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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법공부에서 자신을 바로 잡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1년 전 나는 골반이 자주 아팠다. 처음에 나는 개의치 않고 집에 일이 많아 힘들어 좀 쉬면 나아질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일을 적게 해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다리까지 아프고 허리의 힘줄까지 당겨 서 있지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야 했으며 앉으면 일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것은 척추디스크다”, “이것은 좌골신경통이라 치료할 수 없으니 집에서 반듯이 누워 보양해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신경 쓰지 않았고 일반인은 병에 걸릴 수 있지만 나는 연공인이라 병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지고 심하게 아프니 마음이 불안했다. 나는 안으로 찾았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왜 아직 넘어가지 못하는가? 언제쯤 끝인가?” 이전에는 여기저기 아프거나 어디를 삐어도 연공만 하고 안으로 찾으면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길게 끌어 마음이 불안하고 부정적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속인의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겠지?” 나는 이런 사상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 생각을 배척하고 억제했다. 그러나 아프면 그런 생각이 올라오고 신심이 지쳤다. 집에서 법공부해도 마음에 닿지 않아 수련생을 찾아 함께 법공부를 하기로 했다. 나중에 3명의 수련생이 더 들어왔다.

단체 법공부를 할 때 다리 아픈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때로는 다리가 어떠어떠하다고 몇 마디 했다. 내가 고통스럽다고 말하자 수련생은 말했다. “그것은 소업이고 좋은 현상이며 법을 읽고 소업도 하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도 나는 고통스러웠다. 어떤 수련생은 또 말했다. “고통스러운 것을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수련생과 조용히 법공부를 하니 서서히 덜 아파 앉고 설 수 있었다.

고통이 줄어들자 마음이 많이 조용해졌다. 나는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몸의 정확하지 않은 상태는 자신의 수련 상황 상태와 관계가 있다. 나는 집에서 자료를 제본하는 일을 하는데 가끔은 집에 쌓아 놓는다. 고려하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있기에 일을 뒤로 미루고 여가시간에도 정면으로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집에 있는 자료가 걱정되었고, 박해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 보니 정진하지 못하고 마음이 느슨해졌다. 여가시간이 있으면 법공부를 더 하는 것이 아니고 핸드폰 동영상에 빠졌고 볼수록 인이 박였다. 때로 법공부와 연공시간도 점했다. 마음을 방임해 마성을 강화했고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내고 야단치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마성이 강해졌다. 나는 화를 낸 후 후회했고 다음에 반드시 심성을 파악하고 화내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모순에 부딪히면 또 화를 내고 지난 후 또 후회했다. 오랫동안 악순환되었으며 교란받고 돌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의 쟁투심, 질투심, 원망심,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타인을 얕보는 마음 등이 모두 강했다. 나는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고 일반인과 뒤섞였다. 일반사람은 당연히 병에 걸릴 것이다.

먼저 자신의 수련 상태를 조정하고 핸드폰 동영상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았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강화했다. 모순에 부딪히면 강제로 참고 눈물을 머금고 참고 참았다. 마성이 자신을 주도하지 못하게 했다. 사회 왕래에서 자신을 연공인이라고 생각하고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이익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감을 따랐고 자신의 물건은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을 얻으려고 다투지 않았다. 마음을 건드리는 일에 부딪히면 나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서, 사회 중에서 다니며 동냥을 해야 하는데, 각종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를 비웃고,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를 우롱하는데, 어떤 일에든 모두 부딪힐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바로잡으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끊임없이 心性(씬씽)을 제고해 속인의 각종 이익의 유혹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1]

다른 수련생이 제본하는 일을 하고 나는 정면에서 진상을 알렸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아무리 먼 길을 걸어도 다리와 골반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한가할 때 비로소 조금 아픈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생생세세 업력을 없앤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고생, 고통을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아무리 고생하고 힘들어도 원망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각자들이 보건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는 데 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든지 그는, 겪는 고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다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생각이다.”[1]

관을 넘는 중에 수련생의 도움도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당사자는 알지 못하는데 방관자는 똑똑히 안다.” 때로 사람 마음이 올라오면 자신의 집착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럴 때 수련생의 한두 마디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부 수련생의 정면적인 의견을 귀담아들어야 하고 겸손하게 수련생 각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하며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으면 난을 빨리 넘을 수 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도 지체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의 본분이며 미룰 수 없는 책임이다. 중생이 우리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몸에 정확하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 장애가 되면 안 된다. 우리가 그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그 마난이 없음을 발견한다. 나는 사람을 구하러 갈 때 신체의 고통은 정말로 사라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시시각각 법에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몸의 정확하지 않은 상태는 바로 잡힌다.

사부님께서 줄곧 제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몇 년 동안 줄곧 진상 알리는 일을 견지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사람을 구하는 일과 관계되는지 모르고 그렇게 신성한 느낌이 없었다. 진상을 알리는 일이 사람을 구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사부님께서 ‘홍음5’를 발표하셨다. 우리 법공부팀은 연속 3번이나 공부했다. 매번 읽을 때마다 감수가 있었고 감동이 왔다. 사부님의 시에서 여러 번 ‘창세주’를 언급하셨다. 매번 ‘창세주’를 볼 때 내 마음은 감동으로 심신에서 표면까지 세포 변화를 느꼈다. 말할 수 없는 격동과 감격, 수성(殊聖)이다. 그런 느낌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자신이 전에 어떤 막에 싸여 있던 것이 ‘홍음5’를 배우고 나니 단번에 막을 깨고 나온 느낌이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매한가지 일은 확실히 사람을 구하고 있고 신의 광환을 감히 내려놓고 험악한 인간 세상에 온 각계 중생, 뭇신이라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 사부님의 고생스러운 구도, 또 대법제자의 책임과 감당을 몸으로 느꼈다.

정면에서 진상을 알릴 때 사람마다 모두 친근감이 들고 선량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먼지에 깊이 파묻힌 것 같다. 그들이 작은 선념만 있어도 대법제자는 손을 내밀어 그들을 구한다. 한번은 시장에서 한 촌서기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오래 알렸는데 그는 탈퇴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어렵게 당(사당)에 가입했고 또한 촌서기입니다. 저는 탈퇴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전처럼 “이 사람은 끝장이고 아무리 말해도 탈퇴하지 않는다. 그는 구도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떠나가기 전에 그에게 알려줬다. “아저씨,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후회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 달이 지난 후 다른 시장에서 촌서기는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처음에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제야 나는 그가 생각났다. 나는 다그쳐 말했다. “아저씨, 그 사당을 탈퇴하세요. 당신이 당에 가입할 때 한 독한 맹세를 지워요.” 그는 말했다. “그런가? 그러면 저를 탈퇴해 주세요”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전에 탈당하지 않으려던 사람이 한 달 후 이렇게 큰 변화가 왔다. 그는 간단하게 탈퇴했다.

대법제자의 정념은 신의 정념이고 위타(爲他)이다. 사람을 구하려는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세인은 당신의 선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그를 좋게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그는 진상을 들을 수 있고 삼퇴한다. 지금 진상을 일릴 때 상대방에게 묻는다. ‘당신 삼퇴했습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저는 일찍이 탈퇴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탈퇴시켜주었습니다.’, ‘우리 촌의 사람이 저를 탈퇴시켜주었습니다.’, ‘제 친척이 탈퇴를 돕는데 우리 온 가족은 탈퇴했습니다.”

우리는 진상을 알고 구도된 생명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한다. 몇 년 동안 대법제자가 치룬 대가는 세인의 대법제자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많은 사람은 말한다. ‘당신들은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우리 대법제자의 사명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51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4044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