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워싱턴 dc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21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사부님 및 여러 동수들을 모시고 지난 몇 년간의 심득교류를 발표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 속인 층차의 법을 원용해 진상을 더욱 잘 알리자
사부님께서는 『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는 때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
내가 수련에 걸어 들어온 후, 특히 박해가 시작된 후 줄곧 속인 이 한 층의 법을 원용하는 것도 법을 실증하고 중공의 거짓을 타파하는 일부분이라고 여겨왔다. 때문에 공부는 물론이고 속인의 일을 함에도 나는 가급적 속인들이 흠을 잡을 수 없게 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지도교수님이 대학원 우수 졸업생으로 추천해주셨다. 교수님은 내가 학문적인 성취 외에 또 간단한 개인 소개를 하게 하셨다. 우수졸업생을 시상하는 곳은 대개 대기업 수석집행관이기에 나는 이것도 법을 실증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줄곧 중국의 인권박해, 특히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끝내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상식 날 학교에서는 아주 성대한 만찬을 열어주었다. 우리 대학원에서는 겨우 두 명의 박사 졸업생만 상을 받았기 때문에 만찬에서 후원해준 몇몇 대기업 사장님들과 함께 앉게 되었다. 내게 상을 수여한 사장님이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물었다. 나는 중국 인권을 위한 시간을 좀 더 내기 위해 학교에서 인터넷 엔지니어 겸 객원교수로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오늘 오후 시상식을 하기 전에 당신을 만나보고 싶었다. 자기소개 중에 파룬궁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나는 파룬궁이 뭔지 몰라 인터넷에서 조사해보았고 상당히 많은 논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중국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하는 말은 중국 정부에서 하는 말과 아주 비슷했다.” 나는 자신이 실제로 겪은 진실한 경험과 대법진상을 그에게 알려주었고 그날 저녁 우리는 아주 즐거운 대화를 가졌다.
만찬이 끝난 후 나는 그 사장님과의 대화를 회억해 보았다. 그가 보기에 대학원 학위는 사회적으로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열쇠였다. 비록 우리가 속인 중에서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주류사회로 더욱 진입할 수 있게 해주며 보다 많은 사회 고위 인사들을 접촉할 수 있게 해준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진상을 알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실 이들 인사들은 자기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더 신뢰하기에 만약 내가 그들과 함께 동석해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아마 자기 주변의 중국인 동료들이 말하는 중공의 거짓말을 믿었을 것이다.
최근 정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 속인 중의 학력과 직함이 수련인은 비록 마음에 두지 않지만 상대방은 내가 명함을 건넬 때 신뢰감을 표시하게 해 서로 간에 더 잘 협력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때문에 나는 속인의 이 층 법을 원용하는 것이 비록 일부 시간과 정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바르기만 하다면 대법은 그것을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데 조력이 되게 할 수 있다.
2. 마주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또, 당신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 생활 중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 일하는 중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모두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 바로 인간세상에서 총총히 한번 지나가는 중에서 미처 말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자비를 상대방에게 남겨주어야 하며 마땅히 제도받아야 할 이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며 인연 있는 이를 더욱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은 우리 주에서 가장 큰 공립대학으로 중국대륙의 많은 대학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매년 중국에서 수백 명의 교환학생이 온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줄곧 중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진상을 알리는데 아주 중시해왔지만 생활권 때문에 늘 접촉할 수 있는 중국인이 아주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사조차 없었다.
2007년 신당인 무용대회가 중국유학생들의 교란을 받았고 중국유학생회가 대사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일이 점차 폭로되었다. 어떻게 이 수백 명의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중국 유학생이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학교의 cssa 이메일에 가입해 평상시 생활관련 정보들을 보낸다. 나는 다른 몇몇 학교의 대법제자들이 cssa 단체 메일로 진상자료를 보낸 후 관리자로부터 쫓겨난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들에게 진상을 알리려 생각했고 가장 먼저 관리자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내가 보낸 메일을 모두 여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선 홍대한 자비를 품으시고 사람을 제도함에 직업을 보지 않고 단지 사람마음만 보신다. 나는 그가 누구이든 구도하려는 선한 마음을 품고 한번 시도해보리라 생각했다. 작년 가을 개학 전에 나는 단체메일의 한 관리자와 만나기로 했다. 그는 나이가 아주 어렸고 미국에서 본과에 재학 중이었다. 그에게 한 시간 넘게 진상을 알린 후 나는 대법이 전해진 것부터 박해받은 경과, 중공의 사악함에 대해 기본적으로 그에게 알려주었다.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그가 중공의 오염을 그리 심하게 받지 않았다고 느꼈다. 내가 이메일이 여과된 일을 말하자 그는 미국의 언론과 신앙 자유에 대해 비교적 인정했고 이메일을 걸러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집단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데 있어 하나의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이 사람이 cssa에 이메일을 보내 학교 근처에서 불고기 파티를 하면서 신입생환영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불고기를 준비해 그곳에 갔다. 많은 사람이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도움이 필요했고 나와 아내는 가능한한 그들의 문제를 해답해주었다. 아울러 그들에게 생활하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대화를 나눴고 분위기가 아주 좋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그들에게 자연스레 대법의 진상을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기회는 아주 빨리 왔다. 한 사람이 우리 지역 동수와 이름이 같았다. 내가 아는 사람과 이름이 같다고 말하자 그가 말했다. “나도 그 사람을 아는데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해요.” 뒤이어 그와 파룬궁에 대한 일부 오해를 말했고 나는 점차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방금 많은 사람이 내가 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모두 내 주변에 와서 진상을 들었다. 그날 서너 시간 동안 대법의 아름다움, 박해받는 정황, 중공의 사악함에 대해 모두 진상을 알렸으며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모두 아주 주의 깊게 내 말을 경청했다. 나는 진상을 투철하게 알렸기에 이들 중 어떤 사람은 속인의 생활에 돌아가서도 진상을 전파할 것이며 또 때로는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데 있어 일종의 보충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유사한 일이 또 발생했다. 내가 학술회의에 참가했을 때 국내에서 온 몇 명의 사람과 만났다. 나는 또 주동적으로 그들을 dc의 몇몇 관광지로 데리고 다니며 이곳의 생활에 대해 말해주었다. 비록 겨우 이틀 접촉했지만 그들은 모두 내게 아주 고마워했다. 헤어질 때 나는 그들에게 나의 경력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본래 그들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도리어 나를 자신들의 숙소로 초청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풍우천지행’이란 동영상을 보았다. 나는 또 그들에게 많은 진상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날 숙소를 떠날 때는 이미 새벽 한시가 넘었다. 비록 이들이 내게 아주 고맙게 생각하긴 했지만 다른 많은 동수들에 비하면 나는 대체로 정념이 충분하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은 몇 분이면 진상을 알릴 수 있었지만 나는 거의 몇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차를 몰고 오면서 계산해보니 만약 하루에 한 명에게 진상을 알린다면 8년이면 약 2500명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 하지만 매일 이런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이렇게 한다면 효율이 너무 낮지 않은가? 나는 만약 동시에 수백 명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면 효율이 더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이런 생각이 생기자 사부님께서는 이런 기회를 안배해주셨다.
3. 단체적으로 진상을 알리다
학교 cssa 이메일 리스트에는 900여 명의 중국인이 있었다. 올해 4,5월 어떤 사람이 단체 메일을 통해 올림픽을 빙자해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메일을 보냈다. 나는 중공 사당을 분칠하는 그런 메일을 보고 마음이 아주 급해졌다. 나는 많은 사람이 모두 민족주의에 열광해 이지적으로 문제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그들이 흐리멍덩하게 중공사당을 옹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전에 도대체 중국유학생들이 어느 정도까지 진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험해보기로 결심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인권에 관한 한 회의가 있었다. cssa에서 어떤 사람이 메일을 보내 모두 가서 들어보고 만약 좋지 않으면 강연자에게 항의하자고 했다. 나도 가보았다. 회의가 끝날 무렵 몇 명의 중국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원래 그들이 가서 항의할 것이며 인권문제에 대해 거부감이 커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 별로 순조롭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들은 떠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진상을 들었다. 나는 많은 중국인들의 사상이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아주 협애하다고 느꼈는데 단지 메일로 선동하는 그런 몇 사람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때의 담화는 나로 하여금 이메일로 수백 명의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결심을 내리게 했다. 나는 아주 온화한 메일을 보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올림픽 헌장의 최고 정신은 보편적인 도덕을 존중하고 사회 평화와 인류의 존엄을 수호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올림픽을 신청할 때 인권을 개선하고 언론을 개방하기로 약속했다. 사실 우리가 단지 당시의 약속을 실현시켜 인터넷을 개방하고 노동교양제도를 없애며 감금된 신앙인들을 석방하기만 하면 그럼 전 세계인들이 모두 우리를 칭찬할 것이며 항의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인권을 개선하면 중국 백성도 진정한 이익을 받는다.”
메일을 발송한 후 나는 욕하는 사람이 있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무리 욕할지라도 중공의 거짓을 반복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또 말할 기회가 있다면 기회가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대법진상을 알릴 수 있다.
이 메일을 보낸 후 큰 파문이 일어났다. 몇 사람이 메일을 보내 나를 지지하긴 했지만 그들은 단지 내게만 보냈다. 또 몇 사람이 단체 메일을 보내 아주 악독한 말로 나와 대법을 비방했고 어떠한 토론에 대해서도 불경했다. 또 어떤 사람은 변론하는 태도를 품었는데 물론 그들의 메일 속에는 아주 많은 당문화의 사유가 있었다.
나는 학교 주소를 이용해 메일을 보내면서 자동으로 나의 서명을 함께 보냈는데 그 속에는 나의 개인 사이트와 내가 쓴 문장을 모아놓은 곳과 링크시켜놓았다. 나는 최소한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대법제자는 중공 사당이 선전하는 그런 우매한 사람이 아님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아주 겸손하게 처신했으며 나를 직접 욕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예의 바르게 진상을 알렸다. 당문화의 사유가 아주 중한 그런 사람들에게는 중공 사당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매국했는가 하는 등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처음에 내가 비록 그들의 관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와 함께 문제를 토론해준 것에 대해 아주 고맙다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게 이런 뜻을 표현해왔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박해에 동정하지 않으며 중공이 8천만 명을 살해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13억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나는 이 메일을 보고 아주 견디기 어려웠다.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 메일에서 거의 대부분 당문화의 관점이었고 만약 매 관점마다 자세히 말하려면 아주 많이 써야 했다. 상대방이 그렇게 많은 것을 인식하고 읽어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하룻밤 사이에 그런 당문화의 사유를 없앨 수는 없었다.
내가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 아내는 무미건조한 숫자와 이치를 따지려 하지 말고 우리 가족의 경험과 박해로 사망한 다른 한 대법제자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건의했다. 나는 이런 관점이 아주 좋다고 여겨져 생생한 언어로 박해받은 진실한 이야기 2편을 썼다. 그런 후 “올림픽을 꼭 이렇게 치러져야만 하는가? 기어코 이들을 잡아다 고문하거나 심지어 때려죽여야만 집권자들은 안전감을 느낀단 말인가? 베이징의 마천루와 올림픽을 위해 밤을 밝힐 때, 우리가 경기장의 승리를 위해 환호할 때 왜 꼭 이런 사람들의 고통, 눈물, 선혈, 자유와 생명을 대가로 치러야만 하는가? 그것은 너무 심각하지 않은가? 당신은 어쩌면 인터넷과 언론 개방을 천천히 하자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들을 그렇게 고통받게 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중국인인데 왜 서로 못살게 구는가!”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새벽 나는 그 사람의 답장을 받았다. 그는 “방금 당신이 cssa에 보낸 메일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개인 경험이 내겐 큰 진동을 주었습니다(전에는 자신을 표현하는데 급해 당신의 전기를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는 전에 당신에게 보낸 메일을 취소합니다.”
그 후 한 달이 넘는 동안 특히 중공 사당이 지진을 이용해 자신에게 금칠한 플러싱 사건이 발생한 후 내가 모르는 몇 사람이 주동적으로 편지를 보내 진상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도 cssa의 사람과 많은 메일을 교환했고 직접적으로 중공 사당이 지진을 은폐한 것과 제도적인 부패로 인한 ‘두부찌꺼기’ 공정이 이번 지진참사가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욕을 하는 그런 사람들은 이지를 상실해 욕을 해댔고 플러싱의 중공 공범들처럼 들으려하지 않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대법진상을 보았고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었다. 아울러 나서서 욕하는 사람을 제지했다. 또 어떤 사람은 욕을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진 않지만 파룬궁 수련생들이 아주 이성적이고 온화하며 우호적임을 안다. 당신들 이렇게 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패배자이다.”라고 과감하게 말했다.
4. 진상을 알리는 과정 역시 ‘眞善忍’을 함께 수련하는 과정
이번에 진상을 알리는 중에 나는 줄곧 겸손하고 이성적이며 평화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번 경험은 나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아주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원래 진상을 알릴 때 다른 사람의 잘못을 겨냥해 분명히 알리는 것을 좋아했고 대량의 사실과 근엄한 논리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런 것은 어쩌면 매체나 혹은 얼굴을 맞댄 진상에서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데는 꼭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리 이성적인 사유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는 틀리고 나만 옳다’는 교만한 태도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보다 못하다. 물론 무원칙하게 상대방에게 부화뇌동하는 것은 아니며 기왕에 대법의 원칙에 부합한다면 또 겸허한 자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자부심이 강하기에 변론하는 가운데 설사 반박한다 해도 효과가 좋지 않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하신 한마디 말씀이 내게 아주 큰 감동을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가 진법을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예수가 사람들에게 그렇게 투철하게 말하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고만큼밖에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뉴질랜드 법회 설법』)
이 구절에서 나는 ‘眞善忍’의 법리를 체험했다. 때로 우리가 진상을 높이 알리거나 지나치게 말할 때 이렇게 해야만 ‘眞善忍’이라고 여긴다. 사실 이는 眞이 아니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善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과시심을 지니고 있기에 충분히 忍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眞善忍’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의 접수능력을 고려해 무원칙하게 우리의 원칙과 최저선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한다면 표면적으로는 선량해보일지 모르지만 도리어 眞을 잃은 것이며 또한 진정한 善도 아니다.
이번에 진상을 알린 것은 도 나로 하여금 겸손함의 힘을 체험하게 했으며 진일보로 겸손함이란 다른 한 층의 법리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법학습 중에서 대법 중에는 무량한 지혜와 넓고 깊은 법리가 있음을 감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아주 까마득하고 천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기억에 2006년에 한 수련생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수련을 십 몇 년 했는데 가장 큰 체험이 무엇인가?” 나는 바로 “수련하는 사람은 반드시 겸손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한 수련생이 내게 질투심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 누가 나보다 나으면 마음속으로 아주 탄복합니다. 누가 문장을 잘 쓰면 각 사이트나 항목 조에 추천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남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에도 한번 이렇게 인정받았기에 자신이 겸손하고 질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몇 차례 나는 일부 동수들과 한 항목을 함께 작성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에서 내주장을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마침내 어느날 관을 넘는 중에 나는 갑자기 자신이 조금도 겸손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의 겸손함은 법 앞에서였으며 또는 내가 보기에 속인의 기능이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지 내가 보기에 속인의 기능이 나보다 못한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의 견해를 몹시 견지했기 때문이다.
큰 바다가 수많은 하천을 용납할 수 있는 이유는 하천보다 낮게 처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항목을 할 때 잘 협력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의견이 정말로 꼭 좋지 않은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의견을 제출할 때 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하고자 할 때 다른 사람은 당연히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만약 동수와의 교류 중에서도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처럼 그런 겸손한 마음으로 한다면 여러분의 협력도 훨씬 나을 것이다. 때문에 진정한 겸손은 단지 속인의 기능상에서 겸손한 것이 아니며 법에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관을 넘으면서 나는 질투심 문제와 겸손의 문제가 동일하게 나타난 것을 인식했다. 나의 소위 질투하지 않음은 단지 다른 사람의 속인적인 기능을 질투하지 않은 것에 불과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신공표가 강자아를 질투한 것을 언급하실 때 강자아의 재능을 질투하진 않았지만 왜 “강자아는 늙고 또 재간도 없는데 원시천존이 왜 강자아더러 봉신하게 했을까”하고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보니 자신의 이 질투심은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었다. 나의 재능이 어떠한가, 나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당신들은 그의 견해를 채택하고 나의 의견을 채택하지 않는가 등등.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우리가 원만한 후에는 누구도 누구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왜 속인 중의 허환(虛幻)한 일부 견해로 중생 구도에 협력을 잘하는 것을 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겸손’과 ‘질투’의 문제는 사실 속인의 기능에 대한 나의 중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운예술단 훈련에서부터 우리는 기능과 전업화가 아주 중요한 것임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중국 유학생들에게 단체로 진상을 알리는 경험 중에서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또 기능에 집착하지 않는 것만이 비로소 수련자가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이성적인 방식으로 진상을 알리길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많은 수련생이 일부 비교적 높거나 부딪치는 말을 할 때 속인의 접수능력을 근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동수들 사이에 진상을 알리는 방식에 대한 토론을 유발했다.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나는 우리가 속인 속에서 수련할 때 아주 쉽게 속인 속에 빠지지만 대법은 필경 초상적인 것임을 서서히 생각하게 되었다. 제자마다 사유방식이 천차만별이며 여러분이 한 가지 각도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에 따라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상대방의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직 각자 한 것이 법에 부합하기만 하다면 어쩌면 이것이 바로 상호 원용하는 과정일 것이다.
이상은 몇 년 동안 수련한 약간의 체험이다. 만약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2008년 워싱턴 dc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 2008년 7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7/21/18245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