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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고생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초보적인 인식

글 / 베이징(北京)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월 10일] 나는 수련을 시작한지 10년이 넘는다. 그러나 제고되는 경지가 항상 정말 너무나 늦어 의연히 개인수련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으며 완전하게 정법수련에 용해되어 들어오지 못하였다. 특히 장기간 형성된 게으름, 고생을 할 수 없다는 관념은 더욱 나의 다리를 끌어 당겼다. 매일 아침 연공은 사상이 격렬하게 투쟁하는 시간인데, 여러 번 패전하여 매번 후회하였다. 그리하여 잠자기 전에는 내일 꼭 일어나서 아침 단체연공에 참가하겠다는 큰 결심을 내린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가물가물 잠이 오는 고생을 두려워하는 사상은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이유를 찾아 스스로 자신을 용서한다. – 조금 후에 다시 연공해도 되겠지. 나중에 보충해도 되겠지… 이처럼 자신의 주의식이 강하지 않기에 관념에 따라 하면서 조금 후에는 또 자버린다. 매번 매우 괴롭지만 정진하여 돌파하지 못했고 게으른 마성을 고쳐 버리지 못했다.

최근 자신의 이러한 상황을 반성하면서 이런 교란을 철저히 제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항상 원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진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우선 그런 편안하려고 하는 생각, 게으른 생각은 진정한 자신의 주왠선(主元神)의 생각이 아니라 후천적 관념이기에 수련 중에서 제거해버려야 하는 것으로, 이는 곧 사부님의 법에 의거하여 타파해 버려야함을 명확히 하였다.

나는 또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사부님의 법을 공부했다. 나는 매일 반드시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하는 것처럼 마냥 이 정도, 저 정도만 하려는 이런 형식에 치우치지 않았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를 할 때 일부 점화가 끊임없이 사부님의 법에서 펼쳐지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가 없는가, 대가를 치룰 수 있는가 없는가, 고생을 겪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전법륜》 ) 그렇다. 자신은 수련하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요만한 고생마저도 돌파하지 못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현세 중에서 정진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절대적으로 후천적인 관념에 장애를 받는 것이며 봉폐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처럼 자신의 신체의 편안한 감수만 집착하는가를 진일보로 파보았다. 의연히 속인의 편안함을 편안함으로 간주한 것인데 기점을 사람에 놓았기에 사람의 도리가 장애로 되어 제약하였던 것이다. 만약 사람 중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는 곧 사람이며 수련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속인의 일체에 대해 매우 집착하며 사람 중에서 받는 일체 불공정한 대우는 모두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자신으로 하여금 참기 어렵게 한다. 가져오는 결과는 곧 결속의 시간을 집착하고, 수련환경을 집착하며 자신의 매일 자유로운 시간에 집착하며 속인사회의 뉴스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일 많은 시간을 써가며 법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속인사회의 형세에 새로운 변화가 있는가를 본다! 이것은 법의 요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지금 대륙은 아직도 사악의 박해를 받는 수련환경이다. 자신의 아내도 박해중에 있고 자신도 사악에게 주시당하고 있으며 또한 주위의 동수들이 늘 사악의 박해를 받는 등등…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구실이 되어 자신으로 하여금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속인의 방법으로 응대하게 한다. (법을 잘 학습하지 못했고 진상을 알림을 잘하지 못했으며 발정념은 형식에 치우쳤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처럼 그 어떤 환경하에서도 금강부동하지 못했다. 결국 의연히 사람 이 층의 도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속인의 편안함을 추구하며 사람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고 자신을 수련인으로 대하지 못했다. 사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일체 환경을 모두 자신이 수련하는 환경으로 간주하면서 외재적 환경이 그 어떻게 변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그 어떤 기복과 파동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수련의 환경은 자신이 직면해야 하는 것이며, 사람 중의 일체는 자신의 최종 목적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사람 중에 멈춰 있으면 곧바로 사람 이 층의 도리로 자신을 요구하게 되므로,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곧 부단히 사람의 것을 돌파해야 한다. 수련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만 비로소 승화할 수 있다.

문장완성 : 2008년 1월 8일
문장발표 : 2008년 1월 10일
문장수정 : 2008년 1월 10일 09:08:57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8/1/10/16989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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