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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일체 공로를 사부님과 대법에 돌린다

글 / 흑룡강 대법제자 명우(明宇)

[명혜망 2008년 3월 18일] 수련 중 자아에 집착하는 이 마음은 아주 좋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수련자의 제고에 엄중한 영향을 주며, 따라서 중생구도에 영향 주며, 심지어 사악이 박해하는 구실이 된다.

내가 오늘 말하는 이 자아에 집착한다는 것은 주요하게 개인의 능력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나에게 반영된 것을 예로 든다면 이렇다. “내가 쓴 것이 명혜망 혹은 명혜주간에 발표되었다. 나에게는 또 자그마한 재간이 있다. 나는 3퇴를 권하여 얼마얼마를 탈퇴시켰다. 나는 직장에서 어떻게 환경을 창립하여 대법을 실증하였다. 나는 법을 위하여 어떻게 했다”는 등등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평소에 모르는 사이에 사상 가운데서 뛰쳐나온 것으로서 어떤 때에는 기본적으로 느끼지 못하였다.

다른 수련생을 대하는 문제에서 반영된 것 역시 이러했다. 예를 든다면, “갑 수련생은 만 명을 탈퇴시켰다고 말했는데 그는 정말 대단하다. 을 수련생은 정념이 정말 강하다. 병 수련생은 기술이 정말 강하다. 정 수련생은 세 가지 일을 정말 잘했다.”는 등등이다.

사실 자신이나 동수에게 능력이 있거나 잘했다면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이 주신 것이며 일체 공로는 사부님과 대법으로 돌려야 한다. 사부님과 대법이 없다면 우리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대법이 우리에게 열어준 지혜가 없이 우리가 또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은 정법을 하고 계시며, 사부님은 대궁을 바로잡고 계신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며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천상변화의 일종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혹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는 사부님이 안배하신 길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동수들은 진작 깨우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자신의 집착을 반성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정법이 곧 끝나려고 할 때, 우리는 비바람 속에서 이렇게 여러해 동안을 걸어 왔으니 자신에게 공로가 좀 있다고 여기거나, 공로가 없다 해도 고생한 공로는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한 이런 것들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도 무슨 공로를 운운한단 말인가? 사실 나는 이 역시 신사신법, 경사경법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이는, 우리는 걸어올 수 없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3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분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3/18/174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