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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창춘 파룬궁수련생들도 당신을 염려하고 있다”(사진)

글/ 창춘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밍후이왕에 실린 ‘토마스 “창춘 수련생들 영원히 잊지 않을 것”’를 보고서야 당시 연공장에 나왔던 프랑스 동수 토마스가 이미 호주 시드니에 정착했고, 여전히 대법 가운데서 수련하고 있으며, 창춘 동수와 창춘에서 지냈던 나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定居悉尼的法轮功学员法国人托马斯·多布森(Thomas

시드니에 정착한 프랑스 파룬궁 수련생 토마스 돕슨

처음 토마스를 만났을 때는 보도원 집에서였는데, 토마스는 당시 그 집에 살고 있었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알고 또 프랑스어도 좀 알고 있어 보도원은 나에게 그의 집에 가서 토마스와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함께 간 사람은 또 영어를 할 줄 아는 물리학 교수였다. 보도원도 영어를 알았는데 그는 연세가 많았고 생각이 빈틈 없었다. 창춘의 겨울은 몹시 추워서 그는 토마스가 이곳 생활에 습관이 되지 않고 적적해 집 생각을 할 것 같아 늘 영어를 할 줄 아는 수련생을 불러다 토마스를 도와 중국어를 배우게 했고 또 수련 체험을 교류했다.

토마스는 『전법륜』을 이해하기 위해(당시 아직 영문판이 없었다) 전문 중국어를 배우러 와서 일하는 한 편 공부를 했다. 나는 그 때 수련한지 1년도 채 안됐으므로 아직 토마스처럼 그렇게 대법이 소중하고 얻기 어려운 것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법을 잘 배우기 위해서 어쨌든 중국어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마스를 알게 된 이후 나는 대법의 소중함을 더욱 더 인식하게 됐다.

그 때부터 우리 연공장에는 프랑스 동수 토마스 한 명이 더 늘어났다. 처음엔 모두 호기심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니 그는 아주 부끄러워했다. 서서히 모두들 익숙해지자 주동적으로 그를 아는 체했고 토마스도 미소를 짓고 여러 사람에게 인사했다. 내 기억으로는 엄동설한부터 초여름에 이르기까지 토마스는 한 번도 아침 연공에 빠진 적이 없었다. 우리 연공장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늘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면서 말했다. “서양 사람도 파룬궁을 연마하네.”

11년 전, 창춘에 있을 때 토마스는 20살을 갓 넘은 총명하고 솔직하며 부끄러움을 잘 타는 젊은이였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법을 얻은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대법이 그를 개변시켰고 그에게 남을 관심하게 했으며 많은 나쁜 버릇을 버리게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서양 청년들의 흑백이 전도된 그런 생활방식에 습관된 것 등에 대해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법이 그에게 사람이 사는 의의에 대해 알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을 아주 동경했고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사랑했으며 이곳 동수와 수련 환경을 좋아했다. 그는 늘 기쁨에 넘쳐 말했다. “창춘엔 이렇게도 많은 연공장이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으며 사람마다 모두 나를 그렇게도 잘 대해줍니다.”

99년 5월, 연공장에는 또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한 사람이 더 늘어났는데 그는 바로 토마스의 어머니로서 토마스를 보러 왔던 것이다. 토마스의 어머니는 1995년 사부님께서 프랑스 파리에서 여신 설법 학습반에 참가했던 사람으로서 유럽에서 가장 먼저 파룬궁을 수련한 서양 수련생 중 한 사람이었다. 나와 토마스 어머니는 만나기만 하면 서로 인사만 했을 뿐이지만 그녀의 단아하고 단정한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법 수련은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 아름답게 변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숙연히 존경하게 한다.

토마스가 귀국할 때 모두들 얼마 후면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뿐, 누구도 당시 이별이 뜻밖에도 10여 년이나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99년 6월, 이미 각지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우리가 이런 박해 소식을 의논할 때면 토마스는 이해되지 않는다는듯 나에게 물었다. “왜 요즘은 가는 곳마다 모두 이것을 의논하지요? 몹시 중요한 건가요?”

나는 그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문제를 해답할 방법이 없었다. 그건 나도 역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공법이 왜 공격을 받아야 할까? 이렇게 훌륭한 수련인들이 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가? (중공)정부의 정책은 무엇 때문에 이랬다저랬다 하는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다 ‘眞善忍’ 수련자에게 죄를 들씌우는 중공의 모든 행위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 했으니 하물며 자유 민주국가에서 사는 젊은이임에랴.

11년 동안, 비록 박해는 받았지만,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박해로 사망하기까지 했지만 우리 연공장의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날마다 밖에서 연공할 수 없고 연계도 적었지만 우리 마음은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토마스에게 알려주고 싶다. 당신의 염려에 감사드린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여전히 수련을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파룬따파가 좋고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와 해외 동수들에게 감사 드린다. 특히 서양인 동수들의 그 동안 줄곧 국내 박해를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에 감사드린다.

문장완성: 2010년 8월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4/2279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