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남을 개변시키려는 마음’을 닦아버리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나는 수련 중에 매우 큰 집착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남의 부족을 무척 마음에 두고, 늘 남을 개변시키려 한 것이다. 이 집착은 속인의 사업에서, 생활 속에서 아주 뚜렷하였고, 수련생과 왕래하는 가운데서도 줄곧 이러하였다. 그럼에도 나 자신은 줄곧 의식하지 못하였고, 일상 생활에 엄중하게 반영되었어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나 자신은 남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남의 수련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라고 내내 여겼다. 이 집착이 방임되어 엄청 커지고, 자신과 수련생과의 협력에 영향을 주고,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는데 영향을 주게 되어서야 비로소 돌연히 깨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찾는다는 것도 아주 쉽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층층으로 된 이유에 감싸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깨닫게 되었다. 수련이란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인데, 왜 늘 남을 보는가? 왜 밖으로 찾는가? 그건 법을 빗나간 게 아닌가? 나는 인식 하였다.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자신을 수련하는데 입각해야 한다. 자신이 있는 층차의 법의 요구 하에서 남을 선하게 대하고 남을 너그럽게 대하며, 남과 협력하여 법을 실증 하는 일을 잘하는 것이야 말로 수련을 잘 한 표현이 아닌가?

그런데 예전에 나는 왜 늘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을 가지고 속인과, 수련생과 쟁론이 그치지 않았는가, 왜 늘 남의 부족을 잡고 놓지 않았는가, 왜 늘 남더러 나 자신의 견해에 부합될 것을 요구 하였는가, 왜 늘 남을 개변시켜 자신에 부합시키려고만 하고 자신을 개변하여 남과 협력하지 못했는가. 만약 늘 그 표현이라면, 얼마나 좋은 일을 하던 간에 이런 좋지 못한 심태 때문에 가장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이 후에 나는 남의 부족을 보지 않고 남의 좋은 점을 많이 보며, 법으로 가늠하여 볼 때 남에게 정말로 부족이 있다면 나는 선의적으로 이해하고 묵묵히 잘 원용해 줄 뿐, 상대방을 책망하거나 개변시키려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교류 토론할 때 나는 자신의 견해를 말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자아적인 인식에 집착하여 남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10년 11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7/2319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