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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에 대한 나의 인식을 말한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연히 수련생이 나에게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물었다. 나는 돈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속인은 ‘수레가 산 앞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다(車到山前必有路, 어떤 일이든 어느 단계에 이르면 반드시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고 말한다. 아이가 미술을 배우려 해서 일찍이 몇 년 전부터 매달 미술 교습비로 10위안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물가가 올라서 수업비가 점차 더 들었다. 그러나 우리 집 수입도 함께 올라갔기 때문에 화구 비용을 대줄 수 있었다. 첫해는 1만 위안 넘게 들여서 한 학교에서 문화 관련 과목 보충수업을 받게 했고, 그 결과 1점 차로 삼류 대학에 붙었다. 이 학교는 학비가 매년 2만 1000위안이었다.

재수하던 해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아이와 내가 함께 ‘전법륜(轉法輪)’을 배웠고 점심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가 제1, 2장 공법을 연마했으며 문화 과목 보충수업에 전혀 다니지 않았다. 결과 중점대학에 입학했고 학비는 8800위안이었다. 이렇게 4년간 학비가 매우 많이 절약됐다. 그러므로 수련인은 수련을 근본으로 해야 하며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수련인이 ‘돈’에 교란당했다면 배후에 또 다른 사람 마음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날 사무실 주임이 나한테 아이의 입학통지서를 가지고 와서 증빙하고 인사 예의 비용을 받아 가라고 했고 나는 거절했다. 주임은 안 된다고 하면서 장부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초등학교는 200위안, 대학교는 500위안이라고 적혀 있어 나는 할 수 없이 승낙했다. 생각 밖에 주임은 나에게 200위안의 영수증을 주면서 서명하라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그러나 곧바로 재물을 탐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명하고 재무과에 가서 200위안을 받았다. 잠깐 사이에 주임이 또 영수증 하나를 내주며 내게 서명하라고 해서 나는 어찌 된 일인가고 물었다. 출납이 이 주임을 찾아와 적게 내주었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표준으로 준 것이었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압니다.저는 주임님께서 또 책임자를 찾아 서명하시면 업무를 잘못한 것으로 비쳐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실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괜찮아요.저는 자주 이런 데서 실수하거든요. 이것은 책임자가 이미 서명한 거예요.” 나는 할 수 없이 또 300위안을 받았다.

이 일은 나에게 수련에서 나무가 조용해지고 싶어도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각나게 했다.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아도 기어코 당신에게 주고 당신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면 ‘덕’을 구한 것이 아닌가? 아울러 이 풍파 속에서 오히려 당신의 마음을 휘젓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개인 이익을 내려놓고 제고해 올라올 때까지 지속한다.

하루는 또 직장 동료에게 업무를 인계하는데 그가 조용히 내게 급여가 오를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두 사람이 모두 2970위안, 거의 3천 가까이 오르는데 조금 전 책임자가 전동을 교체하면서 자기에게 알려주었다고 그도 우리를 대신해 기뻐했다고 말했다. 나는 담담하게 한마디 답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중에 은행에서 온 문자를 보니 내 급여가 동료보다 적게 올랐고 마음이 움직였다. 속으로 같은 업무를 하는데 왜 그가 많고 내가 적은지 생각했다. 아마 그는 남자이고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하니까 더 많이 오른 것이고 또 그는 미혼인 아들이 있어 돈이 필요하니까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를 위해 기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점심때 그가 회사에 와서 낮잠을 자더니 내게 조용히 알려줬다. “보세요, 제 월급이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아마 책임자가 급여 서식에 서명할 때 숫자를 잘못 본 것 같아요.” 보니까 우리 두 사람은 급여가 같았다.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었다. 질투심, 이익심이 있는지 보고 있었다.

도덕 수준이 다르니 사람마다 머릿속에 담은 ‘돈’의 함의도 다르다.

화폐는 단지 교역을 편리하게 하려고 산생된 것이다. 사람들이 물물교환으로 필요한 것을 취할 때 많은 불편이 있음을 느꼈고 송나라 시기에 종이돈을 발명했다.지금 인민폐는 해외에 가면 쓸 수 없어 달러,유로화 등으로 바꾸어야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고대인들이 물물교역을 할 때는 사상 속에 돈에 관한 개념이 없었고 단지 그저 생활에 필요한 부분에 만족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화폐가 생겼다. 돈의 개념이 나타났고 인류 도덕이 곤두박질치면서 지금 그것은 사람의 탐욕 욕망 등등이 농축된 매개체가 되었다.

사실 나 개인적 이해로는 돈에 대해 강력하게 집착하면 그 돈은 마치 부체같고 그것은 호황백유(狐黄白柳)가 아니지만 사람이 강력하게 금전을 추구하는 변이된 관념은 사악한 요소에 조종당하게 된다. 부체를 말씀하실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돈을 벌고 돈을 추구하고 부자가 되는, 이것은 천경지의(天經地義)이며, 이것이야말로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악한 짓도 하는데, 무엇이든 그는 감히 한다.그것이 잃지 않으면 그것은 얻지 못하는지라, 그것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에게 그것을 주겠는가? 그것은 당신 몸의 것을 얻으려고 한다. 물론 우리가 말했듯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1]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이 돈에 집착하는 것은 미혹 속에서 인생에 대해 이른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에 대한 집착의 배후에는 또 명리정에 대한 집착이 있다. ‘돈’에 교란당했을 때 우리는 마땅히 어떤 사람 마음이 있는지 찾아야 하고 정념으로 제거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연공인은 확실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속인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고;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속인이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1]

돈은 몸 밖의 물건이고 우리의 의식주를 만족시킬 수 있으면 된다. 최근 설법 중에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생명이 바로 재부(財富)로서,”[2]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땅히 어떻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더 많이 구도하는가이다.

개인 층차의 인식이고 부족한 곳은 많이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각 지역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8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8/2/3909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