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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배우고 연공한 지 1개월 만에 말기 간암이 사라지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을 그만두고 10여 년이 지난 후 저는 질병에 시달리며 병세는 악화하였고, 결국엔 병원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저는 다시 대법 수련으로 되돌아왔습니다. 1개월 동안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자 간암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신체는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救度)에 감사드립니다!

1998년에 남편은 대법을 수련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단지 세 명의 남자와 한 무리의 부녀자가 함께 있어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들이 대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시간을 내어 함께 책을 읽었고 주로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습니다. 매 사람이 한 단락씩 읽었고, 때로는 심득(心得)을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아주 좋다고 생각되어 예전처럼 그렇게 심술부리지 않았고, 억지를 쓰고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평소 그들은 온화하고 선량했으며 서로에게 겸손했습니다. 유달리 저는 따라서 듣다 책에서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고, 좋은 일을 하여 덕을 쌓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며 매우 일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남편에 대한 마음을 놓게 되었고, 결국엔 저도 걸어 들어오게 됐습니다.

장쩌민(江澤民)과 악당(惡黨)이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궁과 대법제자를 천지를 뒤엎을 듯이 전면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막 수련을 시작한 터라 두려웠지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에 수련의 기연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당승(唐僧)이 경(經)을 얻기도 어렵지 않았는가! 매우 간고하고 무서운 날에도 저는 위축되지 않았고, 집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시장에서 대면해 진상을 알리며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집에 없는데 외지의 수련생이 ‘9평 공산당(九評 共産黨)’ 책자 2천 권을 보내와 저 혼자 농사용 트랙터를 몰고 각지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저의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큰오빠는 우울증으로 목을 매 자살했으며 넷째 오빠도 같은 병으로 두 번이나 목을 매달았으나 제가 발견해 살아남았습니다. 아버지는 연로하신 데다 또 온종일 술을 마셔 집안이 망해가는 모습을 차마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장녀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자주 친정에 가서 요리도 하고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계속 이렇게 지속하다 마음이 얽히고설킨 일들로 결국엔 아예 법을 배우지도 연공 하지도 않게 되었고, 10년의 세월이 이렇게 허비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친정의 처지를 바꿀 수 없었고, 도리어 저 자신을 병마의 고통 속에 빠지게 했습니다. 갖가지 질병에 걸려 그 고통을 말로는 다할 수가 없었고, 뇌종양으로 머리에 네 개의 구멍을 내고 최소침습술(비절개식)을 받았습니다.

2019년 5월부터 사지가 무력하고 허약해져 아무 생각이 없었으며, 토하고 숨을 헐떡거려 매우 힘들었습니다. 차례로 현 병원, 시 병원, 하얼빈(哈爾濱)과 성(省) 종합병원에 갔으며, 검사결과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으나 가족들이 저에게는 감췄기에 저는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남편은 정념이 줄곧 대단히 강하여, 그는 제 온몸에 암세포가 퍼졌다는 말을 들었어도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사부님께서 관리하신다고 여겼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다른 방법이 없어. 오직 연공만이 있을 뿐, 당신이 생명을 구하려면 연공을 해야 해. 연공을 해보지 않겠어?”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해볼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얼빈에서 집으로 돌아와 저는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좀 좋아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 친척은 이렇게 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고 베이징에 가서 치료해야 한다고 강하게 권했습니다. 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 딸은 제가 베이징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 저는 확고하게 수련하고 있었으며 사부님께서 저를 관리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베이징에 가지 않는다면 딸은 분명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연공하는 것도 벽에 부딪히게 되고, 교란한다면 그래 한번 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베이징에 갈 때 남편은 제게 사부님 설법 녹음이 담긴 MP3를 준비해주며 일이 없을 땐 법을 듣거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아홉 글자 진언(眞言)을 외우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멈추지 않고 계속 법을 듣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베이징 병원에 가서 핵자기공명 촬영을 했는데 간암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다시 간 천자(穿刺: 가는 주삿바늘로 체액을 뽑아내는 일) 화학검사를 하고는 급성간염이라고 했습니다. 뜻밖의 일에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이때 저는 기운이 나고 토하지도 않았으며 호흡도 정상이고 혈색도 좋았습니다. 집에서는 5만 6천 위안(약 952만 원)의 예금을 내 치료비로 쓰고, 겨우 2만 위안(약 340만 원)밖에 남지 않았으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1개월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자 사부님께서 저의 병업을 제거해주셨으며 제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베이징에 제가 거처하는 곳에는 회사가 하나 있었고, 회사의 회계와 출납원에게 저는 진상을 알리며 그녀들에게 생사를 몸소 겪은 대법의 비범함을 말했습니다. 그녀들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전화로 집에 있는 안사돈에게 다시 검사해 보니 간암 증상이 이미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사돈은 무척 기뻐하며 그 즉시 파룬궁 연마의 기적을 믿었고, 곧바로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원래 기독교를 믿었고, 파룬궁을 그동안 배척했지만, 지금은 매우 탄복하며 대단히 감복해 마지않습니다.

수련을 떠난 그동안은 제가 가장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후회막급의 나날입니다. 요 몇 년, 사람의 고통과 질병의 시달림을 심각하게 경험했으며, 수련하는 것보다 더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기왕 제가 다시 수련을 시작한 이상 반드시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의 수련을 지도하여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038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3/8/4021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