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명혜망2008년7월15일]
1),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한다는 것은 당대 사람들의 무너진 도덕수준에 부합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속인 상태는 하는 일, 가정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 당신들이 정부를 견주해서 하는데, 감옥에 잡혀 들어가면서 회사, 가족들과 연루되게 하는 것은 속인 사회 상태에 부합되지 않는 게 아닌가 ?”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따르는 것은 순전히 강도의 논리이다. 중공이 얼마나 사악하고 어떻게 국가의 헌법을 위반하면서 인민의 신앙과 자유를 침범하던 지를 막론하고, 중공이 얼마나 잔폭한 수단으로 인민을 진압하던지를 막론하고, 국민은 다만 고개를 숙이고 귀를 늘어뜨리고 자유를 빼앗기고 유린당해도 된다는 것인가.
지금 사람들의 도덕 수준은 고대인들의 도덕 수준과는 10만 8천리 간격을 갖고 있다. 고대에는 생명(生命)을 버리고 정의(正義)를 구하며, 국민을 대표해 바라는 바를 말하고,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청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바람의 방향을 봐 가면서 키를 조종하고 양심을 팔아먹는 사람을 “형세를 파악하는 사람이 준걸(俊傑)”이라고 한다.
한 수련인으로서 세간에서 우선 먼저 하나의 도덕이 고상한 사람, 도의 도덕과 정의를 굳게 지켜나가며 영웅적 기개를 지닌, 사람들에게 경위받는 군자여야지 바람이 풀잎에 스치기만 해도 흔들거리고 놀라고 겁이 나서 벌벌 떨, 머리를 움츠리고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아가는 무골충이어서는 안 된다. 속인 상태에 부합 된다는 것은 “우리들이 “군자의 상태”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이지 “소인 상태”에 부합 되는 게 아니다.
2), 속인사회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타 속인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며 도덕 밑줄이 없는 양보가 아니다.
수련 중에서 우리의 일체고비, 일체 난은 집착을 버리고 씬씽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법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흔히 사악이 우리가 방임한 빈틈을 타고 기어들어와 끝이 없이 마음대로 파괴하는 이런 상황은 “7 , 20” 이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전문《도법》 경문을 써내 제자들을 깨닫게 하셨다. “7,20” 이후 사악이 추호의 인성이 없는 참혹한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매우 많은 제자들은 법리상에서 깨닫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참으면서 속수무책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또《더는 참을 수 없다》,《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등 매우 많은 경문은 대법제자들에게 불법신통을 사용하여 사악을 제거하는 능력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문제에 부딪치면 그냥 정념을 견정히 하지 못하고 법의 요구대로 하지 못한다. 도리어 속인의 말에 움직이며 속인의 뜻에 부합되어 일을 하는데 그 이유라면, “어찌하였던 속인을 이해해야 되지 않는가 ?”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잘 수련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와 사업과 생활상에서 매우 많은 좋지 않은 결과를 출현하게 되어 수련에 교란을 조성하게 된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속인의 일, 생활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며 속인의 악념악행을 조장 방종하는 것이 아니며 악인이 하고자 하는대로, 우리를 구박하는 권리를 받아 들이는 것은 더욱 아니다. 대법은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관통되어 내려 온 것으로 세간에도 정의가 있다. 대법을 보호하는 것은 세간의 형식이 있고 대법을 보호하는 것 역시 세간의 일층 표현이다. 우리들이 지금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역시 미래 인에게 정상적인 사람 방식을 창조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이 고상한 하나의 좋은 사람으로서 어찌 사람에 의하여 마음대로 업신여김을 당하고도 어찌할 방법이 없는 형상으로 된단 말인가 ?
3), 속인의 사회 상태에 부합되어 수련 한다는 것은 속인의 관념 수평에 국한 된다는 게 아니다. 한 속인은 중압 앞에서 두려운 마음이 생겨 도피를 선택하는데 이는 매우 정상적이다. 그러므로 “사람부터 살고 봐야지요.”한다. 혹은 “목숨을 걸고 마지막 일격을 하며 죽음으로 뜻을 밝히다”. 이른바 “인생자고 수무사, 류취단심 조한청(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이다.
그러나 한 수련생은 이 미혹의 공간을 궤뚫어 볼 수 있는 것으로 일의 진상을 본다. 우주대법이 일체를 제약하며 일체는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세간의 일체 표현은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미시적 요소가 존재한다. 만약 다른 공간의 요소를 제거한다면 취약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악은 수련인의 속인 마음의 틈을 타고 기어들어 감히 대법을 파괴하는 이처럼 상환하기 어려운 큰 죄를 지은 게 아닌가 ? 만약 우리 매개 수련인이 박해 앞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곧 정념으로 대하고 불법신통을 이용하여 사악을 제거한다면 사악이 아직도 거기에서 형체를 감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해가 아직도 계속 될 수 있겠는가 ?
어떻게 하고 어떻게 수련하는가 하는 것은 완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깨어 나라 ! 우리들의 매 한차례의 선택은 모두 더는 있을 수 없다. 또 우리들의 선택은 곧바로 우리들의 장래의 위치다.
이상 이야기 한 것은 개인이 현유 층 차에서의 깨달음이다. 법에 부합되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동수들의 시정이 있기를 희망 한다.
문장완성 :2008년 7월14일
문장발표 :2008년 7월15일
문장갱신 :2008년 7월15일02:22:18
문장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7/15/1820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