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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상태를 바로잡고 정념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람 마음을 품고 자비를 말하지 말라! 일체 사람 마음을 내려놓을 때 사부님의 커다란 자비를 더욱 느끼지 않겠는가! 사부님은 우리가 수련 성취할 수 있도록 평생 심혈을 기울이셨다. 그 한 부의 대법 속에 거대한 법력(法力)과 수련의 모든 것을 눌러 넣으셨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바로 일체 사람 마음을 버리는 것뿐이다.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을 돌아보니 어떤 마난(魔難)은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초래한 것이 아닌가? 마난 중의 고통과 이른바 박해의 가중(加重)도 자신이 품고 있는 사람 마음이 초래한 것이다. 사람 일면은 얼마나 취약한가, 매 순간 사부님의 자상한 보호가 없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난관[關難] 중에 있다면 사부님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고 동시에 아무것도 하실 수 없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돌파한 난관이든, 수련생이 심득 교류 중에서 이야기한 난관이든, 이런 난관으로부터 반드시 정면 교훈을 얻고 대법과 대조하여 법리(法理)상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보낸다, 진상 스티커를 붙인다고 말하지만 대법제자의 표현이 속인보다 못한 사람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본다. 구세력이 구우주의 법리에 따라 배치한 이번 박해는 대법제자를 겨냥해 온 것으로, 그 구실은 대법제자를 고험한다는 것이지 속인을 상해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대법제자가 마난 중에서 만나게 되는 사악은 다른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지는데 이런 사악은 불도신(佛道神)이 보더라도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비록 대법제자가 그것을 보지는 못해도 느끼는 압력은 사람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속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거대한 고통을 이해하지도 깨닫지도 못한다.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 부딪힌 난관과 마난 중의 표현에 있어 사람의 측면에서 이해해서는 더욱 안 된다.

매 호의 ‘밍후이주간’ 엄정성명 난을 통해 그렇게 많은 대법 수련자가 각성하고 아울러 대법수련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을 보는데 그들이 하루빨리 수련해 올라오기를 축원한다. 수련은 극히 간고하고 엄숙한 것인데 왜냐하면 신변의 구세력이 시시각각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어떤 대법제자들은 ‘세 가지 일(법공부, 발정념, 진상)’을 잘하며 특히 진상을 알려 사람 구하는 데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병업(病業)’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이 분명하지 못해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는데, 구세력은 이를 빌미로 박해하며 세상을 떠나게 하는데 얼마나 원통한가!

하지만 이른바 그런 ‘전화(轉化)’한 수련생은 안일, 두려움, 원한, 쟁투, 색욕, 과시심 등의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감추고 있다. 심지어는 주변 사람이 지적해줘도 정시하지 못하는데 결국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혀 마의 소굴에 갇히고 박해당하게 된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혹형의 고통과 박해는 가중돼 육신이 견디지 못하게 되고, 여기서 사람 마음에 이끌려 사오(邪悟)하고 전화하게 된다. 법을 실증하고 수련하는 지극히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하마터면 대법수련의 기연을 잃을 뻔했다. 지금 보면 억울하지 않은가? 기왕 다시 수련으로 돌아온 만큼 정면 교훈을 얻어 구세력에게 이용당한 숨겨진 사람 마음을 끊임없이 찾아 뿌리부터 없애버리고, 정정당당하게 법을 배우고 수련하며, 이지적으로 법을 실증하되 절대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종종 밍후이에 보도한 박해사례를 보면, 어느 땐데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원만(大圓滿)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대법제자가 사람 마음에 이끌리고, 별것 아닌 다른 공간의 썩은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악경(惡警)에게 놀라 동서남북도 분간하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이런 박해사례를 보고 심지어 두려워한다. 다시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말아야 하는가, 나가면 붙잡히고, 얻어맞고, 심지어 혹형을 당할지도 모르고, 나가지 않으면 대법제자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으니 진퇴양난이다. 사실은 당신이 두려움과 구하는 마음이 있어 깨닫지 못하는데 당신이 집에 있더라도 악경은 찾아올 수 있다. 결정적 시간일수록 우리는 또렷하게 이지적으로 자신의 수련상태를 정시(正視)해야 한다.

우리가 미혹의 세계에 살고 있기에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지만, 사부님께서 대법 중에서 우리에게 모두 말씀해주셨다. 우리 신변에는 시시각각 사부님의 법신이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계시며 무수한 정신(正神)이 우리의 정념(正念)을 가지(加持)해 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구세력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마음이 바르지 않기만 하면 구세력은 즉시 이런 부정(不正)한 생각을 키워, 사람의 취약한 사상을 통제하고 허튼 생각을 하게 하며, 그 사람의 공간장에 시꺼먼 물질을 대량으로 만든다. 게다가 사악한 마가 존재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자양분을 주게 돼 결국 사악한 마에게 통제된 악경의 소란과 박해를 당하게 된다. 억울하지 않은가?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기에 구해 왔는데, 사부님의 법신과 무수한 정신(正神)이 조급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나는 사람 일면은 일을 성사시키기에는 부족하고 일을 그르치기는 족하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됐다. 사람 일면은 더욱이 우리가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게도 하는데 이것은 구세력의 사악한 요소가 대법제자가 걸어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기왕 이러하다면 우리가 어찌 사람 일면에 기대어 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이점을 깨닫자 나는 대법과 대조하며 사상 중에서 사람 일면의 생각을 또렷하게 구분했으며 아울러 그것을 깨끗이 제거했다.

나는 이런 사람 일면의 생각이 약하기는 하지만 매우 기만적임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평상시 정념이 족해야 하며 매사를 대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면 마난 중에서 신이 그런 악경을 미워할 수 있고 이것저것을 두려할 수 있겠는가? 다른 공간의 사악한 통제가 없다면 악경이 신에게 감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정법수련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우리는 무엇이든 다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좋지 않은 수련상태를 바로잡아야 하고 충족한 정념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의 수련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은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528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5/28/4069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