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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산간 지대에서 전해지는 대법의 복음

글/ 중국 대법제자(수련생이 도와 정리)

[밍후이왕]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대법 수련생 안녕하십니까!

나는 올해 76세로 학교 문을 들어간 적이 없다. 그렇지만 오늘까지 20년 가까이 수련한 경과, 체득, 깨달음을 말하고 사부님께 보고하며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말기암이 20일 만에 완쾌

대법 수련하기 전에 아주 어렵게 살았다. 남편은 반신불수로 침대에 드러누운지 몇 년이 됐고 나도 병투성이였다. 간염, 위장병이 있었고 거기에 담관염이 있어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로 죽을 지경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유방암이었는데 발견할 때 이미 말기였다. 1996년 8월에 수술했다. 수술할 때 의사는 가슴, 복부, 옆구리, 팔의 인대에도 전이됐다고 했다. 수술 후 온몸에 힘이 없고 오른쪽 팔은 축 늘어져 전혀 들지 못했다. 의사는 암세포가 온몸에 확산됐기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허우적거리며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돌봐야 했다. 그때 아이들은 모두 곁에 없어 도와줄 수 없었다. 심하게 괴로울 때 몇 걸음만 걸어도 쉬어야 했고 정신은 거의 붕괴 직전이어서 정말로 죽고 싶은 생각이었다.

1996년 12월 15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한 친구가 날 보러 왔는데 “파룬궁을 연마해, 파룬궁은 널 구해줄 수 있어”라고 했다. 당일 저녁에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러 갔다.

첫 눈에 사부님께서 아주 낯익어 자세히 생각해보니 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사부님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말씀마다 마음에 닿았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불법(佛法)이고 이분이 바로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에 녹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그때부터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튿날 연공장에 갔다. 보도원에게 내 오른쪽 팔은 무슨 원인 때문에 들지 못하는지 알려줬고 연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내 오른 팔을 조금씩 위로 들었는데 머리까지 들었을 때 ‘삐꺽!’하는 소리가 났다. 몇 초 후 팔에 힘이 생긴 것 같았고 손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공법을 배울 수 있게 됐다. 몇 분 사이에 사부님께서는 불구가 된 오른쪽 팔의 두 힘줄을 이어놓으셨다. 너무 신기했다! 눈물이 흘러나왔고 사부님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 지 몰랐다.

연공한 지 20일도 안됐는데 모든 병이 다 나았다.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운 느낌은 정말로 좋았다! 꼭 사부님 말씀대로 잘 연마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집에 법공부 팀을 설립했고 수련생들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법공부하고 서로 교류했다. 그때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대법을 알리고 그들이 대법 중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 보도원은 늘 우리를 조직해 여러 마을에 가서 홍법(洪法)하고 법을 알렸다.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 아들에게 1만 위안이 넘는 캠코더를 사달라고도 했다.

산간 지역에서 몇 집이면 한 개 마을이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산이 있었으며 집과 집 사이에 가파른 언덕이 있다. 비록 읍에 살지만 산간 마을에 들어가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 아무리 멀리 가도, 아무리 걷기 힘든 산길도 힘들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해줬다. 원래 말기암 환자였는데 대법을 20일간 수련하고 다 나았다고 했다. 매우 많은 사람은 나의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잇달아 법공부하고 연공을 했다.

어둠속의 빛

1999년 ‘7.20’ 후 형세가 돌변했고 대법은 비방당했으며 사부님께서는 모함과 억울함을 당하셨으며 대법제자는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우리 집도 가택수색을 당했고 악인들은 내 대법책, 캠코더 등을 가져갔기 때문에 슬퍼서 며칠이나 울었다.

법을 실증하기 위해, 사부님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수련생들은 여러 방법을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젓가락에 스펀지를 말고 빨간 페인트를 찍어 곳곳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썼다. 돌, 벽, 전봇대에도 썼고 종이에 써서 붙이고도 했으며 노란 천으로 걸어놓기도 했다.

한번은 수련생은 5미터의 긴 현수막 3개를 썼다. 눈이 내린 뒤 수련생과 함께 나가서 걸었다. 길가에 20미터 높이의 큰 표지판이 있었는데 받침대는 삼각형 철로 용접한 것이었다. 나는 10미터 높이까지 기어 올라가 현수막의 한 끝을 묶어놓았고 또 다른 쪽에 올라가 현수막을 잘 고정해놓았다. 하얀 눈길에서 노란바탕에 빨간 글자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다섯 글자가 보여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철 받침대에 눈이 있어 미끄러워 경찰도 올라가 뜯어내지 못하자 화가 나 미친 듯이 수련생 집을 찾아다니며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누가 쓴 것이냐?” “누가 걸었나?” “알아내면 중한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대법제자들은 누구도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이 현수막은 거기에서 보름 넘게 걸려 있었다.

또 한 번은 수련생 세 명과 함께 60개 현수막을 메고 길을 따라 나무에 걸어놓았다. 이 길은 국도라 지나가는 차량이 매우 많았다. 사람들은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멀리서 보면 아주 아름다웠다. 절반 걸었을 때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쫓아오는 것을 보자 우리 넷은 바로 옥수수 밭으로 뛰어갔다. 옥수수 밭 옆에는 기차 철도였는데 마침 사용하지 않는 기차가 철도에 멈춰있었다. 우리는 기차 밑으로 기여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경찰이 간 후 우리는 남은 현수막을 전부 다 건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산간지역 대법 진상자료는 매우 적었고 모두 시내 수련생들이 보내준 것이기에 우리는 매우 소중히 아꼈다. 매번 어느 마을에는 이미 배포했는지 곰곰이 확인하면서 배포하지 않은 마을에만 가서 배포했기에 배포할수록 멀리 갔다. 이후에 우리는 차를 타고 가서 먼 곳부터 배포하고 돌아왔다. 가장 먼 마을이 있었는데 60여리를 차를 타야 했고 걸어 돌아올 때 하룻밤 걸렸다. 힘들어 다리도 굽힐 수 없고 정말로 걷지 못하면 사부님의 시,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2]를 외우면 바로 상쾌해졌다.

한번은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날이 어두워 손가락도 보이지 않았다. 걷다가 길을 잃었고 발밑은 전부 돌이었고 몇 걸음 걸으면 넘어졌다. 정말로 걷기 힘들었고 방향도 잃어 어디로 가야할 줄 몰랐다. 이때 수련생과 함께 “사부님, 길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러자 바로 갑자기 몇 갈래 번개 같은 빛이 나타났다. 우리는 빛을 향해 5, 6분 걷자 큰길을 찾았고 빛은 사라졌다.

우리는 하늘을 보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길게 외쳤고 눈물이 비오 듯 쏟아졌다.

진상을 안 관리와 주민들이 구제됐다

수련생에게 부탁해 소형 복사기 한 대와 한번에 CD 4개를 넣을 수 있는 CD-RW를 샀다. 그리고 자료점을 설립해 현지에 진상자료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했고 외지 수련생들이 크고 작은 가방에 들고 다니는 위험을 면하게 했다.

나는 모든 시간을 이용해 진상자료를 만들었고 다 만들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어떤 때 몸에 묶었고 어떤 때 바구니에 넣고 위에 좁쌀이랑 기타 곡식을 넣었다. 당시 분위기는 아주 엄했고 나가고 들어올 때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련인의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대면했고 이웃 및 주변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냈으며 각 집안 상황에 따라 그들에게 진상자료를 보내줬다. 진상을 안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고 어떤 사람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요. 이후에 저도 배우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여자 수련생이 거리에서 진상을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게 발각됐는데 경찰 몇 명이 대낮에 그녀를 때려 기절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고 “당신들 너무합니다. 때려 움직일 수 없는데 아직도 때려요. 빨리 데려가 응급처치해요!”라고 군중들이 비난했다. 경찰은 이 여수련생을 차에 실었지만 응급처치하지 않았고 파출소로 끌고 가 찬물로 끼얹어 깨웠다. 이후에 이 수련생은 불법적으로 1년 반 노동교양을 받았다.

우리는 제때에 악인의 악행을 폭로했고 정의감 있는 마을사람들에게 감사했다. 우리는 대량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읍 사무실에도 배포했다. 한 읍 부서기는 진상을 안 후 읍에 수감되어 있는 10여 명 수련생을 몰래 놔줬다. 어떤 읍 간부는 “안전에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라고 당부했고 어떤 사람은 또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라고 했다. 이후에 이 사람은 과연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됐고 아주 대단했다! 이후 그와 그의 가족은 모두 복을 얻었다.

정념이 사악을 통제하자 경찰이 빈손으로 돌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사악한 경찰 몇 명이 쳐들어왔다. 다짜고짜 내게 프린터가 있다며 내놓으라고 했다. 그날 마침 기계를 다른 곳에 숨겨놓았다. 사부님의 배치에 감사드렸다. 그들은 우리 집집 구석마다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악인은 연속 9일 동안 한 무리가 왔다 가면 또 한 무리가 왔고 어떤 때 낮에, 어떤 때는 밤에 와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며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줘도 듣지 않았다.

이후에 9명 흉악한 경찰이 왔는데 그 중 어떤 사람이 총을 갖고 뒤에서 내 목에 대고 한 사람은 전기봉으로 내 머리를 찔렀다. “오늘 반드시 우리와 함께 가야 해. 솔직히 말할게. ΟΟΟ가 당신을 고발했고 복사기가 있고 CD 굽는 기계도 있으며 자료를 제공하고 배포도 한다고 했어. 나이가 많지만 활약이 대단해 중점인물로 찍어놓았지. 오늘 가지 않으면 안 돼!”라고 했다. 나는 “ΟΟΟ는 잡혀가 박해를 받아 흐리멍덩해져 막한 말이에요”라고 말하는 사이에 날 납치하려 했다. 나는 큰소리로 “절대 당신들 따라가지 않을 겁니다. 사부님께서 따라 가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사부님 말씀을 들어요.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니까!”라고 했다.

이때 반신불수로 침대에 있는 남편이 울면서 “그녀가 가면 누가 절 보살피겠어요? 사람이 없으면 저도 살지 못하니 저도 데려가요!”라고 했다. 마침 이때 둘째 아들이 문 앞에 나타났다. 그가 차를 몰고 외지에서 돌아왔던 것이다. 이 장면을 보자 “70세가 다 되가는데 뭘 상관해요? 학교도 다니지 못했어요. 무슨 기계요? 우리도 본 적 없어요”라고 하자 악인은 또 우리 아들을 향해 “어머니가 가지 않아도 되지만 반드시 보증을 쓰라고 해야 해. 아니면 당신도 일할 생각 말아”라고 말하고 이 한 무리 사람들은 차를 몰고 가면서 “또 올 거야!”라고 했다.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또 한 번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대법을 실증함에 사존께서 지혜를 하사

경찰이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고 협박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사했다. 셋째 아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 대법제자는 가는 곳마다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아들 집에서 진상을 자료를 만들면 불편하다는 것을 고려해 셋방살이를 했다.

당시 수련생과 연락하지 못하자 할 수 없이 먼 외성에서 대법을 수련하는 남동생에게 전화했다. 남동생은 내게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를 보내줬고 하나하나 하룻밤 가르쳐줬다.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이튿날 그는 돌아갔고 빼곡하게 글을 써놓은 종이 한 장을 남겨놓고 “누나, 여기에 쓴 대로 배우면 돼요”라고 했다.

나는 배우다가 울다가 했다. 나이가 이렇게 많고 또 지식이 없는데 언제 배울 수 있겠는가?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 법상을 보면서 “사부님, 제자가 둔합니다.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틀 후 난 정말 인쇄할 수 있고 자료를 다운할 수 있게 됐다. 삼륜차 한 대를 사서 혼자서 소모품을 사오고 혼자서 인쇄하고 혼자 나가 배포했다. 주택단지, 재래시장, 공원에 가서 매일 배포했고 어떤 때 대면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이후에 현지 수련생과 연락이 되자 또 법공부 팀, 서로 협력해 진상을 알리는 환경이 있게 됐다. 현지 수련생의 수요에 따라 또 컬러프린터를 구매했다. 이전에 퇴직금은 남편 약을 사는데 썼는데 반신불수 13년이 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생활비만 남겨놓고 기타는 전부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사용했다. 내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내 모든 것은 대법에 속하고 어떻게 해도 구해주신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큰 아들은 200평 넘는 큰 집을 샀는데 함께 살자고 했다.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자 아들은 눈물을 흘렸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므로 조사정법하고 사람을 구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고 아들에게 알려줬다. 아들은 이해한 후 또 내게 작은 집 한 채를 사줬다. 이렇게 혼자 살게 되자 충분한 시간이 있고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전력 투입할 수 있었다. 매일 할 일이 매우 많았다. 진상자료를 만들 때 너무 바쁘면 수련생보고 우리 집에 하루 이틀 묵게 하고 둘이서 함께 했다.

아무리 바빠도 정체로 협력하는 일에 빠지지 않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수련생의 생체 장기적출이 폭로된 후 공산당의 잔인함을 세인에게 알리고 만행을 저지하도록 세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우리 법공부 팀 수련생은 밤사이에 중국공산당 장기적출 만행을 온 시내 거리, 교외에 이웃마을에 붙이기로 결정했다. 나는 수련생 8명과 전기 삼륜차를 타고 먼 교외에 가서 붙였다. 한 대문에 붙일 때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보니 현 공안국이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달아나자 경찰도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왔다. 우리는 가로등이 없는 흙길로 달아났는데도 오토바이는 계속 쫓아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보리밭으로 들어갔다. 오토바이가 보리밭에 들어가지 못하자 경찰은 추격을 포기했다. 우리는 이렇게 또 마을로 돌아와 다시 전부 붙였다.

우리는 논길을 따라 귀가했다. 한 길은 보리밭에 관개하는 물에 씻겨 구덩이가 생겼는데 삼륜차가 구덩이에 빠져 뒤집어졌다. 우리 여덟은 전부 차에 깔렸는데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의 머리가 다 밖으로 나와 다치지 않았다. 나는 구덩이 변두리로 움직여 틈새로 기어 나왔고 이후에 또 두 사람이 나왔다. 우리 셋은 힘을 합쳐 차를 뒤집었다. 수련생은 다 나왔고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해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축전지가 튕겨 나갔기 때문에 시동을 걸 수 없었다. 우리는 어둠속을 헤매며 한 집을 찾아가 손전등을 빌려서야 축전지를 제자리에 설치해놓았다. 그러나 차의 헤드라이트가 망가졌고 날이 어둡고 또 깊은 밤이었기에 날이 밝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게 가지해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했다. 아니면 흙투성이로 어떻게 시내로 들어가겠는가? 좀 지나 시동이 걸렸다. 우리는 감동해 눈물을 머금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전기 삼륜차에 오르자 모두 기쁘게 웃었다! 매 사람의 솜옷이 이미 푹 젖어 얼음으로 됐지만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고 추운 느낌도 없었다. 차에서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옷의 얼음이 삐걱삐걱 소리도 났다. 집에 돌아와보니 새벽 3시 반이었다. 바로 씻고 나오니 마침 전국 통일 연공하는 시간이었다.

밍후이 달력을 사람마다 달라고 하다

새해 전에 B수련생과 재래시장에 가서 2017년 밍후이 달력을 배포했다. 우리는 몇 백 부 달력, 500장 단장 일력을 준비했다.

시장에 도착하자 우리 둘은 큰 소리로 “빨리 와요, 여러분에게 귀한 물건을 드리러 왔어요. 누가 얻으면 그가 복 받습니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갑자기 몰려와 우리 둘은 손발이 모자랐고 배포하면서 앞으로 갔는데 뒤에서 “저기요! 저에게 아직 주지 않았어요!”라고 외쳤다. 그리하여 되돌아가 그녀에게 건네줬더니 바로 펼쳐보고 “너무 예뻐요!”라고 기뻐했다. 천을 파는 몇 남자는 달력을 들고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자 세 시간도 안 되서 몽땅 배포됐는데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달력이 다 배포되자 경찰도 바빠졌다. 황급히 시장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노점상 손에서 달력을 빼앗았고 “누가 줬어요?”라고 묻자 “몰라요,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우리 둘은 바로 두터운 겉옷을 벗고 모자를 벗고 조용한 곳을 찾아 발정념을 했으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어서야 흩어지는 인파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진상을 널리 전하기 위해 우리는 재래시장에서 진상을 알리는 외에 1위안 진상지폐 100장씩 한 묶음으로 해서 잔돈이 필요한 노점상에게 바꿔줬다. 그들은 진상지폐를 쓰는 복을 체득했기 때문에 매우 빨리 바꿔갔다. 이 몇 년 동안 줄곧 노점상들에게 진상지폐를 바꿔줬는데 몇 만 위안을 바꿔줬는지도 알 수 없다.

간난신고 중 부처님께서 곁에 계시다

최근에 진상소책자, 전단지, ‘9평공산당’, CD는 모두 일대일로 배포했다. 얼마나 배포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삼퇴를 해줬는지 모른다. 하여튼 매일 나가서 배포했고 재래시장, 분식점, 상점, 길가, 역전 등지에서 늘 배포했다. 마음속에 사람을 많이 구하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아주 신기한 일이 있었다. 수련생과 함께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에요, 불광이 널리 비추네’를 노래하면서 걸어가는데 수련생이 하늘에서도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고개를 들고 보니 솜 같은 하얀 구름이 우리 둘 머리윗쪽에서 따라 오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온 노래지?’하고 의혹스러워하고 있는데 길가의 한 노인이 “부르는 노래가 무슨 노래기에 이렇게 듣기 좋아요. 귀가 많이 먹었는데도 들었어요. 노래에 감동을 받은 하늘에서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라고 했다. 속인마저 들렸다! 우리 둘은 감개무량했다!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사존께서는 언제나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하고 격려해주셨다. 오로지 정진하고 정진하고 또 정진하고 최후의 길을 잘 걷고 자신의 사전 큰 소원을 실행해야만 구도해주신 대자대비하신 사존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2-정념정행(正念正行)’

(밍후이왕 제13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3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6/3371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