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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지 말자>> 문장을 보고서

글/ 대륙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1년, 동수의 고무격려하면서 나에게 표어 하나를 쓰면 된다고 하여 페인트 한 통을 샀다. 그 때 나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으므로 집 문에는 감히 쓰지 못하고 낡아빠진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 2,30리 떨어진 곳에 가서 표어 하나를 써 놓았다. 그럼에도 무서웠던지 아니면 힘들었던지, 아니면 다른 공간의 무슨 원인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돌아온 후 얼굴색이 누렇고 온 몸에 힘이 빠져 이틀이나 누워있은 후에야 점차 나아졌다. 다시 말해서 그 때부터 나는 주요하게 표어 쓰는 것으로 법 실증을 하였다. 중공은 몇 십 년 동안 매 번의 운동에 모두 표어를 이용하여 중국사람을 세뇌하였으므로 나도 표어로 법을 실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그 같이 험악한 환경에서 표어는 확실히 상상할 수 없는 효과를 일으켰다. 사람의 층면으로부터 말한다면 중공이 누구를 나쁜 사람이라 말하면 곧바로 나쁜 사람이어서 누구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였다. 제멋대로 날치는데 습관이 된 큰 우두머리는 누구던 다 그를 두려워하는 줄로 여겼는데, 법을 실증하는 큰 표어가 나타나면 그것은 큰 우두머리의 머리를 한 대 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는 스티커가 없었으므로 동수들은 정체적으로 협력해 어떤 이는 손으로 써서 내다 붙였고, 후에 도료 분무를 발견하여 더 편리하게 되었다.

한 때는 우리 지역 곳곳마다 대법 표어를 볼 수 있었다. 그 때 보도원과 사악이 골간이라고 여기는 수련생은 어떤 사람은 잡히고 어떤 사람은 감시 당하였다. 사악은 우리를 혼내 주었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한참을 겪고 난 후 사악에게 파룬궁은 잡을수록 더 사나운 진세를 보여준다는 걸 생각지 못하였다. 610은 아주 큰 정력으로 표어를 대처해야 하였는데 어떤 전봇대와 시멘트 기둥에는 밤새 사람이 지키고 있었으며, 글자를 지우고, 붙인 것을 긁어내야 했고, 공안국에서는 전문 차를 내어 순찰하면서 표어를 지웠다. 04년 초반에 우리는 정체적 협력으로 각종 색깔의 현수막을 전체 구역에 다 걸었는데 어떤 것은 공안국과 기관의 문 앞에까지 다 걸었다. 후에 내가 납치 당했을 때 한 경찰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 이젠 더는 우리를 시끄럽게 굴 수 없게 되었다. 우린 날마다 나가서 순찰 할 것이다.”

2003년 나는 610 두목이 우리를 박해하는 과정에서의 가한 일부 행위에 근거하여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전단지 한 편을 썼다. 어떤 동수에게 부동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더 큰 넓게 전단지를 돌리기 전에 나는 잡히고 말았다. 후에 어떤 수련생이 백여 장 찍어서 돌렸는데, 610 두목은 전단지를 보고 수련생을 찾아가 누가 썼는지 화를 내면서 물었다. ””내가 이런 사람인가?” 표면적으로는 무슨 효과를 보아내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틀림없이 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때 나에게는 사악을 건드리면 화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없었고 단지 잡힐수록 더 하였을 뿐이다. 지금 경험을 총화 해 보면 그 때의 방법이 확실히 법 실증, 진상 알리기에 기초를 다져 주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층면으로부터 말한다면 중공의 각 층 관원들은 모두 표면 문장을 만들기 좋아하므로 어쩌면 우리 이 곳의 파룬궁이 백분의 구십 몇 프로가 모두 ‘전화’ 되었다고 상급에 그 공로를 자랑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표어 현수막이 대량 나타난 것은 현지 사악의 머리에 상표를붙인 것과도 같아 그들의 상여금, 공적이 다 없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바탕 들볶은 다음 다시 사악에게 신호를 보냈다ㅡ 파룬궁을 없애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04년 내가 납치 당한 후 표어 현수막은 없어졌지만 표면으로 보면 사악도 인정하였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시디를 배포하는 것도 묵인 하였다. 그것은 저녁에 배포하면 아침에 사람들이 집안에 들고 가서 보기 때문에 표면상에서는 사악에게 그 무슨 영향이 없었다. 그 해 탄압이 시작 되었을 때 사악은 내가 집안에서 연공한다고 집에 앉아있지도 못하게 쫓아냈다. 그러나 내가 다시 감옥에서 나왔을 때엔 경찰이 나 보고 하는 말이 이후에 더는 밖에나와 하지말고 집안에서 연마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환경이 열렸던 것이다.

후에 피드백 상황에서 표어를 실증하였는데 두려운 마음이 중한 수련생에게도 고무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당시의 공포적인 기분으로 하여 수련생이 감히 걸어 나오지 못했고, 수련생과 접촉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수련을 그만 두었었는데 표어를 본 후에는 무척 놀라워하면서 아직도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1부터 2004년 납치 당할 때까지 줄곧 썼는데 그 때 우리는 단지 수련생 몇몇 명이 각종 방식으로 부단히 견지해 나갔고 속인도 인정해 주었다. 그러므로 후에 직접만나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해도 고발하는 사람이 무척 적었으며, 어떤 세인은 수련생이 이렇게 하는 것을 경찰이 관할할 수 없어서 그러는 줄 여겼다. 그래서 고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08년 올림픽 운동회 직전, 610 두목이 박해를 선포했다는 말이 들렸다. 주관 지도자는 우리에게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지 않는 게 그래도 좋다면서 단지 청원을 가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이 지역에는 04년부터 더는 박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고,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이 정념정행으로 집집마다 다니며 직접 진상자료를 배포하였다. 지금 우리 이 지역은 대낮에도 진상자료를 배포할 수 있다.

물론 진상 표어는 법을 실증하는 일종 방식이다. 관건은 법 실증 할 때의 심태가 발라야 하는바, 사부님 설법을 사고의 의거로 삼아야 하지 사악의 박해 규율을 의거로 삼는 것이 아니다. 구세력의 사상 틀에서 벗어나야만 최대한도로 사악을 제거하고 환경을 열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하게 법을 실증할 수 있는 방법을 신중하게 선택해야지(자신을 보호함을 중요위치에 놓는다) 정법가운데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이는 수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진작 허약해진 사악에게 목을 졸리고 있는 하나의 관건이라고 본다.

보잘 것없는 옅은 인식이므로 동수께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9월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15/2296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