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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지 말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 동안 현지 수련 환경은 줄곧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사악의 교란과 박해 사건도 부단히 발생하고 있으므로 동수들 마음이 무척 조급하다. 안에서 각종 각양의 원인을 찾아내고,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기도 했지만 수련환경은 여전히 개변이 크지 않다.

그 중에 있던 한 가지에 대해 나는 말해보고자 하는데, 바로 매 번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교란과 박해가 발생한 후이면,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고 정체적으로 협력해 발정념을 하고, 심지어 지속된 시간과 힘의 강도도 엄청 컸지만 왜 얻은 효과는 대단히 미미한가? 나 개인적으로 여기건 대, 그 원인을 밝히면 바로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인식 상에서 아직 그다지 일치하지 못하고, 우주 특성에 부합되지 않는 바르지 못한 염두가 존재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준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든다면, 매 한 차례 박해가 발생한 후마다 수련생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를 토론할 때면 두 가지 부동한 인식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마땅히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강도를 크게 해야 하며, 제때에 사이트에 폭로시키는 외에도 또 현지에서 전단지를 살포하고 표어를 붙여 사악을 진감시키는 강대한 형세를 이루어 사악에게 숨 쉴 기회를 주지 말며, 이런 형세를 사악이 깨끗이 소멸될 때까지 단숨에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과정에 중생구도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으며, 중생이 박해에 참여해 대법에 죄를 짓는 것도 제지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중생이 구도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데는 선(善)을 위주로 해야 하며, 특히 될수록 표어를 붙이지 말고, 이름을 지적하여 폭로하는 것을 줄여야지 사악을 건드려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현지 지도자는 모두 새로 온 사람들이어서 진상을 잘 알지 못할 수도 있고, 위에서 늘 검사가 내려오니 그들에게 대법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 몇 해 사이에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고, 대법을 널리 전한 표어는 아주 적었으나 반대로 사악이 대법을 모욕, 모함한 표어와 선전은 도리어 길가나 학교에 나타났다. 심지어 텔레비전에 공개적으로 현지 사당 지도자가 파룬궁 박해를 겨냥한 보도마저 나타났다. 최근 한 동안 여러 명 대법제자가 납치당해 세뇌반에 갔고, 어떤 사람은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으며, 많은 농촌 수련생들이 핍박에 못이겨 수련하지 않는다고 서명했다. 이런 교란과 박해는 정체적인 수련환경과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데 엄청 큰 영향과 손해를 주었다. 많은 동수들은 이 장이 바르지 않으므로 이런 환경을 가급적 빨리 개변해야 된다고 여기고 있다.

나 자신에게도 일찍이 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바르지 못한 인식 과정이 있었는데 끊임없는 반성과 안에서 찾는 과정에 나는 갈수록 이런 바르지 못한 인식의 배후가 무엇이라는 것을 비교적 분명하게 인식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날 세상의 어떠한 하나의 생명이든 모두 구우주의 이치 속에서 생긴 것인데, 그렇다면 이 생명의 최대 특징이 바로 사적인 것을 위한(爲私) 것으로서 이는 구 우주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우리 대법제자도 마찬가지로서 역시 구우주의 이치가 만든 생명이며, 또한 태어나서부터 구비한 이런 특징도 있다. 이런 특징은 우리에게 아직도 위사위아 한 본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결정하므로 우리가 일에 봉착하기만 하면 자각적이든 비자각적든 위사위아를 첫 자리에 놓게 만든다. 그렇다면 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이런 바르지 못한 인식의 배후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이 위사위아 한 본성이 아니겠는가? 법리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못한 것으로서 정념의 체현이 아닌 것이다.

위사위아 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바르지 못한 사유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은 사악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속인 중에서의 자신의 명예와 이익이 손해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래서 비로소 감히 사악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고, 비로소 이유를 찾아내어 구실로 삼고 그것으로 자기 배후의 그 진정한 사람마음과 집착을 덮어 감추는데, 실질은 사람 중의 것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대법제자로 된 행운이 있고, 사부님께서 또 신 우주 생명을 만들 수 있는 대법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으며, 우리에게 환골탈태 하여 신 우주의 생명으로 될 수 있는 신통과 지혜를 주셨으며, 또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정념을 가지 해 주시면서 우리가 줄곧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고 계시는데, 오직 우리 자신이 신사신법 하고 또 정념으로 봉착한 마난을 직면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 이미 이런 두려움의 근원이 있는 곳을 알았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사람마음과 집착을 향해 온 것임을 알았다면, 이는 우리 수련 중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고 넘어가야 할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표준에 따라 하고 정념정행으로 직면한다면 아직도 무슨 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기억하건대 현지에는 예전에 사악을 폭로했다 하여 납치 박해를 당한 사건이 생겨본 적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르고 가장 우주 특성에 부합되는 일이며, 사부님과 정신(正神)이 관할하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박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진작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사실 걸어 나오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이런 구실 아니면 저런 구실을 대든지 간에 모두 두려운 마음을 덮어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은, 수련자가 사람과 신으로 구별되는 증거[見證]이자 수련자와 속인의 구별이며, 수련자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것이며, 또한 수련자가 제거해야 할 최대의 사람 마음[人心]이다.”(법 공부를 잘하면 사람마음을 버리기 어렵지 않다)이 밖에 사부님께서도 일찍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다. “박해를 심하게 받은 지역, 파괴를 심하게 받은 곳, 그곳의 수련생은 정말로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각지설법3-대뉴욕지역법회설법)

기왕 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염두는 구우주 생명의 위사위아 한 본성이라면 우리는 이 사악을 건드려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과 기타의 무슨 두려운 마음 같은 것을 내려놓고 제고해 올라오자.

본문은 어느 수련생이 무슨 말을 했다고 해서 책망하려는 뜻은 없고 단지 이런 현상을 써서 동수와 공동히 토론하고 사고하려는데 있으니, 타당하지 못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9월 3일

문장분류 : 정법추천문장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3/2291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