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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나의 좋은 며느리

글/ 중국 대법제자 리밍

[밍후이왕] 저는 1995년 대법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십여 년 동안 대법 수련 중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받아 저는 몸과 심령(心靈)이 정화 되었으며,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가정은 화목해졌으며, 며느리와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1. 나와 며느리와의 관계 변화

애초, 아들이 결혼한 후 아들 내외와 우리 노부부는 함께 즐겁게 살았습니다. 주말이면 언제나 네 식구가 함께 쇼핑도 했으며, 사람들은 아들 내외를 딸과 사위로 보았으며, 모두 우리 가족의 다정한 모습을 부러워했습니다.

5년 후 우리 집에는 예쁜 손녀가 생겼고, 저는 우리가 경영하는 개인회사를 떠나 집에서 전업으로 손녀를 보살폈습니다. 저는 다년간의 유아교육 경험과 비교적 강한 관리능력으로 한 가정을 관리하고, 아이 하나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수련인으로서 이 가정을 잘 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수년 동안 우리가 냉전 시대를 겪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손녀가 태어난 후 저는 온종일 아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바삐 보냈습니다. 저는 아이를 보는 것은 아들을 키운 경험으로 전문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며느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며느리와 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는 것을 느꼈지만 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저 자신도 법 학습을 소홀히 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태가 속인의 마음으로 변해 며느리의 의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며느리의 어투와 태도는 저를 매우 불쾌하게 했으며, 우리 둘은 늘 말이 통하지 않거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갈등을 빚어 다투곤 했습니다. 비록 나중에는 다투지 말아야 했다고 느꼈지만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며느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원망은 쌓여가고 갈등은 계속 끊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온 가정에 불화를 가져왔습니다.

한번은 서로 다투다가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2년 동안 어머니는 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왜 2년이 됐는데도 어머니는 자신을 제고하지 못하세요?” 이 말이 저의 정곡을 찔러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는 수련인인데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

그 후부터 저는 표면에서 며느리의 태도를 문제 삼지 않았지만, 마음에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저는 모순을 피하려고 될 수 있는대로말을 적게 하거나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참음’이고 ‘수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며느리도 제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둘은 ‘냉전’ 상태에 들어갔고, 우리 사이에는 점점 말이 적어지면서 되도록 접촉과 충돌을 피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이런 상태는 몇 년이 지속됐습니다.

2. 사부님의 점화(點化)

저는 비록 겉으로는 참았으나 매일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원망하는 마음은 줄곧 나를 괴롭혔고, 매사에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났으며, 자신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이 가정을 위해 바삐 보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며느리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데 며느리는 오히려 제가 그녀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제가 하는 그 모든 일이 ‘보살핌’일 뿐 ‘관심’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는 “집안의 일을 어머니께서 하고 싶으면 하시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세요. 우리도 능히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며느리의 이런 표현을 정말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한동안 어떻게 된 일인지 가족들은 모두 냉랭하게 나를 대했고, 아들은 말수가 적어지면서 저와 말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손녀의 말투와 태도는 늘 이해하기 어려워 저는 정말 이 집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런 모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사부님께서 저를 점화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가부좌하고 있을 때 아름답고 새하얀 성장(盛裝)을 한 여신이 흰 꽃들에 둘러싸여 제 앞에 나타났고, 키가 매우 크고 성결(聖潔)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상반신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장면은 너무나 장엄하고 엄숙했고, 저는 그 여신이 바로 제 며느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저는 이 화면에서 며느리는 법을 얻기 위해 하늘에서 온 신이며, 제 수련을 도와 제고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며느리의 말도 안 되는 귀에 거슬렸던 모든 말들은 저에게 수련할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속에는 제가 버려야 할 집착과 내려놓지 못한 사람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3. 원망하는 마음을 깨끗이 없애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 몇 년 동안의 수련상태를 살펴보니 일하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진상 자료도 만들고 또 집안일도 하려고 했기에 너무 바삐 보내면서 정작 법 학습은 느슨히 했고, 하루에 ‘전법륜’을 한 강의씩 읽는 것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대법제자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현 상태를 꼭 바꾸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집중적으로 사부님의 모든 경서를 두 번 읽으면서 점차 각성하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당신이 부딪힌 모순, 당신이 부딪힌 그 어떤 일이든 모두 당신의 사람 마음을 고험한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수련인에 부합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어떻게 해야만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그것은 바로 수련이 아닌가?”[1]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이는 수련의 법보(法寶)이며, 이는 우리 대법제자 수련의 특징이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2]

저는 안으로 찾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모순에 봉착하여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저는 안으로 찾으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가부좌하고 마음을 조용히 한 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찾아보아도 며느리의 잘못일 뿐 다른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정말 저의 잘못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십시오.” 저는 조용히 기다렸고, 저의 머릿속에는 ‘선(善)’자가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마음은 환하게 탁 트였고, 저는 사부님께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선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부님의 보호와가르침 아래 자신을 찾는 것을 배웠습니다. 쟁투심, 과시심, 원망하는 마음, 남을 용서 못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화내는 마음,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 등등 정말 많고도 많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을 하나하나 찾아내 적어 놓은 후 그것을 제거하니 점차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원망하는 마음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이 마음을 제거하려 했지만 오래도록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속인 중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당신에게 모두 내려놓게 해야 한다.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만약 이 한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3] 저는 마음을 굳게 먹고 꼭 이 원망하는 마을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3] 저는 우선 이 법리에서 ‘원망’이 다른 공간에서는 하나의 물질 존재이며, 저의 공간장 안에 이런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이 저를 조종해 저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해 원망하는 것이고, 오직 이 물질을 없애버려야만 저는 다시는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에 저는 또 ‘원(怨)’은 하나의 고립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것의 앞쪽과 뒤쪽에서 또 다른 물질이 보조하고 있었습니다. 앞쪽에 있는 물질은 ‘나(我)’이고, 그것은 낡은 우주 중의 사를 위하는 이치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의 요구, ‘나’의 표준, ‘나’의 소망과 맞지 않은 일에 봉착했을 때 이 ‘사(私)’가 ‘원’을 부추겨 표현하게 합니다. ‘원’의 뒤쪽에는 ‘미움(恨)’이란 물질이 있습니다. 이들을 ‘원한(怨恨)’이라고 합니다. 이 ‘한’은 공산사령(共產邪靈)의 뿌리이고, 공산사령은 다른 공간에서 ‘한(恨)’과 우주 저층의 패괴한 물질로 구성됐습니다. ‘한’은 ‘원(怨)’의 뒤쪽에서 ‘원’을 강화합니다. 그러므로 표현되어 나온 ‘원망(埋怨)’의 실질은 이 세 가지 물질이 함께 표현한 결과이므로 ‘원(怨)’만 제거해서는 무슨 효과가 없습니다.

‘쩐(眞), 싼(善), 런(忍)’에 따라 수련해 새 우주로 가는 생명인 제가 어떻게 이런 사람의 것, 낡은 우주의 것, 공산사령의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없으며, 저는 꼭 그것을 철저히 깨끗이 제거하겠습니다.

법리를 알게 된 후 저는 발정념을 할 때 우선 이런 물질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머릿속에 원망하는 생각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정념으로 제거했으며, 외출할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정념으로 자신을 청리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찾을 것을 요구했으며, “우리는 평소에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해야 한다”[3]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면 그 원망하는 마음이 담담해지고, 없어졌습니다. 사부님께서 그 물질을 제거해 주셨고, 그 물질이 진짜 없어지자 가뿐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배치해 주셨고, 저는 힘들게 이 관을 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을 때 며느리와 손녀가 다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건너가서 싸움을 말렸겠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져 결국 왜 다투는지 똑똑히 들렸고, 며느리와 손녀는상대방의 말투가 듣기 좋지 않다며 탓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저의 그 집착심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제가 듣게 된 것은 아직도 이 마음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즉시 정념으로 좋지 않은 말을 듣기 싫어하는 집착심을 제거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신통했고 제가 이쪽에서 정념이 일어나자 저쪽에서 즉시 다툼이 ‘정전(停戰)’됐습니다. 저의 공간장 내의 나쁜 물질이 그녀들에게 영향을 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4. 모두 나의 잘못

사부님께서 저의 그런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 주신 후 저의 흉금은 넓어져 능히 모든 것을 관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날의 시시비비를 되돌아보니 모두 저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됐습니다.

과거 저의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리던 일들이 비록 며느리에게서 일어났지만, 근원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상유심생(相由心生)”[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기분이 나쁘면 냉담한 기색에 싸늘한 어투로 말하면 며느리의 표현도 이럴 것이니 이것이 저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하루 종일 며느리에게서 들은 것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매일 마음속으로 며느리의 결점만 보았으니 이것 역시 저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또 뒤에서 며느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해 며느리에게 이런 나쁜 물질을 더 부추겨 주었으니 역시 저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관심’과 ‘보살핌’에 대해서도 저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며느리는 제가 그들에게 해준 일은 보살핌일 뿐 관심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들을 챙겨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을 것으로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며느리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으며, 보살펴 주는 것은 단일한 보살핌이고 표면적인 것이지만 관심은 마음을 담아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서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 것이지만 확실히 같지 않습니다. 저는 수련과 승화를 도와준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의 생활 속의 모든 것을 배치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자신의 집착을 볼 수 있게 하셨으며, 사람 마음을 버리고 자신을 제고할 수 있게 배치해 주셨습니다. 저는 법 속에서 걸어 지나왔습니다.

5. 마음에 따라 환경이 변하다

과거 저는 가정에서 제가 가장 고생하고 그들은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며느리도 고생하고 힘들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지금은 며느리도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며느리는 매일 손녀를 학교로 데려가고 데려와야 하며, 또 연로하고 병환이 있는 부모를 보살펴야 하며, 또 여러 면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정말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는 며느리와 저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나쁜 물질이 없어졌음을 느꼈고, 그 물질은 바로 내가 붙잡고 놓지 못했던 사람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내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비의 웃음이었고, 말하기 전에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투도 부드럽게 변해 그들이 저에게 어떠한 일을 말해도 저는 모두 내심으로부터 우러나는 미소를 띠고 “좋아”, “할 수 있어”, “문제없어”라고 대답합니다.

한번은 며느리가 손녀를 데리고 응급 진료를 간 것을 알게 된 저는 전화로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너 혼자 고생이 많다.”

또한, 며느리가 정오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밥을 하려고 하여 저는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오전 내내 바삐 움직여 피곤할 테니 좀 쉬어라. 내가 해주마.”

또 한 번은 며느리가 시간이 없어 점심도 먹지 못하고 또 손녀를 학교로 데려다주어야 해서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줄 테니 너는 밥을 먹고 좀 휴식해라.”

이 평범한 말들은 모두 저의 진심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과거 같으면 저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었고, 이런 말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며느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을 알게 됐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말도 할 줄 알게 됐습니다. 며느리도 저의 마음을 느끼게 됐고, 며느리도 차츰 변화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늦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며느리가 저에게 전화로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제가 집으로 가는 길인데 차가 밀리고 있다고 말하자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과거 같으며 제가 걱정되어도 며느리는 저에게 전화하지 않고 남편에게 전화하게 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제가 혼자 있던 주방이 지금은 시끌벅적합니다. 며느리와 아들도 자주 주방에 나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며, 특히 일요일이면 더욱 활기에 차 그들은 솜씨를 발휘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분주합니다.

손녀도 변했습니다. 말투도 부드럽고, 자상해졌으며, 제가 무슨 작은 일이라도 해주면 손녀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변하니 우리 가정도 변했으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지금 나와 며느리는 다정하게 앉아서 가정일을 의논하며, 또 서로 상대를 관심 가지며 저는 또다시 애초의 그 집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제가 행운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기에 진정으로 따뜻한 가정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과 대법이 저에게 주신 것으로 인간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말로도 사부님에 대한 저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주:
[1],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1’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0’ ‘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원문발표: 2018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7/36501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