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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실증하여 가족을 구도하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돌이켜보면 사존의 보살핌 하에 저는 이미 7년 동안의 정법 수련의 길을 걸어지나 왔으며, 늘 수련에서의 부족함과 차이를 느껴 저는 한창 선두를 따라잡고 있습니다. 저는 사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받들어 몇 개의 단편적인 교류만을 선택하여 가정에서 대법을 실증한 수련 과정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기연이 성숙하여 불문에 들어가 법을 얻다

결혼 후 3개월 만에 저는 임신을 했고, 남편과 시부모님 곁으로 돌아가 함께 같은 단지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각자 생활배경이 달라 겹겹의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저는 친정 가족들의 가르침에 따라 최대한 순종하는 것이 효도였습니다. 결혼 후 울분을 참으면서 감히 아무 말도못했던 8년 동안 저의 몸과 정신은 모두 붕괴의 문턱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2005년부터 사부님의 ‘파룬궁(法輪功)’과 ‘전법륜(轉法輪)’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법을얻은 기연이 아직 되지 않아서인지 저는 대법의 깊은 내재적 함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법이 훌륭하다는 것은 알았고, 일부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도 알게 되어 줄곧 남편의 대법 수련을 지지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생명으로 대법제자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진정하게 법을 얻는 기연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부님의 보살핌 하에 우리 일가족 세 식구는 해외로 왔습니다. 저는 션윈(神韻)을 관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정하게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와 한 명의 진정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어 마음을 기울여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을 구도하는 것 외에 가족을 구도하는 것 역시 우리 매 대법제자의 책임이며,가족을 구하는 것의 어려움은 당신이 일시적으로 잘하는 것인가 아니면 매일 진선인(眞善忍)을 받들어 행하여 갈수록 잘하는가 하는 우리의 언행일치 여부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해 동안 시부모님을 어떻게 구도했는지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원한은 풀기 어려웠고 가족을 중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2013년 시부모님은 캐나다로 우리를 찾아왔고 저는 가족들과 기쁨을 가득 안고 공항으로 마중을 하였습니다. 뜻밖에도 시어머니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저의 세 가지 큰 잘못을 열거했습니다. 저는수련을 했기 때문에 세 가지의 큰 잘못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대단히 심각한 시험 앞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막 수련으로 걸어 들어 온 1년 동안은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여 진상을 알리면 곧이곧대로 진상을 알렸고, 사물의 표면 현상만으로 사물을 논할 때가 비교적 많았습니다. 게다가 자비심을 닦지 않아 자주 목적을 달성하기에 급급했고, 쟁투심을 동반하고 있었으며, 말을 하는 게 과격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대법을 나쁘다고하거나 또는 어느 제국주의가 어떠어떠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저는 바로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시부모님은 제가 정치를 한다고 말하면서 저를 교육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 자기 아들이 정치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일체가 모두 저를 향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저는 시부모에 대해 피할 수 있으면 피했고, 최대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피했습니다. 저는 전심전력으로 매체 일에 돌입했고, 매일 바쁜 것을 제외하고도 바쁜 것뿐이었으며, 두 분의 어르신은 저에게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고 꾸짖었습니다. 제가 아래층에 내려가도 여전히 아무런 조심성 없이 계속해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은 마치 일부러 저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당시 심성 경지가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오히려 수련은 극단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가족과 아이 교육에 관계된 문제에 있어서균형을 잘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새벽에 가부좌할 때 시부모님도 일찍 일어나셨으며, 화장실의 문을 열어 두고 채소를 파는 시장에서처럼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세수하며 이를 닦았습니다. 집안에 남편과 아이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마음에 불만이 가득 생겨 시부모님으로부터 저에 대해 오고 갔던 여러 가지 불공정한 대우 하나하나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때 여전히 자신의 원한과 화 그리고 증오에 자신의 업력까지 더해져 오게 된 이런 폐물질을 잘 몰랐습니다. 저는 배척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여전히 배척했으나 오히려 심성 상에서 제고하지 못해 심신이 지쳤습니다.

결국 저는 원망하는 등 사람 마음으로 인해 시어른들이 중국으로 되돌아가기 사흘 전, 저는 저녁 6시 발정념을 하려고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갑자기 계단 틈 사이로 넘어졌습니다. 저는 마음이 법에 있지 않아 화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 발목 부위에서 나던 또렷한 소리가 위층의 아들을 놀라게 하여 아이가 방에서 뛰쳐나와 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대답하듯이 말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야. 나는 아무 일 없어.” 저는 저의 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서둘러 발정념을 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지박총(旱地拔蔥-메마른 대지에 파를 뽑듯이 그는 하늘로 솟구쳤다)의 한 가닥의 힘이 저를 바닥으로부터 일으켜 세웠고, 저는 방으로 들어가 결가부좌를 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이튿날 아이를 중문 학교에 배웅하면서 저는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제자는 대법에 먹칠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절뚝거리며어떻게 대법을 실증하나요?” 길을 걷는데 여전히 온전하지 못했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 이를 악물고 견지했습니다. 시부모님은 아무런 문제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셋째 날 저의 걸음걸이는 완전히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왼쪽 발목의 바깥쪽은 여전히 계란만큼 혹이 부어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때 마음을 파고드는 통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플수록 저는 미소를 더 유지하려 애썼고, 결가부좌를 1시간 견지하여 줄곧 최후에 완전히 완쾌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단 한 번의 연공과 발정념을 지체한 적이 없습니다.

시부모님을 배웅할 때 저는 그분들을 도와 큰 여행용 가방을 옮겨드렸고, 각 여행용 가방마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들어서 내렸으며, 아무런 다른 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남편인지 아니면 아들인지 시부모님께 제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넘어진 일을 알려주어서인지 그분들은 매우 신기하게 여겼고, 제가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도 아무 일 없이바람처럼 가볍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시부모님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습니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머무르실 때 우리는 최대한 두 분에게 대법제자가 만든 매체를 접할 수 있도록 해드렸습니다. 시아버님은 자주 NTD TV의 평론 프로그램을 보셨고 ‘대기원시보’를 읽곤 했습니다. 우리가 퍼레이드와 각종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에 참여하러 갈 때면 시부모님을 모시고 갔으며, 두 분은 길가에서 파룬궁(法輪功)이 해외에서 홍전되는 성황을 보게 되었고, 국내외에서 대법을 대하는 다른 태도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충격과대비는 사악한공산당의 유언비어와 모독한 것을 씻어냈습니다. 시부모님은 마음속의 견고했던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렸습니다. 저는 두 분의 마음에 조용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에게 자비로우시며 거듭 기회를 주시어 두 분이 다른 입장에서 진상을 이해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시고 고생스러우신 구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동화되어 시부모님을 선하게 대하다

2015년 시부모님은 다시 저희를 보러 찾아오셨습니다. 이번에 저는 좀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오시기 전, 저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1] 결국 외우다 보니‘부모님을 통제하여 가르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다시 새롭게 사부님의 원 말씀을 한번 또 한 번씩 외웠습니다.

다시 시부모님께 진상을 알릴 때 저는 자신이 여전히 쟁투심을 닦아 없애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아버님이 대법이 나쁘다고 말하거나 또는 모모 제국주의가 어떠어떠하다고 말하기만 하면 저는 여전히 참지 못하고 화를 냈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생각했습니다. 이 진상을 잘 알리지 못한 데다가 화가 잔뜩 나서 대법도 실증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행동을 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떤 때는 오전에 중국공산당 대사관 앞에가서 연공을 하고 발정념을 하며 진상을 알렸고, 어떤 때는 오후에 국회에 가서 진상을 알린 다음 또 현지의 모 매체에 가서 항목의 일을 하면서 저는 세 가지 일을 잘했습니다. 집에서 저는 가능한 말을 적게 하고 많이 행했으며, 실제 행동으로 법을 실증하여 시부모님 마음의 매듭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남편이 중국 공산당에 의해 박해를 당한 적이 있어 시부모님은 시달림을 당할 대로 당하여사악한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자아보호 심리가 매우 강하면서 또한 마음속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풀기 어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사부님께서는 미국에 계시지만 자기 아들이 박해당하게 된 것에 대해 이해하지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부님께서 어떻게 출국하셔서 법을 전하게 되셨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두 분에게 사부님께서 사악한 공산당이 선전한 것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때부터 두 분의 마음속에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간극과 오해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삶을 누리는 것을 좋아하시므로 우리가 왜 진상을 알려야 하고 왜 이렇게 바쁜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일반적인 진상 알리는 방식이 시어머니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시어머니에게 사람은 마땅히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는 연공하여 신체가 건강해졌어요. 지금은 파룬궁이 박해를 당하고 있고, 사부님께서 억울함을 당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일어나서 공정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사람이 될 자격이 없어요.”라고 말해드렸고, 시어머니는 그건 그렇다며 이해를 표했습니다.

진상을 알게 된 시부모님은 태도가 변하여 우리에게 식사를 준비해주었습니다. 떠나기 전, 두 분은 우리에게 4천 캐나다 달러(한화 약 365만 원)를 주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끝도 없이 우리에게 요구만 하시던 시부모님께서 이처럼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법이 우리 매 사람의 내적인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에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남편과 아들은 시부모님이 주신 돈을 몰래 그분들의 짐 가방 안에 넣었고, 공항에서 그분들이 개찰구로 들어간 후에야 전화를 걸어 그분들에게 돈을 잘 챙기라고 알려드렸습니다.

기점을 바로 잡아 시부모님을 구도하다

2017년 시부모님이 캐나다로 오시기 전에 저는 이번에는 반드시 기점을 대법 실증과 중생구도에 둬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이번에 시어머니는 오시자마자 또 저를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이 처음에 우리를 보러 왔을때 한 번은 남편에게 식사해주었던 과정을 시어머님이 생생하게 묘사하다가 제가 마지막에 두 분에게 “뭘 해주고 싶으시면 뭘 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비록 이 일에 대해 아무런 인상이 없었지만 그래도 시어머니에게 당시에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거듭 이일로 잔소리를 하셨지만, 저는 여전히 그때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나아가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나를 열 번 이야기하시면 나는 이 관을 넘을 수 있다’ 아홉 번째 이야기했을 때 저는 참지 못했고, 이전에 인내했던 것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공로가 수포가 되어 저는 이 관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번 또 한번 시어머니는 단독으로 저를 꾸짖는 것에서부터 형님 앞에서 저를 이야기하시는 것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한 번은 시어머니가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담화를 나눌 때 또 저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불만의 태도는 이전을 능가했으며 남편이 있는 힘껏 말려도 말릴 수 없었으나 저의 마음은 오히려 매우 평화로웠으며 마치 시어머니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관을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오전 법 공부를 하고 진상을 알리며, 오후에는 다른 일을 하도록안배해야 했습니다. 두 분은 점심에 낮잠을 주무시는 습관이 있어서 늘 오후 3, 4시까지 주무시기 때문에 저는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청소할 때마다 모두 저녁 무렵 시부모님이 산책하러 나갈 때 시간을 서둘러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제가 두 분을 고려하는그 마음을 이해하셔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미안해하셨습니다. 저는 항상 각 방면에서 자신을 낮추었고,겸손하게 대했으며, 매번 시어머니의 사나운 바람과 모진 비와 시아버지의 중국 지식분자가 사람을 망치는 것은 제가 있는 여기에 오면 모두 온화해져 힘을 잃었습니다. 저는 한 번씩 시부모님의 입장에 서서 평온하게 처리했고, 시부모님은 저의 천지개벽한 변화에 감탄하셨습니다. 저는 시부모님이 진정하게 감탄한 것은 대법의 신기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식사할 때마저 저는 모두 한 번씩 사부님의 법 “心性(씬씽)을 굳게 지켜야 하고”[2]와 “마음에 법이 있고 자비롭게 주위의 일체를 대한다면”[3]을 외웠습니다.

한 달 가까운 시간동안 시부모님과 형님 내외는 모두 우리 집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확보해야 했고, 다른 한 편으로 자주 남편을 따라 운전하여 그분들을 모시고 놀러 가야 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하여 어떤 때에는 몹시 지쳐서 잠시 쉬고 싶었지만 누우면 또 잠들지 못했고, 엎드려 있어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수련의 방법으로 수련의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어서 일어나 제4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매번 이렇게한 이후, 전체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듯했으며, 안색은 불그스름하고 활력이 넘쳐나 저는 대법의 위력에 감탄했습니다!

시부모님이 매번 오실 때마다 아이들의 소업 상황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비록 시부모님은 제가 마땅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도 지나치게 해석하지 않고 다만 묵묵히 아이를 데리고 사부님의 설법을 읽은 다음 연공을 할 뿐이었습니다. 보통 당일 오후가 되면 아이들은 활발하고 기운차게 뛰어놀았으므로 시부모님도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손 부위의 소업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지속하였습니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아래층에서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네 엄마가 너를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한 것 아니야?” 저는 똑똑하게 들었습니다. 연공인으로서 저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병원 가는지 여부의 문제에서 저도 매우 곤혹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저는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인 수련생의 부인에게 문의해보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저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정념이 생겨 기점을 대법 실증과 중생구도에 놓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가는지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며,시부모님이 구도 받을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념이 확고해진 후 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이 자신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확고했으며, 무슨 말을 해도 모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시어머니는 곁에서 똑똑하게 듣고 있었습니다. 식사할 때,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애 엄마가 손자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손자가 무슨 말을 해도 모두 가지 않겠다고 하네요.” 병원에 가는지 여부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되었습니다. 정말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입니다.

수많은 굽은 길을 지나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가는지 여부는 아이의 상황도 보고 결정해야 하며, 아이의 수련상태가 좋고 생각이 비교적 성숙한 아이면 법리에서 아이와 여러 번 교류한 다음 마지막에 여전히 아이의 선택을 따라야 합니다. 아이의 수련상태가 좋지 않으면 수련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합니다. 가족과 아이 모두 대법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어쨌든 극단으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맺음말

시부모님이 중국으로 돌아간 후,저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전화하여 시부모님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이 매우 줄어들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남편이 전화를 걸곤 합니다. 제가 자리에 있으면 피하지 않고 일에 대응하듯이 몇 마디 말을 나누었고,저는 깊이 안으로 자신의 원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매번 시부모님과 통화할 때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드물게 부르며 모두 예절 없이 표현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각심을 갖고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부모님이 오셨을 때, 저는 비록 엄격하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여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졌고, 심성을 잘 지킬 수 있어서, 온화한 안색으로 평온하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수많은 갈등을 해결했지만 내심으로부터 시부모님에 대한 자비의 마음이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자신에게 시부모님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사람 중에 설령 어른을 존중하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은 모두 대역무도하다 하더라도, 하물며 자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법 속에서 귀정하여 사람의 마음을 닦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시부모님과 연락을 하면 아이는 예의 바르게되었으며, 저도 마음으로부터 시부모님에게 관심을 두고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법 수련이 아니라면 저는 이 평생 시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법이 모든 억울한 원한을 선해해 주었고 사부님께서 저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1]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알게 해주셨으며, 안으로 찾는 법보를 주시어 저에게 한 걸음씩 사람에서 신으로 걸어 나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
[2]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파룬궁-제1장 개론’
[3]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법해’

(2019년 캐나다법회 교류원고)

 

원문발표: 2019년 7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7/29/390677.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8/3/1787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