물을 사서 다시 찾아가 그들 모녀를 만났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넌 정말 대단해. 나였으면 그렇게 못해.”라고 말했다. 나는 “제가 대단한 게 어딨어요? 수련을 안 했으면 저도 그렇게 양보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원망하지 않는, 이게 모두 대법의 위덕이에요.”라고 말했다.

두려운 마음과 사람 구하기

‘두려움’이라는 물질은 나의 공간장에서 미적거리며 제거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사악의 박해 요소가 원인이었고, 두려움을 돌파하지 않으면 일대일 진상이 몹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 협력하는 수련생이 일대일 진상을 아주 잘하는 이웃 현의 수련생 몇 명을 초청해 우리 지역의 몇몇 수련생을 데리고 다니게 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이 항목에 참가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두려움인가? 아니면 사람을 구하는 것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며 사람을 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을 돌파하며 앞으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 과정에서 이웃 현의 수련생들은 커다란 작용을 일으켰다. 그들은 공손히 사존의 가르침에 따랐을 뿐 아니라 자비롭고도 이지적이었다. 운전사 수련생은 미리 지도를 준비하고,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동선을 계획했고, 주변 수십 리 안의 마을을 거리에 따라 배치하고 방향을 조정해 주었다. 또 우리에게 조별로 무선호출기나 전용 휴대전화, 그리고 충전기를 배분하고, 자료를 갖추어 주었다. 가는 길에서 우리는 최대한 발정념으로 공간을 청리했다. 마을에 들어간 뒤에는 효율적으로 조를 나누어 각 조(2인 1조로 한 마을에 보통 2개 조, 사람이 많으면 두 개의 마을로 감)를 계획된 길목에 배치했고, 운전사 수련생은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즉시 보초를 서고 발정념을 했다. 순찰차나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즉시 우리에게 알린 다음, 재빨리 우리를 태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계속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게 했다.

마을에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곧 대면하여 진상을 알렸고, 호신부와 진상 자료를 주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예의를 갖추어 집으로 들어가 진상을 알렸다. 문이 잠겨 있으면 진상 자료를 빗장에 끼우거나,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도 아니면 진상 포스터를 눈에 띄는 곳에 반듯하게 붙였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나오니 경험이 쌓이고, 교훈을 얻었으며, 아슬아슬한 가운데 감동이 있어 수확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악의 박해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과 ‘사람 구하기’를 선택해야 할 때 우리는 개인의 안위와 득실을 내려놓고 중생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입니다. 파룬궁은 억울합니다. 선량한 선택을 하고, 정의를 지지하고, ‘삼퇴’하여 평안을 보전하세요!” 이것이 바로 대법이 부여한 자비일 것이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대도(大道)다. 망망한 인생의 길에서 나는 다행히 스스로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환경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떳떳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다행히 생명의 정확한 방향을 찾았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0/8/5/4100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