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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린 경험

【명혜망 2009년 1월 31일】우리 지역에서는 적지 않은 동수들이 농촌에 가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려 3퇴를 권하고 있다. 나는 다만 그들과 협력해 집에서 발정념을 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주 조급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평소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 저녁이었다. 평소 진상을 알려 3퇴를 하는 것은 모두 친지, 동료, 동창, 이웃, 아는 사람, 혹은 택시 기사나 장사하는 사람 등으로 대부분 모두 한 사람을 상대한다. 만약 농촌 마을에 가서 직접 진상을 한다면 한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려고 생각하면 좀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중생을 구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을 돌파해야 했다.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그러나 이 한 발을 내딪는 것이 나에게는 확실히 힘들었다. 가기 전에 먼저 발정념을 하고 또 동수에게 도와줄 것을 청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속인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내게 친구가 있는데 바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와 함께 집집마다 다니면 사람들이 그의 체면을 보아서라도 나를 신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내가 어찌 속인에게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신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내게는 사부님께서 계시고 호법신이 있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드디어 나는 집에서 걸어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먼저 친구 집에 가서 한 폭의 주련(对联) 복(福)자를 주고는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이 대련을 집집마다 나눠주고 싶은데 여기는 집집마다 거의 개(말 밖의 뜻은 그에게 나와 함께 가자는 것)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친구는 “보통 개줄에 묶여 있다”고 했다. 단, 누구 집에는 큰 개가 있는데 끈을 매지 않았다고 하면서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보아하니 친구는 나와 함께 다닐 마음이 없었다. 나는 또 조금 두려운 마음이 생겨 거기에 앉아서 수다만 떨면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다가 생각해 보니 이래선 안 된다. 나는 무엇을 하러 왔는가? 진상을 알려 3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사부님께 가지해주실 것을 청하고 발정념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들어간 집에선 진상을 잘 받아들였다. 들어가면서 우선 그 집 사람들에게 설 문안을 하고 주련을 주니 주인은 내가 파는 것으로 착각하고 돈을 꺼냈다. 나는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 돈을 받을 거면 복을 준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주는 큰 복은 뒤에 있어요. 이어서 그에게 진상을 알려 3퇴를 권했는데 그는 아주 잘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려 소선대에서 탈퇴하게끔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들 일가족 7명은 문을 열자 기쁜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나는 속으로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일부 환희심이 나타났다. 나는 자신에게 마음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 이렇게 계속하여 집집마다 다녔는데 모두 아주 순조로웠다. 심지어 노당원도 힘들이지 않고 퇴당했다.

또 몇 집을 갔는데 한 집은 사당의 당원이었다. 들어가서 복자를 주었을 때 그는 아주 기뻐했다. 파룬궁 말을 꺼내자 눈을 치켜세우면서 자신은 당원(사당)이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믿지 않고 다만 자신만 믿는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그는 듣지 않았을뿐더러 나를 쫓아내려 했다. “당신이 다른 말을 하면 우리가 말을 하면서 술도 권할 수 있지만 당신이 파룬궁을 말하면 지금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발정념을 하면서 당신에게 파룬궁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듣지 않으면서 주련을 도로 주면서 나를 내쫓았다.

나는 머리를 돌려 자신을 찾으면서 무엇 때문에 이런 문제가 나타날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구도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마에 쓰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구도될 수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되며 그것에 이끌려 움직여서는 안 된다. 여전히 자신의 문제이다. 아마 나의 자비심이 모자란 것이 아닌지, 아니면 환희심이 조성한 것이 아닌지 안에서 찾았다. 이때는 이미 몇 십 명이 탈퇴했기 때문에 사부님의 보호 하에 나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얼굴을 맞대고 하는 진상에서 성과도 있고 유감도 있었다. 나는 우선 직접 진상을 알리는 방면에서 돌파가 있었다. 두려운 마음을 적지 않게 없앴고 이 과정에서 정념이 충족해야 하며, 이지적이어야 하며, 더욱이 자비심을 강화해야 한다. 또 환희심으로 결과를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속인에 이끌려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대로 정의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것을 깨달았다. 비록 이번에 몇 십 명에게 탈퇴를 권했지만 이것은 나 개인의 공로가 아니며, 사부님의 정법 홍세에서 한 걸음을 디딘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악이 적어지고 아주 적어져 사람들도 청성해졌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오직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그것을 찔러 구멍만 내면 되는 창호지와 같은 느낌이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

문장발표 : 2009년 1월 3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1/31/19457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