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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암송 과정에서 변화

글/ 중국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24일]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이며 현재 36세이다. 세 식구이며 아들은 몇 살 된다. 우리는 가정 자료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 자료는 오직 우리가 하고 있다. 재작년부터 법암송하기 시작해서 나는 마침내 새롭게 수련하는 느낌을 가지게 됐다.

사악이 대법을 박해할 때 나는 사당의 박해로 1년여간 감옥에 갇혔다. 나온 후 정진하지 않았으며 머릿속에 사오 사상이 들어있어 전혀 정진할 수 없었다. 힘껏 수련하고 있다고 느껴지나 큰 돌파가 없었다. 2002년 나는 동수와 결혼했다. 남녀사이의 정과 부부의 정이 저도 모르게 자라났다. 그때는 스스로 아주 담담했다고 느꼈는데 사실은 그 속에 빠져서 모르고 있었다. 사람이 정에 깊이 빠지면 가정의 모순은 곧 점점 돌출해진다. 내가 법암송하기 전에 더 정확히 말하면 2번 『전법륜』을 외우기까지도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다투었다.

남편은 집에 컴퓨터가 있게 된 후 점차 컴퓨터기술에 빠져들어 법공부에도 정진하지 않고 연공과 발정념에 모두 졸았다. 나는 속으로 조급했고 매일 그를 지적했다. 자료를 제작해도 도와주지 않았고 나는 정속에서 속으로 괴롭기 그지없었다. 어떤 때는 좋은 말로 권해보고 어떤 때는 심하게 질책도 하고 몇 년간 그는 여전히 이러했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그에게 성을 내면 안되었으나 참지 못했고 그때마다 그는 나에게 한마디씩 던졌다. 그러면 나는 더욱 흥분했다.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수련생을 찾아 교류해 남편을 개변하려 생각했다.(일념이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는 것이었고 밖을 향하여 찾았다) 그러나 결과가 없었고 나는 여전히 그와 다투었다. 나는 고통스러었고 안을 향해 찾았다. 쟁투심, 질투심, 정 …그러나 관건적인 시각에 또 참지 못했다. 나는 수련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졌고 심지어 사존님의 법상을 마주하고 울면서 구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가정 난이 나의 생사고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어느날 사존님은 수련생을 배치해 우리 지역에서 법암송에 관해 교류하게 됐다. 수련생이 말했다. 법암송은 일체 문제를 해결한다. 나는 암송하기로 결심했다. 재작년 11월 달부터 현재까지 거의 세 번을 외우고 있다.

법암송하면서 나는 자신이 자기도 모르게 많은 집착을 내려놓았음을 발견했다. 대법도 나에게 아주 많은 법리를 나에게 나타냈다. 가정 난을 넘지 못함은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한 것으로 깨달았고 사랑과 미움은 모두 정이었다. 내가 만일 남편을 일반 손님으로 대한다면 남편의 일체 표현에 대하여 그렇게 집착할 수 있었을까? 그로부터 평소에 눈에 거슬리고 혹은 아주 정진하지 않거나 혹은 그의 언행이 자극해올 때 나는 전보다 많이 담담해졌고 더이상 다투지 않았다. 또 그의 언행을 주의하지 않게 됐다. 집착하는 정이 없자 그의 어떠한 언행도 나를 자극할 수 없었다. 정이 없자 비로소 진정한 자비심이 나왔다. 전에 비해 자비심이 더 많아졌음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그렇게 자아를 고집하는 감정이 지나치지 않았다. 조용하고 자비로운 말이 전에 비해 더욱 위력 있었다. 이것이 내가 법암송을 한 후 가장 큰 감수다.

진상을 알리면서 나는 자신이 말이 상대방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이 자비의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자신의 이 정(부부지정, 남녀지정, 동료지정, 애호, 사랑과 미움 등등)을 정말로 깨끗이 닦아야 했다. 우리가 진상을 더욱 잘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한번은 내가 소책자 몇권을 사직한 동료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 자료를 숙소에 두었다고 말했고 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자료를 내 책상에 놓았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자 그녀는 ‘소귀에 경 읽기’라고 했다. 그녀의 이러한 표현에서 나는 자신이 정이 있어서 공간마당이 깨끗하지 못해 그녀가 진상을 아는데 장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닦아버리지 못한 정은 정말로 나를 아주 고통스럽게 휘감았고 장시간 정진할 수 없게 했다. 뒤돌아보면 정말 무섭다. ‘누에가 고치를 만들다 스스로 묶인’ 격이었다. 그 한가닥 한가닥의 정은 자신을 묶어놓았다. 다행히 법암송을 하게 됐고 법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 집착을 버리는 힘이 아주 커졌고 그것은 법이 부여한 힘이었다. 전에 우리는 동수와 함께 앉으면 끝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았다. 전부 개인 수련에서의 문제로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이러저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내가 어찌해야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시간도 아주 낭비했고 문제는 영원히 그렇게 많았으며 남이 나에게 답안을 주었으나 자신은 진정으로 법리에서 깨닫지 않았으며 그 경지까지 승화하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법암송할 수 있었고 일체 문제는 모두 법에서 답안을 찾았다.

대법은 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법을 스승으로 모시면 사부님은 곧 신변에 계신다. 이 문제에 있어서 내가 십여년을 수련했으나 지금에서야 진정으로 실천 속에서 ‘법’이 곧 ‘스승’이며 매일 나를 점오해주고 있음을 느꼈다.

법공부하고 법암송하는 것도 마가 교란하는 이런 정황이 존재했다. 한 가지는 외래 교란이다. 예를 들면 법암송하려 하면 속인이 나를 찾아왔서 무슨 무슨 일이 있다고 했고 혹은 손님이 찾아왔고 혹은 친구들이 도움을 청하러 왔으며 혹은 밖에서 높은 소리로 유행곡이 들렸다. 이때 나는 이것은 교란임을 깨닫고 발정념으로 교란을 제거했다. 내심으로는 확고한 결심이 섰다. ‘법암송을 하겠다!’ 아주 빠르게 교란들이 없어졌다. 또 일종 교란은 우리 자신에게서 왔다. 이러한 교란은 가장 미혹되기 쉽다. 그것은 자신의 공간에 일부 업력과 좋지 않은 사상관념 등임을 깨달았고 정념이 약하고 인식이 똑똑하지 않을 때 그것은 우리의 사상을 지배했다. 우리는 그것을 늘 자기 본성의 생각이라고 여긴다. 그것들은 곧 우리의 법공부를 교란한다. 내가 막 법암송을 시작해서 한 단락을 외웠을 때 사상잡념이 아주 많았다. 어느날 나는 오전 시간을 들여 법암송하려 마음먹었다. 한참 외웠는데 나의 마음은 아주 혼란했다. 견디기 어려운 적막감이 들었다. 다른 일을 막 하고 싶어졌다. 이러한 표현으로부터 정진하는 힘이 아주 부족함을 보게 됐다. 또한 자신으로부터 오는 교란이 가장 큰 것임이 명백해졌다. 전에 나도 늘 자료를 제작하면서 법암송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료를 제작하려는 생각이 들었고 법을 한 단락 외우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결과 법암송을 조용하게 할 수 없었다. 이후에 한 수련생이 일깨워주었다. “자료를 제작하면서 법암송할 수 없다.” 나는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았다. 출근해야 되고 법암송해야 되고 또 자료도 제작해야 하는데 어찌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2008년 8월부터 나는 진정으로 법암송은 곧 법암송해야 하는 것을 해냈다. 매일 아침 발정념을 마치고 법암송을 시작했고 점심밥을 대충 먹고는 또 계속해서 법암송했다. 시간을 다그쳐 법암송했고 진정으로 법을 첫 자리에 놓았다. 현재는 전에 비해 시간이 더 많아졌다. 법암송은 수련인을 아주 빨리 제고시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행기를 탄 것과 같다. 법암송하면서 많은 좋지 않은 것을 제거할 수 있으며 이런 좋지 않은 것은 모두 생명이며 그것들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우리의 사상을 교란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만두자, 법암송이 이렇게 힘든데…” 이러한 것은 모두 우리 본성의 일면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법륜』을 세 번을 외우기 시작해서 매일 평균 6페이지를 외울 수 있고 사유가 명석해졌으며 많은 일도 안을 향해 자신의 집착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씬씽(心性)이 확실히 아주 빨리 제고됐고 아주 홀가분해졌다. 현재 나는 매일 적어도 4∼5시간, 혹은 6∼7시간 법암송한다. 그러면서 매 정각마다 발정념하는 것을 견지했다. 이렇게 했으나 오히려 자료를 제작하는 시간이 적어지지 않았고 효율도 높았으며 시간도 충족했다. 전에 나는 시간이 없어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다운로드, 메일을 발송하는데 일종 물건이 있어서 장애하고 막고 있었다. 나는 그 장애는 바로 아주 많은 닦아 버리지 못한 집착, 특히 정이 장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편은 기술적인 일을 하고 있어 나는 인터넷, 다운로드는 하는 것을 줄곧 남편한테 의뢰했다. 현재는 나 스스로 할 수 있으며 의뢰심도 점점 작아졌다. 나는 사존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과거에 그 고인의 행동은 아주 빨라서 하루에 백리길을 걸으며 그 말은 하루에 천리길을 가는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장춘 보도원 법회에서의 설법』) 그러나 현대인은 그렇지 못하다. 하여 내가 깨달은 것은 법을 첫 자리에 놓으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내어 법공부(뿐만 아니라 법공부는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해야 한다. 그러면 씬씽을 제고하고 중생구도 하는 일에서 속도가 빨라지고 효율도 높아지며 정말 너무나 좋아진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매일 사람을 구하는 일에 조급했고 법공부에 조급했으며 시간이 적다는 느낌만 들었고 이마에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파뭇고 했으나 한 가지도 잘 해내지 못했다. 근본 원인은 주요한 일과 부차적인 일을 분간하지 못했으며 법공부를 첫 자리에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공부를 마음에 들게 하지 않으면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법암송은 높은 효율의 법공부 방법이다. 이렇게 많은 좋은 점이 있기에 나는 정말로 법암송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 다시 한번 사존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동수들이 입이 닿도록 권해주고 교류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24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 심성제고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4/2221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