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후이샤오(慧笑)
[명혜망] 저는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험악한 홍진(紅塵) 속에서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할 수 있는 대법을 찾고, 보서 《전법륜》을 찾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대법이 저의 성장을 보호해준 과정을 기록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려 합니다.
1. 난을 뚫고 보서 《전법륜》을 기쁘게 얻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충관(衝貫)’, ‘기(機)에 따라 내려가다(隨機下走)’라는 명사를 희미하게 기억하는데, 이는 2005년에 다섯 가지 공법을 배운 후의 약간의 기억이며, 그해 저는 네 살이었습니다. 그때 유치원에 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할머니는 녹음기가 있어 자주 연공 음악을 틀어놓으셨습니다. 할머니가 네 번째 공법인 ‘기(機)에 따라 내려가다’를 연공하는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득법한 후에야 그때 할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닌 후 중국공산당(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사악한 박해가 시작됐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수련을 그만두셨고(나중에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저에게 파룬궁이라는 명사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학교 교재에서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유언비어 선전을 접했습니다. 하지만 큰어머니가 파룬궁수련생으로 계속 수련을 견지하며 여러 차례 괴롭힘과 박해를 받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현지의 파룬궁 박해가 매우 심해 큰어머니는 대법 서적과 자료를 큰 포대에 넣어 우리집에 보관했기에, 시간이 있을 때 저도 이런 책들을 들춰봤습니다.
우리 근처에 명대(明代)에 건립된 사원이 있어 자주 절에 가서 불상에 향을 피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람이 부처가 되거나 하늘의 고급 생명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상상하곤 했습니다. 사람은 절대 원숭이에서 변한 것이 아니라 신이 만드신 것이며, 하늘에 반드시 신, 부처와 더 높은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005년 5월 큰어머니 집에 놀러 갔는데, 큰어머니가 제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와 파룬궁 박해의 진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해한 후 가입했던 중공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저는 큰어머니께 물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을 죽지 않게 할 수 있나요?” 큰어머니는 대답하셨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을 생사에서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윤회에 들지 않게 하고, 또 반본귀진해 부처의 층차로 수련할 수 있게 하지.” 부처를 수련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말했습니다. “저도 배우고 싶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거예요.” 이렇게 큰어머니의 도움으로 득법했으며, 그해 저는 열한 살이었습니다.
막 득법했을 때 《전법륜》 책이 매우 부족해 자주 큰어머니 집에 가서 큰어머니가 법 읽는 것을 들었는데, 매우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眞·善·忍)과 사람에게 마음을 닦고 선하게 되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법리가 저를 끌어당겼고, 책에서 말하는 수련과 반본귀진의 내용은 더욱 제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습니다. 《전법륜》에서 마음속으로 추구하던 답을 찾았고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저 또한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대해 반본귀진해 높은 생명으로 수련 성취하고 싶었습니다.
큰어머니에게 《전법륜》이 한 권밖에 없어서 저는 법공부하기 매우 불편했습니다. 나중에 큰어머니가 사부님의 설법 녹음 테이프를 주시며 듣는 것도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방과 후 숙제를 마친 후 녹음기를 켜고 진지하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 두 테이프를 들었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마을의 한 노인 수련생이 제가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소원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전법륜》 한 권을 주셨습니다. 매우 기뻐하며 매일 꺼내서 진지하게 법공부를 했습니다. 책을 볼 때마다 손을 깨끗이 씻었고 책의 글자를 만지는 것도 감히 하지 못했으며, 페이지를 넘길 때도 종이가 구부러질까 두려워 가볍게 했습니다. 법공부를 마친 후에는 천으로 싸서 소중히 간직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진심으로 파룬궁을 배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신 후 저를 수련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부모님은 파룬궁이 사람을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는 기본 진상은 알고 계셨지만 수련의 내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셨습니다. 그때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매우 사악해 친척들이 여러 차례 괴롭힘과 불법 감금을 당해 아버지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방에서 《전법륜》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책을 자신에게 달라고 하셨지만 저는 단호히 드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저를 온돌에 눌러놓고 주먹으로 때리며 《전법륜》을 빼앗으려 했는데, 저는 죽어도 책을 놓지 않았고 아버지는 힘껏 제 목을 누르셨습니다. 당시 저는 기절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책을 빼앗아 갔습니다. 《전법륜》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 깨어나 아버지와 빼앗으려 했지만 제 키가 작아 빼앗지 못했습니다. 결국 《전법륜》은 아버지에 의해 두 쪽으로 찢어져 아궁이 불에 던져졌습니다. 빨리 아궁이로 기어가 숯불이 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손으로 긁어내 다 타지 않은 앞쪽 반권의 《전법륜》을 꺼냈습니다.
울면서 이 반권의 《전법륜》을 안고 큰어머니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다음날 제 눈은 뜰 수도 없었고 목은 빨갛게 부어 삼키기 곤란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감당해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박해 중에 보호해온 《전법륜》의 뒷부분 반권을 주셔서 바늘과 실로 두 개의 반권 《전법륜》을 함께 꿰맸습니다. 그날 밤 부족한 한 강의 내용을 베껴서 합쳐놨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보물처럼 여기며 매일 이곳저곳에 숨겨놨습니다.
매일 방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법륜》을 갖고 뒷산에 가서 법공부를 하는 것이었고, 매번 해가 져서 완전히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자주 부모님이 잠드신 후 몰래 마당에 나가 연공했습니다. 그때는 연공 음악을 틀 환경도 없어 혼자 연공할 수밖에 없었고, 포륜(抱輪)할 때는 마음속으로 1분 1분 시간을 세어가며 했습니다. 눈이 와도 역시 한밤중에 마당에서 연공했는데, 옷을 얇게 입었지만 몸은 늘 따뜻했고 에너지장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두 이렇게 몰래 수련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지면서 법리상에서 아버지가 저를 겨냥한 난을 이해했고, 구세력과 일체의 바르지 않은 사악한 요소가 가족을 이용해 대법을 상대로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에 대한 사사로운 정을 완전히 내려놓고 마음속으로 진정 그들을 중생으로 여겼습니다. 내려놓은 그 순간부터 또 수련의 깊은 층차의 내포를 느꼈고, 사부님께서 바로 제 옆에 계시며 저를 점오하고 법 중에서 제고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인식이 제고된 후, 한번은 아버지가 물건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제가 숨겨둔 《전법륜》을 찾아내셨는데 아버지가 물어보셨습니다. “이게 뭐냐?” 저는 말했습니다. “《전법륜》입니다. 아버지께서 보시고 싶으시면 보시고, 보시고 싶지 않으시면 저에게 여기 놔두세요. 아버지께서 이 책을 용납하지 못하시면 저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전법륜》을 갖고 행각을 하려고 생각했고, 밥을 얻어먹더라도 이 대법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는 안 본다”라고 하시며 탁자 위에 놓으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이 고비를 넘겼고 당당하게 수련해야 하며, 집에서 대법에 올바른 위치를 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부터 매일 아버지 앞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이 또 저를 도와 《전법륜》 한 권을 구해왔는데, 그 《전법륜》은 사부님의 소전(小傳)이 있는 것이어서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대법을 더욱 이해하게 하기 위해 때로는 법공부를 마친 후 《전법륜》을 아버지 옆에 놔 보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도 때로는 네 책을 들춰보신다.”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풍우천지행》, 《명혜주보》 등 진상 동영상과 진상 자료를 보셨습니다.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 ‘천안문 분신 자살’ 진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진상을 말했다는 이유로 사악한 박해를 받아 불법적으로 2년간 감금됐습니다. 사악한 검은 굴에서 나온 후 부모님과 가족들은 더 이상 제 수련을 반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저를 출옥시키러 온 그날 아버지가 저를 보자마자 하신 말씀은 “앞으로 더 주의해라”였는데, 마음속으로 진정 파룬궁이 좋다는 것과 파룬따파가 바르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2007년 초 어느 날, 이웃 마을 수련생 집에 삼퇴 명단을 전하러 갔는데 노인 수련생이 물어봤습니다. “이쪽에 법을 얻은 사람이 있는데 《전법륜》 한 권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갖고 있나요?” 듣고 매우 기쁘게 말했습니다. “있어요.” 사실 당시 마음속으로 매우 아까웠는데, 완전한 《전법륜》이 한 권밖에 없었고 그것도 나중에 수련생이 구해온 사부님의 소전이 있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2년 전에 꿰매어 페이지를 보완한 그 《전법륜》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득법할 때의 어려움을 생각해 새로 득법한 수련생이 대법 책이 없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기에 완전판 《전법륜》을 막 득법한 수련생에게 주고 자신은 페이지를 보완한 것을 공부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분명히 저에게 다시 《전법륜》을 주실 것입니다.”
한 달 후 또 수련생 집에 삼퇴 명단을 전하러 갔는데, 수련생 할머니가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전법륜》이 필요한가요? 여기에 글자를 고칠 필요 없는 신판 《전법륜》 한 권이 있습니다.” 당시 매우 감동돼 말했습니다. “필요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황금색 표지의 대법책을 받아들고 마음속으로 계속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제자를 보호하시며, 제자가 법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너무 기뻐서 다시 한번 보물을 얻은 것처럼 매일 신판 《전법륜》을 안고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시간만 있으면 법공부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기 전 6시 정념을 발한 후 설법 녹음을 듣고, 그다음 빨리 동공(動功)을 한 후 학교에 갔습니다. 저녁에 방과 후 숙제를 마치면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잠자기 전에는 정공(靜功)을 연습했는데, 가부좌를 한 시간 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고 느낌이 매우 묘했습니다.
또한 시간을 다그쳐 각종 기회를 이용해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해 매일 일곱여덟 명에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진상 자료만 있으면 즉시 중생들 손에 보냈습니다. 그때는 법공부를 많이 해서 사부님께서 제 옆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때 아직 10여 세의 아이였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정법 수련에 결합시켜 조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으며, 밤에 잠자는 것도 시간을 지체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2. 보서 《전법륜》 제작과 전송
시내 수련생들을 처음 접촉한 것은 제6회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모집 그해였습니다. 수련생들이 와서 우리 농촌 수련생들이 심득 쓰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얼마 후 시내 수련생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원고가 발표됐어요.” 당시 발표되고 안 되고 하는 개념이 없었고 명혜망을 접촉한 적도 없었으며, 수련생이 전해준 《명혜주간》만 봤는데 날짜도 모두 두 달 전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시내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우리집에 가정 자료점이 설립됐습니다.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게 되고 각종 진상 자료를 제작할 수 있게 됐으며, 진상 광디스크 굽는 법도 배웠습니다. 나중에 또 현 소재지 수련생에게 가서 《전법륜》 등 대법 경서와 진상 서적을 제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배우면서 그곳에서 현지 수련생들에게 줄 《전법륜》을 많이 구해왔습니다. 매 권의 책에 모두 매우 열심히 책 표지를 씌운 후에야 수련생들의 손에 보냈습니다.
그 후 우리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전법륜》 수량이 비교적 많아서 시내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우리 이웃 마을의 한 수련생 집에 책을 만드는 자료점이 설립됐습니다. 우리집에서 수련생 집까지 거리가 10여 킬로미터여서 자전거를 타고 가서 도왔습니다.
어느 날 밤 수련생 집에서 책을 만든 후 집에 돌아가는데, 자전거로 《전법륜》과 《9평 공산당》이 든 상자 하나를 실었습니다. 상자는 라면 두 층을 넣을 수 있는 종이상자였는데, 가는 천 끈으로 자전거 뒷좌석에 묶었습니다. 중간 마을의 십자로를 지날 때 오른쪽에서 달려온 오토바이에 부딪혔는데, 당시 핸들이 모두 비뚤어졌고 몸도 몇 미터 밖으로 나뒹굴었으며 제 오른손 새끼손가락에서 살점이 한 덩이 벗겨졌습니다. 피를 닦을 겨를도 없이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는데, 자전거 뒤에 묶인 상자도 동시에 따라서 일어났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간단한 가는 천 끈 하나로 묶었는데 천 끈도 끊어지지 않았고 상자 안의 책도 한 권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핸들을 바로 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준비했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사는 겁에 질려 꼭 제 가족에게 연락해 저를 병원에 보내 검사받게 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저를 신경 쓰지 마시고 가세요.” 속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생각하며 남에게 곤란을 끼치지 않을 것이고, 게다가 팀의 노인 수련생들이 아직 제가 책을 갖다 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또 한 수련생과 밤에 나가서 《9평》을 나누어 주기로 약속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사와 작별인사를 한 후 자전거를 타고 빨리 집에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천 끈을 찾아 다친 손가락을 감쌌는데, 신경 쓰지도 않았고 며칠이 지나자 나았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시내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우리 반에는 40여 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모두 삼퇴를 시켰습니다. 다른 반 학생들이 진상을 안 후 대법을 이해하고 싶어해서 《전법륜》을 그들에게 가져다줬습니다. 학교 신입생 군사훈련을 할 때는 교외의 한 부대에 갔는데, 법공부를 지체할까 두려워 《전법륜》을 몸에 지니고 갔으며 교관과 학생들이 모두 잠든 후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반 수업시간에 제가 과제를 완성한 후 선생님이 자유 활동을 해도 된다고 해서 《전법륜》을 꺼내 공부했습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보는 것이 파룬궁 책이니?” 저는 대답했습니다. “《전법륜》입니다. 이것은 파룬궁의 주요 저작으로 사람에게 진선인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하게 되며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한테 빌려줄 수 있을까?” “그럼요.” “3일 정도 보고 돌려줄게.” “좋아요.” 며칠 후 선생님은 《전법륜》을 돌려주셨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계속 당당하게 교실에서 법공부를 했고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 돌려가며 봤습니다.
얼마 후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교무처 선생님에게 불려갔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파룬궁을 선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보안처에서 우리 기숙사에 가서 관리용 칼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파룬궁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진상을 안 기숙사 학생이 알고 나서 빨리 제 베개 속에서 매일 법공부용으로 쓰던 《전법륜》을 숨겨줬습니다. 당시 학생은 제 책가방 안에 《전법륜》과 나누어주지 못한 《9평》 등 자료가 또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책가방 속 《전법륜》은 본래 파룬궁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고학년 학생에게 준비한 것이었는데 아직 그에게 갖다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9평》은 제가 등하교길에 세인들에게 주는 것이었는데 당시 아직 다 나누어주지 못해 몇 권이 남아있었습니다.
책들이 발견된 후 학교에서 제 수업을 중단시키겠다고 떠들어댔는데, 저는 이치를 들어 맞섰고 그들에게 진상을 말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와 협의해 자료와 서적을 모두 저에게 돌려주되 조건이 있었는데, 바로 모든 대법 자료를 학교에 가져오면 안 되고 학교에서 파룬궁을 선전하면 안 되며, 또한 저에게 보증서를 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교의 무리한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사람은 신앙 자유가 있으며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을 배우게 하는 것으로 잘못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계속 학교에서 진상을 말했고 학교 교장, 교감, 학교 당서기에게 진상편지를 써서 제가 《전법륜》을 배운 후 얻은 혜택과 아름다움을 서술했습니다. 그 후부터 학교에서는 저희 지역의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을 불러왔고 저는 불법 감금돼 박해받았습니다. 한 달 후 또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2년간 강제노동형을 받았습니다.
3. 환경을 개척해 대법 경서 제작
사악한 검은 굴에서 나온 후 여전히 확고하게 수련했습니다. 제가 박해받을 때 휴대폰에 저장된 휴대폰 번호 때문에 현지 수련생 여러 명이 사악한 괴롭힘을 당하게 했고, 어떤 이는 유랑을 강요당했으며 심지어 불법 강제노동형을 받아 현지에 매우 큰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제가 막 검은 굴에서 나왔을 때 현지 수련생들은 저에 대한 견해가 매우 컸고 모두 저를 멀리하며 제가 스파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가족 수련생과 이웃 마을의 한 노인 수련생만이 저를 믿었고 거의 2년간의 사부님 설법과 새 경문을 줬습니다. 저는 박해 때문에 학업 기회를 잃었고 얼마 후 현지의 한 전자공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당시 자료점이 파괴돼 수련생들이 모두 《명혜주간》을 볼 기회를 잃었고 진상 자료가 매우 적거나 심지어 없었으며, 대법 경서는 더욱 적었습니다. 당시 한 가지 소원을 발했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가지(加持)해주셔서 모든 수련생들이 모두 대법 경서를 공부할 수 있게 하고 모두 《명혜주간》을 볼 수 있게 해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잡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련생들의 저에 대한 태도를 마음에 두지 않았고 그 모든 표현이 모두 가상이며, 모두 구세력이 조성한 간격이고 모두 제가 걸어가고 제고해야 할 고비임을 알았습니다. 반드시 최대한의 작용을 발휘해 박해를 제거하고 수련생들 사이의 간격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일 때문에 성(省) 밖으로 가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하에 외지의 대법제자들과 접촉하게 됐습니다. 제가 협조인 수련생에게 제 상황을 소개한 후 수련생이 첫 마디로 물어봤습니다. “당신 큰어머니 수련생은 괜찮죠? 저는 당신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계속 당신이 박해받는 소식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당신이 불법 감금됐을 때 저희가 릴레이로 당신을 위해 정념을 발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진정 하나의 강대한 정체이며 천 리 밖의 서로 모르는 수련생들이 사심 없이 저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외지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저를 도와 대법서적 전부를 구해줘서 매우 기뻐하며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했는데, 법공부를 할수록 법리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제가 《정진요지3》의 경문 한 편을 공부할 때 우리 매 수련생은 마땅히 한 사람마다 대법 경서 한세트를 가져야 하고, 오직 진정 법을 투철히 배워야만, 더욱 잘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즉시 현지로 돌아와 이웃 마을의 저를 신임하는 그 노인 수련생 집에 가서 제가 대법 경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말했는데 노인 수련생은 매우 지지했습니다. 외지 수련생이 준 일부 돈과 제가 일해서 모은 월급으로 레이저프린터, 제본기, 재단기, 인쇄용지 등 설비와 소모품을 샀습니다. 노인 수련생 집에서 며칠 동안 법공부와 식사, 아주 적은 잠을 자는 것 외에 모든 시간을 다그쳐 제작했습니다. 토너가 다 떨어지면 빨리 100킬로미터 밖의 전자시장에 가서 토너를 충전하고 서둘러 돌아와 계속 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과 노인 수련생의 도움으로 일주일도 안 돼서 거의 20세트의 대법 경서를 제작했고, 수련생들이 한 사람마다 한세트씩 가져서 모두 매우 기뻐했으며 한 권씩 이어가며 단체로 한 번 공부했습니다. 인근 마을과 진(鎭) 수련생들이 또 계속해서 가정 자료점을 설립했습니다. 수련생들의 저에 대한 편견은 수련과 제고 중에서 철저히 제거됐습니다.
모든 대법 경서를 완성한 마지막 날은 이미 매우 늦었는데, 마을의 버스가 이미 운행을 중단했습니다. 큰어머니와 다른 친척 수련생 것만 빠졌는데 지체할 수 없어 첫 시간에 그녀들에게 갖다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세트의 대법 경서를 들고 걸어서 10여 리 밖의 수련생 집으로 갔습니다. 제가 막 노인 수련생의 마을에서 나왔을 때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와서 제 앞에 멈춰서며 말했습니다. “OO, 타세요.”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바로 타고 올라갔습니다. 제가 말할 겨를도 없이 이 사람은 곧장 저를 제가 가야 할 그 마을 수련생 집 길목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차를 세운 후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리세요. 천천히 가요.” 저는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액셀을 밟고 가버렸습니다. 결국 그가 누구인지도 알아내지 못했고, 또 그가 어떻게 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해 저를 도와주신 것임을 알았고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우리 현지와 기타 인근 지역 수련생들이 모두 대법 서적과 진상 자료가 필요해서 정식으로 대법 경서 제작 항목을 담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2년 넘게 했는데, 수련생들이 기본적으로 모두 대법 경서를 갖게 된 후에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억나는 것 중 가장 많을 때는 20여 세트의 대법 서적과 50권의 《전법륜》을 제작한 것이었는데, 수련생들에게 갖다줄 때 승용차 한 대에 가득 실었습니다.
이 몇 년 중에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책을 만들었는지는 이미 기억나지 않지만 이 몇 년간 대략 4천여 권의 대법 경서를 제작했습니다. 《9평》과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 진상 서적도 천여 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기타 지역 수련생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후에야 대량 제작을 중단했습니다.
저를 매우 감동시킨 것은 마지막 두 세트의 대법 경서를 완성했을 때였습니다. 노인 수련생이 사과 하나를 가져와 저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사과가 하나 더 있지? 언제 샀는지도 까먹었는데 당신이 드세요.” 사과를 받아들고 보니 사과 색깔이 선명하고 빨갛고 거의 투명할 정도인 것을 봤습니다. 저는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는데,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제가 옳게 했다고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아까워서 한 입 베어물었는데 매우 달았고 이렇게 단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렸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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