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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젊은 제자의 20년 수련, 각 방면에서 사존의 보호 느껴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7년 12살 때 법을 얻었고 올해 32살이다. 아래는 자신의 일부 수련 경험과 체득으로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어머니가 새 생명 얻은 후 온가족이 기쁘게 대법제자가 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줄곧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때 어머니는 낮에 시장에 가서 물건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셨고 외할머니가 날 돌보셨다. 우리 셋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았다.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갔다. 어머니의 수입이 그래도 괜찮아 가정의 지출을 유지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러나 8살 때 어머니가 상품을 들여오던 중 도둑을 만나셨다. 담이 작았던 어머니는 크게 놀라 집에 돌아온 후 큰 병에 걸리셨다.

의사는 어머니의 병은 신경성 질환이라며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셨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어머니는 유언까지 하셨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날 키워달라고 외삼촌에게(외할머니의 연세가 이미 많았기 때문) 부탁하셨다. 정말로 청천벽력과 같았고 온가족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살아날 운명이었다. 어머니의 친구는 소식을 듣고 우리 집에 왔는데 어머니에게 기공을 배우라고 했다. 이렇게 어머니는 기공을 4년간 배웠다. 비록 그 기간에 병이 다소 완화됐으나 좋았다 나빴다 했기 때문에 언제 병이 또 발작할지 몰랐다. 완치는 쉽지 않았다.

한 우연한 기회에 이모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파룬궁은 병을 고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며 어머니에게 파룬궁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믿지 않았고 그렇게 신기한 일이 어디에 있냐고 생각하셨다. 이모할머니는 도무지 어쩔 방법이 없자 내게 “엄마가 병이 많으니 먼저 너에게 공법을 가르쳐줄테니 나중에 엄마에게 가르쳐드려”라고 하시며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를 주셨다. 그때 이모할머니는 거의 70세 가까이 되고 멀리서 오셨기에 어머니는 체면상 가까스로 동의했다. 이모할머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게 파룬궁 동작을 가르쳐주셨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어머니는 동작을 배우자 몸이 아주 편안하게 됐다. “아마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인연 있는 사람인가 봐.” 이렇게 어머니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처음에 어머니는 연공하면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는데 ‘나는 진짜로 수련하는 제자에게 신체를 정화해준다’ 부분을 들었을 때 어머니는 따라서 “사부님, 저는 진짜로 수련하는 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하셨다. 이 일념 때문인지 7일째 되는 날 기적이 발생했다. 어머니의 병이 전부 없어졌고 몸이 아주 편안해지셨다. 병이 없고 온몸이 가뿐한 상태를 절실히 체험하셨다.

어머니가 연공하기 시작하신 며칠 후 부인병 검사 중 어머니에게 자궁근종이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4개월 7일 후 어머니는 자궁근종이 스스로 떨어지는 것을 직접 봤고 몸의 불편한 느낌도 사라졌다. 파룬궁은 정말 신기했다. 어머니는 기뻐서 엉엉 우셨다. 대법에, 사부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은 정말로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이렇게 나와 외할머니도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외할머니는 수련하기 전에 건강이 아주 좋지 못하셨고 일 년 내내 약을 드셨다. 금방 배울 때 외할머니는 감히 약을 끊지 못해 약을 드시면서 공법을 배우셨는데 법공부를 통해 외할머니는 천천히 인식하셨다. 갑자기 어느 날 외할머니는 집안의 모든 약을 다 정리하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셨다. 그 후부터 외할머니는 심장병, 류머티스 관절염, 고혈압, 신장병이 다 나았고 다시는 약을 드시지 않았다.

법을 얻은 그 해 나는 12살이었고 사상이 비교적 단순했다. 대법을 배우는 것을 통해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처음에는 다만 법이 좋아 배우려고 한 것이었다. 법공부를 통해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마음을 닦고 시시각각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대법을 배운 후 성적은 쭉 올라갔고 반에서 중위권이었던 내가 2등이 됐다. 어릴 때부터 아침에 밥을 먹으면 배가 아프고 선천적으로 구취가 있었으며 봄가을에 입술이 말라터지는 현상이 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다 나았다. 특히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흰 머리카락이 아주 많았고 눈에 잘 보여 보는 사람마다 나보고 검은콩과 검은 깨를 많이 먹으면 효과가 있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대법을 배운 후 기적처럼 없어졌다. 이것은 내가 생각한 적도 없었다. 또 두통, 위장병은 대법을 수련한 후 다 나았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 말씀하신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1]를 실증했다.

정념정행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가다

2008년 올림픽 기간에 현지 수련생이 대규모 불법 체포됐다. 우리 집 자료점도 파괴됐고 어머니가 도망치자 내가 인질로 파출소에 납치됐다. 나는 그때 22살이었다. 처음에 경찰이 심하게 날뛰어 나는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고 두려움도 많았다. 그들이 내게 뭘 물어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표면적으로는 아주 용감해보였다. 그러나 당시 나의 쟁투심으로 인해 그들의 좋지 않은 일면을 격화시켰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결국 파출소에 들어간 이튿날 그들은 내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고 파출소장은 직접 전기봉으로 내 귀와 입 등 민감한 부위에 충격을 주었다. 이후에 날 작은 방에 가둬놓고 쇠의자에 앉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두 손과 두 발을 묶어 움직일 수 없게 했다.

그들은 그 기간에 줄곧 번갈아 날 심문했다. 프린터, 자료는 어디에서 난 것이냐, 평소 누구와 연결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누구의 이름도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발정념하면서 안으로 찾았다. 끊임없이 정념을 강화함에 따라 다른 공간의 사악이 많이 적어진 것 같았고 환경도 따라서 개선됐으며 경찰도 그렇게 날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찰이 태도를 바꿨다.

나는 수련생들 가운데서 거의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이후에 몇 명 경찰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아주 탄복했다. ‘그렇다. 대법은 좋고 정확한 것이다. 대법을 배우는 것은 잘못이 없고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정확한 생명이다. 내게는 사부님이 있고 대법이 있는데 뭘 두려워하겠느냐’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2].

그때 정말로 생사를 내려놓았다. 그 기간에 한 가지 일이 아주 인상 깊었다. 양아치 같은 경찰이 있었는데 여러 번 나에 대해 악행을 부렸다. 가장 심했던 것은 내게 ‘큰 괘에 올리기(上大挂)’ 고문을 한 것이다. 두 손을 양쪽 벽 쇠사슬에 걸고 팔을 아주 높게 걸어놓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손목이 조여 흔적이 남을까 봐 낡은 수건을 두 손목에 받쳐놓았는데 수건이 아주 딱딱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고 몇 분 후에 아프고 참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때는 이미 며칠간 눈을 붙이지 못했기 때문에 눈을 감기만 하면 잠이 들었고 몸이 비뚤어지면 또 깨어났다. 오랫동안 쇠의자에 앉아있어 발과 다리가 심하게 부어서 신발도 터졌다. 시간은 1분 1초씩 지나갔고 얼마나 지나갔는지 모른다. 당시 폭행을 하는 경찰에 대해 한 치의 원망이 없었고 그가 가련하고 그도 중국공산당의 해를 입은 생명이고 진심으로 그가 좋길 바랐다. 이 일념을 내보내자 그의 태도는 급격히 바뀌었고 바로 날 내려놓았으며 높은 의자를 찾아 내 발을 올려주고 잘 휴식하라고 했다. 처음으로 선(善)의 힘을 절실히 체득했다. 이후에 그도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승인했다.

파출소에 7박7일 불법 수감됐고 그 기간에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때는 아직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비록 그 기간에 어떤 수련생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지만 경찰에게 모든 일은 다 자신이 했다고 자백했다. 이렇게 되어 구치소로 이송됐다.

구치소에 온 후 많은 수련생을 알게 됐다. 그녀들은 나보고 발정념을 많이 하고 법을 많이 외워야 한다고 일깨워줬다.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정념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매일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하고 기타 대부분 시간에는 수련생들과 단체로 법을 외웠고 발정념하며 연공했다. 놀라운 것은 집에서 법을 외운 적이 없고 안에서 다 수련생을 따라 외운 것인데 아주 빨리 외웠다. 특히 “主意識(주이스)가 강해야 한다”[3]라는 이 한 소절을 외울 때 수련생이 한두 번 외우는 것을 듣자 바로 익숙하게 외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수련생이 앞 한마디를 외우면 다음 한 마디는 내 머리에 들어왔다. 당시 속으로 사부님께서 도와주고 격려해주시고 있다는 것을 안 나는 아주 격동했다.

법을 많이 외움에 따라 소굴에서 뚫고 나가야 하고 반드시 시시각각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야 하며 이전에 자백한 것도 포함해 승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식했으면 해내어야 한다. 구치소 내부 지침을 모두 거절했다. 아침 체조하는 것이든 검사를 대응하기 위해 이불을 두부처럼 반듯이 개는 것이든 모두 협조하지 않았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번은 위에서 검사를 온다고 전부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대법제자들이 평소 죄수복을 입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교류하고 입을 수 없다고 인식했다. 이렇게 수련생들은 약속하고 누구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검사 당일 감방을 책임지는 교도관이 몇 마디하자 수련생들이 옷을 입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걱정했다. 마지막에 나만 입지 않았기 때문에 화살을 나에게로 돌렸다. 여전히 견지하고 입지 않자 그들은 내 뺨을 때렸다. 이후에 수련생들은 모두 스스로 잘하지 못해 나 혼자 감당하게 만들었다고 아주 자책했다. 나는 수련생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그들이 이후에 잘하길 바랐다. 한 걸음 한 걸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야만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에서 원래 벌거벗은 토지가 단번에 푸른 잔디밭이 됐고 생기발랄하게 됐다. 내가 정확하게 했다고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한번은 역시 상급에서 검사하러 오는데 우리보고 임시로 감방을 바꾸라고 했다.(우리는 평소 중범죄자를 가두는 곳에 수감되어 있음). 우리는 동의하지 않았고 수련생들은 이번에 꼭 잘 해내겠다고 약속했다. 수련생들이 아주 단결했기 때문에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교도소 책임자는 우리를 한참동안 동원했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 남자 교도관 몇 명을 찾아와 우리를 끌고 가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한 조씩, 한 사람이 수련생의 팔 하나씩 잡고 끌고나갔다. 비록 온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그들에게 끌려갔고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내가 바닥에 넘어지는 찰나에 현장에 있던 수감자들도 놀라서 울었다. 내 머리가 나무 침대의 모서리를 스쳐 지나서 넘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부딪혔다면 관성에 의해 심하게 다쳤겠지만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다. 이때 우리 감방의 한 여자 수감자가 교도소 책임자에게 “그들을 빨리 돌아오게 해요, 아니면 그녀들은 단식하고 항의할 겁니다.” 라고 했다. 그때는 단식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얼마 안 되어 우리보고 원래 감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다른 공간에서는 한 차례 정사대전이었다. 우리가 정확하게 걸었기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해결해주셨다.

이후에 날 모함한 안건이 공안국, 검찰원으로 넘겨졌다. 그들은 차례로 내게 물었고 나는 전반적으로 부정했으며 그들에게 대법 진상과 파출소에서 당한 박해를 말해줬다. 그들은 하나하나 기록했다. 검찰원 공무원은 내가 진술한 것을 듣고 파출소의 폭행을 믿기 힘들다고 했다. 사실 만약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면 나도 감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아직 악행을 부리는 경찰들에게 대법제자는 모두 선량하기 때문에 한 때의 명리를 위해 계속 악행을 부리고 자신의 미래를 매장시키지 말 것을 경고한다. 타인을 잘 대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잘 대하는 것이다.

구치소에 5개월 9일 수감됐다가 석방됐다. 표면상 집에서 사람을 찾아 인맥을 통해 날 구해온 것이지만 누구도 결정하지 못하고 오로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라는 걸 속으로 잘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 내가 정확한 길을 걸은 것을 보시고 소굴에서 구해주신 것이다.

직장에서 ‘만능형 인재’로 되어 대법을 실증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2009년 초부터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곳곳에서 퇴짜를 맞았고 연속 몇 개 일자리를 바꿨다. 임금이 아주 낮을 뿐만 아니라 전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한번은 영업직에 지원했는데 사장이 직접 면접을 보며 내게 몇 가지 사항을 물어봤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집에서 누구와 사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결손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솔직하게 결손 가정 아이들은 소통하기 어렵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처리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내가 영업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칼에 날 거부했다. 당시 그의 말을 듣자 속으로 괴로웠다. 필경 출신, 가정은 혼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어머니도 내게 잔소리를 하시며 일자리를 걱정하셨다. 방법이 없어 한동안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난 수련인이다. 사부님이 생각났다. 사부님 법상 앞에 서서 향을 피우고 마음속으로 ‘저의 일자리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후에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사장을 만났다. 우리는 거의 스쳐지나갈 뻔했다. 그날 채용박람회에서 나와서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데 마주 오는 사람이 “일자리를 찾으러 왔나요?”라고 물었다. 이렇게 나는 아주 순조롭게 지금의 일자리를 구했고 8년 가까이 일했다. 대법의 신기함도 각 방면에서 표현됐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영업인데 성공적으로 잘할 수 있으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솔직히 영업을 하라고 하자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확실히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어릴 적부터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하기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 수업시간에 문제를 대답할 때도 몹시 긴장하고 숨쉬기조차 어려워했다. 대법을 배운 후 성격이 많이 밝아졌고 말도 많아졌지만 영업을 하려면 말재주가 좋아야 했다. 그때 정말로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평소 전화로 고객과 교류하고 접촉한다. 그러나 영업을 시작한 후 불가사의하게도 매번 전화기를 들고 전화할 때 내 사유는 이상하게 똑똑하고 민첩해 고객에게 말이 아주 술술 잘 나왔다.

일할 때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모든 고객을 진심으로 대했다. 법 중에서 좋은 영업인은 자신이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각도에 서서 어떻게 해야 돈을 절약하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객들은 나와 오래 지내자 모두 날 믿어줬고 나와 접촉하기 좋아했으며 내 상품을 사길 좋아했다. 나는 우리 회사의 주력제품을 책임지게 됐다. 처음에 회사에 갔을 때 두 생산라인 중 하나만 사용했고 생산량이 적은데도 상품을 다 팔지 못하는 현상이 늘 있었다. 어떤 때 재고가 많으면 할 수 없이 생산을 멈춰야 했기 때문에 회사는 손실이 아주 컸다. 이후에 내가 인계받은 후 두 생산라인이 점차 동시에 가동됐고 생산량이 전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 설비를 점검하거나 설을 쇠는 등 특수 시간을 제외하고는 상품을 팔지 못해 생산을 멈춘 적이 없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대법이 준 것이고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예전 그 사장의 말대로 나는 정말 영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리 회사의 분업은 명확하지 않았다. 영업 외에 일부분 신용장도 책임졌다. 한동안 벵골로 수출할 때 신용장을 아주 많이 작성했다.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벵골의 신용장이 아주 번거롭고 요구하는 서류가 아주 많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그 기간에 줄곧 바이어와 교류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들이 어떻게 하라고 알려줬기에 은행에 신용장을 제출했을 때 신용장을 심사하는 은행직원은 서류를 이렇게 완벽하게 작성한 사람은 처음 봤다며 칭찬했다. 이것 역시 대법이 내게 준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회사에서 나는 또 ‘만능형 인재’로 불리고 있다. 무슨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다 나를 찾아왔고 내게 오면 얼마나 큰 문제든 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대법은 나의 성격을 바꿨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을 영업 고수로 만들었고 보기 드문 인재가 됐으며 일하는 중 각 방면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보여줬다.

직장에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다

내가 일하는 장소는 또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곳이다. 업무 때문에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은 짐을 실으러 온 기사들이다. 매번 진상을 알리기 전에 먼저 공간장을 청리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 및 요소를 제거한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라는 강한 정념을 내보낸 후 기사에게 진상을 알렸다. 보통 주도적으로 기사에게 ‘몇 시간 운전하셨어요? 고생 많으셨네요’라는 인사말을 했고 기사와의 관계를 가깝게 한 후 “기사님에게 있어서 안전은 가장 중요하죠. 평안을 보장하는 좋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면 부처님께서 보호해주실 겁니다”라고 했다. 대부분 사람은 듣고 아주 기뻐하며 동의했고 감사를 표했다. 시간의 길고 짧음에 따라 어떤 때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 ‘대법이 100여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등을 알려줬다.

처음에 두려워하는 마음과 염려 때문에 삼퇴를 감히 권하지 못했다. 직장에서 만일 상대방이 듣고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동료에게 말하면 다른 동료들에게도 영향을 줄까 걱정했다. 이후에 이것은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법공부하고 제고함에 따라 이 마음을 없앴다. 먼저 진상을 알리고 다음에 삼퇴를 권했다. 나와 접촉하는 대부분 기사들에게 삼퇴를 해줬다. 개별적으로 듣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만나기만 하면 그에게 진상을 또 알렸다. 언제 동의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 사부님의 고향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자 어릴 때 사부님을 뵌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아직 부대에 계셨는데 수업이 끝난 후 그는 늘 사부님을 찾아 놀러갔으며 그때부터 사부님이 아주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 그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했다. 사부님께서 그를 구하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서 그에게 대법이 널리 전해진 정황을 알려줬고 또한 순조롭게 그에게 삼퇴를 해줬다.

물론 내게 잘하지 못한 곳이 아주 많다. 어떤 때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일이 바빠 사람을 구하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매번 이 사람을 구하겠다고 소원을 내보내면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다 배치해주셨다. 이후에 언젠가는 만나고 틀림없이 이 사람과 다시 만날 때 말하면 보통 순조롭게 상대방에게 삼퇴를 권할 수 있었다. 정말로 당신에게 좋은 소원이 있다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것이다.

대법의 한 입자가 될 수 있어서 정말로 비할 바 없이 운이 좋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줄곧 자비롭게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2-정념정행’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4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7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4회(2017)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7/3561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