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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에 향촌에 복자를 주면서 3천여 명에게 3퇴를 권하다

【명혜망 2009년 2월 9일】 2009년 음력설이 돌아올 즈음에 헤이룽장성 중서부의 모 현 대법제자는 2천여 장의 ‘복(福)’자를 복사해 농촌 각 마을에 가서 ‘복’자를 주는 것을 이용하여 화제로 삼고 진상하며 ‘3퇴’를 권하는 데로 돌렸다. 현성(縣城)내의 대법제자들은 주동적으로 향진의 동수들과 배합하여 한 대의 소형 봉고차를 제공하면서 매번 6~7명의 수련생을 싣고 대법제자가 없는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진상을 하였다.

음력설이 돌아 올 때면 농촌 마을에서는 복자를 받는 습관이 있기에 촌의 사람들은 복자를 쉽게 받아들였다. 특히 무료로 ‘복’자를 준다는 말을 듣고 우리 모두에 대하여 아주 우호적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즉시 화제를 ‘3퇴’로 돌리면서 또 “하나의 더욱 큰 복을 당신들에게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 단, 소선대에 가입했어요? 3퇴를 하면 평안을 보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라고 물었다. 대부분은 모두 가입했다고 하고 이런 말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 다음 3퇴를 권했다. 절대 다수는 모두 퇴출에 동의했다. 그 후에 우리는 즉시 그들에게 길한 이름을 지어주어 ‘3퇴’를 시켰다.

여기에는 앞서 몇 년 동안 대법제자들이 《9평》과 기타 대법의 진상자료 및 여러 가지 진상 CD를 전하여 사람들이 진상에 대하여 일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 ‘3퇴’에서 아주 순리로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두 촌과 마을에서 기독교를 믿는 개별적인 사람들이 퇴출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기타 대다수는 모두 ‘3퇴’를 시켰다. 39(가장 추운 날)날 기온이 영하 30도 가까이 되었는데도 우리들의 구도중생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우리는 줄곧 음력 섣달 29일까지 전체 현의 대법제자들이 당면에서 진상하여 3천여 명을 ‘3퇴’ 시켰다.

음력 그믐날 저녁에도 우리 대법제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설을 쇠지 못했다. 우리들은 농촌 마을에 가서 ‘9평’과 기타 대법 자료, CD를 등을 5개 촌에 단숨에 배포하고 나서 밤 11시 되어서야 가족들과 함께 설을 쇠었다. 그믐날 밤 12시 정각에 물만두를 먹은 후에 우리는 또 농촌 마을에 가서 한 번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집으로 와서 휴식했다.

2009년 음력설에 우리도 사부님께 신년카드를 드렸다.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하였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설에 3천여 명의 중생에게 3퇴를 시켰다. 이번에 얼굴을 맞대고 3퇴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가슴깊이 대법의 위력을 체험하였다. 모든 이러한 행동은 모두 사존의 가지와 안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잘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에서 우리에게 “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 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 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새로운 한해에 반드시 더욱 갑절 정진하여 자신을 수련하는 동시에 전력으로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로 결심하였다. 앞으로 우리들은 신운 CD를 배포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계속 농촌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진상하여 3퇴를 권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문장완성:2009년 2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2/9/19509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