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애틀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21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면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정법노정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2005년 맨해튼 국제법회설법 가운데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지금의 일 년은 예전의 일분과 같다고 나는 말한다.” 다른 한편 정법노정이 빨라지면서 지금 중생을 구도하는 대법항목이 아주 많고 아주 긴박해 대법제자들이 모두 아주 바쁘기 때문이다. 이 바쁜 일 년 중에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바로 끊임없이 법에서 인식하고 승화한 것이다. 그러나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이는 나의 이 일체는 모두 영이다. 더욱이 내가 이 일 년을 돌이켜 보니 내가 걸어온 매 한 발자국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와 점화를 볼 수 있다.
작년에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는데 전화로 국내에 진상을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은 도리어 평형되지 않았다. 첫째 어떻게 전화를 거는지 몰랐고 말을 잘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둘째,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욕을 먹을까 두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의 한 책임자가 중국에 진상전화를 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상 전화를 건 경험이 아주 풍부한 수련생이 현장에서 어떻게 진상 전화를 거는지 시범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내가 배우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깨달았다. 우리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일념이 있을 때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딱 맞는’것처럼 보이는 기회를 배치해 주신다. 한차례 교류에 한 번 참가한 후 나는 동수의 고무에 용기를 얻어 현장에서 중국에 진상 전화를 걸었다.
내 기억에 당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실직한 중년 남자였는데 그는 그래도 사당이 좋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4, 50분간 이야기했고 나중에 그는 내가 한 말에 동의하면서 내가 한 말이 옳다고 말했다. 이에 나는 환희심이 일었고 다시 진일보로 3퇴를 말했을 때 그는 주저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전화 통화를 끝낸 후 수련생은 내게 아주 많고 아주 훌륭한 비평과 건의를 제출했다. 이 한 번의 전화로 나의 두려운 마음이 많이 없어졌고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중국에 진상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동수들에 비하면 내가 권유한 탈퇴 비례는 아주 적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하나의 진리를 알려 주겠다. 전반 사람의 수련 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다.”
나는 이전에 많건 적건 이런 착오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바로 곤란을 극복하면서 대법항목을 하는 일에 바삐 보내면 자신도 정진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뉴욕 성탄만회와 화인 신년만회 때 나는 모두 뉴욕에 날아가 도와주었다. 뉴욕에 있을 때 나의 상태는 아주 좋았고, 그렇게 많은 동수들과 함께 조사세간행을 하니 마음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두 살짜리 딸아이가 그만 바지에 오줌을 쌌고 나는 화를 참지 못했다. 그런 다음 나는 차를 몰고 가서 저녁을 먹으려 하였다. 가슴에 아직도 화가 남아 있어 차를 몰 때 주의하지 않았고 과속운전으로 경찰에 단속되어 벌금을 물었다. 이 한 차례 “방할”에 나는 깨어났다. 이것은 사부님의 점화가 아닌가? 대법제자로서 내가 이런 대법 항목을 했고 또 저런 대법항목을 했다 해서 수련의 다른 방면을 느슨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해 내가 얼마나 많은 대법항목을 했든 간에 내가 만약 자신의 집착심을 버리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그건 착실한 수련이 아니다.
작년에 겉으로 보기에는 컴퓨터 오류로 한 수련생이 나에 대해 아주 큰 오해를 한 일이 있었다. 이 난(難)은 아주 갑작스레 들이닥쳤고, 나는 종래로 자신에게 이런 난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난이 오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알려 주시지 않을 것이며 모두 알려 주신다면 그건 난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상은 늘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공간마당에 무슨 물건 같은 것이 내리누르는 감각이 있어 머리가 무척 아팠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설법에서 모두 모순이 올 때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제출하셨다. 수련생이 나에 대해 오해가 있는데 그렇다면 나의 평소 언행이 법에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결국 나는 자신의 환희심과 과시심을 찾아내게 되었다. 더 깊이 안으로 찾아보니 그건 바로 사심(私心)이었다. 사심은 아주 많은 집착심을 산생하는 근본 집착이다. 하지만 표현상으로는 어떤 땐 아주 은폐되어 있어 발견하기 어렵다. 나는 몇 달 전 법공부 할 때 일이 떠올랐는데 『전법륜』 위의 몇 줄이 갑자기 크게 변했고 두 글자가 기억났는데 바로 ‘착실한 수련(實修)’이었다. 실수, 실수 이것을 해내야만 비로소 수련인 것이다.
내가 이 관을 넘을 때 사부님께서는 다른 수련생을 통해 점화해 주셨다. 몇몇 동수들이 전화를 걸어 나와 교류했는데 모두 나더러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하며 사람마음이 일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일이 발생한 다음날, 아내가 사부님을 언급했고 당시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내가 단숨에 이 모순 밖으로 뛰쳐나간 것 같았고, 머리를 돌려 이 모순을 보니 나는 단번에 모두 명백해졌다. 나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 같았던 공간 중의 그 물질도 순간에 없어졌다. 나는 대법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를 감수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참으로 우리 자신보다도 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나에 대해 말한다면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 관도 넘길 수 있었다. 사실 내가 겪은 이 난은 다른 공간의 상응된 업력에 비한다면 더없이 작은 것이지만 그렇게 높고 거대한 업력은 죄다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해 감당하셨던 것이다. 명혜망에서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쓴 문장에서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한 사발 한 사발씩 독약을 마셨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업력이 없으시지만 모두 우리를 대신해 갚아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늘 우리가 관을 넘을 때 오직 씬씽을 제고하기만 하면 관은 즉시 넘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건 죄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대부분의 거대한 업력을 감당하신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스위스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온갖 걱정을 다하였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
“당신이 원만하면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 당신은 모든 언어를 다 써도 당신의 사부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관을 넘기지 못할 때는 종종 모두 우리가 자신을 너무 중하게 보기 때문이며 마음속으로 늘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곧 모순 속에 빠지게 되고 내려놓으려 해도 내려놓지 못하게 되며 어떤 모순은 지속시간이 아주 길어진다. 나는 지금 사부님께서 2008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신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이고 아무리 큰 고통이라고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해 올라오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이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한편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진수(眞修)」중에서 말씀하셨다. “부처(佛)는 당신들을 제도하기 위해 일찍이 속인 중에서 동냥했고,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大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으므로 인해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법리에서 이 일체에 명백해졌을 때 나는 동수에 대해 더 이상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게 되었고 마음속에서부터 그녀에게 감사했다.
우리 지역에선 올해 처음으로 신운 만회를 개최했다. 신운 만회 준비 사업이 막 시작되자 나는 자진해서 일부 항목을 맡았다. 하지만 제한적으로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주말에나 이런 항목을 감당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갈수록 바빠져 최초에 대답했던 어떤 항목은 할 시간이 없게 되었고 나 때문에 지체되고 말았다. 수련생은 나에게 비평의견을 제기했다. 나도 매우 자책했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물론 대법 항목을 주동적으로 해야 하지만 대법 항목은 매우 엄숙한 것이므로 일시적인 열정에 의해 도맡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말한 것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것을. ‘眞善忍’중의 ‘眞’은 바로 우리더러 참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말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진’에 부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마다 대조하는 것이 수련이라”(『홍음』)했기 때문에 “깨달은”것은 수련이 아니고, “말한”것도 수련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말하자면 나는 자신이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을 보아냈는데 그것은 곧바로 내가 자신에게 시간과 정력이 있는가를 고려하지 않았고,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항목을 맡은 것은 까놓고 말해서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자신이 정진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정념정행”이란 나의 이 일념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의 결과가 당연히 좋지 못했던 것이다.
신운 만회의 큰 막이 열리면 만왕지왕이 하는 말을 듣는다. “나를 따라 세상에 내려가 천 년의 왕이 되자!” 나는 곧 홍대한 자비 속에 휩싸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는 생각했다. 일 년을 기다려 온 신운이 끝내 공연을 시작했구나. 그러나 나는 도리어 자신에게 속인 마음이 존재한 탓으로 신운의 일부 항목을 잘하지 못하여 후회와 유감을 가져왔다. 하지만 다시 보완하려 해도 이미 늦었다.
만사는 모두 끝나는 날이 있는 법이다. 법정인간의 그 일각에 나는 여전히 자신의 속인마음을 버리지 못해 후회와 유감을 지녀야 한단 말인가? 금년 신운에 잘하지 못한 부분을 나는 내년 신운 때 고치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법정인간의 시각에는 보완할 시간이 있겠는가? 그건 그야말로 늦은 것이고, 그야말로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또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저 자신을 원망할 수 있을 뿐이다. 수련하는 것은 동일한 하나의 법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매 사람에게 모두 하나하나의 제고할 기회를 배치하셨다. 하지만 만약 내가 자아를 보호하려는 자신의 그런 더러운 집착심을 놓지 않는다면 내가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더러운 물건을 가득 담은 그런 병이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매 번의 설법 때마다 늘 우리더러 시간이 많지 않으니 시간을 다그치라고 알려주셨다. 지금은 “최후의 최후”로서 “이 일각은 천금, 만금과도 같다.”(『2005년 시카코 시 법회설법』)
나는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할 때나 아니면 평상시의 생활, 학습을 할 때에도 우리는 모두 대법으로 우리의 일언일행, 일사 일념을 가늠해야 하며 일단 좋지 못한 염두거나 언행을 발견하기만 하면 곧 안으로 찾아보고, 이 일념을 낳게 하는 집착심을 파내어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 진정으로 법에서 자신을 제고하여 “사부님 따라 원만하여 돌아가자”!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부님의 고도에 감사드립니다!
(2008년 워싱턴 dc 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 2008년 7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7/21/18246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